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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 야경. 캠퍼스를 처음 본 사라들은


①학생들의 천국
교육비1위, 최고의 연구시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리는 대학생은 바로 포항공대생이다. 학생 모두가 수업료를 면제받는 사실말고도 1년 동안 학생 한사람이 받는 교육비는 2천9백13만원, 도서구입비는 1백59만원으로 한국에선 단연 독보적이다. 우리나라 대학 평균 교육비 수준은 4백79만원이고, 서울대의 도서구입비는 19만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포항공대의 야심은 세계 초일류 공과대학을 만들겠다는 것.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시설, 능력있는 교수, 그리고 우수한 학생이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돈이 뒷받침돼야 한다. “포항공대가 갖추고 있는 연구시설은 현재 대학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투자 계획일 것이다. 포항공대는 포항제철로부터 재단이 독립하면서 이미 3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대학발전기금을 마련했다.” 이전영 연구처장은 “그 이자만도 1년에 4백억원에 이른다”라며 튼튼한 대학재정을 설명해 주었다.

캠퍼스를 둘러보면 학교가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먼저 대학도서관에 들어서면 수많은 장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포항공대는 학생 1명당 2백22.9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다. 50년 역사를 지닌 서울대(95.7권)보다 크게 앞지른다. 장서들은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전산관리 프로그램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사진이 붙어있는 안내판을 지나 각 학과 연구실을 들어서면 1대에 1백만달러가 넘는 기자재들이 앞을 다툰다. 포항공대생들은 3학년이 되면 누구나 연구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고가 장비를 일찍부터 다룬다고 한다.

포항공대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혹 캠퍼스 내에서 커플을 만나 결혼이라도 한다면 기혼자 아파트를 쓸 수 있다. 물론 그 비용은 거의 무료에 가깝다. 기숙사를 지나면 학내 술집인 통나무집이 기다리고 있고, 다시 언덕을 내려가면 엄청난 철근으로 무장한 체육관과 실내 테니스 코트가 나온다. 체육관에는 라켓볼장, 농구장, 체력단련장, 조깅트랙이 설치돼 있어 학생들은 물론 교수들의 사랑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편의시설을 둘러보면 매년 학생 한사람당 1천4백68만원의 운영비가 든다는 것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다.

왜 포항공대는 일반대학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엄청난 투자를 학생들에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연구중심대학이라는 특성으로부터 찾아봐야 할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이란 교육은 물론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이다. 외국에는 연구중심대학이 많지만 국내에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최초다. 연구중심대학의 특징은 학생들이 곧 연구원이라는 점이다.

포항공대생들은 학부 3학년부터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되면 교수와 함께 기업 등에서 받은 연구과제를 수행한다. 모든 학생들이 연구원이 돼 연구에 참여하기 때문에 소위 ‘실력’으로 대변되는 논문을 많이 쓸 수 있음은 물론 학비와 연구비도 벌 수 있다. 학생들은 연구도 하고 스스로 학비도 벌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포항공대가 대학 최고의 반열에 설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학생들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일찍부터 연구에 참여하도록 하는 면학풍토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②세계적인 빛공장
포항가속기연구소

포항공대와 가속기연구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비사가 있다. 87년 포항공대가 설립될 때 학장으로 내정된 김호길박사는 “가속기를 세워주지 않으면 학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고 한다. 가속기전문가인 김박사가 자신의 꿈을 포항공대 설립에 얹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포철회장인 박태준씨는 “포항공대를 단기간 내에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만들어준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김박사를 달랬고, 그 약속은 이듬해 지켜졌다.

“박회장과 김학장의 야심작이겠지만, 포항공대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를 청사진에 넣고 있었다”고 남궁원 가속기연구소장은 말한다. 방사광가속기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등 기초과학은 물론 재료, 화공, 전자공학, 환경공학, 의공학 등 응용분야가 넓다. 그래서 이를 보유한 포항공대는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지렛대 역할을 함은 물론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전략이다. 현재 세계를 둘러봐도 가속기를 대학에서 보유한 곳은 미국의 스탠포드대학과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정도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1천5백억원을 들여 88년에 착공해서 94년에 완성됐다. 20억eV 수준의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입자를 가속해 충돌시키는 일반 가속기와는 성질이 다르다.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해 진로를 바꾸면 매우 강력한 빛이 나온다. 이 빛이 바로 방사광이다. 방사광은 X선보다 훨씬 강력해 물질의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반응시켜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일반 가속기가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성분인 소립자 연구에 쓰이는데 반해 방사광가속기는 주로 산업에 응용된다. 그래서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수익구조를 갖는 사업체가 될 수 있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세계 가속기 건립사에서 하나의 신화로 기록되고 있다. 가속기를 설립한 경험이 전혀 없는 가운데 우리 기술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의 장비를 수혈해야 했지만, 많은 것들이 새롭게 디자인됐다. 특히 성능은 동급 가속기 중에서 세계 제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현재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는 하루에 3차례 사이렌이 울린다. 이 사이렌 소리에 따라 국내 여러 대학과 기업연구소에서 찾아온 연구원들이 각자의 연구과제를 수행한다. 선형가속기부장인 고인수박사는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아 큰 성과는 없다”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몇년은 기다려야 좋은 연구결과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1백50m에 달하는 선형가속기.
 

