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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구조적으로 튼튼해야 하고, 기능 면에서 편리해야 하며, 아름다워야 한다. 이런 구조, 기능, 미가 바로 건축의 3요소다. 건축물이 안전한 구조와 편리한 기능을 갖기 위해서는 그 설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수학 지식이 필요하다. 벡터, 미분과 적분, 삼각함수 같은 기본 수학은 물론, 한 점에 세 힘이 작용할 때 힘을 나타내는 선분들을 평행이동하면 하나의 삼각형을 만든다는 ‘라미의 정리’ 같은 응용 수학도 필요하다. 수학은 건축물의 구조와 기능 측면 뿐 아니라 건축물의 비례와 대칭 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황금비례 선호, 우연일까 필연일까?
건축물에 반영된 비례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황금비례다. 황금비례는 긴 부분(a)과 짧은 부분의 길이(b)의 비가 전체와 긴 부분의 길이의 비와 같아지는 경우를 말한다(a:b=(a+b):a).

이렇게 나타낸 이차방정식을 풀면 a:b는 대략 1.618:1이 된다. 황금비례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인간의 보편적인 심미안을 잘 반영하는 비로 간주됐다. 16세기 루카 파치올리는 황금비례를 신성한 비례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1860년대 독일 심리학자 구스타브 페흐너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비례를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가로, 세로의 비가 다른 직사각형 10개를 보여주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직사각형을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의 76%가 가로, 세로의 비가 1.75:1, 1.62:1, 1.50:1인 경우를 선택했으며, 특히 황금비례에 해당하는 1.62:1을 선호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와 유사한 실험이 반복됐는데, 황금비례가 인간의 심미안을 가장 충실히 만족시킨다는 결과도 있고 황금비례를 선호하지 않은 결과도 있다.
직사각형이 있을 때 가로, 세로의 길이가 정사각형처럼 거의 같으면 다소 딱딱하고 정형화된 느낌이 든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크게 달라 한 쪽으로 길쭉해지면 극단적인 느낌을 준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 쪽이 적당히 긴 직사각형을 더 편안하게 느끼며 황금비례를 선호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셈이다.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쉬는 피렌체 돔을 설계할 때 황금비례를 반영했다. 피렌체 돔의 전체 높이는 144브라치(1브라치=58.4cm)이고, 돔형 지붕의 이음새 부분은 전체 높이를 89:55로 분할하며, 그 비는 약 1.618:1이 된다.

1436년 돔의 완공을 축하하는 행사에서 음악가 기욤 뒤페는 중세의 르네상스 시대에 전성기였던 성악곡인 모테토 ‘이제 장미꽃이 피었네(Nuper rosarum flores)’를 발표했는데, 이 모테토를 작곡할 때 피렌체 돔을 이루고 있는 부분들의 길이의 비를 리듬에 반영해 건축물과 음악의 조화를 추구했다.


다이아몬드 같은 아름다움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 뛰어난 조형미를 가진 건축물 가운데 하나는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무량수전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그 높이를 1로 놓았을 때 양쪽 처마까지 포함한 폭은 약 1.618이 된다. 그래서 무량수전을 황금비례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학자도 있으나, 무량수전 용마루를 기준으로 할 때 가로, 세로의 비는 약 1.414:1이 된다. 이를 ‘금강비례’라고 하는데, 여기서 1.414는 2 의 근삿값으로 한 변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다(그림). 금강비례는 ‘금강산과 같이 아름다운 비례’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금강석, 즉 다이아몬드는 최고의 광석이기 때문에 황금비례의 ‘황금’과 대비해 ‘금강’이라는 명칭을 붙였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 지어진 주거지의 가로, 세로의 길이를 측정하고 비율을 구하면 2 :1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암사동 움집 밑면의 가로, 세로의 비는 2 :1이다. 고구려 사찰인 금강사 금당터에서도 가로와 세로에서 금강비례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주거지나 터의 가로, 세로의 비가 금강비례일 때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다고 여기고 이 비율을 반영해 건축하는 전통을 계승했다.

서양에서는 8등신을 완벽한 몸매라고 생각하지만, 동양인 우리나라에서는 8등신 몸매가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의 체격에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신체분할은 7등신 정도다. 이렇게 동서양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신체 분할 비율이 다른 것처럼 건축물을 보는 안목도 다르다. 이것이 서양에서는 황금비례를 중시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강비례를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이지 않을까.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준다
최초의 건축서는 고대 로마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가 저술한 ‘건축 10서’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물이 아름다운 것이 비례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고, 비례의 원칙은 표준으로 추출된 어떤 부분과 전체의 상응관계에서 생긴다고 봤다.

‘건축 10서’ 3장 ‘신전 건축’ 편에는 ‘건축의 비례는 아름다운 인체의 비례를 규범으로 해야 한다’고 나온다. 남성의 발 길이가 대략 신장의 1/6인 것에 기초해 도리아식 기둥 높이는 밑면 지름의 약 6배가 되도록 했다. 이처럼 남성 신체 비례를 반영한 도리아식 기둥은 강건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여성의 발 길이가 대략 신장의 1/8이라는 점을 토대로 하는 것이 이오니아식 기둥이다. 이오니아식 기둥 높이는 밑면 지름의 약 8배가 된다. 이오니아식 기둥에는 대부분 소용돌이 모양 장식이 달려있고 도리아식보다 기둥 높이가 밑면 지름에 비해 길기 때문에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가냘픈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트루비우스로부터 영감을 얻어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으로 널리 알려진 소묘 작품을 그렸는데, 이 인체비례도는 다음을 나타낸다.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팔 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그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끝에 접한다... 정사각형으로도 된다.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길이는 두 팔을 가로 벌린 너비와 같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 코르뷔지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인체에서 황금비례를 찾았다. 인체에서 배꼽은 신장을 5:3으로 분할한 지점으로 신장과 배꼽 아래의 길이의 비는 8:5며, 파르테논 신전에서 폭과 삼각형 모양으로 된 박공지붕을 포함한 높이의 비는 8:5로, 두 가지 모두 황금비례에 수렴하는 동일한 비를 반영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고 생각하고, 비례를 설명하기 위해 측정의 기본 단위가 되는 ‘모듈’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건축들은 모듈을 이용해 비율을 설명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그리스 신전에서 모듈은 기둥 지름으로, 도리아식 기둥 높이는 6모듈, 이오니아식 기둥 높이는 8모듈이 된다.

각 시대에 따라, 또 동서양 지역에 따라 건축물에 반영된 비례가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어떤 문화든지 각각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인 ‘일정한 비례’를 건축물에 반영해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공통된 특징이다.

박경미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수학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고등학교 수학교과서 저자이며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9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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