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지구에 사는 사람 중 절반 가량이 도시에 살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2030년이 되면 도시에 사는 사람의 비중이 50억 명에 육박해 세계 인구의 3분의 2 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한다. 메소포타미아에 처음으로 도시가 생긴 이후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도시에 사는 사람은 인류의 10%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200년 남짓한 사이에 인류의 고향은 대자연에서 도시로 옮겨 갔다”고 표현한다.
도시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도시계획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들은 도시의 의미와 기능이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의 도시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서 도시는 역할에 따라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농경문화에 적합한 도시가 있었고, 산업화시대에 적합한 도시가 있었다. 어느 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졌고, 어느 도시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도 했다.
경제의 세계화, 기술혁신, 정보 및 문화적 가치 등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도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 도쿄, 뉴욕, 런던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영국의 셰필드와 리버풀, 한국의 삼척과 태백 등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산업화의 첨병이었던 도시는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쇠락했다. 지난100년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도시가 흥망성쇠를 겪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6000년 동안 벌어진 것보다 훨씬 빠르고 심하다. 환경이라는 요소가 더해진 최근에는 이와 같은 변화가 더 과격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식의 길을 묻다’ 7회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 ‘도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어떤 도시가인간의 삶에 바람직한 형태인지, 도시는 어떻게 발전하고 망하는지 살펴본다. 또 최근 제기되고 있는 ‘친환경 도시’, ‘녹색도시’는 과연 미래도시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아본다.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최고상상력책임자,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등의 의견을 종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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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발전은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발전과 함께했다. 도시 자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구조물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과 각종 기념물, 도서관, 공공기관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역사를 이어 왔다. 실제로 인간의 문화는 도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현대적 도시로 평가받는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는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민주주의’를 탄생시켰고,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의 정복 전쟁은 각 도시를 거점으로 진행됐다. 오늘날의 유럽을 만들어낸 르네상스에는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 도시가 있었고, 프랑스 혁명에는 파리, 산업 혁명에는 셰필드 같은 영국 도시가 중심에 있었다.
도시의 중요성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지구에 있는 수십만 개의 도시를 모두 합친 면적은 지구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에너지 사용량은 75%에 이른다. 도시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수백만 명 단위의 ‘메트로시티’를 넘어 1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메가시티’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결국 도시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느냐, 부정적으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지구의 미래는 결정되는 셈이다. 현재 도시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또 미래 도시의 비전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오늘날의 도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슈라드 Vs 플로리다
▶프랑스 최대의 도시연구소인 IAU(일 드 프랑스 도시계획연구소)의 오드리 슈라드 연구위원은 “과거 수십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도시가 태어나 각자의 규모나 목적에 맞게 발전해 왔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면서 “도시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도시, 업무도시, 산업-학문-연구소가 결합된 클러스터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정책에 의해, 때로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할 중심의 도시는 이제 존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슈라드 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아무리 클러스터를 잘 만들어도 거기에 있어야 할 인재가 대도시에 살고 싶어한다면 도시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면서 “과거에는 우선 도시를 만들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인다는 인위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도시가 거대화해지면서 하나의 도시가 과거 여러 도시에서 분담했던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맡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도시와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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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가장 중요한 대변혁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특히 도시는 경제적 성장모델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개발전략 전문가인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현재 인류가 ‘도시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중대한 시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황, 불경기, 경기침체 등 금융위기로 불거진 각종 논란에 앞서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인 도시의 환경 자체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와 기업은 금융이나 경제와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는 일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의지식을 모으고 이 역할을 국가나 대기업이 아닌 도시가 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도시는 창의적인 노동자가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국가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발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의 개발이 우선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플로리다 교수는 ‘3T이론’을 내세웠다. Technology(기술), Talent(인재),Tolerance(관용)의 세 가지다. 기술 발전에 투자해 창의적 인재와 탁월한 기술자를 유치하고 모여든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 바로 관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호르크스 Vs 옌센 Vs 권영걸
▶스스로 ‘유럽인’을 자처하는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는 “현재 도시는 초거대도시인 메가시티(Megacity)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적, 물질적 자원이 집중된 거대 도시가 주변 도시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커지는 추세가 당분간 계속된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그리노폴리스(Greenopolis)’라는 용어를 내세워 설명했다. 호르크스가 주장하는 그리노폴리스는 도시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모두 가능하고 스스로 순환한다.
