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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꽃가루 알레르기

3월부터 철저히 예방해야

“저는 아무리 바빠도 동생의 생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동생은 초여름에만 접어들면 콧물을 흘리고 연신 재채기를 해대며 심하면 눈까지 붉어져 몹씨 괴로와 하거든요. 이렇게 홍역아닌 홍역을 치른 한달 후가 동생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30대 중반의 초등학교 교사가 알레르기클리닉을 방문해 들려준 이야기다. 본인도 꽃가루가 날릴 때마다 반복되는 고생을 덜어보려고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이 교사도 피부시험 결과 나무들의 꽃가루(나무혼합, 오리나무, 자작나무)에 알레르기가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일단 초여름에 꽃가루를 많이 날려보내는 나무들의 화분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고 설명해주고, 소염제와 항알레르기 약물을 코에 뿌리도록 지시했다.

1주 뒤에 재진찰을 받으러 왔을 때는 증상이 많이 호전돼 있었다. 환자의 이야기로는 해마다 증상이 나타난 뒤 1개월간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고 약물을 코에 뿌리기만 했는데도 증상이 호전됐다고 기뻐했다.

이 환자가 말했듯이 왜 해마다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까? 하필이면 꼭 초여름에만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원인이 되는 나무의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계절이 초여름이라지만, 수두, 홍역, 볼거리와 같은 병은 한번 걸리고 나면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데, 왜 알레르기는 꽃가루가 날리는 철마다 기승을 부릴까.


특정 음식물이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알레르기 과민 면역반응

우리 신체는 자기 것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구별해내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면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은 빨리 제거하고, 자기 것은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여기에는 T-림프구, B-림프구 등 여러 가지 세포들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그 중 대표적인 물질이 B-림프구에서 만들어지는 면역글로불린이다. 면역글로불린은 기억능력이 있어서, 한번 접촉한 물질을 기억해 뒀다가 다시 접촉하게 되면 이를 적절히 처리한다.

면역글로불린에는 G, A, M, D, E의 다섯 종류가 있으며, 홍역균의 기억은 주로 면역글로불린-G (IgG)가 담당하고 있어서 홍역균의 재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에 대해서는 주로 면역글로불린-E (IgE)가 담당하고 있다.

면역글로불린-E는 다른 면역글로불린과 달리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하는 세포를 자극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서, 신체가 알레르기 원인물질에 접촉할 때마다 증상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이유로 알레르기 질환은 전염성 질환과 달리 일정한 증상이 자주 반복해 나타나는 특성을 갖는다.

요약하면 알레르기 질환은 원인물질에 노출되면 이를 기억하는 면역글로불린-E가 신체내 B-림파구에서 생산되고, 이는 증상을 유발하는 세포를 선택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증상이 반복해 나타난다. 홍역 등의 전염성질환에서 생산되는 면역글로불린-G가 감염의 재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과는 상반된 과민반응을 보인다.


집먼지 진드기


천식, 비염, 피부염 모두 알레르기

‘알레르기’ 라는 단어는 '변형된 반응(Allos)'이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가끔 아토피성 피부염이라는 이야기를 듣게되는데, '아토피'란 유전적인 의미를 함께 내포하는 알레르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알레르기’ 는 정상적인 반응에서 벗어난 반응, 즉 과민반응과 유전적인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는 질환이다.

사소한 일에 쉽게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과민반응이야” 또는 싫어하는 것에 “나는 이것에 알레르기가 있어”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미 알레르기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가까이 만성 두드러기로 치료를 받아오던 40대 초반의 환자가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알레르기클리닉을 방문했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심하고,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도 있다고 했다. 또 계란 알레르기, 집먼지진드기 알레르기, 잔디 알레르기라는 이야기도 했다. 게다가 항생제에 대한 부작용이 있어서 아들은 마치 알레르기 백화점과 같다고 했다.

