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진화론의 아이콘인 ‘다윈의 핀치’ 14종. 이들은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데 저마다의 환경에 적응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된다. 최근 핀치 부리의 다양성이 아핀변환이라는 간단한 수식을 통해 설명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유전자 연구결과도 있다.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은 무리의 새들에서 부리의 구조가 점차 변하는 변화의 다양성을 보면, 이 제도에는 원래 새가 없었으나 한 종류가 들어와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변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찰스 다윈, ‘비글호 항해기
젊은 시절 갈라파고스에서 다양한 핀치를 목격하고 견본을 가져온 찰스 다윈은 1845년 출간한 ‘비글호 항해기’ 2판에서 자연선택을 통한 종분화 이론, 즉 진화론의 개념을 핀치의 부리를 언급하며 내비쳤다. 갈라파고스의 핀치가 다윈 진화론의 아이콘인 ‘다윈의 핀치(Darwin's finches)’로 불리는 이유다.
갈라파고스는 작은 섬 여러 개가 흩어져 있는 제도(諸島)다. 섬마다 사는 핀치의 종류가다른데 모두 14종이 알려져 있다. 이들을 분류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부리다. 먹이의 종류, 즉 서식 환경에 따라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동태평양 적도 부근에 있는 화산섬 갈라파고스에 언제부터 핀치가 살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 사이에 종분화가 일어나 현재 14종으로 갈라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처럼 부리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핀치가 14종이나 나오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무척 다양해 보이는 부리 모양이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되는 변형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는 불과 몇 개의 유전자 발현 패턴의 변화가 이런 다양성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 준 이전 연구결과와도 잘 맞는 현상이다.
늘이고 줄이고 기울이고
미국 하버드대 진화생물학과 아하트 압자노브 교수팀은 핀치 14종 가운데 하버드자연사박물관에 박제로 있는 12종 수 백마리의 부리를 측정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핀치의 다양한 부리모양이 ‘아핀 변환(affine transformation)’이라는 간단한 수식을 통해 하나의 형태로 통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학에서 변환이란 어떤 점이나 점들의 집합을 일정한 규칙(수식)을 통해 새로운 점이나 점들의 집합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x축 위에 있는 한 점 x가 x'라는 새로운 점으로 바뀔 경우 이를 1차원 변환이라고 부른다. 2차원 좌표에 있는 한 점 (x, y)가 새로운 점 (x', y')로 바뀔 경우는 2차원 변환이다. 수학에서 차원은 제한이 없지만 시각적으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2차원 변환이 설명하기 편하다.
아핀변환이란 아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변환이다. 먼저 한 직선 위에 있는 세 점a, b, c의 순서는 변환된 뒤에도 유지돼야 한다. 예를 들어 1, 2, 3이 변환된 뒤 2, 4, 6이 되면 아핀변환이지만 2, 6, 4가 되면 아핀변환이 아니다. 두 번째로 세 점 사이의 거리의 비가 변환 뒤에도 유지돼야 한다. 즉 1, 2, 3의 경우 (2-1)/(3-2)=1이므로 2, 4, 6은 아핀변환이지만((4-2)/(6-4)=1) 2, 4, 8은 아니다((4-2)/(8-4)=1/2).
이런 제한 때문에 어떤 도형(점들의 집합)을 아핀변환할 경우 원래 형태의 상대적 관계가 크게 왜곡되지 않고 남아있다. 예를 들어 가운데가 뚫려 있는 도넛 형태는 아핀변환 뒤에도 도넛 형태다. 물론 찌그러진 형태일 수는 있지만.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위상이 유지된다는 말이다.
아핀변환은 4가지 변환으로 이뤄져 있다. 회전변환과 이동변환, 크기변환과 층밀림변환이 그것이다. 정사각형을 놓고 설명해보자. 회전변환은 일정한 각도만큼 도형이 돌아가는 변환이고 이동변환은 좌표상에서 도형이 자리를 옮겨가는 변환이다. 두 경우 모두 도형의 모양이나 크기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크기변환은 모양(정사각형)이 유지되면서 크기만 바뀌는 것과 함께 x, y 값이 서로 다른비율로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경우도 포함된다. 즉 정사각형이 크기변환 뒤에 직사각형이될 수도 있다. 층밀림변환은 정사각형의 한 변을 고정한 채 마주보는 변을 수평 방향으로 이동시킨 경우다. 그 결과 정사각형이 평행사변형으로 바뀐다.
