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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최초 위성 익스플로러 발사 45주년

재수, 삼수 필수인 로켓 개발의 험난한 역사


세계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 에 쫓아가기 위해 다급히 준비된 미국 최초의 우주로켓 뱅가드는 발 사 2초만에 추락했다.


최근 우주개발 신생국 한국은 웃었지만, 우주개발 강국 유럽은 울어야만 했다. 2002년 11월 28일 한국 최초의 액체로켓 KSR-Ⅲ가 단번에 힘차게 솟아올랐던 반면, 12월 11일 유럽우주기구(ESA)에서 심혈을 기울여 업그레이드한 로켓 아리안 5호는 발사된지 4백56초만에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각국의 우주개발 역사 속에서 로켓 발사의 희비를 살펴보자.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1958년 1월 31일은 미국이 주피터 C 로켓을 이용해 자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날이다. 미국은 이로써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옛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에 짓밟힌 자존심을 어느 정도 만회하게 됐다. 하지만 미국의 우주개발은 실패로부터 시작됐다. 스푸트니크 발사 2달 후 처음 미국이 준비한 우주로켓은 뱅가드였다. 철저한 예비 시험도 없이 무리하게 준비된 뱅가드 로켓은 발사 2초만에 1단 로켓이 발사대에 주저앉으며 폭발했다. 이런 우주개발 초기 실패의 쓴잔을 맛본 나라는 비단 미국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1966년부터 위성발사를 시도했다. 하지만 매번 로켓이 말썽을 부려 네번에 걸친 시도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 일로 당시 로켓개발의 책임자이자 일본 우주개발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이도가와 박사가 연구소를 떠나야만 했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주개발에 계속 도전했다. 1970년 2월 11일 마침내 5번째 시도에서 24kg짜리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영국의 경우에도 비슷했다. 1966년부터 우주로켓 발사계획을 수립하고 3회에 걸친 시험 및 실전 발사가 이뤄졌지만 모두 실패했다. 영국 정부는 참다못해 인공위성 발사계획 자체를 철회해 버렸다. 그러자 우주개발 참여자들은 남은 부품을 모아 만든 로켓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마지막 기회를 요청했다. 이에 대영제국의 체면을 회복할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1971년 10월 28일 66kg의 인공위성 프로스페로를 실은 로켓 ‘블랙 애로우’(Black Arrow)는 이름과 같이 ‘화살’처럼 우주공간으로 날아갔다.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영국은 세계 6번째의 인공위성 발사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 부족할 때 지낸 돼지머리 고사


우주개발사상 최대의 참사인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발사 실 패의 주원인은 보조 로켓에 기 술적 결함을 일으킨 차가운 1 월의 날씨였다.


우주개발에서도 대학입시처럼 재수, 삼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실패의 가능성은 언제나 고려돼야 한다. 따라서 우주산업에서 R&D는 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이란 본래의 뜻보다 ‘모험과 위험’(Risk & Danger)으로 더 많이 인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항상 실패에 대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위성에는 중요한 부품의 손상을 대비해 똑같은 예비 부품이 장착돼 있다. 지상에는 우주공간을 누비는 비행 모델과 똑같은 시험용 모델이 대기하고 있다. 비행 모델의 고장시 지상에서 똑같은 시험을 통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로켓도 마찬가지다. 로켓에는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 위험지역으로 비행할 경우에 대비한 자폭장치가 있다.

로켓의 자폭장치는 2002년 12월 업그레이드된 아리안 5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작동했다. 공교롭게도 아리안 5호의 자폭장치는 1996년 6월 4일 처녀비행 때도 작동했다. 아리안 5호는 유럽우주기구에서 기존의 아리안 로켓을 대체하고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세계위성발사 시장을 석권하기 위해 11년 동안 70억달러를 들여 제작한 차세대 우주로켓이다. 유럽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사용하는 로켓엔진을 개발했고, 이를 장착한 아리안 5호는 4대의 과학위성을 싣고 화려한 비상을 꿈꿨다. 하지만 발사 40초 후 로켓은 궤도를 이탈하며 폭발하고 말았다. 지상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자폭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유럽우주기구는 실패의 원인을 찾아 재기하는데 17개월의 시간과 1억달러의 비용이 들었다.

우주개발과정에서 실패의 원인으로는 기술적 결함 외에도 기상과 같이 피치 못하는 것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1986년 1월 28일 발사 73초만에 공중 폭발해 우주개발사상 최대의 사고로 기록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의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1월의 차가운 기온이었다. 우리나라 최초 액체로켓 KSR-Ⅲ의 경우에도 뜻하지 않은 강풍으로 발사를 하루 연기해야만 했다. 로켓은 통상 발사장 주변에 매초 12km이상의 바람이 불거나 발사장과 비행경로 18km 이내에 번개가 있거나 온도가 0℃에서 -20℃인 구름이 두께 1.4km 이상이 되면 발사는 취소된다.
 

우리도 실패의 경험은 있다. 지난 1995년 8월 5일발사된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통신위성 무궁화 1호 발사 과정에서 보조 로켓의 분리장치가 오작동해 위성의 수명이 반토막 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인지1996년 1월 14일 예비위성인 무궁화 2호 발사에는 관계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당시 델타 로켓의 성공가능성은 98%에 실패가능성은 2%였다. 관계자들은 발사 전날 미국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센터에서 돼지 한마리를 잡아 발사성공을 비는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이보기엔 우주시대에 걸맞지 않는 기이한 행동이었겠지만, 완벽한 성공을 위해 모자라는 2%의 실패가능성을정성으로 메워보려는 노력이었다. 그 덕분인지 무궁화 2호는 1호와 같은 로켓, 같은 장소에서 발사됐지만100% 성공할 수 있었다. 우주개발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역시‘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할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림)인가 보다.

2003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정홍철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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