이 어린이의 병력을 들으면 한 환자가 이렇게 다양한 알레르기 질환들을 앓을 수 있는지, 또 이토록 많은 물질들이 다 알레르기에 관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알레르기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면 이러한 의문들은 쉽게 풀린다. 알레르기는 원인에 관계없이 과민반응이 형성된 신체 부위에 증상을 일으킨다. 과민반응 부위가 기관지라면 ‘천식’코라면 ‘알레르기성 비염’ 피부라면 ‘두드러기 또는 아토피성 피부염’, 눈이라면 ‘알레르기 결막염’의 증상을 나타낸다. 과민반응이 형성된 신체 부위의 범위에 따라 한가지 또는 여러 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어 심한 경우에는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

알레르기 질환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 직접 기관지 또는 코에 접촉해 염증을 발생시킬 수도 있고, 접촉 하지 않은 부위에 증상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즉 알레르기 물질이 묻은 음식을 먹었을 때 음식이 닿은 위가 염증을 일으킬 수도 있고, 위와는 상관없는 기관지에 알레르기가 발생해 천식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알레르기 질환은 증상이 나타나는 부위에 따라 천식, 비염, 두드러기, 습진 등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원인에 따라 꽃가루병, 집먼지 알레르기, 동물 알레르기, 식품 또는 약물 알레르기 등으로 분류한다.

이외에도 한냉, 햇볕과 피부 자극(긁거나 눌림)등의 물리적 자극, 운동, 감염, 식품첨가제 등 무수히 많은 자극들이 알레르기질환을 악화 또는 유발시킬 수 있다.


벌독 알레르기를 보이는 소년


3.1절이 중요한 이유

나는 외래 환자들에게 종종 “3.1절과 8.15 광복절을 기억하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많은 환자들이 4월과 9월에 알레르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3월과 8월에 주의해야 할까. 알레르기 질환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유행 1개월 전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같이 특정 날짜를 강조하는 이유는 알레르기의 중요 원인이 되는 화분은 특정 계절에 날라 다니기 때문. 우리나라의 봄철에는 주로 나무 화분이 가을철에는 잡초 화분이 골치덩이로 등장한다.

1996년 1년간 조사한 공중화분에는 나무화분, 목초화분, 잡초화분과 곰팡이류가 발견됐다. 나무화분에는 오리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삼나무, 버드나무, 개암나무, 노간주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름나무, 뽕나무가 있었다.

이런 나무 화분들은 2월20일경에 나타나기 시작해 7월7일까지 관찰됐으며 5월6일부터 22일까지 절정을 이뤘다. 2월 하순부터 3월에는 오리나무와 자작나무, 4월에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5월에는 소나무와 양버들 화분들이 가장 많이 관찰됐다.

잔디를 비롯한 목초류의 화분은 4월 하순부터 11월까지 발견됐으나, 5월 중순에 가장 많이 채집됐다. 쑥, 두드러기 쑥, 명아주, 비름, 환삼덩쿨, 토끼풀, 질겅이, 기린초 등의 잡초 화분은 7월부터 시작해 겨우네 관찰되지만 9월 중순부터 10월 초순에 가장 많이 채집됐다.

이러한 꽃가루들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알레르기 증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꽃가루가 날리기 2-4주 전에 각 알레르기에 해당하는 예방 약물을 먹거나 코에 흡입함으로써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예방 치료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알레르기질환은 만성염증을 유도해 점차 상황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림2) 신체 성숙도와 알레르기


꽃가루 못지 않은 벌독

화분의 크기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기관지에 유입되기에는 큰 입자다. 따라서 대부분의 화분은 코에서 걸리므로, 알레르기는 주로 재채기, 콧물, 코막힘을 동반한 비염 형태로 일어난다. 특히 낮에 비해 기온 차이가 심한 아침에 재채기가 나오고, 눈가려움증을 동반한다. 화분이 미세한 조직으로 이뤄진 기관지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지만, 간접적인 천식 유발 원인은 될 수 있다. 흔치 않지만 가을보다는 봄에 천식환자의 수가 증가한다.

또 다른 봄철 알레르기의 원인은 벌의 독이다. 꽃피는 시절이면 벌에 쏘여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벌에 쏘여 나타나는 벌독 알레르기는 물린 신체부위만 부어오른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벌독이 전신에 퍼져 쇼크를 일으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쇼크증상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야외에서 이런 경우를 당하면 전문적인 의료기관까지 가는데 시간이 걸려 치명적일 수 있다. 꿀벌에 비해 말벌이 더욱 심한 증상을 나타낸다.

