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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단백질 지도사업 이끈다

세계 ‘프로테오믹스’ 중심 ‘연세프로테옴연구원’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2009년 혈액 한 방울로 간암을 찾아낼 수 있는 단백질을 찾아내 세계 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아시아 최초의 프로테오믹스(단백질체학) 연구소인 이곳의 단백질 분석 기법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프로테오믹스의 3대 국제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프로테오믹스’가 2003년 이후 세 번이나 한국 특집으로 이 연구소를 소개했을 정도다. 논문수로 평가하면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세계 8위다.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어떻게 세계 프로테오믹스 분야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 초까지 생물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유전자’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인간게놈프로젝트(HGP)’에 매달려 있었다. 30억 개에 달하는 인간 염기서열 정보를 모두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5개국이 주도했다. 미국의 바이오기업 ‘셀레라 지노믹스’는 별도로 게놈해독을 하고 있었다.



이 시기, 백융기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단백질체 연구를 시작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다음은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에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정보를 담고 있는 것 외에 아무 기능이 없다. 생체 내에서 실제로 기능을 하는 것은 단백질이다. 프로테오믹스(proteomics)란 이런 단백질 전체의 기능과 구조를 밝히는 학문이다.



“인간게놈 연구는 선진국이 주도했지만 다음 세대인 단백질 연구는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난 1999년, 아시아 최초로 프로테오믹스 연구기관인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을 세웠습니다.”



국내 프로테오믹스 연구 선두주자

프로테오믹스 연구의 핵심 기술은 시료 안에 들어 있는 다양한 단백질의 종류를 파악하는 것이다. 단백질은 양이 매우 적어 질량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에 비유할 만하다. 이런 단백질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질량 분석기를 쓴다. 단백질의 화학 구조와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계산한 분자량과 비교해 종류를 알아내는 원리다. 연세프로테옴연구원에는 질량 분석기가 7대 있다. 국내 최대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이용해 간암 환자의 혈액 속에서 ‘휴먼카복시에스터라제1’이라는 효소 단백질을 찾아냈다. 이 단백질은 당시만 해도 혈액 속에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 단백질이 워낙 소량이라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혈액 1mL 당 400pg(피코그램, 1pg은 1조분의 1g)밖에 없는 이 단백질을 찾아 낸 것은 연구진이 10여 년간 축적한 기술 덕분이었다.





[혈액 안에 소량으로 존재하는 단백질을 찾으려면 우선 혈액 시료를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알부민’처럼 양이 많은 단백질을 제거한 뒤 남은 단백질 중에서 원하는 걸 찾는 것이다.]



암이 발생한 환자의 간 조직에서 이 효소의 농도는 매우 낮지만, 혈액에서는 상대적으로 높다. 암이 발생하면 간에서 이 단백질을 혈액으로 분비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진행한 이형주 박사는 “이는 간암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간염, 간경화 등 다른 간질환과 구분해 간암을 진단할 수 있다”며 “이 단백질을 사용하면 기존 방법보다 간암 검진율을 5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2009년 9월 ‘프로테오믹스’에 게재

됐다.



이어 백 교수팀은 이 단백질을 간암 진단용 마커로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또 이 기술을 ‘신테카바이오’라는 국내 산업체에 이전했다. 신테카바이오는 임상 연구를 거쳐 이 단백질의 진단기술을 상품화할 계획이다. 성공하면 병원에서 이 단백질을 이용해 간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게 된다.





[1. 프로테오믹스의 대표적 기법인 2차원 전기영동(2DE). 시료를 젤에 넣고 전기를 걸어주면 시료 안의 단백질이 이동해 하나씩 분리된다. 각 단백질은 산성도(pH)와 분자크기가 달라 이동 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2.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국내 최대 프로테오믹스 교육 기관이기도 하다. 최신 프로테오믹스 기법을 설명하는 워크숍을 현재까지 30여 차례 개최했다.

3. 시료에서 분리한 단백질의 종류를 알기 위해 질량분석기를 이용한다. 단백질의 화학 구조와 아미노산 서열을 바탕으로 분자량을 계산해 어떤 단백질인지 추정하는 원리다.]





같은 해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한국인 표준 혈액 단백체 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인의 혈액 속에 어떤 종류의 단백질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분석해 정리한 것이다. 이 지도를 완성한 결과 한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단백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백질은 같은 유전자에서 발현됐다 하더라도 화학 물질이 첨가되는 ‘수식화 과정’을 더 거쳐 인종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약은 단백질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한국인 특이 단백질을 안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딱 맞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미 나와 있는 약을 한국인의 단백질에 맞춰 개량할 수도 있다. 이 지도는 ‘한국인 맞춤 의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질량 분석 기술을 이용해 다른 분야에서도 성과를 올리고 있다. 지난 2005년에는 실험용 미생물인 ‘예쁜꼬마선충’의 수명을 연장하는 페로몬인 ‘다우몬’을 발견해 화제가 됐다.



연구진이 다우몬을 인공적으로 합성해 예쁜꼬마선충에 주입했더니 14일이던 수명이 140일로 10배나 늘어났다. 예쁜꼬마선충은 먹을 것이 없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휴면에 들어가 기본적인 신진대사만 하는 방법으로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그 후 다우몬이 예쁜꼬마선충의 몸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밝혀냈다.



“세계 프로테오믹스 허브 될 것”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은 국내 프로테오믹스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우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서울대 의대 등 국내 150개 기관에 있는 353개 연구 그룹의 시료 분석을 돕고 있다. 지난 6년간 약 4000여 건의 분석 서비스를 제공했다. 국내 프로테오믹스 연구의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연구원은 또 국내 최대 프로테오믹스 교육 기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400여 명의 전문연구인력을 배출했으며 31회의 국내외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펴며 아시아권의 프로테오믹스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세계 공통의 프로테오믹스 교과서도 만들었다. 2003년부터 98편의 국제 표준 실험법과 국제 실험 교재 6권을 발간했다.



“프로테오믹스 연구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성과를 빨리 내려고 실험 과정을 마음대로 생략하다 잘못된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프로테오믹스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실험의 표준을 정했습니다.”









세계 프로테오믹스를 이끌고 있는 단체가 세계인간프로테옴기구(HUPO)다. 백융기 교수는 이 단체를 처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9년에는 회장을 맡았다. 세계에서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백융기 교수는 2010년 9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HUPO 연례 학회에서 회장 자격으로 “인간단백질지도사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각국이 염색체 몇 개씩 맡아 그 안에 있는 유전자가 어떤 단백질을 만드는지를 연구해 인체의 단백질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잇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국가는 현재 모두 9개.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이 13번 염색체를 맡아 가장 먼저 연구를 시작했다. 13번 염색체는 당뇨, 암 등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꽉꽉 들어차 있어 ‘질병의 창고’로 불린다.

백 교수는 “인간의 유전자 수를 2만~2만 5000개로 보고 있는데 단백질의 종류는 100만 가지 이상으로 추정한다”며 “지노믹스(유전체학)를 연구하는 데 10의 노력이 필요하다면 프로테오믹스는 1000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간단백질 지도사업은 국제 협력 없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백 교수가 앞장서 세계 프로테오믹스 분야 연구팀을 한데 모은 것이다.



백 교수는 “앞으로 연세프로테옴연구원이 인간단백질지도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 것”이라며 “인간 노화 현상을 밝히기 위해 다우몬 관련 연구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위키미디아, YPRC,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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