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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붙는 속옷이 몸에 좋은 이유

패션은 과학을 입는다

땀을 흡수하고 속살을 보호하는 기능을 넘어 화려하고 다양한 재질의 속옷이 쏟아지고 있다. 겉옷보다 아름답고 특이하게 생긴 속옷이 과연 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허리를 조이고 가슴을 크게 만드는 속옷이 몸에도 좋을까.







일부러 바깥으로 드러내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속옷을 가리기에 바쁘다. 외국에서는 속옷도 패션이라며 겉옷과 색깔을 맞추고 패턴을 맞추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아직도 속옷 끈이나 밴드, 레이스 등이 보이면 ‘칠칠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아무리 바깥에서 보이지 않게 감추는 속옷이라도 훌륭한 패션이 될 수 있다. 땀을 흡수하고 체온을 조절하는 본래 역할을 뛰어넘어 활동하기에 편안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재창조하기 때문이다.



속옷을 입으면 안 입었을 때보다 활동이 편안하다. 매일매일 입는 것에 익숙해진 이유도 있지만 우리가 활동할 때 움직이는 살과 근육을 생각해 속옷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밀착내의를 입으면 허벅지살이나 엉덩이가 흔들리는 것을 막아 움직이기 편해진다. 유방은 생리학적으로 쿠퍼인대가 받치고 있는데 브래지어를 착용하면 인대의 지지력이 더욱 튼튼해져 동작이 가뿐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속옷은 남성적인 또는 여성적인 매력을 배가시켜 상대방뿐 아니라 본인도 기분이 좋아지는 심리적인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아름다움 위해 척추 휘는 일도 감수

기원전 2000년 경 크레타 시대의 유물을 보면 노출된 가슴을 받쳐주고 허리를 조이는 코르셋이 등장한다. 4000년 전이나 21세기나 우리의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셈이다. 코르셋은 다른 어떤 속옷보다도 오래전부터 여성의 인체를 구속해왔다. 중세 중기에는 동물 가죽이나 천으로 코르셋을 만들었다. 신체 교정 목적이 강해진 르네상스 시대에는 코르셋에 고래수염이나 금속을 넣어 구속을 강화했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여성의 정신과 육체를 학대하는 수준으로까지 심화됐다. 예를 들면 허리를 19~22인치로 만드는 코르셋이 등장해 현기증이나 기절, 척추 만곡, 장기의 변형, 근육 발육부진, 조산아 분만이나 유산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다. 심지어 가느다란 허리를 만들기 위해 맨 아래 늑골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성행했고 아르누보 시대의 악명 높은 S자형 코르셋(복부를 최대한 조여 꼬리뼈를 뒤쪽으로 미는 코르셋)으로까지 발전했다.

여성이 코르셋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가 1907년 신고전주의 의복스타일을 주창한 뒤 브래지어가 유행하게 됐다. 1960년 라이크라(미국 뒤퐁사에서 개발한 폴리우레탄 섬유)가 등장하면서 속옷은 가볍게 변했고 신축성도 혁신적으로 개선됐다. 급기야 마돈나가 1990년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의 코르셋을 입고 나와 공연을 하면서 최근에는 겉옷 형태로 자연스럽게 응용되고 있다.





[과거 서양에서는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1). 그래서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최대한 허리를 조였다. 그 결과 척추가 휘거나(오른쪽) 장기가 변형(2)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팬티는 앞부분을 덮는 형태부터 시작해 중세에는 다리 사이를 두른 형태로 발전했다. 19세기에는 긴 옷을 내려 입거나 겹겹이 입는 페티코트 속에는 팬티를 입지 않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몸에 밀착되는 팬티가 등장했다.



속옷이 몸에 달라붙으면서 피부와 공존해야만 하는 문제에 부닥쳤다. 피부에는 뜨거움과 차가움, 압박감, 아픔을 느끼는 수용체가 있기 때문에 속옷의 재질은 끊임없이 피부를 자극한다. 결국 어떤 속옷을 입었나에 따라 다양한 감각과 생리 반응이 일어난다. 압박감이 심하면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면역력이나 남성의 경우 정자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 가해지는 압력이 팔 윗부분은 2kPa, 허리나 허벅지는 3kPa을 넘으면 안 좋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거들 중에는 4kPa을 넘거나 심지어 웨이스터 니퍼(허리를 가늘게 죄기 위해 착용하는옷)는 6kPa을 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속옷의 거친 표면은 면역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에서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보통 내의와 부드러운 내의를 2일 동안 입혀 내분비계와 면역계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부드러움이 떨어지는 보통 내의를 입었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증가했으며, 면역계를 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됐다. 부드러운 내의가 몸에 더 좋다는 것이 생리 반응으로 나타난 셈이다.
 
