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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잘 살고 있니? 고기공장에 갇힌 가축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가축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절반에만 소, 돼지, 닭 등 2763만 두의 가축이 산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 곁을 떠난 가축의 이야기를 나눠보자.
 
 
어렸을 적 농촌에서 자란 나는 여러 동물들과 함께 살았다. 소여물을 주기 위해 날마다 볏짚을 잘게 잘랐다. 가족들이 먹고 남은 음식물은 모두 돼지에게 줬다. 매일 아침 일어나 닭장에서 신선한 알을 꺼내는 것은 즐거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행여나 삵이나 족제비가 밤새 닭을 물어갈까 저녁이면 닭장 문을 거듭 단속하곤 했다. 이런 일상은 수천 년 동안 이어졌던 농가의 풍경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람 곁에서 동물이 사라지고 있다. 야생동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가축도 흔히 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축을 직접 보고 키우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책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본다.
 
야생 맷돼지(앞쪽)와 살코기가 많은 돼지 랜드레이스를 비교했다. 야생 맷돼지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므로 몸이 짧고 앞쪽이 발달했다. 랜드레이스는 움직일 필요가 없어 몸집이 비대하고, 고기가 많은 뒤쪽이 발달했다.
 
재래소와 젖소인 ‘홀스타인’의 체형을 비교했다. 재래소는 엉덩이가 작고, 젖이 처지지 않았으며 뿔도 곧게 서 있다. 하지만 홀스타인은 몸집이 크며, 우유를 만드는 조직이 발달해 젖과 엉덩이가 크다.

가축은 왜 멀어졌을까
우리나라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축과 사람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도시에는 꽤 오랫동안 가축이 남아 있었다. 1960년대 우마차가 서울 도심을 오갔고,1990년대까지 큰 규모의 우시장이 서울 시내에 있었다. 서울 광진구 마장동 우시장은 하루 소 250여 마리, 돼지 2000여 마리를 도축하는 큰 시장이었다. 그러나 결국 우시장은 도시 밖으로 이동했다.

도시화 탓만은 아닌 것 같다. 농촌에 가도 소와 돼지를 보기 힘들다. 농가와 축산 전업농가가 분리됐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2008년 자료에 따르면 돼지 1000두 이상을 기르는 축산전업농가의 비율이 1990년 0.3%에서 2006년 27.4%로 크게 증가했다. 이들이 기르는 가축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소와 닭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가축은 시골에 가도 전문 사육농장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전문 사육 농장이 늘어난 이유는 고기 소비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이 2009년 36.8㎏으로 30년 전보다 세 배나 늘었다.

따라서 가축의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구제역 이전)에 의하면 한우의 수가 1975년 155만 두에서 292만 두로 늘었다. 돼지는 124만 두에서 980만 두로 늘어났다. 닭은 더 많아 1491만 두를 키우고 있었다.

육류 소비량이 급속히 늘어난 것은 가축 사육 방식 덕분에 고기 생산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제한된 면적에서 되도록 많은 가축을 사육해 경제성을 높인 ‘밀집형 가축 사육’이 도입되면서 싼 가격에 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최영찬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밀집형 사육방식은 낙농선진국인 덴마크와 네덜란드를 모방한 것인데, 1980년대 말부터 급속하게 이뤄졌다”며 “좁은 공간에서 키우면 가축은 움직일 수 없으니 사료를 먹는 것에 비해 살이 빨리 찌고, 관리가 쉬워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밀집형 사육은 고기를 싸게 만들었고, 고기에 맛들인 사람들은 더 많은 고기를 원해 더 많은 밀집형 사육 시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최대의 닭 가공 공장인 전북 익산시 망성면 하림공장 도계준비실. 밀집형 사육과 자동화된 가공으로 고기의 가격은 많이 싸졌다.
 
농가당 한우 사육 수는 1990년 평균 2.6마리에서 2010년 16.9마리로 8배, 돼지는 34.1마리에서 1237.6마리로 36배, 닭은 462.5마리에서 4만 1051.9마리로 무려 89배나 증가했다. 가축 사육밀도도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이 1km2의 땅에 소 31마리를 키우는 반면 일본은 11.7마리, 미국은 9.5마리, 호주는 3.5마리를 키우고 있다. 돼지는 한국이 1km2당 96마리를 사육하는 데 반해 일본은 26.5마리, 미국은 6.7마리, 호주는 0.05마리에 불과하다.

전염병도 가축과 사람을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가축은 야생동물에 비해 전염병에 취약하다. 유전적 다양성도 떨어지고, 체내 저항력도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원균과 바이러스를 옮기는 사람과의 접촉이 그리 반갑지 않다.

