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초창기에 여러 과학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냈다. 놀랍게도 요즘에도 자신의 몸을 과학연구를 위해 내놓는 과학자가 있다. 최근 방한한 영국 레딩대학의 케빈 워릭 교수가 그 주인공.
워릭 교수는 1998년 자신의 팔에 컴퓨터 칩을 이식했다. 수술 후 워릭 교수가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팔에 있는 칩의 신호를 건물 관리 컴퓨터가 인식해 문을 열고 연구실의 모든 전원을 알아서 켰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에서 강연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7일 영국 문화원에서 만났다.
우선 왜 동물 실험을 먼저 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자 “영국에서는 동물보호운동이 강하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오히려 더 힘들다”고 대답했다. 물론 “사람의 감정은 동물실험을 통해 알 수 없기 때문에 직접 칩을 이식했다”는 것이 진짜 대답일 것이다. 그렇다면 칩을 통해 감정까지 전달한다는 뜻일까. 워릭 교수는 “오는 11월 자체 전원과 라디오파 송수신 기능을 갖춘 칩을 또다시 이식할 계획인데, 이번에는 칩을 신경에 직접 연결한다”고 밝혔다. 또 이 칩을 아내의 팔에도 이식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대방이 느끼는 감촉과 더불어 감정까지 알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워릭 교수는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에 가면 손이 떨린다고 한다. 이때 손가락의 떨림은 신경을 통해 칩에 전달되고, 이 신호가 인터넷을 통해 멀리 있는 아내에게 전해진다. 그 결과 아내는 텔레파시를 하는 것처럼 남편이 처한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워릭 교수의 이 실험은운동 장애를 가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는 “칩과 신경계가 완벽하게 연결되면 손발이 없는 사람이 로봇 손발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외부에서 전기신호를 줘 신체의 통증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계에 지배당하지 않는 방법
워릭 교수의 실험은 과학연구의 목적과 함께 자신의 세계관을 실천한다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평소 머지 않아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출현해 자칫하면 인간을 지배하는데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998년의 실험도 칩이 이식된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기계의 감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감행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인간도 기계를 능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 옛날 침팬지와 인간이 갈라진 것처럼 이제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과 반은 인간, 반은 기계인 ‘사이보그’(cyborg)로 진화하는 단계라는 것.
예를 들어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적외선 감지장치를 이식하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장애가 없어도 기계장치를 이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새로운 감각기관과 운동능력을 지니게 돼 앞으로 현재의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기계가 출현해도 인간이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워릭 교수의 이런 생각은 기존 과학계로부터 “지나친 기대와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익살광대’나 ‘미디어의 매춘부’로까지 불리는 형편이다. 지난해 12월 워릭 교수가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하자 과학계가 한바탕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강연은 1825년 패러데이가 크리스마스 휴가 중에 아이들을 위해 즐겁고 재미있는 과학강연회를 열었던게 시초. 그 후 1백70여년을 이어오면서 왕립연구소의 대표적인 행사가 된 크리스마스 강연에서 과학계에서 합의되지 않은 그의 생각을 펼치자 과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워릭 교수는 느긋한 표정이다. 우선 왕립연구소 소장인 수잔 그린필드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주부들도 과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펴고 있는 그린필드 소장의 눈에 워릭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을 과학으로 모을 수 있는 적격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 TV시리즈‘X파일’에서 스컬리역을 맡은 질리언 앤더슨도 워릭 교수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하다. 어쩌면 그는 과학연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엽기과학자’(mad scientist) 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 물음에“그 말을 듣는게 처음은 아니다”면서“별로 기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인류를 업그레이드하는 연구”를 하는데 그런 말쯤이야 아무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