화려한 옷감과 냄새나는 화장은 벌들을 자극하므로 야외로 나들이를 갈 때에는 이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 과거 벌에 쏘여 심하게 고생을 했던 사람들은 한번은 알레르기 전문의와 문제를 상의하고 응급처치용 약들을 휴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림3) 알레르기 대행진(Allergy March)


청년기는 알레르기 안식년

"우리 아이는 오래전부터 알레르기 천식으로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습니다만, 크게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없습니다. 몇몇 의사선생님들께서 나이가 들면 자연히 좋아진다고 해 증상이 있을 때마다 치료를 하면서 자연히 좋아질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아이는 우유를 먹고 자랐으며, 다른 형제들에 비해 배탈과 감기가 잦았다고 했다. 모세기관지라는 병명으로 네차례나 입원한 적이 있었으며, 태열(아토피성 피부염 또는 습진)도 심해 소아과와 피부과를 자주 찾았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태열은 사라졌고 배탈과 감기횟수도 현저히 감소했으나, 천식 때문에 호흡곤란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천식이 심하게 나타난 야간에는 응급실로 업고 뛰어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이제는 아침까지 기다려 인근 소아과에서 치료를 받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돼 크게 서둘지는 않는다고 했다.

천식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어린이들의 과거력을 자세히 들어보면 대체로 이 환자와 비슷하다. 나이에 따라 알레르기 증상이 변하는 현상은 알레르기 진행(Allergy March)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성장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인간도 신체적으로 아주 미숙한 신생아기로부터 시작해 10대 후반과 30대에 거의 완벽한 기능을 갖추게 되고, 다시 장년기를 거쳐 노인기에 도달하면서 쇠약해진다.

질병의 분포는 이러한 신체기능의 완숙 또는 노쇠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암의 발생은 6세 이전과 50세 이후에 가장 많다. 알레르기질환으로 일어나는 천식과 비염은 10세 전후와 40대에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알레르기 질환이 호전된다는 것은 알레르기 과민반응이 사라진다는 것보다는 신체적 기능이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과민반응이 잠시 억제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위의 환자같이 나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는 알레르기 과민반응의 진행을 그냥 방치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청년기를 지나 증상이 좋아지더라도 신체적 기능이 노쇄해지는 40대 후반에 오히려 심한 알레르기 증상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어린 시절의 알레르기는 꾸준히 관리해야 과민반응을 조기에 억제할 수 있고, 심한 증상을 예방하게 된다.

왕도는 없지만

콧물, 재채기, 기침, 쌕쌕대는 숨소리, 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계속 반복해 나타나면 우선 알레르기를 의심해 보고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알레르기 검사에는 원인물질을 기억해 반응을 일으키는 면역글로블린-E 항체를 증명하는 검사와 신체의 과민성을 증명하는 검사가 있다. 면역글로블린-E를 증명하는 방법에는 혈액검사 등 여러 가지가 개발돼 있지만, 피부반응 검사가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다.

신체 조직의 과민성 검사는 약물 또는 원인물질을 직접 접촉시켜 증상을 유발시키는 검사다. 그러나 알레르기 질환은 발생 과정부터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검사들만으로 확진을 내리기는 어렵다. 따라서 치료를 하면서 반응하는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치료 방법으로는 알레르기의 원인을 피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지만, 공중에 날라다니는 꽃가루를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집안의 집먼지진드기도 완전히 제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항알레르기약물치료나 면역주사요법을 실시하는 경우가 많다.

약물치료는 증상을 가라앉히는 증상 치료와 증상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약물예방치료가 있다. 면역치료는 소량의 원인물질을 피부내에 반복 주사해 알레르기반응을 억제해주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 중 한가지만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선 원인물질로부터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개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 후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약물치료의 범위와 면역치료를 추가할 수 있다. 그러나 면역주사 방법은 부작용이 많아 근래에는 널리 사용하고 있지 않다.
 

199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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