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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백년 후 한국인 얼굴

더욱 세련되고 친근해진 인상

한국인의 얼굴이 길쭉해지고 있다. 미간이 좁아지고 콕 ㅏ길어진 탓이다. 요즘 감각으로 보면 세련된 얼굴 형태다. 더욱이 입꼬리가 올라가 상냥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이 늘면서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뀔 가능성도 있다.


6천여년 전 통영에 살던 한국인 조상의 얼굴을 복원한 모습. 현재보다 코가 많이 짧은 점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시경’(詩經)에 강산은 십년에 한번 변하고 얼굴은 천년이면 변한다(江山十年變 人貌千年變)는 구절이 있다. 옛 사람들도 얼굴 모습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왜 변할까. 가장 중요한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집단에서 외모를 결정짓는 유전자들은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한가지 방향으로 발달하는 경향을 가진다. 예를 들어 코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집단의 구성원들은 어느 한쪽의 코를 가지는 형태로 진화한다. 한 계산에 따르면 집단의 12% 정도가 가진 유전형질은 3백년(약 10세대)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한다. 1백명이 사는 집단에서 10여명의 코가 작다면 3백년 후 이 집단 사람들은 모두 큰 코를 가진다는 의미다.

후천적인 문화환경적 배경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다. 의외로 식생활이나 생활 습관, 그리고 정서의 변화가 용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측된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단백질이 풍부한 무른 음식을 많이 먹고 육체적인 일을 적게 하면, 턱이 뾰족한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갖추기 쉽다. 또 비교적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난 경우 어린 시절부터 찡그리는 일보다 미소짓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게 습관화된다. 이때 눈, 입, 뺨과 같은 얼굴의 조직이 변화돼 성인이 되면 늘 미소짓는 표정이 얼굴에 밴다.

고구마형 정수리가 사라진다

물론 이런 변화의 정도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장기간 누적되면 집단은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경향을 띤다. 불과 1백년 전 한국인의 얼굴이 현재와 무척 다른 이유를 바로 문화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1백년 후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1백년 전 사진처럼 다소 촌스러워 보일까. 아니면 요즘 미녀와 미남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를 따라 모두 영화배우처럼 잘생겨질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5년간 서울교육대학생(20세 전후, 매년 1백50명-3백명)과 각지의 초등학생, 그리고 일반인의 얼굴을 70개 지역에서 측정한 결과를 살펴보자.

먼저 머리 윗부분에서 커다란 특징이 드러났다. 원래 한국인의 머리 가운데 정수리 부분(두개부)은 끝이 뾰족한 ‘고구마형’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머리 양옆 끝의 모난 부분(두정융기)이 많이 돌출했다. 이 현상은 정수리가 낮아진 것이 아니라 양 옆이 높아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그렇다면 두개골 안에 감춰진 뇌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닐까. 즉 뇌의 용량이 증가했음을 알리는 간접적인 증거가 아닐까. 흥미롭게도 10여년 전에 비해 최근 이마 역시 2mm 정도 앞으로 돌출한 점이 발견됐다. 또 왼쪽 이마가 오른쪽에 비해 앞으로 돌출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 드러났다. 좀더 정확한 증거를 찾아야겠지만, 뇌가 전체적으로 커졌으며 특히 지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많이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눈과 눈 사이는 좁아지고 있다. 한국인의 눈동자 간 거리는 평균 62-65mm 정도였는데, 점차 이보다 좁은 미간을 지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비해 코는 2mm 정도가 길어졌다. 사실 한국인의 코는 예전부터 계속 길어지는 추세를 보였다. 예를 들어 6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통영 앞바다의 섬 연대도에 살던 한 조상은 미간에서 코 밑까지의 길이가 52mm 정도였다. 현재의 67mm에 비해 무척 짧은 코였다.

코가 길어지면 입모양은 어떻게 변할까. 한국인 입의 양 끝은 대개 수평보다 6도 정도 아래로 처져 있었다. 미소짓는 느낌보다 시무룩한 표정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에는 점차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다. 즉 평소에도 입이 상냥하게 웃는 모습을 띤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광대뼈가 점차 작아지고 턱이 뾰족해지는 추세다.


볼이 홀쭉해진 이유

코가 길어짐에 따라 코와 입술 사이의 부위인 인중이 입술 가운데를 밀고 내려온다. 이때 양 볼의 광대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광대뼈가 큰 사람은 얼굴 피부가 아래로 밀린 탓에 입꼬리 역시 아래로 처진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광대뼈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인의 입꼬리가 점차 위로 올라가는 커다란 이유다.

광대뼈의 크기는 식생활 습관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우리의 요즘 음식 문화에서는 ‘힘차게’ 씹어먹는 일이 드물다. 대신 대충 씹어도 넘어가는 무른 종류를 많이 섭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입의 운동과 관련된 광대뼈를 비롯한 각종 뼈들의 기능이 퇴화할 수밖에 없다.

무른 음식 탓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부위는 아래턱뼈다. 최근 10여년 간 턱의 폭과 길이가 5% 정도나 줄었다. 외관상 턱 끝이 이전보다 뾰족해졌다는 의미다. 음식이 무른 이유도 있겠지만 열풍처럼 번지는 다이어트 때문에 현대인들이 지나치게 입을 쓰지 않는게 아닐까.
턱이 작아짐에 따라 볼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홀쭉해졌다. 놀랍게도 10여년 전 홀쭉볼과 볼록볼의 비율이 1 : 10이었던 것이 현재는 정반대로 역전돼 10 : 1로 변했다. 좋게 말해 세련된 얼굴, 나쁘게는 빈약한 얼굴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볼 때 머리가 커지고, 이마가 돌출하며, 코는 길어지고, 턱 끝이 뾰족해진 것이 지난 10여년 간의 변화 양상이었다. 요즘 감각으로 판단하면 일단 미남 미녀의 기준을 갖춘 셈이다. 더욱이 상냥하게 웃고 있는 입마저 갖췄으니 과거에 비해 한국인의 인상은 훨씬 좋아진 느낌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1백년 후의 한국인 얼굴은 이와 같은 ‘세련되고 친근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풍길 것이다. 이 자료를 기초로 삼고 최근까지의 변화 속도를 고려해 1백년 후의 한국인 얼굴을 복원한 조각이 현재 민속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그러나 한가지 커다란 변수가 있다. 바로 컴퓨터다.

현대인이라면 아이나 어른 모두 컴퓨터 앞에서 장시간 앉아있는 일이 흔하다. 문제는 자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목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

이때 턱이 점점 아래로 처져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을 쉬게 된다. 물론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자세의 변화는 좀처럼 없다. 이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입술 모양이 변해 똑똑한 발음이 어려워진다. 즉 고저강약의 변화가 적고 소리가 명확치 않은 ‘코맹맹이’ 음성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요즘 발음이 명확치 않은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컴퓨터의 발달은 사람 뇌의 크기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컴퓨터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만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우스로 간단히 클릭만 하면 원하는 화면이 뜨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교육과 연령의 폭이 대폭 확대됐다.

멍청한 얼굴로 변할수도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예전에 비해 오히려 뇌를 쓸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골치아픈 연산이나 논리의 전개를 직접 수행할 필요가 사라지고 있다. 이미 짜여진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사용자가 점차 ‘바보’가 될 것이라는 농담도 종종 들린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사람의 머리가 현재보다 작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얼굴의 모습은 비단 부모가 가진 유전자가 무엇이냐, 그리고 식생활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를 비롯해 현대문명이 낳은 각종 산물이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것은 물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얼굴 표정을 멍청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조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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