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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동자와 도량형

고사성어(故事成語) 수학교실

어떤 일이 너무 분명해 변명의 여지가 없을 때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모두 아는 일’이라는 말을 쓴다. 여기서 삼척동자는 키가 3척 정도인 5~6세가량의 어린아이를 말하는데, 아직 사물이나 사리를 구별하고 판단할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삼척동자란 말은 송나라의 호전(胡銓, 1102~1180)이 지은 ‘상고종봉사(上高宗封事)’에 나온다.

“무릇 세 척 키의 어린 아이(三尺童子)는 지극히 어리석지만, 그에게 개나 돼지를 가리키며 절을 하게 하면 즉시 얼굴빛을 붉히면서 화를 낼 것입니다. 지금 바로 추노(醜虜)가 바로 그런 개나 돼지 같은 경우입니다.”추노란 사로잡힌 포로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사실 수학과 관련해 삼척동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척(尺)’때문이다. 척은 우리 선조들이 길이를 재는 단위였다. 그리고 삼척동자 이외에 길이, 무게, 들이, 넓이 등과 관련된 고사성어로는 ‘거재두량(車載斗量)’도 있다.

‘좋은 날씨로 대풍이 들어 곡식이 거재두량(車載斗量)일 듯’과 같이 어떤 것의 수량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이 바로 거재두량이다. 이 말은 수레에 싣고 말(斗)로 돼야 할 정도로 많다는 뜻이니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재두량은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촉나라의 장수 관우(關羽)가 오나라 장수 여몽(呂蒙)에게 패해 전사하고 장비(張飛)마저 죽자 유비(劉備)는 오나라를 치기 위해 70만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자 오나라의 손권(孫權)은 크게 걱정하며 중대부(中大夫) 조자(趙咨)를 위나라에 보내 원군을 요청하기로 했다. 손권은 조자가 떠날 때 원군을 요청하되 절대로 국가의 자존심이 손상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 허도에서 위나라 왕 조비(曹丕)에게 인사를 하자, 조비는 조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오나라에서 왔다고? 오나라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지략이 뛰어나십니다.”
“그래? 과장이 심하군. 만일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어찌 하겠소?”
“위나라 같은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저희 같은 소국에는 방위책이 있는 법이지요.”

조자는 예의는 예의대로 갖추며 조비의 모욕적인 태도를 번번이 힐책하자 조비는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으면서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오나라에는 그대와 같은 인재가 얼마나 되는가?”

조자는 기회를 놓칠세라 대답했다.

“총명이 남다른 사람은 80~90명쯤 되고 저와 같은 인물은 수레에 싣고 말로 돼야(車載斗量) 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자 조비가 말했다.

“그대와 같은 인재를 둔 오나라의 왕이 부럽구나.”

결국 조자의 활약으로 위나라와 오나라는 군사 동맹을 맺었고 손권은 조자에게 후한 상을 베풀었다.

피리 ‘황종관’이 도량형 기준

삼척동자나 거재두량에서 사용된 척과 두는 모두 도량형(度量衡)의 한 단위다. 도량형에서 도(度)는 길이, 양(量)은 부피, 형(衡)은 무게를 뜻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길이, 넓이, 부피, 무게를 나타내는 도량형의 단위로 미터법(m,m2,m3,㎏)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척, 평, 섬, 근 등과 같은 단위를 사용했다.

동양에서 도량형을 최초로 시행한 진시황은 12율의 기본음을 정하는 척도로 사용한 피리인 황종관(黃鐘管)을 사용해 도량형을 정했다. 일정한 음계를 내는 피리의 길이가 고정돼 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표준으로 삼은 이 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뛰어난 과학제도였
다. 중국의 역사를 다룬 ‘한서(漢書)’의 율력지에 이 제도가 다음과 같이 성문화돼 있다.

“도(度)는 황종관의 길이를 기본으로 삼는다. 거서(禾巨黍, 검은 기장) 가운데 크기가 중간쯤 되는 낱알을 황종관과 나란히 배열하면, 이 관의 길이는 거서 90톨에 해당한다. 이때 한 톨의 폭을 1푼(分), 10푼을 1치(寸), 10치를 1자(尺), 10자를 1장(丈)으로 한다. (중략) 양(量)은 황종관의 들이를 기본으로 한다. 황종관에 거서를 넣으면 1200톨로 가득 찬다. 이때의 들이를 약( )으로 하고 2약을 1홉(合), 10홉을 1되(升), 10되를 1말(斗), 10말을 1곡(斛)으로 한다. (중략) 형(衡)은 황종관의 무게를 기본으로 한다. 1약에 채워지는 1200톨의 거서 무게를 12수(銖)로 삼고, 24수를 1냥(兩), 16냥을 1근(斤), 30근을 1균(鈞), 4균을 1섬(石)으로 한다.”

진시황은 이 제도의 표준이 되는 자와 되 그리고 저울을 대량으로 생산해 백성들에게 나눠줬다. 진시황이 도량형을 시행한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당시는 비단이나 모시 같은 천으로 세금을 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때 자신의 척도로는 분명히 정확한 세금임에도
관리의 자로 재면 양이 모자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 도량형이 통일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량형이 통일된 시기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고려시대까지는 시대에 따라 여러 종류의 도량형을 사용해 매우 혼란스러웠다. 도량형의 혼란은 조선 전기까지 지속되다가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정확하고 통일된 도량형을 정했다. 도량형을 정하는 일은 나라의 기본질서를 바로잡는 데 매우 중요했는데, 세종대왕은 한글과 여러 가지 과학기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도량형을 정비한 대표적인 왕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박연에게 조선에 맞는 악률(樂律)을 정하라고 명했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정확한 황종관의 제작은 필수였다. 박연은 기장 90알의 길이에 꼭 맞는 황종관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확립된 조선의 악률은 중국의 음악과는 다른 독립된 아악의 기초가 됐다.

이렇게 정해진 도량형도 시대에 따라 자주 변했기 때문에 예를 들어 1자(尺)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미터법으로 정확히 얼마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여러 자료를 근거로 오늘날과 비교하면 1치는 3.0303cm이고 1자는 30.303cm이다. 또 넓이 단위인 1보(=1평)는 약 3.3m2이며 들이 단위인 1홉은 180.39c㎥이고, 무게 단위인 1근은 600g이다.

이와 같은 길이를 근거로 삼척동자의 키는 3척, 즉 3자이므로 약 90.909cm이다. 또 거재두량에서의 두는 1말이고 1말은 100홉인 1만 8039c㎥로 약 18L가 된다. 옛날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수학은 오늘날 우리에게 흥미로운 문화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과학기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200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광연 한서대 수학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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