이번 겨울 구제역으로 총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AI로 닭과 오리 623만 마리가 살처분되거나 매몰됐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사상 최대의 피해를 초래한 구제역의 확산 원인을 이동제한 조치 같은 초동방역이 실패한 탓으로 진단 했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네덜란드에서 실시하는 ‘일시정지’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악성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발생 농장뿐 아니라 전국의 분뇨, 사료 차량이 일정기간 움직이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제도다.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사람과 가축, 가축과 가축이 만나는 일을 최소화한다는 이야기다. 방역대책이 체계적으로 세워질수록 가축과 사람은 더 멀어질 것이다.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우리 곁에서 멀어진 가축들은 잘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다. 좁은 공간에서 밀집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번식용 어미돼지들은 쇠파이프로 짠 우리 ‘스톨’에 갇혀 새끼를 낳는다. 새끼 돼지 100여 마리는 학교 교실의 1/4에 불과한 15m2 크기의 좁은 우리에서 자라고 있다. 정부가 고시한 닭의 축산기준면적은 A4용지 한 장 크기보다도 작은 0.042m2이다. 하지만 실제 이보다 좁은 곳에 살고 있다. 날개를 움직이지도 못해 몸을 긁거나 단장하지도 못한다. 좁은 공간에 수천, 수만 마리가 같이 살다보니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양계장은 늘 뿌연 먼지와 가스로 가득 차 있다. 돼지들도 축사 안의 분뇨가스 때문에 눈이 빨갛게 충혈돼 있다.

산란계(계란을 낳는 닭)는 좁은 공간에서 알을 ‘과도하게’ 낳는다. 닭은 빛에 민감하다. 빛을 쏘이면 산란계는 산란호르몬을 많이 분비하고, 육계(고기로 먹는 닭)는 사료를 많이 먹는다. 육계는 하루 24시간 빛을 받아 사료를 끊임없이 먹어 빨리 자란다.

빛에 민감한 특성을 이용해 산란계의 산란율이 떨어지는 1년이 될 즈음 ‘강제털갈이’를 시키기도 한다. 보름쯤 불을 끄고 모이를 주지 않으면 겨울이 왔다고 생각하고 닭은 털갈이를 한다. 이렇게 하면 다시 산란율이 올라간다.

◀ 방역체계가 체계적으로 세워지는 만큼 가축과 인간은 더 가까워질 수 없다. 저항력이 약해진 가축에게 인간이 옮기는 전염병은 치명적이다.

이렇다보니 몸의 저항력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스트레스가 극심하기 때문에 급사하거나, 다른 질병에 걸리기 쉽다. AI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돌면한 사육장의 닭이 모두 죽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이를 막기 위해 백신과 항생제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입맛에 맞는 고기와 우유, 계란을 얻기 위해 육종을 한다. 육종의 역사는 영국의 로버트 베이크웰이 ‘레스터’라는 품종의 양을 비교적 살찐 양으로 개량했던 18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이크웰은 양과 소에게서 특수한 형질을 발전시키기 위해 근친교배를 이용했다. 그 뒤 더 생산성이 높고 맛 좋은 고기·우유·계란을 얻기 위한 과학적인 육종이 발전했다.

그 결과 닭은 일 년에 60여 개 낳던 계란을 300~360개나 낳는다. 젖소는 야생에서 하루 2~3kg 생산하던 우유를 30~50kg 생산한다.

한상기 건국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육종하고, 사육하면서 사료를 조절하기 때문에 체형과 육질이 변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와 돼지는 지방(마블링, 삼겹살)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 때문에 지방질의 사료를 많이 먹는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미국과 유럽은 지방질 대신 단백질이 많은 사료를 준다.

천수를 누릴 수도 없다. 가축은 다 크기 전 경제적으로 가장 이익이 되는 시점에 죽는다. 닭은 최대 15년까지 살 수 있지만 육계는 6주 만에 2kg 정도로 살을 찌워 출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통닭과 삼계탕에 적합한 크기인 1.2~1.6kg 정도가 되면 출하해 한국 닭의 수명은 더 짧다. 수명이 10~15년 정도인 돼지도 6개월 정도를 살다 110kg쯤 되면 도축장으로 간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육종을 하다 보니 유전적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닭은 살이 찌는 속도만큼 다리뼈가 성장하지 못하다 보니 다리가 부러지는 각약증에 잘 걸린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는 급사증도 잦다. 백인기 중앙대 동물자원과학과 명예교수는 “무리한 육종으로 백혈구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사라져 개발한 닭의 한 종류가 백혈병으로 전멸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종의 다양성도 사라졌다. 산란계는 ‘레그혼’, 육계는 ‘브로일러’로 모든 닭의 품종이 통일됐다. 계란을 많이 낳고, 빨리 성장하기 때문이다. 돼지는 ‘랜드레이스’, ‘듀록’ 등 5가지의 종을 주로 기른다. 한우를 개량한 소를 제외하곤 대다수 가축의 재래종은 자취를 감췄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유전자 자원 은행 목록에 올라와 있는 사육동물 6379종 가운데 4184종은 이미 멸종했으며, 1335종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FAO는 멸종속도가 너무 빨라서 유전적 다양성이 불충분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인기가 없는 사육동물이 미래의 식량안전과 농업발전에는 대단히 유용할 수 있는데 더 이상 기르지 않아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의 돼지 축사(위)와 동물복지농장 축사(아래). 현재 돼지 축사는 한 우리에 들어가는 돼지의 수가 많으며, 환기가 잘되지 않는다. 바닥도 돼지가 서 있기 힘든 딱딱한 소재로 돼 있다. 동물복지농장 축사는 13m2 당 5마리의 돼지가 살아 여유가 있다. 환기가 잘 되며 바닥도 톱밥을 30cm 깔아 지내기 편하다.

