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42년 만에 땅에 내려온 이순신을 만나다

40년 넘게 서울의 심장부를 지켜 온 이순신 장군 동상이 처음으로 대대적인 복원 및 수리를 거쳐 12월 23일 다시 광화문 앞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야외 조각물을 정밀한 실측조사를 바탕으로 원형을 유지하면서 보수하기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처음이다. 동상의 복원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광화문 사거리 하면 꼭 떠오르는 몇 가지 풍경이 있다. 쭉 뻗은 왕복 16차선 도로와 그 옆으로 줄지은 고층 빌딩, 고풍스럽게 새로 단장한 광화문……. 그리고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광화문 사진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가운데 콕 박혀 있어야 제대로 찍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이순신 장군 동상은 광화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상이다.



하지만 동상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지난 해 8월 광화문 광장이 일반인에게 개방되기 전까지 동상은 16차선 한 가운데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일부러 동상을 쳐다보지 않는 한 칼이 왼손에 있는지, 오른손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이제는 워낙 이슈가 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게다가 11m 기단 위에 서 있는 높이 6.5m의 동상은 웬만한 4, 5층 건물만큼이나 높다. 감히 쳐다볼 수도 없던 셈이다. 친숙하지만 가깝지 않은 동상. 그것이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다.



그런 동상이 수리와 복원을 위해 병원(주물공장)으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동안 장군에게 무슨 지병라도 있었던 걸까. 얼마나 병환이 심했으면 자리를 옮겨 장기 입원을 할까.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시민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상을 철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정밀검사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외관에 나타난 약간의 균열과 구멍은 주물을 새로 뜨면 되고 내부를 지탱하는 구조물은 교체하면 되는 정도였다. 다만 군데군데 벗겨지고 검버섯이 핀 얼굴은 42년 세월이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줬다. 가까이에서 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강인하고 자애로운 얼굴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42년 만에 땅에 내려온 이순신 장군을 만났다.

 
 
 


거대 동상 속에 들어간 사다리

 

신문이나 방송에서 복원 중인 동상의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컸어?’ 경기도 이천시 조형물 제조업체 ‘공간미술’에서 만난 이순신 장군 동상은 실제로 보니 더 커보였다. 엎드려 있는(?) 동상 옆으로 가 발끝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걸어봤다. 하나, 둘, 셋……. 족히 여덟 걸음은 걸어야 머리끝에 닿을수 있다. 동상을 광화문에서부터 이곳까지 옮기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4시부터 대형 크레인으로 동상을 옮기는 데만 6시간이 걸렸습니다. 서울에서 여기 공장까지 거리가 110km정도 되는데, 시속 20~30km로 달리니 5시간이 걸리더군요.”



유재흥 감리사가 말했다. 조각가인 유 감리사는 이순신 장군 동상 정비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현장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위원회는 조각가, 주물기술자, 금속공학자, 디자이너, 보수전문가 등 6인으로 구성돼 있다. 동상은 고압의 모래를 뿌려 세척하는 샌딩 작업을 마친 뒤라 누런 황금빛을 띄는 청동 본연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모래입자는 표면의 작은 틈까지 구석구석 들어가 원형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페인트나 각종 이물질을 깨끗이 벗겨낸다. 하지만 모래를 뿌리는 압력은 유리창을 깨뜨릴 정도로 세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약 7대 3의 비율로 섞어 만든다. 청동은 온도가 약 1050℃가 되면 끓기 시작해 1600℃까지 올라간다. 대개 1300℃를 넘길 때 주물작업을 시작한다. 주석이 많이 들어갈수록 갈색보다는 은색에 가까워지고 강도도 세진다. 원래 황색인 청동은 대기 중에 노출돼 있으면 처음에는 갈색의 파티나(조직이 치밀한 녹)가 형성된다. 이어서 칙칙한 검은색으로, 마지막엔 녹색과 파란색을 섞은 듯한 푸른색 파티나로 덮인다. 푸른색 파티나로 발전하는 시간은 대기오염도, 습도, 온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보통의 녹과는 달리 파티나는 작품의 표면을 보호하고 미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이점이 있다. 따라서 청동상을 제작할 때는 자연부식을 의도적으로 흉내 내 자연스러운 색깔을 내도록 유도하곤 한다. 동상이 앞으로 누운 덕분에 뚫린 바닥을 통해 장군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웬 구름사다리 같은 구조가 동상 안에 짜여 있다.



