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오후 5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나로 호가 발사대에서 천천히 몸을 들어 올린다. 서서히 속도가 붙기 시작한 나로 호는 발사 54초 만에 음속을 돌파하고 하늘 위의 밝은 점이 될 만큼 멀어졌다. 길이 33.5m, 지름 2.9m, 무게 140t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꿈’이 드디어 지상을 박차고 웅비한 순간이었다.
시내 곳곳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발사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흥분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2009년 8월 25일은 그렇게 한국 우주 개발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 되는 듯했다.
페어링 분리 안 돼 위성궤도 안착 실패
하지만 이날 오후 6시 10분경 열린 정부 공식 브리핑에서 뜻밖의 발표가 나왔다. 2단 로켓에 실려 있던 과학기술위성 2호가 제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는 것.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한·러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분석에 착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부 측은 과학기술위성 2호가 당초 예정된 고도 306km보다 수십km 더 높은 고도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페어링 가운데 한쪽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궤도 진입 실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26일 오전 10시 30분 추가 브리핑에 나선 정부 측은 “페어링 가운데 하나가 분리되지 않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특히 페어링 분리 이상이 위성이 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주요한 원인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발사한 뒤 3분 36초 뒤 반으로 갈라져 필리핀 앞 바다에 떨어져야 할 페어링이 한쪽만 떨어져 나갔다는 얘기다.
진작 떨어졌어야 할 페어링 가운데 한쪽을 매달고 날아간 2단 로켓과 위성은 예정보다 더 큰 무게를 갖게 됐고, 미리 계산됐던 자세를 잡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실제로 정부는 26일 “상단(2단 로켓)에 붙어 있는 페어링 때문에 자세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고 밝혔다. 붙어 있던 페어링은 위성이 2단 로켓에서 분리될 때에야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우주공학 전문가는 “위성과 2단 로켓은 일반적으로 ‘고도’와 ‘자세’ 두 가지 요소가 원래 예정됐던 수치에 동시에 도달해야 분리되도록 설계된다”며 “이 가운데 자세가 맞지 않으면 위성과 2단 로켓은 예정된 자세가 나타날 때까지 관성에 의해 지구 밖으로 떠밀려 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알맞은 자세가 나왔을 때 고도는 예정보다 훌쩍 높아진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위성 2호가 정상 궤도인 고도 306km보다 훨씬 높은 387km까지 도달했다 지상으로 낙하했다는 정부 발표가 이 같은 추론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페어링을 매달고 예정보다 높이 상승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는 또 있다. 일단 궤도 근처에 다다른 위성이 떨어지지 않고 지구 주변에서 타원 궤도를 돌려면 지구 바깥으로 튕겨 나가려는 힘인 ‘원심력’으로 중력을 상쇄시켜야 하는데, 2단 로켓이 이런 원심력을 만들 만큼 충분한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위성이 궤도를 돌기 위해선 초속 8km로 비행해야 했는데, 과학기술위성 2호는 초속 6.2km에 불과했다. 위성의 원심력이 충분하지 못해 추락이 필연적이었다는 얘기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윤영빈 교수는 “궤도의 반지름이 커진 나로 호가 중력을 상쇄할 정도의 속도를 내기엔 2단 로켓의 연료가 부족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단 로켓은 예정보다 25km 높은 고도 327km까지 올라간 뒤 연소를 종료했다. 연료 소모가 예상보다 많았던 게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위성이 공전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지구로 낙하하면서 대기권에서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과학기술위성 2호와 교신하려는 노력도 사실상 포기했다. 일각에선 과학기술위성 2호의 잔해가 완전 소멸되지 않고 호주에 떨어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극한 환경서 전기장비 오작동 가능성
분리 계통에서 문제가 생긴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몇 가지 예측을 내놓는다. 우선 제기되는 건 전기장비의 이상이다. 총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발사체 안에 있던 부품에 문제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극한 환경이 만든 오류다.
서울대 윤영빈 교수는 “전기장비에 문제가 나타나면 로켓의 궤도를 잡는 항공전자장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페어링이나 1, 2단 로켓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실험이나 시뮬레이션 과정에서는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발사 당시 발생한 고온고압의 환경 때문에 나로 호의 전기장비나 정밀기기들이 뜻밖의 고장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외국에서도 이번 나로 호처럼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은 사례가 9번 일어났다. 1964년 11월 미국 아틀라스 발사체를 시작으로 지난 40여 년간 러시아, 프랑스, 우크라이나에서 쏘아올린 발사체가 페어링 분리 실패를 겪었다. 가깝게는 올해 2월 미국의 토러스 XL 발사체에서도 페어링이 분리되지 않아 탑재된 위성이 대기권에 돌입해 타버린 일이 있었다.
“러시아도 포괄적 책임 있어”
이번 과학기술위성 2호 궤도 진입 실패를 두고 러시아와 한국 간에 책임 공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6일 브리핑에 나섰던 교육과학기술부 김중현 제2차관은 “페어링은 한국 측이 담당하는 부분”이라면서도 “러시아가 개발과정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고 밝혔다. 페어링을 한국 연구진이 만들긴 했지만 러시아가 “내 책임은 아니다”라고 완전히 발을 뺄 수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책임 소재를 따지는 건 중요한 문제다. 한국과 러시아는 이번에 발사한 나로 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년에 똑같은 모델의 로켓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한 로켓이라도 러시아 측 책임으로 실패하면 추가로 한 번 더 로켓을 발사하도록 돼 있다.
나로 호를 포함해 최대 3번 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로 호엔 총 5025억 원이 쓰였고 그 가운데 절반가량이 러시아에서 1단 로켓을 도입하는 데 들어갔다. 막대한 비용 부담을 놓고 책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나로 호에 채택된 국산 기술의 신뢰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인식도 나온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여재익 교수는 “분리 제어시스템은 순수 국내 기술인만큼 실전에서 시험해본 적이 없다”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각종 장비가 높은 고도를 가정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300km가 넘는 고도를 정말 정확히 재현해 실험했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5월 다시 발사
정부는 이번 발사가 부분적인 성공이라고 자평한다. 로켓은 제대로 날아갔지만 비행의 마지막 단계인 위성 궤도 진입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로켓의 최종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실패라고 불러도 할 말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자국 땅에서 로켓을 쏘아 올려 자국 위성을 띄운 나라를 지칭하는 ‘스페이스 클럽’ 가입도 좌절됐다.
여론의 향방에도 시선이 쏠린다. 당장 “우주개발 계획을 그만 둬라” 식의 비판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 로켓 기술은 국가 위신과 연관돼 있어 아직은 지지 여론이 높은 데다 동체 폭발처럼 충격적인 실패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발사에서도 이번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경우 2018년 ‘한국형 발사체’인 KSLV-Ⅱ를 제작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KSLV-Ⅱ는 나로 호에 실린 과학기술위성 2호 무게의 10배가 넘는 1.5t급 위성을 올릴 수 있는 대형 발사체다. 모든 기술을 국산화할 예정인 만큼 들어갈 재원도 막대하다. 내년 5월 ‘2기 나로 호’ 발사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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