13종 부리 세 그룹으로 나눠져
그런데 이런 수학용어와 핀치의 부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새의 부리는 3차원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부리의 길이, 두께, 폭 각각을 3차원 좌표의 한 축 방향으로 놓을수 있다. 연구자들은 분석을 단순화하기 위해 폭을 빼고 핀치 부리의 길이와 두께(2차원)에 대한 수학적 분석을 실시했다. 먼저 박물관에 있는 수많은 핀치 박제(12종)와 핀치와 가까운 새인 검은얼굴그래스큇 박제의 부리 크기를 측정한 뒤 종마다 평균값을 구했다. 그리고 13종의 부리가 형태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크기변환으로 묶일 수 있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13종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졌다. A그룹에 7종, B그룹에 5종, C그룹에 1종이 속했다. 즉 A그룹에 속한 7종의 부리는 길이축이나 두께축 방향으로 크기변환을 하면 서로 일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사실은 A그룹 7종 가운데 6종은 게오스피자(Geospiza)라는 한 속(屬)에 속한 종들이라는 점이다. 이 속에 속하는 큰 땅핀치와 작은 땅핀치는 부리 크기 차이가 2배나 나지만 형태적으로는 비슷하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층밀림변환을 적용해보자 세 그룹이 모두 하나의 형태로 수렴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핀치 13종 부리의 다양한 크기와 모양은 처음 갈라파고스에 도착한 조상 핀치의 부리가 ‘아핀변환’이라는 간단한 수식을 따라 변형된 결과인 셈이다.
다양한 생물 형태, 변환의 결과로 설명
사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들의 다양한 형태를 변환이라는 수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수학자, 고전문헌학자였던 다르시 톰슨(D'Arcy Thompson)은 1917년 ‘On Growth and Form(성장과 형태에 관하여)’란 제목의 방대한 책을 펴냈는데 이 가운데 한 장(章)을 형태의 변형에 할애했다.
여기서 톰슨은 어떤 과(科)나 목(目)을 대표하는 종을 기준으로 삼은 뒤 그 형태를 변형할 경우 다른 종의 형태가 나올 수 있음을 다양한 예를 통해 보여줬다. 즉 기준이 되는 종을 모눈종이처럼 정사각형 격자 위에 그린 뒤, 이 격자를 늘이거나 줄이다보면 실제 존재하는 다른 종과 비슷한 모양이 나왔던 것.
톰슨이 제시한 변환 가운데는 크기변환이나 층밀림변환처럼 비교적 간단한 변환도 있지만 대부분은 위치마다 서로 다른 곡률로 변환하는, 즉 수학적으로 다소 복잡한 변환이 많다. 톰슨은 “우리는 수학적 정의가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너무 엄격하고 경직돼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런 엄밀함은 무한한 자유와 결합돼 있다”며 자신의 접근법을 설명했다.
톰슨의 주장은 그 뒤 주류 생물학계에서 무시돼왔지만 1983년 초파리에서 ‘호메오박스(homeobox)’가 발견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호메오박스란 생명체의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호메오 유전자를 포함한 DNA 염기서열이다. 그 뒤 초파리뿐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여러 종에도호메오박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러 종에서 전혀 다른 구조로 보이는 형태도 각 호메오 유전자의 발현 패턴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비슷한 해석이 핀치 부리의 다양성에도 적용된다. 핀치 부리의 길이와 두께가 Bmp4와 칼모둘린(Calmodulin)이라는 유전자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이 2004년과 2006년 각각 발견됐다. 아핀변환으로 다양한 부리 모양을 해석한 뒤 연구자들은 게오스피자 속에 속한 6종의 Bmp4 유전자의 발현양상을 비교해봤다. 그 결과 부리의 크기와 Bmp4 유전자 발현 정도가 정확히 비례함을 확인했다. 즉 부리가 가장 큰 큰 땅핀치는 부리가 작은 작은 땅핀치에 비해 부리 말단과 위쪽에서 Bmp4의 mRNA 농도가 훨씬 높았다. 즉 Bmp4 유전자가 많이 발현됐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부리의 발달 과정에서 신호분자의 유전자 발현 변화가부리 크기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갈라파고스에 살게 된 핀치는 이들 몇몇 유전자의 발현패턴을 변화시킴으로써 서식 환경에 따라 구할 수 있는 먹이에 맞게 부리의 형태를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진화시킨 게 아닐까. 이런 점에서는 진화가 아주 느리게, 점진적으로 이뤄진다는 찰스 다윈의 주장보다 급작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다르시 톰슨의 아래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의 기하학적 유사체들(변형으로 묶이는 종들)은 끊임없는 미세한 연속 변이라는 다윈의 개념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들은 불연속적인 변이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돌연변이(또는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유형이 언제라도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