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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고분자를 중합하는 과정에서 도핑을 통해 고분자의 전기 전도도가 구리에 가깝게 증가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후 유기 및 고분자 재료는 절연체, 반도체, 전도체뿐만 아니라 초전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전도도 특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또 생분해성 고분자로부터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가벼운 초강력 섬유나 복합재료를 제조할 수 있게 됐다.

필자는 이러한 고분자의 다재다능함에 매료돼 대학원에 진학해 고분자 재료 연구실에 들어갔다. 그 시절 연구실은 고분자 복합재료에서 나노구조 고분자 재료로 연구 분야의 변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안식년을 맞이한 장정식 지도교수와 함께 다공성 나노재료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인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갤런 스터키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전도성 고분자 나노재료의 제조를 연구했다.

당시에 금속 및 무기 입자는 수 나노미터 크기(nm)의 제조기술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반면, 고분자 나노입자는 제조기술이 확립되지 못했다. 우리의 접근법은 친수성과 소수성을 동시에 지니는 계면활성제의 자기조립현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나노구조체를 고분자 합성의 나노반응기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도전은 흥미로웠으나, 초기 실험에서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저온 마이크로에멀젼 중합을 통해 세계 최초로 2nm 크기의 전도성 고분자 나노입자를 제조했다. 그 이후 나노주형의 형태를 더욱 변화시켜 속이 빈 나노입자, 이중겹 나노입자, 나노섬유, 나노튜브 등 다양한 구조의 고분자 나노재료를 합성했다. 이 연구는 학계로부터 선구적인 기술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으며 큰 보람을 느꼈다.

고분자 재료 연구실에 있는 동안 몸소 배운 교훈은 ‘긍정의 힘’이다. 실험을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실패를 한다. 그럴 때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고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연구에서 목적지까지 최단거리를 정확히 안내하는 길 도우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연구에서 이미 정립된 길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멘토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결국 그 길은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필자는 현재 대학에서 유기 반도체 재료와 나노소자를 연구하고 있다. 유기 및 고분자 전자 재료는 굽히거나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가벼운 배터리, 고감응성 센서,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전자 소자, 나노규모 레이저 등 첨단 소자 응용의 핵심 재료다. 휴대성과 편의성이 뛰어난 유기 및 고분자 재료는 유비쿼터스 시대로의 전환과 더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연구실 졸업생들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될 고분자 재료 연구에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준학

서울대 공업화학과(현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및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을 보내고 현재 울산과학기술대 나노생명화학공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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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오준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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