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를 11시 방향에서 5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지하철 1호선의 중간쯤에서 내리면 이 도시에서 가장 커다란 유리 피라미드를 볼 수 있다. 루브르미술관 정문이다. 원래 궁전이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만든 이곳에는 프랑수와 1세와 루이 13세, 루이 14세 같은 역대 국왕들이 소장했던 엄청난 미술품이 보관돼 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모두 30만 점, 전시 중인 작품은 약 3만 5000점이다. 전시장이 매우 넓어(약 6만m2) 대충 훑기만 하려 해도 1만 걸음 이상 걸어야 한다. 그런데 한 해 관람객 850만 여 명이 루브르미술관에 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인사드리는’ 작품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503년에 시작해 1506년에 완성했다는 명작 ‘모나리자’다.
굳이 루브르미술관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모나리자의 인기는 세계 어디서나 실감할 수 있다. 모나리자가 그려진 우산과 컵, 가방 같은 상품부터 모나리자가 특유의 미소를 버리고 갖가지 표정을 짓는 패러디 광고까지다양하다. 20세기 프랑스의 전위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를 모사한 뒤 꼬부라진 콧수염을 그려 넣고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L.H.O.O.Q)’는 뜻의 낯 뜨거운 제목을 달기도 했다. 수많은 학자들은 모나리자의 연령대와 신분,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 등을 추정하는 연구를 했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빈치가 자화상을 여성스럽게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탈리아 학자 주세페 팔란티가 주장한대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오 델 지오콘도의 부인(이탈리아에서는 모나리자를 ‘라 지오콘다’라고부른다)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설이 가장 인정받고 있다.
2억 4000만 화소 카메라로 덧칠 발견
과학자들은 다빈치가 어떤 방식으로 모나리자를 그렸는지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모나리자의 눈빛과 다빈치만의 과학이 숨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과학자들이 모나리자에서 주목한 요소는 빛이 비치는 부분과 그림자가 지는 부분이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점이었다. 물감과 물감 사이의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1998년 벨기에의 예술품 복원가인 로제르 마리니상은 “모나리자의 매력은 바니쉬 덧칠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바니쉬는 소나무에서 흘러나온 진액을 걸러 농축한 것으로 물감 층 위에 발라 그림을 보호한다. 하지만시간이 흐르면서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습기, 햇빛을 만나 점점 산화한다. 그림이 본래 색을 잃고 점점 누렇게 바래지는 것이다.
마리니상은 모나리자에 자외선을 쬐어 분석한 결과 그간 여러 차례의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바니쉬도 여러 번 덧칠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물감층도 여러 번 덧칠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면 바니쉬를 벗겨내야 했지만, 그림이 훼손될 위험이 있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붓칠을 여러 번 반복하는 일은 다빈치 뿐 아니라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등 1500~1600년대 유럽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던 기법이었다(글라시). 명암을 자연스럽게 살려 그림이 섬세해지고 부드럽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다빈치는 연필의 흔적을 감추고, 붓칠 방향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안개처럼 나타났다 안개처럼 사라지듯이, 서로 다른 색 사이의 윤곽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명암을 표현하는, 일명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스푸마토 기법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다. 모나리자의 오묘한 미소의 비밀이 스푸마토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2004년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회사는 2억 4000만 화소의 다중분광 카메라를 개발해 모나리자를 분석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 파스칼 코트는 “모나리자를 정밀하게 관찰해보니 왼쪽 눈 위에 붓칠한 흔적이 있었다”며 “원래 눈썹과 속눈썹이 있었는데, 청소 중에 지워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약간 뒤로 뺀 듯한 자세의 오른팔은 담요를 팔에 감싸 들고 있는 것”이라며 “손목을 감싼 천과 무릎을 덮은 담요의 안료가 정확히 같은 성분이었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코트는 다빈치가 스케치를 따라 옅은 색으로 그린 선 위에 좀 더 진한 색을 칠하고, 그 위에 더 진한 색으로 덧칠하는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스푸마토 기법을 시원하게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물감층 수십 번 칠해
다빈치의 화법을 분석하는 프랑스 미술사학자 자크 프랑크는 “다빈치가 실제로 어떤 색을 이용했고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알려면 바니쉬를 벗겨야 한다”면서도 “물감층에서 바니쉬만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어려울뿐 아니라, 바니쉬를 벗기는 과정에서 그림이 손상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캐나다의 과학자들은 바니쉬를 벗겨 내거나 물감층을 떼어내지 않고도 화판에서부터 밑그림, 처음에 칠한 물감층, 덧칠, 바니쉬칠까지 마치 하나씩 직접 벗겨낸 것처럼 그림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캐나다국립연구원의 프랑소와 블레 박사팀은 특수 레이저스캐너를 이용해 모나리자를 3차원으로 분석해 연구 결과를 2008년 공개했다.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을 만큼 약한 흰색 레이저로 그림의 앞면과 뒷면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 컴퓨터 안에 가상의 모나리자를 만들었다. 가로와 세로 60μm, 깊이 10μm의 해상도로그림과 화판 전체를 3차원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옅은 색을 칠한 부분에 비해 어두운 색을 칠한 부분의 물감층이 더 두껍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색깔을 여러 번 덧칠해 어두운 느낌을 살린 셈이다.
