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주말 저녁 집사람과 오랜만에 맥주 한잔을 하려고 가스불 위에 오징어를 구웠다. 뜨거운 불 위에서 오징어가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몸통과 다리가 오그라든다. 혹시 오징어처럼 불에 구워지는 느낌일까? 물론 이런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 경우는 몸을 이루는 단백질이 열에 의해 변성작용이 일어나 구조가 변형되는 현상이다.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행동이 민망하거나 부끄러울 때라고 할 수 있다. 심한 경우 실제로 오징어가 오그라들듯이 우리 몸은 꼬이는 것 같은 요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이 ‘닭살 돋는다’, ‘눈뜨고 못 봐 주겠다’가 있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닭살 돋는 현상은 민망한 상황에서도 나타나지만 무섭거나 추울 때도 나타난다. 신경생리학적으로 설명하면 이는 자율신경계의 하나인 교감신경이 자극받아 피부 털에 붙어 있는 조그만 근육인 임모근이 수축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교감신경이 활성화될 수 있는 상황인 공포, 흥분, 추위 등의 상황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유사한 상황에서 쓰이는 ‘역겹다’, ‘토 나온다’, ‘우웩’은 민망한 느낌에 약간 역겨운 느낌이 같이 있는 경우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왜 이런 상황에서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하고 실제로 우리의 몸이 움츠러지고 팔이 꼬이는 행동이 나올까. 닭살이 돋는 경우 실제로 우리가 닭살이 돋는 것을 알 수 있고 눈 뜨고 못 봐주는 상황에서는 실제로 눈을 질끈 감게 된다. 역겨운 상황에서는 실제로 구역질이 나오고 얼굴을 찡그리게 된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겨운 그림을 볼 때, 역겨운 맛을 느낄 때, 도덕적으로 역겨운 감정이 들 때 사람의 얼굴 근육을 관찰했더니 공통적으로 윗입술 근육이 올라가고 코를 찡그린다고 한다. 이 논문은 2009년 3월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그러나 감정이 얼굴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친구에게 소개받아 카페에서 마주 앉은 아가씨가 손으로 턱을 괴고 앞으로 다가와 앉는지, 몸을 뒤로 빼서 의자에 기대어 앉는지에 따라 상대방 아가씨의 감정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놀라거나 흥분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고 심한 경우 과호흡으로 의식을 잃기까지 한다.
잘 알려진, 19세기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와 칼 랑게(Carl Lange)의 이론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정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감정 변화에 따라 신체의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극에 대해 신체 반응이 먼저 오고 이를 해석한 것이 감정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산을 하다가 뱀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데, 이런 경험을 공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왜 민망하고 역겨운 상태에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식으로 감정이 표현될까. 우리 몸의 근육은 기능에 따라 크게 관절의 각도를 줄이는 굽힘근(flexor muscle)과 늘이는 폄근(extensor muscle)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팔의 알통을 만드는 이두박근은 굽힘근이고 뒤쪽의 삼두박근은 폄근이다. 폄근은 주로 자세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굽힘근도 자세유지에 중요하다. 그러나 자세반사에 관련된 일련의 실험 결과 폄근에 의해 자세가 유지되고 굽힘근에 의해서는 보행 같은 자세 조절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은 굽힘근이 과도하게 수축되는 경우이다. 이 경우 팔다리가 굽혀지고 몸은 움츠린 상태가 된다. 이것은 추울 때나 남에게 맞을 때, 두려울 때 나타나는, 일종의 몸을 보호하는 자세다. 따라서 민망하거나 역겨운 상태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들며 본능적으로 우리 몸을 보호하고자 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기가 태어날 때는 팔다리를 굽히고 태어나나 늙어 죽을 때는 온몸을 쭉 편 채로 운명하게 된다. 민망한 세상으로 나오면서 손발이 오그라들며 태어나고, 생의 마지막에 팔다리를 쭉 뻗으며 편안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