그는 “현재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 안에 다시 자연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자연이 현재 도시가 산업화의 결과로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치유하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08~2009년, 그리고 올해까지 계속되고 있는 금융위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식 성장 모델의 돌파구는 산업과 서비스 중심의 현재 경제구조를 문화와 디자인 중심의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 최대의 미래문제 연구집단인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대표는 미래의 도시를 ‘드림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편화된 브레인스토밍은 지식을 통합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함께사는 도시에서 각자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옌센 대표는 “이같은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발전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형태, 예를 들면 자원봉사 활성화 같은 기초 작업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장을 맡아 ‘디자인 서울’을 이끌었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미래도시는 ‘소프트 시티’다”라고 잘라 말했다. 권 교수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는 기술발전과 산업화에 맞게 발전한 탓에 ‘하드 시티’의 모습을 갖고 있다”면서 “이는 유연성 부족, 상호간 단절로 이어져 실질적으로 시민 사이의 소통을 방해하고 도시의 변화와 발전 자체를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도시인’이 지닌 도시에 대한 마음가짐 자체가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인이 사랑하는 대도시는 오히려 사는 데 불편하거나 오래된 건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뉴요커, 파리지엥, 런더너로 자처하는 시민들은 이 도시와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같은 마음가짐이 갖춰진 도시는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지만,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시민으로 가득한 도시는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권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 도시의 가능성은 어떨까?
아탈리 Vs 옌센 Vs 슈라드 Vs 권영걸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 대표는 “역사적인 흐름을 보면 다음 세대에 세계를 주도하는 도시는 아시아의 항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로마가 대표하는 지중해에서 출발한 도시 문화가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으로 이동하고있으며 중심도시는 모두 항구도시였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3개국과 인도 중 누가 그 역할을 주도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표현을 피했다. 대신 ‘서울은 성장하는 도시, 도쿄는 감소하는 도시, 뭄바이는 폭발하는 도시’라고 은유적으로 말한 뒤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에 맡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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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크스 박사는 “도시는 계획한다고 무조건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움직이는 유기체”라면서 “크고 넓은 시야로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 목표를 세우고 이를 매년 수정하면서 방향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도시는 규모가 커질수록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쉽다”면서 “문화와 역사 등 고유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비스는 도시의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돌아갈 수 있게록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옌센 대표는 “한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성장과 외부의 성과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도시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곳에서 감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산업화 과정에서 입증된 한국의 의욕과 추진력이 도시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특히 그는 남을 위한 배려에 익숙한 한국의 풍토가 감성적인 미래도시의 핵심 요건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직된 한국의 교육 풍토가 미래 도시의 비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그는 “5년이나 10년 후의 도시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하라”면서 “도시의 경쟁력은 그 도시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 슈라드 위원은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초 예상보다 한국의 도시가 발전해 있는 데 놀랐다”면서 “특히 파리를 능가하는 크기와 인구밀도를 극복하고 있는 서울의 순환체계나 산-학-연이 긴밀하게 연결된 지방의 연구단지 등은 프랑스도 역할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한국의 도시는 대부분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해 만들어진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같은 방식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의 입장이나 유기적인 순환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의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론을 다시 펼쳤다. 그는 “디자인은 산업혁명과 비견될 만한 강력한 변화의 매개체”라며 “세계의 도시가 디자인을 통해 도시 혁신을 꿈꾸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도 함께 뛰어들어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성공 여부는 관이 얼마나 시민들과 소통된 정책을 내놓고, 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잘 추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도시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도시계획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들은 도시의 의미와 기능이 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의 도시는 단순히 편의를 위해 존재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면서 도시는 역할에 따라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농경문화에 적합한 도시가 있었고, 산업화시대에 적합한 도시가 있었다. 어느 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라졌고, 어느 도시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도 했다.