“진짜 튼튼해 보이죠? 형상이 찌그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버팀재에요. 그전에는 세로는 없고 가로로만 철봉 몇 개가 연결돼 있었는데, 그마저도 상당히 부식돼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번엔 녹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버팀재를 촘촘히 조립해 넣었어요. 300년은 끄떡 없겠죠?”



그렇다고 철이 버팀재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건 아니다. 철은 이온화 경향이 커서 주석과 구리보다 먼저 산화해 이들의 부식을 막는다. 자기 몸을 먼저 희생하는 셈이다. 하지만 40년 정도가 지나면 부식이 심해지므로 새 것으로 교체해야 한다. 특히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크기가 큰 동상은 중심을 잡지 못하면 큰일이므로 꼭 필요한 과정이다.



버팀재는 동상이 놓일 기단부에 뚫린 구멍과 연결된다. 전에는 기단 위에 동상만 단순히 올려놓은 상태였다. 만일 지진이라도 나면 무게 8t인 동상이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측량조사 결과 수평도 맞지 않았다. 동상 한쪽이 바닥에서 약 5cm가 들려 있었고 이 부분은 시멘트로 메워져 있었다.



공장에서는 측량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평이 맞지 않는 부분은 새로 주물을 떠서 붙였다. 기단부 위로 올릴 때도 삼각기법을 활용해 수평을 맞춰 올려놓을 예정이다. 유 감리사는 “안전을 생각하면 이순신 동상 수리는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야 하는 과제였다”고 말했다.



 
 




















 
 
복원은 과거의 모습을 인정하고 유지하는 과정



현장에는 십수 년 넘게 청동물을 제작해 온 베테랑 기술자 5~6명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전기 용광로로 합금하는 과정에서부터 주물을 만들고 이를 용접하는 과정까지, 조각가가 작품을 빚은 뒤의 과정은 모두 이들이 몫이다. 점토나 석고로 만든 조각을 청동이나 황동의 금속재로 주조하면 더 단단하고 영구적인 상태로 보전하고 복제할 수 있다. 이들은 조각품에 영원한 생명을 불러 놓는 또 다른 예술가라 할만하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기술자들의 손길을 받아 고르지 못했던 용접 부위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균열이 있던 부분은 새로 뜬 주물 조각으로 갈아입었다. 과거에는 전기 용접을 한 탓에 동상 여기저기에 불똥이 튄 구멍이 나 있었다. 또 주물과 같은 재질로 용접하지 못해 이음새는 색이 변질되고 균열이 나 있었다. 이번에는 전기 용접보다 마감이 깔끔한 아크릴 용접으로 작업했다. 구조 보강과 수리가 끝나면 동상 표면을 깨끗이 한 뒤 대기 오염에 손상되지 않도록 화학적으로 착색하고 야외 조형물 전문 왁스로 광택을 내 마무리한다.



물론 무조건 예쁘게, 말끔하게 수리하는 것이 복원의 왕도는 아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최대한 원형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튼튼하게 복원하고 있다. 50년 전 미녀를 현재의 미의 척도로 판단함에 무리가 있듯이, 이순신 장군 동상의 상태를 현재의 재료나 기술 등을 기준으로 ‘불량’이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복원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겸 국립현대미술관 복원관리 팀장은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보이는 주물 불량에 따른 두께의 편차, 단면의 공극은 국내뿐 아니라 유럽의 야외 청동 기념상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라며 “이순신 장군 동상의 용접 부위가 고르지 못하다고 해서 전체 구조가 불량하다고 해석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동상 내부에 녹이 많이 슬고, 용접 상태가 불량해 동상을 마치 중병이라도 걸린 것 처럼 표현한 것은 과하다는 지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복원 전문가와 조각가들은 “42년 만에 땅에 내려온 이순신 동상의 모습이 비록 우리 눈에 예쁘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선배들이 남긴 소중한 기록물이므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동상의 복원을 두고 의상과 칼 잡은 손의 위치를 바꾸라는 등 이래저래 말이 많은 것에 대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장군도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알고 있을까. 하지만 굳게 입술을 다물고 기술자들에게 몸을 내맡긴 장군은 말이 없었다. 어서 이 휴가를 끝내고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 도성을 지키고 싶은 마음뿐인 듯했다. 42년 만에 땅에 내려온 장군은 평온하고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장군은 역시 광화문 사거리의 가장 높은 곳에 위풍당당하게 서서 도성을 지켜야 진짜 이순신 장군 동상답게 보인다. 동상이 다시 광화문 사거리 풍경의 ‘화룡점정’이 될 그날을 기다려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미 기자

🎓️ 진로 추천

  • 미술·디자인
  • 역사·고고학
  • 신소재·재료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