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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처럼 다양한 음색 해금

편집자주
‘팔음을 찾아서’는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줄을 쥐었던 손을 펴며 활대를 천천히 움직이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애절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해금 소리는 울다 지쳐 목이 쉰 여인의 흐느낌을 닮았다. 활대를 움직이는 손이 빨라져 순간순간 바뀌는 음색을 듣고 있으면 꼭 개구쟁이 어린아이가 뛰노는 모습이 떠오른다. 애절함과 경쾌함을 일순간 넘나드는 해금은 정반대의 음색을 마음대로 내는 팔색조 같은 악기다.

해금은 음역대가 넓어 웬만한 반음을 다낼 수 있고 전통음악뿐 아니라 최신가요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다. 이처럼 음색이 다양한 이유는 해금을 만드는 데 쓰인 재료 덕분이리라. 해금은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팔음의 재료를 모두 사용해 만들어 팔음 (八音) 분류법 중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

현악기일까, 관악기일까

해금은 6세기경 중국 요하 상류지방에 살던 유목민족인 해족(奚族)의 악기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당나라 이후 중국 본토에 전해져 전통음악에 널리 쓰였고, 당나라 사
람들은 이 악기를 ‘해족이 사용한 현악기’란 뜻인 해금(奚琴)으로 불렀다.

민간에서는 독특한 음색 때문에 해금을 깡깡이, 깽깽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다. 해금은 민요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해 앵금이나 행금으로도 불렸다. 해금은 종묘제례악이나 연향악 같은 궁중음악부터 민간의 무속음악에까지 널리 쓰여 민중에게 친숙한 악기였다.

해금은 한반도에 언제 전해졌을까. 조선시대 음악서인‘악학궤범(樂學軌範)’은 해금을 당나라에서 전해진 악기로 소개한다. 하지만 전래되는 과정에서 악기가 개량되면서 중국 악기와 다른 우리 고유의 형태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악학궤범은 해금이 당악 이 아닌 향악 에만 쓰였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의 악지(樂志)편에서도 해금을 향악기로 소개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해금을 ‘해족의 피리’라는 뜻인 ‘해적(奚笛)’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다는 사실이다. 해금이 종종 관악기로만 이뤄진 합주곡에 편성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해금을 관악기로도 분류했음을 알 수 있다. 해금은 관악기처
럼 일정시간 동안 한 음을 지속해서 낼 수 있다. 그래서 해금은 피리나 대금 같은 관악기
와 동일한 가락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일반적인 현악기는 줄을 뜯거나 튕기는 순간에만 소리를 낼 수 있어 음의 지속시간이 관악기보다 짧다. 가야금이나 거문고는 가락을 관악기와 완전히 똑같이 연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립국악원 해금연주자 한갑수 씨는 “해금은 줄로 이뤄진 현악기지만 관악합주에 편성된다”며 “해금은 합주에서 피리, 대금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가락악기로 관악기와 현악기를 조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해금의 기원을 이슬람 문화의 전통악기인 라바브에서 찾는다. 라바브는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울림통을 가진 악기로 사다리꼴부터 원통, 직사각형 등 형태가 다양하다. 라바브는 바이올린의 기원이 되는 악기로 울림통을 턱 밑에 끼거나 가슴에 대고 활로 연주했다. 지금은 그 생김새가 완전히 달라졌지만 해금과 바이올린이 먼 친척뻘일 수 있다는 뜻이다.

팔음 재료 모두 쓰인 악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도 해금에 쓰인 팔음 재료를 모두 찾기는 쉽지 않다. 팔음 재료는 어디에 쓰였을까. ‘입죽’이라는 악기의 몸통을 만드는 데 길이 약 66cm의 검은 대나무(竹)인 오죽을 사용한다. 입죽 안쪽에는 철심(金)이 숨어 있다. 연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하는 부분은 실(絲)로 만든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편의상 해금을 팔음 분류법 중 사(絲)부로 분류한다. 해금은 명주실을 꽈서 만든 유현(연주자의 바깥쪽 줄)과 대현(안쪽 줄) 사이에 말총으로 만든 활을 끼운 뒤 각각의 줄을 마찰시켜 소리를 내는 악기다. 세로로 길게 늘어진 유현과 대현은 입죽 윗부분에 연결된 2개의 주아에 각각 감겨 있다. 주아로는 기타의 튜닝핀처럼 줄을 감거나 풀 수 있다.

입죽 아래로는 공명을 일으켜 소리를 크게 하는 울림통이 있다. 입죽과 공명통을 연결하는 부위를 장식하는 데 옥돌(石)이 쓰인다. 울림통은 오동나무(木)로 만들며 원통을 옆으로 눕힌 모양인데, 한쪽 바닥은 소리가 퍼져나갈 수 있도록 뚫려 있고 다른 한편은 오동나무로 막혀 있다. 막힌 부분을 복판이라고 부른다.

유현과 대현은 복판 위에 있는 원산이라는 괘를 지나 공명통 아래에 고정된다. 원산은 바가지(匏)로 만드는데, 바이올린에서 줄을 지탱하는 브리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원산은 유현과 대현에서 생긴 진동을 공명통에 전달해 원산을 움직이면 음량을 조절할 수 있다. 연주할 때 쓰는 활대는 대나무로, 활대의 손잡이는 가죽(革)으로 각각 만든다.

활의 말총에는 가루로 만든 송진(土)을 바르는데, 송진은 말총과 명주실 사이의 마찰을 크게 해 소리를 키운다. 이렇게 팔음 재료를 모두 사용한 해금은 음역이 넓어 다양한 음악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와 달리 손으로 줄을 잡는 위치와 줄을 쥐는 세기에 따라 음을 변화시킬 수 있어 조바꿈을 하거나 반음을 내기도 쉽다.

한갑수 씨는 “유현과 대현을 쥘 때 손을 아래로 내릴수록 높은음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긴 줄의 중간을 쥐면 그만큼 줄이 짧아지는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줄이 짧을수록 진동수가 높아져 높은음이 난다. 또한 중현은 유현보다 줄이 굵어 진동수가 작기 때문에 낮은음이 나는데, 유현보다 중현이 완전5도 낮은 음이 나도록 조율한다.

해금은 소리가 작아 천년만세, 평조회상, 삼현영상회상, 수제천과 같은 전통곡에서 합주악기로 쓰이거나 소규모로 악기를 편성해 실내에서 연주하는 세악에 많이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주 기법이 다양해지며 서양식으로 작곡한 창작음악에서 독주악기로도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해금은 관악기와 현악기뿐 아니라 전통음악과 창작음악을 조화시키는 악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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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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