연구팀은 모나리자를 그린 포플러 나무 화판에도 주목했다. 화판의 정확한 크기는 가로 53.4cm, 세로79.4cm였으며 두께는 약 1.4cm였는데, 모나리자의 머리 위로 11.9cm나 되는 균열이 발견됐다. 그들은 화판이 뒤틀려 있음도 발견했다. 화판 높이가 0.5mm 달라질 때마다 등고선으로 표시하고 높아질수록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는 지도를 만들었다. 모나리자의 왼쪽 어깨가 다른 부위보다 12mm가량 튀어나와 있었다. 다행히 화판이 변형된 후에도 물감 층은 화판에 잘 달라붙어 있었으며, 그림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연구팀은 “오히려 왼쪽 어깨 부분이 살짝 솟은 덕분에 관람객들이 모나리자를 감상할 때 그 부분을 중심으로 그림을 보게 되고, 미소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빈치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화판도 모나리자의 신비를 더한 것이다.
연구팀은 밑그림을 분석해 원래 그림과 완성작이 조금 달라진 것도 알아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현재와 달리 원래는 위로 말아 올려 쪽진 머리였으며, 손도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쥐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2010년 7월, 프랑스 박물관 복원연구센터(CNRS)의 과학자들은 좀 더 정밀한 연구 결과를 최고 화학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필립 왈터 박사와 로랑스 드 비그리 박사팀은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을 만큼 약한 X선을 쬐어 모나리자를 3차원 디지털 그림으로 복원했다. X선을 쬐면 각각의 물감층을 이루는 안료의 성분과 두께도 알 수 있다. “다빈치는 연백색으로 초벌칠을 한 위에 버밀리언(주홍) 1%와 연백색 99%를 섞은 옅은 분홍색으로 칠했습니다. 그 위에 어두운 색 물감이나 이것을 섞은 반투명한 광택제를 칠했고,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바니쉬를 칠했죠.” 비그리 박사는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에서 밝혀낸 다빈치의 기법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왈터 박사는 “물감의 두께는 색깔마다 30~40μm 정도였는데, 물감을 한 번 칠했을 때의 두께는 고작 1~2μm에 지나지 않았다”며 “매우 얇은 면을 20~30번 가량 덧칠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십 번 칠한 물감층이 사람 머리카락 두께(약 80μm)의 절반밖에 되 지 않았다.
연구팀은 물감층 위에 바니쉬를 바르기 전에 산화망간이 섞인 반투명한 광택제를 발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모나리자의 눈이나 머리카락처럼 아주 짙은 부분은 밝은 부분과 물감층의 두께는 거의 같았으나, 그 위에 광택제를 칠한 층이 20% 가량 더 두꺼웠다. 왈터 박사는 “코에서 머리카락으로 갈수록 광택제 층과 바니쉬층이 점점 두꺼워지고, 그에 따라 색도 점점 짙어졌다”고 설명했다. 안개처럼 나타났다 안개처럼 나타나는
스푸마토 기법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이렇게 탄생했다.
