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조지 스무트 이화여대 석좌교수 인터뷰

“한국의 우주연구, 세계 수준으로!”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백인 남자가 이화여대에 ‘출현’했다.
바로 이화여대 석좌교수 겸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IEU) 소장으로 온 조지 스무트 박사.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인 그를 만나보자.

봄 햇살이 따사로운 3월 초 이화여대에서 금발의 백인 남자 한 명이 작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교정 이곳저곳을 촬영한다.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이 남자는 이내 우주를 음미하려는 듯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다. 영화에 나올 법한, 외계인을 쫓는 FBI 요원 같지만 사실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빛(우주배경복사)을 연구해 20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석학이다. 바로 조지 스무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다.

스무트 교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시행 중인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에 따라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지난 3월 1일 내한했다. 올해부터 5년간 매년 한 학기씩 이화여대에서 강의하는데, 이번 학기에는 학부 ‘일반물리’와 대학원 ‘우주론’ 과목을 가르친다. 그는 이화여대 초기우주과학기술연구소(IEU) 초대 소장도 맡아 이화여대 물리학과 김찬주, 박일흥, 양종만, 안창림 교수 등 국내 연구진과 함께 ‘극한 우주기술을 이용한 우주창조 원리의 규명’을 주제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태초의 빛’ 비밀 밝혀 노벨상 수상

“제일 적성에 맞고 가장 흥분되는 분야에 뛰어드세요. 그리고 과학의 역사를 볼 때 완전히 별개처럼 보였던 분야들도 나중에 관련이 있어 다른 분야의 일부가 되거나 통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모든 과학의 기초에는 궁극적으로 자연을 설명하는 하나로 통합된 지식 집합이 놓여 있기 때문이죠.”

한국 학생들에게 건넨 이 말은 사실 그의 이력에도 들어맞는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수학과 물리학 분야의 석사 학위를 각각 받았으며 1970년 같은 대학에서 입자물리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바로 우주론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우주배경복사(CMBR)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가 대폭발로 탄생한 지 38만 년쯤 뒤 우주 전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태초의 빛’이다. 즉 그 전까지 우주에는 빛과 물질이 뒤엉켜 있다가 우주 온도가 내려가면서 물질에서 탈출한 빛이다.

1964년 미국의 아르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우연히 발견한 이 빛은 우주의 탄생과 구조에 대한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로 주목받았다. 그 뒤 우주배경복사를 온 하늘에서 관측해 그 온도차가 얼마나 나는지가 과학자들의 관심거리였다. 우주배경복사가 방출될 당시의 온도가 완벽하게 같다면 모든 입자가 우주에 균등하게 분포해야 한다. 실제 그랬다면 현재 우주를 이루고 있는 은하들은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초기 우주에 조그만 밀도 차이가 있어야, 즉 우주배경복사에 온도차가 있어야 현재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

스무트 교수는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할 위성 ‘코비’(COBE)를 띄우자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제안했다. 중간에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 사고가 발목을 잡았지만, 코비는 1989년 우주로 향했다. 연구팀은 2년 이상의 코비 관측결과를 분석한 뒤 초기 우주에 있었던 미세한 밀도 차이를 밝혀냈다. 1992년 이 결과를 발표할 당시 스무트 교수는 “이는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증거”라며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을 본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사실 코비의 성공은 1000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거둔 놀라운 팀워크의 결과였다.

스무트 교수는 코비 위성의 관측 결과 덕분에 2006년 존 마더 NASA 고더드 우주비행센터 박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코비 결과가 발표된 지 14년 만에 노벨상이 수여된 것은 노벨상위원회로부터 그만큼 놀라운 업적이라고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우주를 설명하는 계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우주배경복사 관측용 위성은 3세대로 접어들고 있다. 스무트 교수는 “오는 4월 유럽우주국(ESA)에서 발사하는 위성 ‘플랑크’는 1세대 코비, 2세대 WMAP의 뒤를 잇는다”며 “플랑크에 실린 관측장비의 정밀도가 높아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해 중력파의 존재나 암흑에너지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는 플랑크 프로젝트에도 협력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다.

소형위성 개발에서 교사 교육까지

스무트 교수는 IEU 소장으로서 한국의 천문우주 분야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즉 단순한 얼굴마담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그룹을 본격적으로 육성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

“IEU에서 플랑크 위성 관측자료나 SDSS 같은 지상 은하 관측자료를 이용해 초기 우주에 대해 연구하고, 앞으로 5년간 새로운 미래 우주기술을 개발, 적용해 우주관측용 차세대 소형위성을 3대 개발하며,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과 국제 협력을 통해 한국의 젊은 박사 연구자 역량을 세계 수준으로 향상시킬 계획입니다.”

그는 특히 이화여대 창의연구단 ‘멤스(MEMS) 우주망원경 연구단’에서 개발 중인 위성 탑재체(UFFO, Ultra Fast Flash Observatory)에 관심이 많다. 한국의 반도체 MEMS기술을 이용해 개발할 이 위성은 우주 최대 폭발로 알려져 있는 감마선 폭발의 초기 순간을 포착할 계획이다. 창의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박일흥 교수는 “UFFO 프로젝트는 IEU를 비롯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스무트 교수팀, 같은 대학의 우주과학연구소 스티븐 보그 교수팀, NASA 에임스연구센터와 함께 진행 중”이라며 “스무트 교수가 400억 원대의 이 프로젝트를 NASA 본부에 신청하려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무트 교수는 국내 중·고등학교 교사를 교육하는 데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글로벌 교사 아카데미(GTA) 지부를 이화여대에 두고 국내 중고교 수학, 과학 분야의 교육자료를 개발하고 중고교 교사를 과학교육 전문가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GTA는 스무트 교수가 중심이 된 버클리 우주론 물리센터(BCCP)에서 우주론으로 수학, 과학을 가르치고 있는 전 세계 네트워크다. 그는 케냐의 고등학교 교사들과 영상회의를 통해 우주론 교육을 하기도 했다.

3월 2일 스무트 교수가 이화여대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강의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화여대 학부생을 대상으로 ‘주류를 초월해 보기’(Seeing Beyond the Majority)라는 주제로 일반물리 강의를 시작했다. 착시 현상을 그림으로 보여주며 주류를 넘어서려면 비판적 사고가 핵심 도구라는 사실을 들려줬다.

그는 과학을 좋아하는 한국 청소년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기술이 토대가 된 현대 사회에서 잘 살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 과목을 듣는 게 필수입니다. 또 자연을 이해하는 언어인 수학을 알아야 하죠.” 우주론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그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된다.

“기술이 토대가 된 현대 사회에서 잘 살고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 과목을 듣는 게 필수입니다. 적성에 맞고 가장 흥분되는 분야에 뛰어드세요.”

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교육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