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망토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을 지배하는 신 ‘하데스’가 나온다. 하데스란 희랍어로 ‘안 보이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그에게 특별한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데스는 가끔 지상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를 보지는 못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습을 사라지게 해주는 특별한 물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데스가 가진 특별한 물건은 망토가 아니라 투명모자였다.
20세기에 들어서자 투명모자는 투명망토로 바뀐다. 소설 ‘타잔’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한 미국의 에드거 라이스 버로우즈는 자신이 쓴 ‘화성의 투사(A Fighting Man of Mars)’에 처음으로 투명망토를 등장시킨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투명망토의 이미지를 전한 것은 조앤 롤링의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다. 주인공 해리포터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투명망토를 쓰고 마법학교를 남몰래 돌아다니고 위급한 순간을 모면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는 ‘해리포터처럼 투명망토(사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곧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백일몽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해리포터처럼 마법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면 몰라도 그런 일은 그저 단지 판타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2006년 5월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해리포터 투명망토 현실로’라는 누가 봐도 눈에 확 띄는 제목의 뉴스가 전해진 것이다. 미국의 듀크대 연구팀이 실험실에서 투명망토를 실현시킬 장치를 최초로 고안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세계 언론은 영화 ‘해리포터’ 못지않게 호들갑을 떨며 이 소식을 세계 곳곳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사이언스’는 그해 10대 연구 성과 중 5위로 투명망토를 선정했다.
2006년은 투명망토의 원년인 셈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0년. 그동안 투명망토는 얼마나 업그레이드됐을까. 최근 투명망토가 2차원 평면을 넘어 3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누군가 투명망토를 두르고 악동처럼 웃음 짓는 모습을 과연 현실에서 볼 수 있을까.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메타물질
2008년 4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서 다수의 베스트셀러 과학서적을 낸 미치오 카쿠 박사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불가능의 물리학(Impossible physics: Never say never)’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카쿠 박사는 이 기고문에서 과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곧 가능해질 10가지 분야를 소개했다. 상상 속 투명망토도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최근까지도 물리학에서는 투명망토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물질과 빛의 관계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빛은 물질과 만나면 물질에 부딪쳐 튕겨 나오거나, 흡수되거나, 또는 물체를 투과하는 게 전부다. 만일 어떤 물체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체는 빛을 반사해서도 안 되고 흡수해서도 안 된다. 일부만 반사될 경우, 반사된 빛 때문에 물체는 금세 눈에 띈다. 빛이 일부만 흡수될 경우에는 빛 일부가 사라지기 때문에 주변보다 어두워져 물체가 눈에 띄게 된다.
그렇다고 물체가 빛을 모두 투과시키면 투명해질까. 마치 그 자리에 없던 것처럼 빛을 투과시키면 가능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투명인간’에는 화학적인 방법으로 몸을 공기와 같은 굴절률로 변화시켜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몸이 공기와 같은 굴절률을 갖는다면 이는 몸이 아니라 공기와 같은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런 방법은 현실성이 없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투명망토는 과연 어떻게 물질을 사라지게 하는 걸까. 빛이 물질을 만나지 않고 지나가게 하면 가능하다. 그러려면 망토는 아주 특별하게 빛을 굴절시켜야 한다. 바로 빛이 물질을 휘어 감듯이 굴절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냇물이 돌을 만났을 때 휘돌아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냇물은 돌과 만나는 순간, 그 주변을 휘돌아가지만 일단 그 뒤부터는 마치 돌을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유유히 흐른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눈에는 물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뒤쪽의 모습만 보일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빛을 굴절시키는 물질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빛을 자연스럽게 굴절시키려면 물체의 굴절률은 음(-)의 값을 가져야 한다. 즉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이 존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음의 굴절률을 갖는다는 뜻은 마치 물을 거꾸로 솟아오르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이런 물질을 찾을 수 없다.