모나리자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얼굴연구소를 이끄는 조용진 한남대 교수(미술해부학 박사)는 7월 17일 일본미술해부학회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럽 미술사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모나리자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은 고객의 주문을 받고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림을 주문한 고객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또 그림을 그린 장소나 모델, 완성된 시기가 학자에 따라 다르게 주장된다는 점도 모나리자가 실존했던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조 교수는 그림을 토대로 모나리자의 3차원 두상을 만들었다. 모나리자 그림과 같은 그림자가 생기도록 두상을 만들면 실제 모델을 3차원으로 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3차원 두상으로 다시 태어난 모나리자는 해부학적으로 실존 불가능한 형태였다. 왼쪽 얼굴은 남성, 오른쪽 얼굴은 여성의, 전혀 다른 두 사람 얼굴이 섞인 듯 좌우비대칭이 심했다. 약간 옆으로 치우친 얼굴 윤곽과 달리 이마 위쪽과 가르마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세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조 교수는 “비교적 앞에 나와 있는 쪽의 눈이 반대편 눈보다 짧은데다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며 “서양화가들이 중시한 원근법을 거꾸로 적용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빈치가 그린 또 다른 초상화의 주인공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도 3차원 두상으로 만들어 모나리자와 비교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의 두상은 해부학적으로 실존할 수 있는 형태였다. 오히려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처럼 원근법과 형태학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맞았다. 당시 다빈치가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뛰어난 화가면서 해부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다빈치가 유일하게 모나리자를 그릴 때에만 실수를 저질렀을까, 아님 일부러 불균형하게 그렸던 것일까. 조 교수는 “모나리자가 실존 인물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다빈치가 오랫동안 얼굴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들을 모두 모아놓은 연구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모나리자의 오른쪽 눈에는 슬픈 표정과 모성적 눈빛이 담겨 있고, 왼쪽 눈에는 유혹의 눈빛이 들어 있다. 코와 이마의 왼쪽 부분이 남성적인 데에 비해 입술과 턱의 오른쪽 부분은 소녀에 가깝다. 얼굴의 오른쪽은 여성적이고 내성적이며 왼쪽은 남성적이며 적극적이다. 윗부분은 성숙한 인물이지만 아랫부분은 어린 인물을 담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 성숙함과 미숙함을 두루 갖춰 전 세계 사람들이 매료될 만한 특유의 표정이 탄생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수십 겹의 물감층에서 피어오르는 오묘한 미소와 한 얼굴에 들어 있는 남녀노소 얼굴의 특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화가이자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라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
굳이 루브르미술관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모나리자의 인기는 세계 어디서나 실감할 수 있다. 모나리자가 그려진 우산과 컵, 가방 같은 상품부터 모나리자가 특유의 미소를 버리고 갖가지 표정을 짓는 패러디 광고까지다양하다. 20세기 프랑스의 전위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모나리자를 모사한 뒤 꼬부라진 콧수염을 그려 넣고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L.H.O.O.Q)’는 뜻의 낯 뜨거운 제목을 달기도 했다. 수많은 학자들은 모나리자의 연령대와 신분, 그림을 그릴 때의 상황 등을 추정하는 연구를 했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빈치가 자화상을 여성스럽게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탈리아 학자 주세페 팔란티가 주장한대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상인 프란체스코 디 바르톨로메오 델 지오콘도의 부인(이탈리아에서는 모나리자를 ‘라 지오콘다’라고부른다) 리자 게라르디니라는 설이 가장 인정받고 있다.
2억 4000만 화소 카메라로 덧칠 발견
과학자들은 다빈치가 어떤 방식으로 모나리자를 그렸는지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모나리자의 눈빛과 다빈치만의 과학이 숨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과학자들이 모나리자에서 주목한 요소는 빛이 비치는 부분과 그림자가 지는 부분이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다는 점이었다. 물감과 물감 사이의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1998년 벨기에의 예술품 복원가인 로제르 마리니상은 “모나리자의 매력은 바니쉬 덧칠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바니쉬는 소나무에서 흘러나온 진액을 걸러 농축한 것으로 물감 층 위에 발라 그림을 보호한다. 하지만시간이 흐르면서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습기, 햇빛을 만나 점점 산화한다. 그림이 본래 색을 잃고 점점 누렇게 바래지는 것이다.
