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가게마다 발 치수를 나타내는 단위가 다르다면? 공공장소에서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건물마다 화장실을 나타내는 그림문자(픽토그램)가 다르다면? 당연히 무척 혼란스러울 것이다. 기호나 단위 등을 모든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하나
로 통일하자는 약속, 즉‘표준화’가 필요한 까닭이다.
표준화란 미국 경영학자 프레드릭 테일러가 만든 과학적 관리법(테일러 시스템)의 원리로 시간동작연구로 발견한 가장 능률적인 작업방법이다. 작업자가 사용하는 공구나 시설에 대한 최선의 방안을 연구해 표준화하면 표준시간을 공평하게 달성할 수 있다는 원리다.
표준화의 예로는 컴퓨터 제조업체 간에 부품이 서로 호환될 수 있게 USB포트처럼 접속 부분을 통일한 일과 500mL,1.5L 같이 캔이나 병에 든 음료수의 양이 전 세계적으로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지난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동안 충남 천안에 있는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서는 ‘제4회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본선대회가 열렸다. 지식경제부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는 해마다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를 개최하고 있다.
4단계로 나눈 매운맛, 발바닥 그린 신발 규격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는 예선과 본선으로 나뉜다. 지난 6월 전국 중·고등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예선을 거쳐 중학생과 고등학생 각 40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예선 대회에서는 우리 생활 속에서 표준화에 대한 편리함과 필요함을 느낄 수 있도록‘표준화가 된 좋은 사례 및 이로운 점’과 ‘표준화가 되지 않아 불편한 사례 및 개선방안’이 문제로 출제됐다.
편리한 표준화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 대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A4나 B4처럼 종이 크기를 표준화해 프린터나 복사기를 사용할 때 편리한 점, 교통이나 산업안전 표지판에 사용되는 픽토그램, 의류의 치수 단위 등을 꼽았다. 또 그들은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아 불편한 사례와 해결 아이디어까지 내놨다.
거제고 동백지심팀은 수도꼭지에 회전판을 설치해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의 비율을 조절하고 한 칸씩 움직일 때마다 온도의 변화가 일정하도록 만들면, 뜨거운 물에 손을 데지 않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경기 정왕고 JOSCO팀은 면도기와 날 부분을 표준화하면 원래 쓰던 면도날과 다른 제품을 사더라도 기존 면도기에 끼워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외에도 신발을 살 때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발 길이와 볼 너비뿐 아니라 발바닥의 모양을 그려 넣자든가 지역이나 버스회사, 정류소마다 다르게 생긴 버스 노선 안내도를 통일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매운 음식을 고를 때 매운 정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매운맛을 4단계 정도로 나누자는 아이디어도 돋보였다. 자기 입에 맞게 적당한 매운맛의 레벨을 알면 식료품을 사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 음식이 생각보다 밍밍하거나 매운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본선 대회에서는 표준이 필요한 상황을 설정하고 청소년이 과학적 사고력과 재료를 활용해 표준화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한다. 이번 본선 대회에서는‘도시의 모든 신호등이 마비됐다면 어떻게 교통질서를 유지할 표준 신호등을 만들까’‘화성 탐사 로봇의 거리 측정 장치가 갑자기 고장 났다면 어떻게 다른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까’ 같은 문제가 나왔다.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팀별로 표준 신호등과 표준 측정 장치를 만들었다. 심사기준은 크게 세 부분이다. 우선 표준화를 얼마나 이해하는가, 청소년들이 제출한 과제가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 그리고 청소년들이 직접 작품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논리적으로 표현했는가다.
본선 대회에 참가했던 청소년들은“쉬운 과제는 아니었지만 같은 팀 친구들과 토론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답을 만들어 내는 일이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공통으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협동심을 기른다는 점에서
도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팀은 중학생, 고등학생 각각 2팀씩이다. 경기 모현중 MH테크레인저팀, 인천 마전중의 TTI팀, 인천 인화여고의 인화팀, 대전 둔산여고의 outrance팀이다.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는 해마다 참가하는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점점 표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는 증거다.
심사위원들은“매년 청소년들이 제출하는 과제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며 내년에 열릴 제5회 청소년 표준올림피아드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