농담에서 시작된 투명망토 연구
하지만 과학자들은 불가능한 상상을 가능한 상상으로 뒤집었다. 이름마저도 생소한 ‘ 메타물질 ’이 가능성에 도전한 것이다. ‘메타’는 희랍어로 ‘범위나 한계를 넘어서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메타물질은 말 그대로 자연 물질의 한계를 넘어선 물질이나 다름없다. 실제 자연의 물질이 절대 해내지 못하는 수준까지 빛을 심하게 꺾을 수 있다. 빛을 물질 주위로 에돌아가게 해서 투명망토 옷감으로 손색이 없는 수준까지 가능할 정도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메타물질에서 가능성을 찾은 사람은 영국 런던 임페리얼대 이론물리학자 존 펜드리 교수였다. 1990년대 펜드리 교수는 영국의 한 소재회사로부터 의뢰를 하나 받았다. 당시 이 회사는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전투기용 탄소 소재를 제조하고 있었지만, 그 원리를 정확히는 모르고 있었다. 펜드리 교수가 관련 연구를 맡았다. 펜드리 교수는 원리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물질의 내부 구조를 미세한 수준에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빛에 대한 성질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메타물질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다. 그리고 그는 1999년 이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주도로 메타물질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학자들도 거의 호기심 충족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딱히 어떤 중요한 목적에 쓰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힘든 분위기였다. 게다가 연구과제도 투명망토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메타물질이 투명망토와 인연을 맺은 건 2004년 펜드리 교수가 농담 삼아 한 말에서 비롯됐다. 당시 펜드리 교수는 메타물질에 대한 자신의 연구가 너무나도 복잡하고 심오해서 알아듣기도 힘들다는 악평을 듣고 있었다. 그 정도가 어찌나 심하던지 보다 못한 한 동료가 그에게 메타물질에 관해 얘기할 때 제발 재미를 좀 섞어보라는 제안까지 할 정도였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펜드리 교수는 2004년 DARPA의 한 모임에서 흥미로운 소재 하나를 던졌다. 영화 ‘해리포터’의 내용을 빌려온 것이다. 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출발지점 ‘플랫폼 9와 4분의 3’을 한 예로 든 것이다. 그가 아마도 이 플랫폼은 메타물질로 돼 있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자 발표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한바탕 웃었다. 실제로 그는 이론상 메타물질이 물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농담은 농담에서 그치지 않았다. DARPA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DARPA는 펜드리 교수에게 한번 진짜 연구를 해보라며 5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억 원을 쥐어주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오래전부터 메타물질 연구에 큰 관심을 가져온 미국 듀크대 실험물리학자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가 펜드리 교수를 찾았다. “진짜로 투명망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 말을 들은 펜드리 교수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스미스, 자네 정신 나간 게 틀림없군.”
최초의 투명망토, 10중 성벽 구조
스미스 교수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2006년 진짜로 ‘일’을 내고야 말았다. 스미스 교수의 연구팀은 그해 5월 세계 최초의 투명망토 탄생을 언론을 통해 알렸고 같은 해 11월 ‘사이언스’에 정식 논문을 발표했다. 물론 최초의 투명망토는 해리포터의 망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사라지게 한 대상도 사람이 아니라 실린더 모양에 너비 5cm, 높이 1cm의 작은 구리관이었다.