 


속옷 설계하려면 몸 생김새 알아야

속옷을 개발하는 일은 건축물 설계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속옷이 인체의 형태와 동작, 생리 메커니즘을 고려해 가장 가까이에서 인체를 보필해야 하는 조형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옷으로 피부를 편안하게 입체적으로 덮으려면 인체 전개도가 필요하다. 둥근 얼굴, 납작한 원통 같은 몸통, 앞을 향해 불룩 솟아 있는 유방, 길쭉한 원뿔형의 팔과 다리, 그리고 손과 발…. 원통과 원뿔, 원뿔대는 오차 없이 평면으로 잘 펴지지만 몸통만 보아도 허리 부분을 보면 말안장 같이 세로는 오목한데 가로는 볼록하다. 가슴 부위도 볼록한 곳 옆에는 반드시 오목한 면이 있다. 벌어짐과 겹침 없이 전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을 움직이며 피부를 관찰해 보면 같은 피부라도 늘어나는 부위와 수축하는 부위가 나뉜다. 양손을 들었을 때 겨드랑이 밑은 잘 늘어나고 인체 중앙부는 잘 늘어나지 않는다. 관절 주변에는 주름이 있어 굽히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더욱 잘 늘어나고, 골이 있어서 굽힐 때 자리를 잡아준다.



그렇다고 전신이 모두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체를 살펴보면 가로나 세로 방향은 잘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변형이 있는데, 사선 방향 중 특수한 부위는 변형이 없는 소위 피부 무변형선(lines of non-extension)이 존재한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SF영화에 나오는 의상처럼 ‘인체 밀착형 의복’을 만들 수 있다. 옷이 최대한 피부에 맞닿아 몸이 움직이거나 생리현상이 일어날 때에 불편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피부 무변형선에 3차원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밀착형 의복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메사

추세츠 공대(MIT)에서는 이미 피부 무변형선을 고려해 미래형 밀착형 우주복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좋은 속옷은 인체에 완전히 밀착해 움직이기 편한 것이다. 의상학자들은 피부 무변형선을 고려해 밀착형 의복을 개발한다.]





상황에 맞게 늘거나 줄어야 좋은 속옷

몸을 움직일 때도 편안하려면 속옷이 부위별로 압력을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 속옷을 만들기 전에 먼저 운동 자세를 감안한 상태에서 피부를 3차원 스캔한다. 이것을 피부 무변형선이나 핵심적인 의복 구성선대로 자르고 평면으로 전개하면 부위마다 압력 조절이 다른 맞춤형 보정 속옷이 나온다. 얇은 신축성 커버를 만든 뒤 이 위에 필름이나 밴드를 이중으로 처리하거나 무봉제니트로 조직과 밀도를 부위별로 다르게 짤 수도 있다. 또 신축성이 거의 없는 소재로 만들면 압력을 더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다.



인체가 균형 있게 움직이도록 조물주는 위대한 복합 시스템을 창조했다. 우리는 감히 그것을 거스르지 않고 ‘제2의 피부’를 만들기 위해 이제 겨우 실마리를 하나하나 풀어갈 뿐이다.



그렇다고 제2의 피부 같이 멋진 기능적 속옷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우리에겐 실이 있기 때문이다. 쐐기풀로 옷을 짜서 거위에게 던지면 멋진 왕자님으로 살아난다는 동화를 떠올려보자. 쐐기풀은 가늘고 긴 섬유 집합체이다. 이를 이용하면 스마트하게 환경의 온도, 습도에 따라 고분자 구조를 열고 닫게 만들 수도 있고, 자체 발열도 가능한 구조로 합성할 수도 있으며 신축성을 조절할 수도 있다. 나노 수준으로 가늘게 만들고 화학처리를 해 오염을 방지하는 구조로도, 접착력을 조절하는 구조로도 만들 수 있다. 실을 어떤 밀도로 어느 방향으로 짜느냐에 따라 통기성, 압력, 탄성 등을 조절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식사하기 전과 후에 허리둘레가 3.8%만큼 커지고 앉거나 굽혀도 부피가 늘어난다. 여성은 난포호르몬 때문에 월경 전후로 허리에 염분과 수분이 고인다. 그래서 체중이 1.1%, 허리둘레가 2.4%씩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를 금속이나 플라스틱 소재는 맞추기 어렵지만 섬유소재로 만든 의복은 수용할 수 있다. 날실 씨실이 접합돼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고, 습도에 따라 구조를 변화할 수 있는 숨 쉬는 조형물이 섬유다.



한국에서는 긴 역사 동안 몸을 지나치게 구속하는 속옷이 없었다. 일본은 좀 더 인위적인 모양의 브래지어를 좋아하지만 유럽은 자연스러운 형태를 살린다. 이처럼 몸매와 관련하여 속옷의 기능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체형을 지나치게 보정하기 보다는 적당한 수준에서 몸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살리도록 속옷을 입어야 하겠다. 예부터 내려오는 한국의 미학, 즉 자연과의 상생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 글로벌 리더가 되는 길이 아닐까.



[실은 가늘고 긴 섬유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짜는 방향과 밀도, 공기가 통하는 정도, 압력, 탄성 등에 따라 원하는 옷을 만들 수 있다.]

 

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충남대 의류학과 홍경희 교수, 이미지출처│동아일보, istockphoto, 위키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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