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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이 세차게 부는 아랍에미리트 사막의 도시 두바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막 한가운데에 높이 818m, 162층짜리 빌딩이 우뚝 서 있다. 모양이 마치 꽃잎이 세 개 모인 한 송이 꽃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사막에 핀 꽃’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빌딩은 12월 2일 문을 여는 버즈두바이다. 아랍어로 ‘두바이의 탑’이란 뜻의 버즈두바이는 그 이전에 최고(最高) 기록을 갖고 있던 대만의 타이베이금융센터(101층, 509m)보다 300m 이상 치솟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버즈두바이는 놀랍게도 국내 건설업체와 기술진의 손에서 탄생했다. 버즈두바이 공사를 총괄한 삼성물산은 독자 개발한 초고강도 콘크리트를 이용해 4년 10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를 세웠다. 여기에는 건물의 수평, 수직 정도를 위성항법장치(GPS)로 조절하는 첨단 공법을 적용했다.

흔히 초고층 빌딩을 짓는 기술이라면 철골과 콘크리트로 건물 외벽을 쌓아올리는 일을 생각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실제로는 더 중요한 작업이 있다. 거대한 빌딩 곳곳에 사람과 물건을 이동시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일이다. 총면적 49만 5870m2로 축구장(8250m2) 면적의 60배인 버즈두바이에는 모두 54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1층에서 전망대까지 고속으로 한 번에 이동하는 전망용 엘리베이터, 각각의 층 사이를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화재 시 대피 목적으로 쓰이는 소방 엘리베이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1분에 1010m 질주하는 ‘총알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가 초고층 빌딩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르내리려면 중요한 것은 역시 속도다. 초고층 빌딩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대부분 분당 300m 이상의 속도를 내는데, 그중에서 대만 타이베이금융센터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분당 1010m 속도로 움직인다. ‘총알 엘리베이터’라고도 불리는 이 엘리베이터가 5층 매표소에서 89층 전망대까지 주파하는 데는 40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버즈두바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분당 600m 속도로 움직인다. 당초 계획은 분당 1080m의 엘리베이터를 설계할 예정이었으나 탑승자가 느끼는 공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속도를 낮췄다. 하지만 이 역시도 1초에 10m를 이동할 수 있는 엄청난 속도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 등록된 국내 엘리베이터를 조사해보면 분당 300m가 넘는 엘리베이터가 총 255대에 이른다. 이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은 1분에 540m를 이동하는 63빌딩의 전망대용 엘리베이터로, 일반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속도(분당 120m)보다 4.5배나 더 빠르다.

초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오티스 엘리베이터 코리아 초고층 프로젝트팀 김남강 팀장은 “초고층 빌딩에 적용되는 엘리베이터는 로프에 가해지는 무게가 100t에 이르기 때문에 이것을 끌어올리려면 권상기의 견인력이 매우 커야 한다”고 설명한다. 권상기는 로프를 당겨 엘리베이터를 수직으로 움직이는 기계다. 이런 권상기를 제어하는 데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엘리베이터를 거대한 고정도르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더 쉽다. 고정도르래에 걸려 있는 줄(로프) 한쪽 끝에는 승객이 타는 공간인 ‘카(car)’가 달려 있고, 다른 쪽 끝에는 무게가 카 최대 정원의 40~45% 되는 추가 달려 있다. 이때 권상기는 도르래를 돌려서(로프를 당겨서) 카를 움직인다. 그런데 초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한 번에 많은 승객이 이동하기 때문에 카와 추가 무겁다. 수백m로길게 이어지는 로프와 전선 무게까지 계산하면 전체 무게가 일반 엘리베이터의 10배가 넘는다. 따라서 카를 움직이려면 권상기가 도르래를 돌리는 힘, 즉 권상기 내부 모터의 회전력이 훨씬 더 세야 한다. 권상기에 한 번에 많은 전류를 흘려야 하는 이유다.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움직이다가 목적층에 정확히 멈추고, 다시 수초 내에 속력을 낼 수 있으려면 많은 전류를 일정하게 공급했다가 정확히 차단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예측 제어 시스템을 이용하면 부드럽게 출발하고 멈추도록 권상기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김 팀장은 “과거에는 권상기의 높이가 3m가 넘었으나 최근엔 제조 기술이 발달해 견인력은 크고 크기는 작은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며 “공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게 이 제품들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승강로 하나에 엘리베이터 2대가 움직이는 법

물론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높은 건물을 빠르게 오르내리다 보면 카 내부의 기압이 급격히 변하면서 승객이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더부룩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운행속도를 다소 낮추기 위해 버즈두바이가 선택한 대안은 ‘더블데크’였다. 기존의 엘리베이터가 카가 1개인 싱글데크 방식이라면 더블데크 방식은 카 2개가 마치 2층 버스처럼 위아래로 붙어 함께 움직인다. 이 방식은 한 번에 두 개 층에 정지하기 때문에 승객들의 대기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승객을 최대 2배까지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다.

더블데크 방식은 운송량이 많고 승객들의 목적층이 같은 경우에 적절히 사용하면 운송 효율이 크게 향상된다. 같은 수의 승객을 이동시킬 때 더블데크 방식과 싱글데크 방식을 함께 적용하면 건물 전체 면적에서 승강로가 차지하는 비율이 75%로 줄고, 더블데크만 운용하면 승강로 비율이 50%까지 낮아진다는 실험 결과가 좋은 예다. 하지만 더블데크 방식은 한 번에 두 층에 정확히 멈추려면 건물 전체의 층 간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해야 한다.