총장인터뷰
스스로 연구하는 능력 길러


입시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포항공대는 복수합격자들이 서울대로 몰려가는 피해를 입어왔다. 인사치고 다소 듣기 거북한 질문이지만 초일류를 지향하는 포항공대의 최대 걸림돌인 입시문제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총장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자신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서울대가 좋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안다. 오랜 역사와 국립대의 이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러한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1-2점을 다투는 현재의 대학입시에서 서울대를 가는 학생과 다른 대학을 가는 학생의 실력차이가 얼마나 될까. 문제는 대학에서 얼마나 잘 가르치고 지도하느냐에 있다. 이점에서 포항공대생들이 결과는 나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학입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인가. 포항공대가 지향하는 선발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번에는 양해를 구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포항공대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수능보다 내신성적을 중요시해왔다. 아무래도 3년동안 평가한 것이 하루에 치러 평가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학생부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비중을 낮추고 수능에 치중하기로 했다. 다만 수학과 과학과목에 가중치를 두었다."

총장은 현재 고등학교가 입시학원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학은 교양을 두루 익히고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기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포항공대를 최고의 대학 반열에 올리기까지 어떤 교육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포항공대는 연구중심대학이다. 대학생이면 교수가 가르쳐주는 것만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연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다행히 많은 포항공대생들이 잘 적응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교양을 익히고 스스로 연구과제를 만들어 푸느라 다른 대학생들보다 힘들게 공부한다. 학교는 이점을 보상해주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천년대 포항공대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문득 94년의 총장 취임사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우리 대학은 2020년 동경대학, 2030년 카네기멜론대학, 2040년 MIT와 칼텍의 수준에 도달하는 목표로 매진하자."

③쏟아지는 논문들
최고의 교수진

 

도서관이 널찍해 시험기간에도 붐비는 일이 없다.


포항공대를 보면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학년에 3백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대학에서, 10년이란 짧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포항공대에는 모두 10개의 학과가 있다. 교수는 2백명 정도. 그러나 교수들은 ‘일당 백’처럼 느껴진다. 95년 포항공대가 한해 동안 발표한 논문은 모두 1천6백80편으로 교수 1인당 평균 8.8편을 발표한 것이다. 거의 한달에 1편을 쓴 셈이다.

이들은 국외학술지 2백83편(16.8%), 국내학술지 1백55편(9.2%), 국외학회 3백76편(22.4%), 국내학회 8백66편(51.5%)이다. 특히 미국과학정보연구소가 발간하는 세계적인 과학인용색인집인 SCI에 발표한 논문은 3백9편에 이른다.

최근 발표한 논문 가운데는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다. 일례로 생명과학과 남홍길교수가 세계 최초로 발견한 노화촉진 유전자를 들 수 있다. 식물에는 최소 3개 이상의 노화촉진 유전자가 있는데 이중 1개라도 이상이 생기면 식물의 노화와 죽음은 최대 2배 이상 늦춰진다는 사실이다. 또 식물이 시들어 죽어 가는 것은 단순히 늙어서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번식을 위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능동적 과정이란 사실도 확인했다.

물리학과에 들리면 이성익교수가 개발한 고온초전도체를 볼 수 있다. 이교수가 개발한 1백30K 이상의 수은계 초전도체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계공학과에 들리면 염영일교수와 정완균교수가 개발한 다양한 로봇들을 볼 수 있다. 관절이 3개 넘는 로봇들은 사람의 손가락보다 더 자유롭다.

교수들의 연구능력은 외부기관에서 받는 연구비에서도 나타난다. 포항공대가 지난 3년동안 받은 연구비는 교수 한사람당 2억2천여만원으로 국내 대학 중 가장 많다. 물론 여기에는 전 재단이었던 포항제철의 지원도 작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포항공대는 마치 재단, 교수, 학생들이 하나의 공동체처럼 느껴진다. 교수들이 번 연구비는 학교에서 관리해 다시 교수 연구비와 학생들의 교육비로 쓴다. 또 학생들은 교수의 연구를 돕는 것을 마다 않는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결국 포항공대를 이끌어가는 구심력인 듯하다.

97포항공대 입시의 특징

포항공대 입학생들은 과학영재로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입학조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곳에 지원하려면 최소한 학교장의 추천을 받거나, 아니면 수능성적이 응시자의 상위 3%에 들어야 한다. 포항공대는 올해 입시를 발표하면서 예년과 달리 수능의 비중을 대폭 높였다. 내신성적을 중시해 왔던 포항공대는 학생부가 학생들의 실력을 가늠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포항공대는 학생부의 점수중 90%를 기본점수로 줌으로써 실질적인 반영 비율을 평균 4%로 낮추고, 과목도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4과목만 반영하겠다는 입시요강을 발표했다. 한편 수능에서 수리탐구Ⅰ,Ⅱ의 점수는 100%의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수능점수가 입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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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이종승 기자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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