연구진은 구리관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관을 중심으로 주변에 10장의 메타물질 고리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겹이 배치했다. 망토가 아니라 10겹으로 둘러싼 작은 성벽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 10겹의 메타물질은 전자기파(빛)을 구리관 주변으로 에돌아가게 해서 마치 구리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 투명망토는 모든 빛을 통과시키지는 못하고 특정한 주파수를 가진 마이크로파에 한해 작용했다. 마이크로파는 전자레인지에서 쓰는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훨씬 길다. 파장이 1mm에서 1m까지 범위가 넓다. 최초의 투명망토는 이 가운데에서 파장 3cm의 마이크로파에 한해 에돌아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파장에서도 완벽하게 투명하지 않았다. 완전히 투명하면 그림자가 생기지 않아야 하지만, 실험에서는 약간의 그림자가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부 빛을 흡수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뿐 아니라 2차원 평면에 한해 투명하게 모였다. 이처럼 최초의 투명망토는 우리가 상상하는 투명망토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뒤로 투명망토는 하나둘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했다. 한 예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장시앙 교수는 2008년 스미스 교수의 투명망토를 좀 더 그럴 듯한 망토 모양으로 한 단계 더 진화시켰다. 장 교수팀은 금속박막으로 이뤄진 그물망 구조와 수nm(나노미터, 1nm=10-9m) 굵기의 은으로 만든 실오라기로 투명망토용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당시 이 연구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2008년 10대 과학발견’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이듬해 장 교수팀은 그물망 구조를 카펫형으로 진화시켰고, 마이크로파에만 적용하던 것을 파장이 가시광선의 1.8~2.4배에 불과한 근적외선 영역까지 끌어올렸다. 물론 투명망토 역시 나노물질로 만들어 너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올 3월에는 이 기술로 만든 투명망토가 평면에서 입체로 발전했다. 입체 투명망토는 연구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독일 카를스루에 기술연구소 톨가 에어긴 박사팀은 카펫형 투명망토 기술을 이용해 최초의 3D 투명망토를 개발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들 연구진은 메타물질에 얇은 금박을 씌워 어느 방향에서나 물체를 감춰주는 투명망토를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메타물질에 얇은 금박을 씌우고 이 금박을 움푹 패게 했다. 보통의 평면형 투명망토는 움푹 들어간 부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입체 투명망토는 움푹 팬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역시 완벽한 투명망토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투명망토가 아직은 매우 작은 물체만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움푹 팬 금박 부분은 가로 30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세로 10μm에 깊이가 고작 1μm에 불과하다. 확대경 없이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다.
눈에 보이는 모든 빛 감춰야 비로소 성공
마법의 영역에서 현실로 들어온 지 고작 4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도 어찌 보면 대단한 셈이다. 그렇다면 완벽한 투명망토를 언제쯤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쉽지 않다. 완벽한 투명망토가 등장하려면 여러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우선 파장이 지금보다 짧은 가시광선을 투명하게 보이게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가시광선의 파장은 마이크로파나 적외선보다 훨씬 짧은 380~770nm에 속한다. 파장의 짧고 긺과 투명망토를 만드는 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메타물질에는 금과 같은 금속물질이 표면에 씌워져 있다. 이를 통해 인위적으로 전자기파인 빛의 굴절률을 음이 되도록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금속물질의 너비가 빛의 파장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투명망토가 작동하려면 금속물질의 너비가 빛의 파장의 10분이 1 수준으로 가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미스 교수팀의 최초 투명망토의 경우 파장이 약 3cm인 마이크로파에서 투명하게 보이려면 금속물질의 너비가 3mm 정도로 가늘어야 했다. 물질이 이 정도로 빛의 파장보다 짧아야 빛과 상호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시광선은 어떨까. 파장이 3cm의 마이크로파보다 파장이 6만 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파장 500nm의 초록빛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경우 금속부분의 너비는 50nm 정도여야 한다. 이 정도 수준으로 메타물질을 다루는 일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투명망토를 옷으로 만들 만큼 큰 메타물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작은 조각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야 하는지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또 다른 숙제가 남는다. 가시광선에 투명할 정도로 메타물질을 만든다고 해도 오직 한 색깔의 빛에만 투명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투명망토는 모든 가시광선에서 물체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 하나의 색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빛에서 물체를 감출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일이 과연 가능한지는 미지수다. 빛의 굴절에 관해 400년의 역사를 가진 스넬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이 법칙에 따르면 투명망토가 될 정도로 심하게 굴절이 일어나려면 빛은 진공에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해야 한다. 빛의 최고속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위배되는 일이다.게다가 메타물질이 완전히 투명하지 않은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메타물질은 빛을 심하게 분산시킨다. 그래서 메타물질을 통과한 빛은 그렇지 않은 빛과 차이가 난다. 이상적인 투명망토는 빛은 전혀 흡수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의 메타물질은 그 정도로 이상적이지는 않다.
이상적인 투명망토가 등장하기까지는 심각한 장애물부터 자잘한 골칫거리까지 여러 장벽들로 가로막혀 있다. 과연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와 해리포터의 투명망토를 구현해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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