최근에 개발된 ‘슈퍼 더블데크’ 방식은 이런 단점을 보완해 카 사이 간격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승강로 하나에 카 2개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트윈 엘리베이터도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메인트라이앵글빌딩에 설치된 트윈 엘리베이터는 시간과 공간의 효율성이 커 수송 능력을 40%까지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충돌 위험이 높아 실제로는 많이 쓰이지 않는다.

한편 카 구조를 바꾸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운행하는 시스템만 바꿔도 운송 효율은 높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목적층이 같은 사람끼리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목적층 예약 시스템이다. 이런 엘리베이터는 여러 개의 권상기가 하나의 중앙 컴퓨터를 통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지능적으로 작동한다. 승객이 호출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무조건 가까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지정하는 식이 아니라, 승객이 목적층에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 예를 들면 같은 구역에서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는 승객들과 함께 태우는 방식이다.

또 초고층 빌딩을 사무실, 주거시설, 호텔 같이 사용 용도에 따라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에서만 엘리베이터를 제한적으로 운용하는 방식도 있다. 시간대별 교통량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출근 시간엔 로비에서, 식사 시간엔 식당이 있는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승객들을 대기하는 시스템도 구현할 수 있다.



승차감까지 생각하다

초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젠 ‘승차감’까지 생각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기본적으로 소음과 진동에 취약한 구조다. 빌딩이 고유진동을 하기 때문에 긴81로프에 매달린 카도 함께 흔들리고, 수직으로 이동할 때는 카의 옆면에 설치된 바퀴가 승강로 내부의 레일 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기차를 탄 것처럼 덜컹거릴 수밖에 없다.

오티스 엘리베이터 김남강 팀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 시스템으로 유체(공기)의 흐름을 분석해 엘리베이터의 소음과 진동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카를 제작한다”며 “카 외부를 스펀지 같은 흡음재로 보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카 내부에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를 설치하거나 카 바닥에 진동을 억제하는 장치를 설치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타이베이금융센터는 이런 장치들로 엘리베이터의 진동을 30% 정도 감소시켰다.

초고층 빌딩 엘리베이터의 경우엔 소음과 진동 외에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좁은 승강로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속으로 주행하면 공기의 저항을 더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 빌딩 외부와 내부의 온도 차 때문에 승강로를 따라 빌딩 내부의 공기가 이동하는 ‘굴뚝효과’가 발생한다.



버즈두바이는 긴 승강로 중 17층, 40층, 73층, 113층에 통풍구를 뚫어 굴뚝효과를 감소시키려고 노력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단계적으로 면적이 줄어드는 건물 구조와, 엘리베이터의 구획을 분리해 전망용 엘리베이터가 아니고서는 한 번에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없도록 제한하는 시스템도 굴뚝효과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최근엔 권상기가 로프를 움직일 때 로프의 진동을 분석해 줄이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수십t의 엘리베이터만 테스트하는 타워

일부에서는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빠르고 시스템이 복잡하면 사고 위험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기술사업팀 송준기 연구원은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확률은 일반 엘리베이터와 별 차이가 없지만, 로프의 수명이 짧고 비상시에 건물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흔히 ‘엘리베이터 사고’라고 하면 로프가 끊어지면서 추락하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엘리베이터 로프는 최대 정원보다 10배 더 무거운 물체가 매달려도 끄떡없다. 여러 겹의 강철을 꼰 선을 섬유 소재의 심 주위로 칭칭 감아 로프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일반 엘리베이터에 비해 로프와 카의 무게가 더 무겁다. 버즈두바이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로프 무게만 20t이다. 물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은 로프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승강로 곳곳에도 안전장치는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승강로를 넓게 만들어서 카 주변 공간을 확보한다. 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일 때 승강로 내에서 공기가 이동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버즈두바이는 건물 중간에 비상대피소 4개를 마련해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승객을 신속하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엘리베이터들은 정전이 돼도 비상전원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설계가 완벽해도 실제 상황 테스트는 필수다. 규모가 수십t이 넘는 엘리베이터 시스템을 어떻게 실험할까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오직 테스트 목적으로만 세운 ‘테스트 타워’라는 콘크리트 빌딩이 있기에 가능하다. 김 팀장은 “오티스 엘리베이터는 한국의 경남 창원, 중국의 다롄 등 세계 각지에 12개의 테스트 타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는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고 덧붙였다. 전국의 엘리베이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황실에서 엘리베이터의 운행 상태와 교통량을 파악한다. 고장이 발생하면 엘리베이터 설비를 담당하는 기관에 그 사실을 알리고, 고장의 원인을 분석해 기록하는 작업도 모두 상황실에서 이뤄지고 있다. 상황실에서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승객을 원격으로 구출하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승객이 비상버튼을 누르면 상황실과 바로 연결되고, 대기하고 있던 전문가가 엘리베이터를 원격으로 제어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한다. 빠르고 편안한 엘리베이터가 안전하기까지 한 셈이다.

조만간 국내에서도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11월 16일 서울 상암에 DMC서울라이트빌딩(133층, 640m)이 착공됐고, 잠실 제2롯데월드(112층, 555m)도 우여곡절 끝에 건축허가를 받았다. 곧 인천 송도 인천타워(151층, 610m)가 착공되고, 부산에도 월드비즈니스센터(108층), 부산IBC빌딩(126층) 등 초고층 빌딩이 대거 들어설 예정이다. 2016년에는 국내에 100층이 넘는 건물이 8개나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마천루는 어디까지 올라갈까. 그곳까지 우리를 안내해줄 초고속 엘리베이터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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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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