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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부모는 어떻게 백인 아기를 낳았을까

얼마 전 믿기지 않는 일이 영국에서 일어났다. 흑인 부부가 백인 아기를 낳은 것이다(동아일보 2010년 7월 21일자). 부모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흑인이다. 5년 전에 영국으로 건너와 이미 2명의 흑인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3번째로 낳은 아이가 뉴스에 나온 백인 아이다. 부모는 자식의 이름을 나이지리아어로 ‘신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음마치’라고 지었다. 처음에는 부모조차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백인 아기의 네 가지 가능성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추론할 수 있을까? 첫째, 분만실에서 백인 부모의 자식과 흑인 부모의 자식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오래전 우리나라 병원에서 아주 드물게 이런 ‘사고’가 일어나곤 한다. 그러나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깔이 모두 비슷한 경우에 간혹 일어날 수 있지 이렇게 다른 피부 색깔을 혼돈할 의사나 간호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도리어 의사가 진짜 자식인데도 아이가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음마치는 불행하게도 멜라닌 색소를 전혀 만들지 못하는 알비노(Albino·백색증 환자)일 수 있다. 알비노로 태어날 확률은 2만 명당 1명이지만 다행히도 음마치는 정상이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물론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알비노 유전자로 검사한 것이기 때문에 100% 확실한 것은 아니며 검사가 틀렸을 가능성도 있다.



셋째, 두 흑인 부모의 조상 중에 백인이 있었다는 가정이다. 그로 인해 흑인 부모의 전체 유전자 중에 백인의 피부와 금발을 가질 수 있는 유전자가 들어 있었고,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음마치에게 이 유전자가 전달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 가능성은 피부색에 관련된 다른 유전자가 변형을 일으켜서 우리가 모르는 알비노 유전자를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에게서 밝혀진 ‘피부색 유전자’는 약 10여 개 정도다. 그러나 생쥐는 100개 이상의 유전자가 피부색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모르는 많은 유전자들이 피부색에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은 3번째나 마지막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피부색은 멜라민의 칵테일




독자들은 깨끗한 피부에는 관심이 많지만, 피부색깔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안 해 봤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민 대부분이 피부색깔이 비슷해 이런 생각을 할 필요성이 적었다.



피부색에 대한 무관심은 과학계도 마찬가지였다. 제약 회사나 화장품 회사를 제외하고는 피부색 연구를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피부색 유전자 연구도 점점 활기를 띠고 있다.



피부는 외부환경에서 우리 몸의 내부구조를 보호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는 조직이다. 가장 바깥 부분이 약 0.1mm 두께의 표피다. 바로 밑은 질긴 결합조직인 2mm 두께의 진피, 진피 밑에는 지방조직인 피하조직이 있다. 표피를 이루는 상피세포는 점점 딱딱하게 변하는데 이를 ‘각질화’라고 한다. 이렇게 변한 피부 세포를 케라티노사이트(Keratinocyte)라고 한다.



피부 색깔은 바로 이 세포에 멜라닌 색소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따라 주로 결정된다. 표피의 가장 밑에 있는 멜라닌생성세포(멜라노사이트)가 멜라닌을 만들어 케라티노사이트에 건네준다.



이외에도 피부색은 피부혈관을 흘러다니는 적혈구의 수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영향이 아주 작지만 손바닥이 노란색을 띠게 하는 캐로티노이드(carotenoid) 색소도 있다.



멜라닌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세포를 보호한다. 멜라닌은 유멜라닌(eumelanin: 고동색 또는 흑색)과 피오멜라닌(pheomelanin : 적색 또는 황색)의 두 종류가 있다. 유멜라닌은 어두운 색, 피오멜라닌은 밝은 색을 띈다. 이들의 비율이 개인의 피부와 눈 그리고 머리카락 색깔을 결정한다. 유색인종에서는 유멜라닌의 비율이 높고, 백인들에게는 피오멜라닌의 비율이 높다.



다시 음마치를 생각해 보자. 일단 음마치가 멜라닌 색소를 만들지 못하는 알비노가 아니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피오멜라닌의 비율이 높은 일반 백인들과 같은 피부와 머리색을 가진 것이다. 아마도 음마치는 백인들과 비슷한 수준의 유멜라닌이 분비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음마치가 알비노가 아니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앞서 말했듯이 검사가 틀렸거나 처음 나타난 알비노일 수도 있다). 피부세포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다. 알비노는 선천성유전질환으로 대략 2만 명당 1명이 태어난다. 한마디로 피부, 눈, 머리카락에 멜라닌 색소가 전혀 없거나 소량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알비노는 겉으로는 금발의 정상적인 백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각한 질병에 노출돼 있다.







