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라는 ‘저주’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굴된 수백 년 전 미라를 조사한 결과 한국 미라는 거의 완전한 무균 상태에서 보관되며 해로운 세균도 없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탄카멘 왕’ 미라의 저주가 사실은 미생물 감염이 원인이었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미라는 비교적 온순하고 안전한 셈이다.
김한겸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교수는 경기 오산시 가장2일반산업단지에서 5월 발견된 미라 두 구를 조사하고 그 결과를 7월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한국의 미라는 거의 무균상태에서 보관됐다. 관의 뚜껑을 여는 과정에서 유입된 세균을 제외하면 병원성 세균은 발견할 수 없었다.
발견된 두 구의 미라는 조선시대 한 사대부 남성의 전처와 후처로 추측된다. 5월 9일 관에서 꺼낸 미라가 후처, 30일 꺼낸 미라가 전처다. 두 번째 미라는 남편의 관직 품계에 따라 정9품 품계를 받았으며 첫 번째 미라는 6품 품계를 받았다. 당시 정9품부터 한 단계씩 오르는 데 평균 450일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7년여 만에 두 아내를 모두 잃은 셈이다.
미라는 모두 석관인 회격묘(灰隔墓) 안에서 발견됐다. 회격은 석회와 황토, 고운 모래를 섞어 만든 조선 전기의 묘 방식으로 후기의 회곽묘보다 밀봉이 잘 돼 미라가 더 잘 만들어진다.
발굴단은 오산 현지에서 회격을 부수고 안에 들어 있는 소나무관을 꺼내 병원으로 옮겨왔다. 미라를 최대한 원상태로 조사하기 위해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에서 미라를 꺼냈다. 지금까지는 야외현장에서 관 뚜껑을 열고 그대로 미라를 꺼냈기 때문에 미라가 적잖이 손상됐다.
발굴 과정에서 과학적인 조사도 병행했다. 한 꺼풀씩 옷과 부장품을 벗겨낼 때마다 측정지를 이용해 산성도와 단백질 함량 등을 측정했다. 관 속에서 머리카락, 손톱, 나뭇조각 등이 나오면 즉시 바이알(연구용 유리병)에 담았다. 곰팡이 등 세균 흔적이 보이면 면봉으로 닦아 시험관에 넣었다. 이렇게 얻은 자료들은 모두 고려대 진단검사의학과로 옮겼다.
연구팀은 이 자료를 한 달간 조사한 결과 특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처음 관을 열었을 때 측정한 산성도(pH)는 중성인 7로 나왔다. 이 수치가 미라의 옷을 벗겨낼수록 8, 9로 증가했다. 염기성 상태로 미라가 보관돼 있었다는 의미다. 미라는 미생물의 활동이 둔해지는 산성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결과는 기존 학설을 부정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연구진의 관심을 얻고 있다. 세균 조사 결과 역시 의미가 크다. 국내에서 발굴된 미라에서 세균을 채취하고 배양까지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균 배양작업을 맡은 이갑노 고려대 구로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미라를 감싼 부장품과 수의, 미라의 몸을 일일이 조사했다”며 “일부 세균이 발견됐지만 발굴 과정에서 유입됐을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김한겸 교수는 “이번 결과는 한국 미라가 무균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유력한 증거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