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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장관상 서울 은광여고 2학년 윤세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창조적 지성들부터 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까지, 평범함을 뒤엎는 발자취는 우리 삶에 지표를 던진다. 그들은 세상을 이끄는 변화의 선두에 서서 모두가 안 된다고 한 일을 추진했다. 고집을 굽히지 않고 결국 자신의 주장이 옮음을 증명함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초창기 한국 여성과학계는 변변한 연구시설도 갖추지 못한 불모지였다. 그러한 환경에서 모혜정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한국 여성 1호 물리학 박사로서, 교육자로서 평생을 바친 원로 과학기술인이다.



지난 7월 신촌의 한 음식점에서 직접 만난 모혜정 교수는 매우 편안하고 인자한 모습이었다. 30여 년 동안 몸담았던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 지방에 내려가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 모혜정 교수는 이공계 여학생으로서 가야 할 길과 더불어 인생에 교훈이 되는 많은 조언들을 아낌없이 들려줬다.



그녀는 수학을 무척 잘하고 좋아하는 여학생이었다. 논리적으로 풀어서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기쁨은 다른 과목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모혜정 교수는 수학의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에 빠졌지만 수학을 전공하기 보다는 수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새로운 응용 과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이화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69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에서 고체물리학으로 한국 최초 여성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모혜정 교수에게 물리학이란 어떤 학문일까. 뉴튼과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리차드 파인만 같은 천재들의 학문이었던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연구하는 기초학문이다. 물리학은 자연의 본질을 추구하기 때문에 철학적이고, 과정은 수학적 논리를 따르며,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복합적인 학문이다.



모혜정 교수가 미국에서 전공한 분야는 물리학 중에서도 당시로서는 첨단 이론이었던 고체물리학의 ‘에너지 띠 이론’이다. 에너지 띠 이론은 주기적인 원자배열, 분자배열을 갖는 물질, 특히 결정 중 전자의 상태를 양자역학을 이용해 기술하는 이론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결정 중 전자에너지와 그 (전자의) 파수의 관계를 나타내는 함수를 계산하는 방법 전반을 가리킨다. 블로흐의 정리에 의하면 결정 중 전자의 파동 함수(결정 중 전자의 전자 상태)는 파수로 불리는 양자수에 의해 결정된다. 절연체와 반도체에서 에너지 띠는 원자가 띠와 전도 띠로 나뉘어 페르미 준위는 간격 내에 존재하지만, 금속에서 적어도 하나의 에너지 띠가 페르미면을 횡단한다. 반대로 이 에너지 띠의 특징으로 물질을 금속과 절연체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금속, 절연체의 분류의 모습은 20세기 중반에 확립됐다.



모혜정 교수의 멘토였던 켈로웨이 박사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육성을 위해 유망한 분야인 에너지 띠 이론을 전공할 것을 권유했다. 모혜정 교수 역시 앞으로 신기술 개발만이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 한국의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모혜정 교수의 업적은 후대에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에 큰 밑거름이 됐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모혜정 교수는 2005년 아모레 퍼시픽 여성과학자상을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핵심 과학기술인 반도체 기술이 미래 산업을 주도할 것을 50년 전에 이미 간파한 선견지명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모혜정 교수는 많은 학문적 저술활동을 펼쳤으며,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제자들이 국가 연구기관, 기업체, 학교 등에서 인정받고 역량을 펼치는 모습을 볼 때 교육자로서 진정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여성들에게 다소 딱딱하게 비춰질 수 있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전파하는 데 평생의 노력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려운 과학을 기피하는 여학생들이 과학이라는 학문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들의 학문 정진과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스스로 호랑이 교수님을 자청했다. 또 많은 여성과학자들이 능력보다는 성별에 의해 남성중심 과학연구 현장에서 차별받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과학의 꿈을 키우는 많은 여성과학도들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고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의 꿈을 펼치길 지금도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모혜정 교수가 강조하는 이야기 중에 특히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라’는 이야기는 가슴에 와닿는다. 자신이 직접 그런 길을 걸었듯이, 유행을 따라가지 말고 희소가치가 있는 블루오션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혜정 교수는 정통 물리학과 새로운 신 과학기술이 결합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21세기 패러다임을 이미 50년 전에 내다봤다. 물리학과 금융수학이 결합하고, 물리학과 해양생물학이 융합하는 새로운 분야들이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새로운 분야의 선구자로서 길을 개척한다면 여성과학자들도 과학자로 성공하는데 좋은 여건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다. 미래지향적이며 창의적인 생각이 담긴 융합 학문이야말로 미래 과학의 세계를 주도해나갈 것이라 예상된다. 한편으로 이런 때일수록 기초 공부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함을 강조한다. 기초가 튼튼하면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모혜정 교수가 집필한 저서 ‘과학과 문화의 만남’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대목에 시선이 멈췄다. ‘문화란 단순한 호기심이나 물질적 풍요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정신적 만족을 줘야 한다. … 과학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과학의 테두리를 뚫고 나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 ‘문화’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야 한다.’



미래의 과학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요구를 예측해서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꾼다. 앞서 길을 걸어온 여성 이공인들의 거대한 어깨 위에 우리가 있기에,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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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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