경제의 세계화, 기술혁신, 정보 및 문화적 가치 등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한 도시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 도쿄, 뉴욕, 런던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영국의 셰필드와 리버풀, 한국의 삼척과 태백 등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 산업화의 첨병이었던 도시는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급격히 쇠락했다. 지난100년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도시가 흥망성쇠를 겪었다. 이같은 움직임은 지난 6000년 동안 벌어진 것보다 훨씬 빠르고 심하다. 환경이라는 요소가 더해진 최근에는 이와 같은 변화가 더 과격해질 가능성이 높다. ‘지식의 길을 묻다’ 7회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 ‘도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아본다. 어떤 도시가인간의 삶에 바람직한 형태인지, 도시는 어떻게 발전하고 망하는지 살펴본다. 또 최근 제기되고 있는 ‘친환경 도시’, ‘녹색도시’는 과연 미래도시의 모델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아본다.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최고상상력책임자,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등의 의견을 종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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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발전은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발전과 함께했다. 도시 자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구조물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건물과 각종 기념물, 도서관, 공공기관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며 역사를 이어 왔다. 실제로 인간의 문화는 도시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에야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최초의 현대적 도시로 평가받는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는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는 ‘민주주의’를 탄생시켰고,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의 정복 전쟁은 각 도시를 거점으로 진행됐다. 오늘날의 유럽을 만들어낸 르네상스에는 피렌체, 밀라노 등 이탈리아 도시가 있었고, 프랑스 혁명에는 파리, 산업 혁명에는 셰필드 같은 영국 도시가 중심에 있었다.
도시의 중요성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지구에 있는 수십만 개의 도시를 모두 합친 면적은 지구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에너지 사용량은 75%에 이른다. 도시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수백만 명 단위의 ‘메트로시티’를 넘어 1000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메가시티’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결국 도시가 긍정적으로 발전하느냐, 부정적으로 발전하느냐에 따라 인간과 지구의 미래는 결정되는 셈이다. 현재 도시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 또 미래 도시의 비전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오늘날의 도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슈라드 Vs 플로리다
▶프랑스 최대의 도시연구소인 IAU(일 드 프랑스 도시계획연구소)의 오드리 슈라드 연구위원은 “과거 수십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도시가 태어나 각자의 규모나 목적에 맞게 발전해 왔지만, 지금은 그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면서 “도시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도시, 업무도시, 산업-학문-연구소가 결합된 클러스터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정책에 의해, 때로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할 중심의 도시는 이제 존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슈라드 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아무리 클러스터를 잘 만들어도 거기에 있어야 할 인재가 대도시에 살고 싶어한다면 도시가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면서 “과거에는 우선 도시를 만들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인다는 인위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도시가 거대화해지면서 하나의 도시가 과거 여러 도시에서 분담했던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맡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도시와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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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는 가장 중요한 대변혁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특히 도시는 경제적 성장모델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적인 도시개발전략 전문가인 리처드 플로리다 토론토대 교수는 현재 인류가 ‘도시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중대한 시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공황, 불경기, 경기침체 등 금융위기로 불거진 각종 논란에 앞서 인류가 살아가는 터전인 도시의 환경 자체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와 기업은 금융이나 경제와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는 일이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면서 “발전된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의지식을 모으고 이 역할을 국가나 대기업이 아닌 도시가 맡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도시는 창의적인 노동자가 모이는 공간이기 때문에 국가 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발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도시의 개발이 우선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플로리다 교수는 ‘3T이론’을 내세웠다. Technology(기술), Talent(인재),Tolerance(관용)의 세 가지다. 기술 발전에 투자해 창의적 인재와 탁월한 기술자를 유치하고 모여든 인재를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 바로 관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호르크스 Vs 옌센 Vs 권영걸
▶스스로 ‘유럽인’을 자처하는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 박사는 “현재 도시는 초거대도시인 메가시티(Megacity)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적, 물질적 자원이 집중된 거대 도시가 주변 도시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커지는 추세가 당분간 계속된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그리노폴리스(Greenopolis)’라는 용어를 내세워 설명했다. 호르크스가 주장하는 그리노폴리스는 도시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모두 가능하고 스스로 순환한다.
