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말엽인 1809년, 빙허각 이 씨가 엮은 가정생활백과사전 ‘규합총서’에 보면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는 말이 나온다. 승기악탕은 각종 채소와 고명을 얹은 도미찜을 가리키는데, 말 그대로 풀이하면 (도미찜의 맛이) 기생보다 낫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속담인 ‘썩어도 준치’처럼 값진 것은 낡거나 헐어도 다른 것보다 가치가 있다는 말, ‘썩어도 도미’가 있다. 얼마나 맛이 뛰어난 물고기이기에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도미라고 하면 참돔(Pagrus major)을 가리킨다. 가짜 돔이 아니고 참돔이니 우선 이름부터 그럴듯하다. 참돔은 대표적인 흰 살 생선으로,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기름져서 횟감으로 적합하다. 또 살코기에 불포화지방산이 적어 저장기간이 길어도 맛이 잘 변하지 않는다. 도미는 제수음식으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큼직큼직한 비늘에 넓고 균형 잡힌 몸매, 제상에 놓인 참돔은 다른 생선들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위용이 있다.
참돔은 다양한 요리 재료로 사용된다. 생선회는 물론이고 구이, 찜, 죽, 매운탕, 국수로 요리해도 뛰어난 맛이 난다. 그래서 참돔은 버릴 곳이 없는 물고기다.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은 도미의 머리 부분이 가장 맛있다는 데서 유래했다. 눈 또한 맛과 영양이 뛰어나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있다.
산란하러 근해 찾는 장수 물고기, 참돔
참돔은 농어목 도미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한국 전 연안에 분포하며 특히 남부 해역의 전남 다도해에 많이 산다. 중국에서는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참돔을 ‘해즉어(海 魚)’, 즉 ‘바다붕어’라고 부른다. 둥글넓적한 모양이 붕어와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참돔 입장에서는 꽤나 불쾌한 일이다. 선홍빛 바탕에 금속광택의 청록색 반점이 줄지어 반짝이는 아름다운 자태로 ‘바다의 여왕’이라고까지 불리는 참돔이니 말이다.
참돔은 긴 수명으로도 웬만한 물고기를 압도한다. 전문가들은 참돔의 수명을 20~30년 정도로 추정하며, 40~50년까지 산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참돔은 나이를 먹으면 몸 빛깔이 검어지고 청록색 반점도 사라지며, 다 자란 놈은 1m에 12kg이 넘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한다.
참돔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로 산란기를 제외하고는 수심 30~150m의 비교적 먼 바다의 암초지대에 산다. 알은 4~6월경 얕은 바다에서 낳는다. 성숙한 암컷이 떼를 지어 몰려오면 수컷의 무리가 뒤따른다. 해질 무렵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다. 산란이 끝나면 몸이 야위고 몸의 색깔도 다소 검게 변하며 각자 흩어져 산후 조리에 나선다.
알에서 부화한 치어는 해조류 숲에서 부유생물을 먹고 성장하다가 점차 게나 새우 같은 먹이가 많은 암초 지대로 이동한다. 늦가을 수온이 내려가면 연안을 떠나 수온이 높은 제주도 부근이나 남쪽의 섬으로 떠났다가 이듬해 봄이면 서서히 북상을 시작한다. 참돔은 수온이 내려가면 먹이를 잘 먹지 않다가 수온이 올라가면 먹이활동이 활발해지는 습성이 있다. 봄철 이후 수온 상승기에는 게, 새우, 까나리, 오징어를 비롯해 성게, 불가사리까지도 잡아먹는 엄청난 식성을 자랑한다.
한국 근해에는 모두 8종의 도미과 물고기가 있다. 그중 참돔, 붉돔, 황돔의 3종은 몸 빛깔이 붉고, 체형이 비슷해 혼동하는 이들이 많다. 참돔은 등지느러미의 3~4번째 줄기가 특별히 튀어나와 있지 않고, 꼬리지느러미 가장자리가 검은 특징이 있다. 붉돔은 아가미 뒤쪽이 진한 붉은빛을 띠고, 등지느러미의 3~4번째 줄기가 길게 튀어나와 있으며, 꼬리지느러미 가장자리가 검지 않아 참돔과 구별된다.
황돔은 입이 노란색이고, 등에도 3개의 불분명한 노란색 띠가 늘어서 있어 참돔이나 붉돔과 쉽게 구분된다. 또한 붉돔과 황돔은 크기도 작아서 다 자라도 40cm를 넘기기 힘들다.
수컷으로 태어나 암컷 되기도 하는 감성돔
낚시꾼에게 인기 있는 감성돔도 도미과에 속하는 물고기다. 감성돔은 참돔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몸빛깔이 금속성의 은청색이며 몸에 암회색의 가로줄 무늬가 나 있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감성돔은 소라, 게, 새우, 성게 같은 동물성 먹이에서 김이나 파래 같은 해조류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잡식성 어종이다. 보통 모래바닥으로 된 5~50m 정도의 수심에 살지만 암초지대에도 많고 때로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감성돔은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6월 정도에 산란기를 맞는다. 산란을 마친 물고기들이 흔히 그렇듯 6월의 감성돔은 살이 스펀지처럼 푸석하고 맛이 없다. ‘6월 감생이는 개도 안 먹는다’고 하거나 산란을 마친 감성돔을 똥감생이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가을, 겨울 제철을 맞은 감성돔은 최고급 횟감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감성돔의 일생 중 무엇보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이 성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어린 감성돔은 모두 정상적인 정소를 가진 수컷이지만 생후 1년 정도가 되면 정소 내벽에 암컷의 특징인 난세포가 나타나며, 2년생쯤 되면 난소가 발달해 난소와 정소가 함께 존재하는 양성이 된다. 그뒤 일부는 정소가 발달해 수컷이 되고, 일부는 난소가 발달해 암컷이 되는 ‘성의 분리’가 일어나 30cm 이상의 참돔은 모두 암수 둘 중 하나의 성을 갖게 된다.
도미가 아닌 돔들
돔은 도미의 준말이다. 도미가 표준어지만 참돔, 감성돔처럼 앞에 다른 말이 올 때는 돔으로 줄여 부른다. 그런데 이름은 돔이면서도 도미 종류가 아닌 물고기들이 있다. 돌돔과의 돌돔, 황줄깜정이과의 벵에돔이 그 대표적인 예다. 두 종류 모두 참돔처럼 입이 작고, 둥글넓적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돌돔은 밝은 회흑색 바탕에 6~7개의 선명한 검은 띠를 두르고 있고, 벵에돔은 몸이 둥글둥글한 계란 꼴에 가까우며 거무스름한 몸빛을 띠므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두 종 모두 최고의 횟감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옥돔과의 옥돔은 넓은 앞이마가 특징이다. 제주도 특산으로 회나 구이, 옥돔 미역국이 유명하며 오래전부터 산모의 산후 조리나 제수용으로 사용해 왔다. 자리돔과의 자리돔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소형 물고기로 남해나 제주도 근해에 살며, 고소하고 비린 맛이 없는 자리 물회로 유명하다. 놀래기과의 혹돔은 이마에 커다란 혹이 달려 있는 물고기로 1m에 육박하는 엄청난 몸집을 자랑한다. 혹은 수놈에게만 생기는데, 어릴 때는 혹이 없지만 성숙하면 이마가 불룩하게 부풀어 올라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대체로 둥글넓적한 몸에 작은 입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가 돔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다. 가까운 횟집을 찾아 맛있는 회도 먹고, 수족관을 들여다보며 돔 집안 족보를 한 번 정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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