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곤 했습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주인공 ‘나’에게 양식을 갖다 주러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옆에서 밤을 지내게 된 스테파네트 아가씨와의 이야기를 담은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별’의 마지막 부분이다. 도데가 현대 작가라면 아마 ‘별’ 같은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요즘 웬만한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별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이렇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도 인공조명으로 밤하늘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우리나라 일만은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 이런 문제가 불거졌고 ‘광공해(light pollution)’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하늘 비추는 빛 규제
밤하늘이 밝아지는 이유는 인공조명의 불빛이 대기 중의 수증기나 미세입자에 산란된 결과다. 인공조명이 없던 시절에는 보통 맨눈으로 6등성까지 볼 수 있었는데, 요즘 조명이 요란한 곳에서는 그보다 100배나 밝은 1등성을 보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지난 2006년 연세대 천문학과 대학원생 조재상 씨와 동료들이 발표한 논문 ‘광공해의 현실과 실용적 해결방안’에 따르면 서울(연세대 교내)에서 달이 없는 기간 밤하늘 별의 개수는 평균 16개에 불과했다. 이를 시뮬레이션 자료와 비교해보면 서울 밤하늘의 밝기가 1.78등급으로 나타난다. 즉 서울 역시 1등성만을 볼 수 있는, 광공해에 시달리는 도시란 얘기다.
한국천문연구원 문홍규 박사는 “보현산천문대의 경우 인근 영천시와 좀 떨어진 대구시의 불빛은 물론 포항 앞바다의 오징어잡이배 불빛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현상은 외국의 천문대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마추어 천문가들도 타격이 크다. 밤하늘을 제대로 보려면 인공조명이 없는 한적한 곳을 찾아 한참을 이동해야 한다.
허공에 빛을 쏘아대는 건 에너지 측면에서도 큰 낭비다. 미국에서만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가 매년 1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밤에 갑작스런 조명에 눈이 부셔 앞이 안 보이는 현상도 광공해의 하나다. 지나치게 요란한 광고판이나 자동차 헤드라이트는 보행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최근에는 지나친 야간조명이 멜라토닌의 분비를 교란해 수면장애는 물론 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는 ‘별밤 보존(Dark Skies Awareness)’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별밤 보존 프로젝트는 ‘인공조명의 부작용을 알리고 어두운 밤하늘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올 한 해 동안 ‘지구의 밤(The GLOBE at Night, 3월)’ ‘별 찾기 국제 캠페인(The Great World Wide Star Count, 10월)’ ‘별이 얼마나 많을까(How Many Stars, 1월, 2월, 4~9월, 11월, 12월)’ 등의 행사를 진행하거나 기획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4월 서울, 경기 용인, 대구 등 전국 50여 곳에서 ‘별이 얼마나 많을까’ 행사를 열었다. 봄철에 볼 수 있는 별자리인 작은곰자리와 오리온자리에서 별의 숫자를 세는 행사였다. 당시 서울 세종대와 연세대에서는 이들 별자리에서 별 하나도 찾지 못한 반면 대구 경북대에서는 3, 4개씩 발견됐다. 문홍규 박사는 “우리나라 인공조명의 심각성을 확인하는 자리였다”며 “10월에도 비슷한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시인구 비율이 계속 늘어나면서 세계의 밤은 밝아지고 있지만 광공해를 억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처음 본 곳인 이탈리아의 베네토에서는 지난 1997년 광공해를 규제하는 법령을 마련했는데, 야외조명에서 나오는 빛 가운데 하늘쪽으로 향하는 비율을 3% 미만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최근 이를 0%로 강화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공해를 줄이기 위한 법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은 ‘빛공해방지법’ 제정에 대한 공청회를 조만간 열 예정이다. 이때 빛공해 사진 전시회를 함께 개최해 빛공해의 영향과 친환경적인 조명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법률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계획이다.
금성 같은 태양계 행성을 제외한 밤하늘의 별 가운데 가장 밝은 별은 큰개자리의 알파별인 시리우스로 -1.4등급이다. 큰개자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87개지만 도심에서 바라본 밤하늘에서는 시리우스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공해가 사라져 시리우스가 수십 개의 별을 거느리며 빛나고 있는 광경이 재현되는 날이 올까.
EVENT
별은 시를 찾아온다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는 민음사와 공동으로 ‘별은 시를 찾아온다’라는 제목으로 별 시집을 출간한다. 이 책은 지난 3월 말부터 두 달간 IYA2009 웹진(www.astronomy2009.kr)과 한국일보, 프레시안을 통해 소개된 50편의 신작 별 시들을 엮은 것. 9월 3일에는 출판을 기념해‘2009 세계 천문의 해 기념 별 시 축제’를 연다. 장소는 서울 정독도서관 서울교육사료관 앞마당.
2009 창원평생학습 과학축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경남 창원시가 주관하며,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기념해 한국천문연구원의 찾아가는 천문대‘KB 스타 카’를 이용한 천체관측 프로그램과 강연, 음악 공연, 고산 우주인 특강 등 다채로운 순서가 마련돼 있다. 장소는 창원컨벤션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