대가를 치르는 사람과 환경
가축의 삶이 형편없어진 만큼 인간도 대가를 치루고 있다. 먼저 항생제의 오남용은 항생제 내성의 위험을 불러왔다. 2007년 식품의약품안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육류생산량 대비 항생제사용량’이 0.916이었다. 일본(0.355)의 2.6배, 미국(0.254)의 3.6배, 프랑스(0.271)의 3.4배이며, 특히 호주(0.063)에 비해 무려 14.5배에 달했다. 항생제 내성이 훨씬 심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용호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200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질병 치료보다 질병 예방 및 성장 촉진 목적으로 사용되는 항생제가 전체의 42~53%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가축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동물은 엄청난 곡물을 먹는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 또한 자신들이 먹은 풀의 상당량을 에너지나 배설물로 전환시키고 비교적 적은 양만을 지방과 근육으로 바꾼다. 사람이 쇠고기 1kg을 섭취하기 위해 소는 12~14kg의 곡물을 먹어야 한다. 돼지고기는 6~7kg, 닭고기는 2~3kg을 먹는다. 고기를 많이 먹을수록 곡물소비량도 급증한다. 우리 국민이 1년에 소비하는 쌀이 약 420만 t이지만 사료로 소비되는 곡물이 1700만 t으로 4배 이상이나 된다.

환경문제도 만만치 않다. 메탄가스는 지구 온실가스의 1/4∼1/5을 차지하는데 가축의 분뇨에서 나온 것이 15% 가량이다. 가이아 가설을 주장한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치명적인 세 가지 요인으로 연료, 가축, 기계톱을 꼽았다. 목장은 물을 부영양화시키는 질산성 질소의 주요 배출원으로 가축을 가둬 기르는 밀집형 사육은 이것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목장 부근의 지하수와 지표수가 심하게 오염됐다. 미국 한 나라에서 한 해 배출된 가축의 총 분뇨량은 20억 인구의 한해 배출량과 맞먹는다.
 
가축 분뇨로 요염된 경기 화성시 마도면 저수지. 가축 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강과 바다로 흘러나가면 심각한 환경오염이 일어난다.

가축과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유럽에서는 이런 집단형 사육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동물복지농장을 도입했다. 동물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영국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는 1993년에 5가지 기준을 제시했고, 1996년에는 동물복지법을 제정했다. 동물복지축산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시설과 노동력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도 함께하고 있다.

조광호 전남대 동물자원학부 교수팀은 2007년 ‘한국형 동물복지농장 모형 설정’이라는 보고서에서 동물의 인도적인 관리, 불필요한 학대 금지, 꼬리·부리·볏 자르기 억제, 동물 스트레스 최소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항생제, 성장촉진제를 줄이려는 노력도 있다. EU는 2006년에 성장 촉진을 위한 항생제의 사용을 금지했다. 200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가금류에서 사용하는 일부 항생제의 사용을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05년부터 성장촉진 목적의 항생제 감축정책을 펼쳐 2009년 전체 축산용 항생제의 사용량은 998t으로 2008년에 비해 약 18%, 2001년에 비해서는 약 37% 감소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김유용 서울대 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동물복지농장을 하면 고기의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 가격에 고기를 먹을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백인기 교수도 “항생제를 쓰면 10% 이상의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있지만, 항생제 대체제를 사용하면 5~7% 정도로 효과가 떨어진다”며 “이런 생산성 저하는 결국 축산물의 가격을 올린다”고 말했다.

결국 동물에게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선 소비자가 더 높은 축산물 가격을 감당해야 한다. 이 점에서 박창길 성공회대 유통정보학과 교수는 “동물복지형 농장은 동물복지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근본적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동물을 위한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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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rto. 나는 가축이다
Part 1. 사람과 야생동물의 동거 생활
Part 2. 고기공장에 갇힌 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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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종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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