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대구센터 분석연구부 한옥희 박사는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로 고체를 이루고 있는 성분을 알아낼 수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탄올 연료전지 효율 떨어지는 원인 밝혀
물질을 이루고 있는 화학 성분과 구조, 그리고 움직임을 동시에 알아낼 수 있는 대표적인 장비는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이하 NMR)’ 장치다. NMR은 자기장을 걸었을 때 생기는 원자들의 에너지 차이를 이용해 정보를 얻는 방법이다. 원자에 자기장을 건 뒤 주어진 자기장에서 각 원자가 갖는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전자기파를 쏘면(공명) 원자들이 전자기파를 흡수한 뒤 에너지를 내보낸다. NMR장치는 원자들이 내보낸 전자기파 에너지를 스펙트럼으로 보여주는데, 전문가들은 스펙트럼에서 신호(공명 주파수)를 나타내는 위치, 신호 사이의 거리와 상호작용 등 여러 정보를 이용해 원자 사이의 거리와 각도를 알아내고 이를 분석해 원자들이 어떤 구조로 배열돼 있는지 파악한다. 과학자들은 몸속에 있는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알아내거나 화합물을 분석해 신약을 개발하는 데 NMR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NMR장치에도 한계가 있다. NMR장치로 고체 시료를 분석하려면 액체나 기체 시료와 달리 물 같은 용매에 녹이거나 가열시켜 액체 상태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박사는 “고체 시료를 녹여 분석한다는 말은 시료의 형태를 망가뜨린다는 뜻이며, 시료에 따라 성질이 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박사팀은 세계 최초로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로 실제 작동하는 메탄올 연료전지를 직접 관찰했다. 그는 메탄올 연료전지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로 직접 확인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2007년 12월 그 연구 결과를 독일의 응용화학지인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했다. 메탄올 연료전지에서는 연료인 메탄올이 산화하면서 수소이온과 물, 이산화탄소가 생긴다. 수소이온은 고체 고분자전해질막을 통과해 반대편 전극으로 넘어가는데, 이때 전류가 만들어지며 물과 이산화탄소는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메탄올의 일부가 산화되지 않고 반대편 전극으로 확산돼 연료전지의 효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추정하기만 했다.
한 박사팀은 연료전지의 고분자전해질 내에 존재하는 화합물들을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로 직접 관찰해 메탄올(CH3OH)은 물론 메탄올이 산화하는 동안에 생기는 중간물질(CHOOH, CH3OCH2OH)도 반대편 전극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메탄올 연료전지의 효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했을 뿐 아니라 메탄올이 산화되는 과정 중에 여러 가지 중간물질도 생성되며, 이 중간물질들도 반대편 전극으로 확산된다는 사실도 알아낸 것이다.
하지만 한 박사는 이에 만족하지 않는다. 연료전지를 해체하지 않고도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로 분석하는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연료전지를 분석하기 위해 양극과 음극, 고체 고분자전해질막의 세 부분으로 나눠서 고체 핵자기 공명 분광기에 넣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는 “연료전지를 해체하지 않고도 분석하는 ‘연료전지 제자리(in situ) 진단장치’를 개발해 각종 연료전지를 진단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싶다”며 “물론 연료가 반대편 전극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극복해 효율이 더 높은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