먼저 눈동자에 색소가 없기 때문에 토끼처럼 빨간색이며, 심각한 시력장애가 생긴다. 무엇보다 햇빛을 방어해줄 멜라닌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햇빛을 많이 받으면 DNA가 손상돼 피부암에 걸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알비노들은 낮에 외출할 때 선글라스와 함께 항상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고 다녀야 한다.



알비노를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멜라닌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이로시네이즈(tyrosinase)라는 효소의 돌연변이 유전자다. 알비노들은 피부 안에 정상적인 멜라닌생성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세포 안에 있는 멜라닌 공장이 고장나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열성유전된다. 정상 유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어도 알비노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에서 영물로 여기는 백호나 백사가 사실은 이 돌연변이 때문에 생긴 백색증 동물이다. 이들은 희귀한데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흰색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이라 더 귀하게 여기는 것 같다.



금발 소녀 만드는 아미노산



타이로시네이즈 효소 외에도 멜라닌을 만들 때 필요한 유전자는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멜라닌생성세포의 표면에 있는 ‘멜라노코틴-1 수용체’다. 이 수용체가 호르몬과 결합하면 세포는 피오멜라닌 대신 어두운 유멜라닌을 생산하게 된다.



이 수용체의 유전자 염기서열에는 다양한 변이가 존재해 같은 인종에서도 다양한 농도의 피부색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 단백질의 일부가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뀐 유럽인 중에는 붉은 머리카락, 흰 피부 그리고 햇빛에 잘 타는 형질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이러한 변이는 수용체의 기능을 떨어뜨려 어두운 유멜라닌의 생성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또 타이로시네이즈 효소의 활성에 영향을 주는 SLC45A2 유전자의 아미노산 하나만 변해도 피부색이 변한다. 예를 들어 374번째 아미노산이 페닐알라닌인 백인은 검은 머리카락, 올리브색 피부 그리고 어두운 색의 눈이 된다. 마지막으로 금발과 관련된 TPCN2 유전자가 있다. 만약 이 유전자의 484번째 아미노산이 메티오닌에서 류신으로, 734번째 아미노산이 글라이신에서 글루타믹산으로 바뀐 사람은 금발이 된다. 지난해 소녀시대의 제시카가 나온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의 실제 여주인공은 바로 이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꽤 많은 유전자들이 사람의 피부색을 결정한다. 얼마 전까지도 피부색을 유전적으로 설명할 때는 세 가지 유전자가 관여하고 있고 각각의 유전자에는 우성(영어대문자)과 열성 유전형(영어소문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 유전자 모두 열성이면 백인(aabbcc), 모두 우성이면 흑인(AABBCC), 우성과 열성이 섞여 있으면 우성유전자의 수만큼 더 어두운 색 (예: AABbCc >; AABbcc)을 가진 피부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실제로는 훨씬 많은 유전자들이 관여하고 있다. 그들의 염기서열이 하나만 바뀌어도(  SNP  ) 피부, 눈, 머리카락의 색깔이 바뀌게 된다. 다른 많은 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피부색이라는 하나의 형질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피부색은 어두운 색이 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흑인과 백인이 결혼해서 낳은 자식의 피부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어두운 색을 띠기 쉽다. 하지만 피부색은 그림을 그릴 때처럼 단순히 두가지 색을 섞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유전자와 다양한 변형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다.







그래서 음마치의 경우 과학자들은 흑인 부모의 조상 중에 백인들이 있었고 이들의 유전자가 열성으로서 숨어 있다가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음마치에게 절묘하게 모이면서 겉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아직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피부색 유전자 중 하나에 새로운 변이가 생겨서 나온 결과일 가능성도 높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알비노가 생긴 것이다. 현재 개인 게놈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으므로 이러한 숙제는 머지않아 풀릴 것이다.



2006년에도 음마치와 비슷한 믿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인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와 영국인의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완전히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란성쌍둥이가 태어난 것이다. 쌍둥이였던 앨리샤는 흑인이고 자스민은 백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쌍둥이의 엄마가 두 개의 난자를 배란했을 때 한쪽에는 어두운 색을 띠는 유전자를, 다른 한쪽에는 밝은 색을 띠는 유전자를 가진 난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피부색의 발생 원리는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아직도 많은 부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다. 앞으로 게놈 정보가 많이 쌓이면 이러한 미스터리도 풀릴 것이다. 피부색 때문에 생기는 사회

이슈도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음마치의 부모가 신의 아름다운 축복으로 알고, 음마치를 더욱 사랑한다는 것이다. 1

2010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황승용 한양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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