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아이디어를 경매에 붙이고 투표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벽이나 유리처럼 내가 원하는 자리에 붙이기만 하면 노래가 나오는 진동스티커 스피커나 집안 어디서든 아이를 앉히고 버튼만 누르면 뒤처리를 쉽게 할 수 있는 유아용 비데, 헹굴 필요가 없어 물 한 방울 없이도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매직샴푸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이렇게 귀가 트일 만한 놀라운 발명품은 어떻게 탄생할까. 하나의 물건을 발명하려면 왠지 오랫동안 머리를 붙들어 매고 고민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발명가들은 실생활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물건의 원리와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퍼에서 자동차까지’는 바로 예비 발명가들을 위한 지침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퍼와 청바지, 립스틱, 트럼펫처럼 우리 생활과 밀접한 작은 제품부터 제트 엔진이나 자동차, 헬리콥터처럼 직접 만들거나 뜯기 어려운 물건의 원리와 제조법, 구조, 향후 응용 분야 등이 실려 있다. 하지만 공구사용법이 나와 있는 서적처럼 어렵고 지루하지만은 않다. 초콜릿과 치즈, 우표, 설탕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도 많다. 이 책의 목적은 독자에게 물건을 제조하는 과정과 원리를 알리는 것뿐 아니라 이론들을 이용해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끔 도와주는 데 있다. 어떤 물건이라도 과학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깥에 나갈 때 무심코 신는 운동화도 과학의 산물이다. 신발은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과학을 불렀다. 또 자신의 기량을 더욱 향상시켜 기록을 높여야 하는 운동선수의 운동화에도 그 시대를 반영하는 첨단과학이 들어 있다.
1852년 달리기를 위한 운동화가 처음 개발됐다. 그전까지는 신발의 재료로 사용됐던 가죽의 밑창에 스파이크를 달았다. 1900년대에 들어서자 ‘스니커즈’가 등장했다. 1839년 찰스 굿이어가 개발한 가황 고무를 밑창에 대어 편안하게 만들었다. 가황 고무는 천연 고무에 황을 섞어 가열한 것이다. 고무에 황을 넣으면 단단해지거나 신축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있었고, 신발 바닥에 사용하면 단단한 바닥을 달릴 때의 충격을 흡수했다. 그런데 고무로 만든 운동화는 오래 사용하기에는 부족해서 다시 가죽 운동화가 유행했다.
하지만 가죽 운동화는 발가락 부위에 상처를 많이 냈다. 수십 년 간 운동화 제작자들은 운동화 안에 발가락이 닿는 부분에 바늘선 대신 부드러운 가죽을 대거나 밑창에 잔주름이 가게 눌러 편 생고무를 깔아 발에 상처를 주지 않고 오래 신을 수 있는 운동화를 개발해왔다.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더 편하고 더 가벼우며 더 나은 기록을 내기에 좋은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운동화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이야기와 발전 역사를 읽다 보면 독자도 운동화를 신으면서 느꼈던 점을 떠올리게 된다. 창의적인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 날이라면 운동화의 단점을 보완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실생활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에 대한 역사책이자 사용서이며, 동시에 발명의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 샘’이다.
눈길이 머무는 이달의 책
| 35억 년, 지구 생명체의 역사 |
더글러스 파머 지음 | 강주헌 옮김 | 예담 | 374쪽 | 8만 원
바다에서 미생물 상태로 시작해 지금은 바다와 육지, 하늘을 채우는 다양한 생물들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이 책은 최초의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중생기의 공룡, 수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살았지만 멸종된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이르기까지 지구 생명체가 살아온 35억 년 동안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세계 최초로 세밀화로 재현했다.
연대는 물론 증거가 되는 화석 사진과 함께 발굴된 화석을 토대로 알아낸 당시의 기후와 생물상, 그리고 고대 지도에서 발굴지의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를 짚었다. 또 다세포 생물을 중요한 단위로 분류해 그들이 진화한 과정과 독특한 특징을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두 페이지에 걸쳐 길게 편 그림들 안에는 과거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진화에 대한 연구와 발견을 정리했다. 5억 2000만 년 전 다세포 동물의 개체수와 다양성이 급격히 증가한 ‘캄브리아기의 대폭발’,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동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백악기 후세의 대멸종’ 같은 진화의 주요 사건들을 화려하게 다뤘다.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그 사건이 생물의 역사에서 왜 중요한지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동식물 진화의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위험한 저녁식사
조너선 에드로 지음 | 이유정 옮김 | 모요사 | 320쪽 | 1만 4000원
미국 드라마 ‘하우스’를 애청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만한 책이다. 의사 탐정들의 의학 미스터리 추적기로 의학과 추리를 연결시켜 재미와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저자는 의사가 된 뒤 의학 미스터리 사건을 계속 수집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건은 실제 사례이며 추리소설처럼 구성과 등장인물, 배경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
공기의 발명
스티븐 존슨 지음 | 박산호 옮김 | 비즈앤비즈 | 255쪽 | 1만 5000원
공기를 발견한 사람, 사이다를 처음 만든 사람, 거침없는 정치 사상가이자 시민과 종교의 자유를 주장한 진보주의자…. 바로 영국의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다. 이 책은 그에 관해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과학적 발견과 신앙, 혁명, 미국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사회적, 과학적으로 풀었다.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55쪽 | 1만 5000원
진화학으로 현대 사회와 인간을 해부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진화심리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으로 현대 사회와 현대 도시인의 일상에 접근한다. 요리와 유머, 쇼핑처럼 개인적인 요소부터 음악, 종교, 도덕, 문화 같은 집단적인 것까지 현대인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본성을 진화적으로 분석했다.
테크놀로지의 세계 I
이춘식 외 24인 지음 | 한국산업기술진흥원 | 300쪽 | 1만 5000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창의적인 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의 교재를 내놨다. 이 책은 기존 기술 교과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기획됐으며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이 기술교양서로도 활용할 수 있다. 스토리가 있는 전개 방식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 기존의 교과과정과 함께 진로 영역을 포함해 중학생부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다.
모든 것의 나이
매튜 헤드만 지음 | 박병철 옮김 | 살림 | 384쪽 | 2만 원
이 책은 고대 마야의 달력이나 피라미드, 원자핵, 직립보행 등을 역사적이고 과학적으로 다뤘다. 저자는 물리학과 인류학을 함께 전공한 학자로, 과학 없이 역사란 없으며 역사가 흐르지 않은 채 과학이 발달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역사를 과학적으로, 과학을 역사적으로 설명했다.
신의 진화
로버트 라이트 지음 | 허수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736쪽 | 2만 5000원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종교와 과학, 문명과 문명, 종교와 종교 사이의 전쟁을 끝낼 새로운 해법으로 이 책을 폈다. 그는 역사학, 인류학, 철학, 고고학, 진화생물학이라는 프리즘을 꺼내 들고 고대 바빌론 시대부터 현대까지 신의 기원과 발달과정을 추적했다. 이 책은 우리가 인식하는 신의 진화와 종교의 성숙을 통해 지금 사회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출발점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