마리니상은 모나리자에 자외선을 쬐어 분석한 결과 그간 여러 차례의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바니쉬도 여러 번 덧칠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물감층도 여러 번 덧칠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면 바니쉬를 벗겨내야 했지만, 그림이 훼손될 위험이 있어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붓칠을 여러 번 반복하는 일은 다빈치 뿐 아니라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 등 1500~1600년대 유럽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이 많이 사용하던 기법이었다(글라시). 명암을 자연스럽게 살려 그림이 섬세해지고 부드럽게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다빈치는 연필의 흔적을 감추고, 붓칠 방향도 알 수 없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안개처럼 나타났다 안개처럼 사라지듯이, 서로 다른 색 사이의 윤곽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명암을 표현하는, 일명 ‘스푸마토’ 기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스푸마토 기법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다. 모나리자의 오묘한 미소의 비밀이 스푸마토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2004년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회사는 2억 4000만 화소의 다중분광 카메라를 개발해 모나리자를 분석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 파스칼 코트는 “모나리자를 정밀하게 관찰해보니 왼쪽 눈 위에 붓칠한 흔적이 있었다”며 “원래 눈썹과 속눈썹이 있었는데, 청소 중에 지워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약간 뒤로 뺀 듯한 자세의 오른팔은 담요를 팔에 감싸 들고 있는 것”이라며 “손목을 감싼 천과 무릎을 덮은 담요의 안료가 정확히 같은 성분이었다”고 증거를 제시했다. 코트는 다빈치가 스케치를 따라 옅은 색으로 그린 선 위에 좀 더 진한 색을 칠하고, 그 위에 더 진한 색으로 덧칠하는 방식으로 그렸다는 점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스푸마토 기법을 시원하게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물감층 수십 번 칠해
다빈치의 화법을 분석하는 프랑스 미술사학자 자크 프랑크는 “다빈치가 실제로 어떤 색을 이용했고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알려면 바니쉬를 벗겨야 한다”면서도 “물감층에서 바니쉬만 완벽하게 제거하기는 어려울뿐 아니라, 바니쉬를 벗기는 과정에서 그림이 손상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2004년부터 캐나다의 과학자들은 바니쉬를 벗겨 내거나 물감층을 떼어내지 않고도 화판에서부터 밑그림, 처음에 칠한 물감층, 덧칠, 바니쉬칠까지 마치 하나씩 직접 벗겨낸 것처럼 그림을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캐나다국립연구원의 프랑소와 블레 박사팀은 특수 레이저스캐너를 이용해 모나리자를 3차원으로 분석해 연구 결과를 2008년 공개했다.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을 만큼 약한 흰색 레이저로 그림의 앞면과 뒷면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훑어 컴퓨터 안에 가상의 모나리자를 만들었다. 가로와 세로 60μm, 깊이 10μm의 해상도로그림과 화판 전체를 3차원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옅은 색을 칠한 부분에 비해 어두운 색을 칠한 부분의 물감층이 더 두껍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색깔을 여러 번 덧칠해 어두운 느낌을 살린 셈이다.
연구팀은 모나리자를 그린 포플러 나무 화판에도 주목했다. 화판의 정확한 크기는 가로 53.4cm, 세로79.4cm였으며 두께는 약 1.4cm였는데, 모나리자의 머리 위로 11.9cm나 되는 균열이 발견됐다. 그들은 화판이 뒤틀려 있음도 발견했다. 화판 높이가 0.5mm 달라질 때마다 등고선으로 표시하고 높아질수록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는 지도를 만들었다. 모나리자의 왼쪽 어깨가 다른 부위보다 12mm가량 튀어나와 있었다. 다행히 화판이 변형된 후에도 물감 층은 화판에 잘 달라붙어 있었으며, 그림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연구팀은 “오히려 왼쪽 어깨 부분이 살짝 솟은 덕분에 관람객들이 모나리자를 감상할 때 그 부분을 중심으로 그림을 보게 되고, 미소를 깊이 있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빈치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화판도 모나리자의 신비를 더한 것이다.