그는 “현재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 안에 다시 자연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자연이 현재 도시가 산업화의 결과로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치유하고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08~2009년, 그리고 올해까지 계속되고 있는 금융위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식 성장 모델의 돌파구는 산업과 서비스 중심의 현재 경제구조를 문화와 디자인 중심의 새로운 도시로 만드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세계 최대의 미래문제 연구집단인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롤프 옌센 드림컴퍼니 대표는 미래의 도시를 ‘드림중요성을 강조했다. 보편화된 브레인스토밍은 지식을 통합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함께사는 도시에서 각자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옌센 대표는 “이같은 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발전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형태, 예를 들면 자원봉사 활성화 같은 기초 작업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장을 맡아 ‘디자인 서울’을 이끌었던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미래도시는 ‘소프트 시티’다”라고 잘라 말했다. 권 교수는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는 기술발전과 산업화에 맞게 발전한 탓에 ‘하드 시티’의 모습을 갖고 있다”면서 “이는 유연성 부족, 상호간 단절로 이어져 실질적으로 시민 사이의 소통을 방해하고 도시의 변화와 발전 자체를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도시인’이 지닌 도시에 대한 마음가짐 자체가 도시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인이 사랑하는 대도시는 오히려 사는 데 불편하거나 오래된 건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뉴요커, 파리지엥, 런더너로 자처하는 시민들은 이 도시와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같은 마음가짐이 갖춰진 도시는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지만,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 시민으로 가득한 도시는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권 교수의 주장이다.
한국 도시의 가능성은 어떨까?
아탈리 Vs 옌센 Vs 슈라드 Vs 권영걸
▶프랑스의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 플래닛 파이낸스 대표는 “역사적인 흐름을 보면 다음 세대에 세계를 주도하는 도시는 아시아의 항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리스, 로마가 대표하는 지중해에서 출발한 도시 문화가 대서양을 지나 태평양으로 이동하고있으며 중심도시는 모두 항구도시였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 3개국과 인도 중 누가 그 역할을 주도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표현을 피했다. 대신 ‘서울은 성장하는 도시, 도쿄는 감소하는 도시, 뭄바이는 폭발하는 도시’라고 은유적으로 말한 뒤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에 맡기겠다”고 했다.
![](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old/Contents/201008/3(12).jpg)
호르크스 박사는 “도시는 계획한다고 무조건 그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움직이는 유기체”라면서 “크고 넓은 시야로 최소 20년 이상의 장기 목표를 세우고 이를 매년 수정하면서 방향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도시는 규모가 커질수록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쉽다”면서 “문화와 역사 등 고유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비스는 도시의 모든 지역에 균등하게 돌아갈 수 있게록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덧붙였다.
▶옌센 대표는 “한국이 지금까지 보여준 성장과 외부의 성과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도시의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곳에서 감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산업화 과정에서 입증된 한국의 의욕과 추진력이 도시의 발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특히 그는 남을 위한 배려에 익숙한 한국의 풍토가 감성적인 미래도시의 핵심 요건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직된 한국의 교육 풍토가 미래 도시의 비전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했다. 그는 “5년이나 10년 후의 도시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하라”면서 “도시의 경쟁력은 그 도시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 슈라드 위원은 “몇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초 예상보다 한국의 도시가 발전해 있는 데 놀랐다”면서 “특히 파리를 능가하는 크기와 인구밀도를 극복하고 있는 서울의 순환체계나 산-학-연이 긴밀하게 연결된 지방의 연구단지 등은 프랑스도 역할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는 “현재 한국의 도시는 대부분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에 의해 만들어진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같은 방식은 정치적 이유로 인해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의 입장이나 유기적인 순환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급격히 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소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의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론을 다시 펼쳤다. 그는 “디자인은 산업혁명과 비견될 만한 강력한 변화의 매개체”라며 “세계의 도시가 디자인을 통해 도시 혁신을 꿈꾸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도 함께 뛰어들어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국 성공 여부는 관이 얼마나 시민들과 소통된 정책을 내놓고, 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잘 추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