연구팀은 밑그림을 분석해 원래 그림과 완성작이 조금 달라진 것도 알아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현재와 달리 원래는 위로 말아 올려 쪽진 머리였으며, 손도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개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쥐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2010년 7월, 프랑스 박물관 복원연구센터(CNRS)의 과학자들은 좀 더 정밀한 연구 결과를 최고 화학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필립 왈터 박사와 로랑스 드 비그리 박사팀은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을 만큼 약한 X선을 쬐어 모나리자를 3차원 디지털 그림으로 복원했다. X선을 쬐면 각각의 물감층을 이루는 안료의 성분과 두께도 알 수 있다. “다빈치는 연백색으로 초벌칠을 한 위에 버밀리언(주홍) 1%와 연백색 99%를 섞은 옅은 분홍색으로 칠했습니다. 그 위에 어두운 색 물감이나 이것을 섞은 반투명한 광택제를 칠했고, 마지막으로 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바니쉬를 칠했죠.” 비그리 박사는 뤼미에르 테크놀로지에서 밝혀낸 다빈치의 기법을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왈터 박사는 “물감의 두께는 색깔마다 30~40μm 정도였는데, 물감을 한 번 칠했을 때의 두께는 고작 1~2μm에 지나지 않았다”며 “매우 얇은 면을 20~30번 가량 덧칠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수십 번 칠한 물감층이 사람 머리카락 두께(약 80μm)의 절반밖에 되 지 않았다.
연구팀은 물감층 위에 바니쉬를 바르기 전에 산화망간이 섞인 반투명한 광택제를 발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모나리자의 눈이나 머리카락처럼 아주 짙은 부분은 밝은 부분과 물감층의 두께는 거의 같았으나, 그 위에 광택제를 칠한 층이 20% 가량 더 두꺼웠다. 왈터 박사는 “코에서 머리카락으로 갈수록 광택제 층과 바니쉬층이 점점 두꺼워지고, 그에 따라 색도 점점 짙어졌다”고 설명했다. 안개처럼 나타났다 안개처럼 나타나는
스푸마토 기법과 모나리자의 미소는 이렇게 탄생했다.
모나리자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얼굴연구소를 이끄는 조용진 한남대 교수(미술해부학 박사)는 7월 17일 일본미술해부학회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유럽 미술사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모나리자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화가들은 고객의 주문을 받고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소장하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림을 주문한 고객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또 그림을 그린 장소나 모델, 완성된 시기가 학자에 따라 다르게 주장된다는 점도 모나리자가 실존했던 인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조 교수는 그림을 토대로 모나리자의 3차원 두상을 만들었다. 모나리자 그림과 같은 그림자가 생기도록 두상을 만들면 실제 모델을 3차원으로 재현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3차원 두상으로 다시 태어난 모나리자는 해부학적으로 실존 불가능한 형태였다. 왼쪽 얼굴은 남성, 오른쪽 얼굴은 여성의, 전혀 다른 두 사람 얼굴이 섞인 듯 좌우비대칭이 심했다. 약간 옆으로 치우친 얼굴 윤곽과 달리 이마 위쪽과 가르마가 정면을 향하고 있는 자세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조 교수는 “비교적 앞에 나와 있는 쪽의 눈이 반대편 눈보다 짧은데다 더 깊숙이 들어가 있다”며 “서양화가들이 중시한 원근법을 거꾸로 적용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빈치가 그린 또 다른 초상화의 주인공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도 3차원 두상으로 만들어 모나리자와 비교했다. 놀랍게도 이 여인의 두상은 해부학적으로 실존할 수 있는 형태였다. 오히려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처럼 원근법과 형태학적인 요소가 모두 들어맞았다. 당시 다빈치가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뛰어난 화가면서 해부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다빈치가 유일하게 모나리자를 그릴 때에만 실수를 저질렀을까, 아님 일부러 불균형하게 그렸던 것일까. 조 교수는 “모나리자가 실존 인물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다빈치가 오랫동안 얼굴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들을 모두 모아놓은 연구물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모나리자의 오른쪽 눈에는 슬픈 표정과 모성적 눈빛이 담겨 있고, 왼쪽 눈에는 유혹의 눈빛이 들어 있다. 코와 이마의 왼쪽 부분이 남성적인 데에 비해 입술과 턱의 오른쪽 부분은 소녀에 가깝다. 얼굴의 오른쪽은 여성적이고 내성적이며 왼쪽은 남성적이며 적극적이다. 윗부분은 성숙한 인물이지만 아랫부분은 어린 인물을 담고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 성숙함과 미숙함을 두루 갖춰 전 세계 사람들이 매료될 만한 특유의 표정이 탄생했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수십 겹의 물감층에서 피어오르는 오묘한 미소와 한 얼굴에 들어 있는 남녀노소 얼굴의 특징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화가이자 과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라고 조 교수는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