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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PA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 진통제 부작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성분이 들어 있는 진통제들의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제약사는 발 빠르게 IPA를 뺀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왜 우리는 통증을 느껴 스스로를 괴롭힐까? 진통제는 어떻게 통증을 줄여주고 부작용은 왜 생기는 걸까? 통증과 진통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발목을 접질려서 욱신욱신한 고통을 느낄 때, 과음한 다음날 속이 아플 때, 사랑니가 썩어서 치통으로 쩔쩔맬 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정말 통증을 모른다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드물긴 하지만 유전적 요인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선천성 무통증)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행복하기는커녕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삶을 살고 있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맘 편히 지내는 날이 없다. 왜 그럴까?
 

경기 도중 부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
통증은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일 뿐 아니라
안정을 취함으로써 상처부위가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면 다리가 부러져도, 몸이 칼에 찔려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겨울 난로 옆에서 몸을 녹이다가 실수로 난로를 건드릴 경우 보통 사람들은 채 의식도 하기 전에 손을 빼며 “앗 뜨거!”라고 외친다. 그런데 통증을 못 느끼는 사람은 본인의 손이 난로에 닿아있는 걸 보거나 주변에서 지적해주지 않으면 살이 익어도 모른다.

설사 매사에 주의를 한다고 해도 이런 사람들은 몸이 성하지 못하다.

발이 접질린 경우를 보자. 처음에는 삔 부위가 무척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격렬한 통증은 사그라진다. 대신 주변부위가 부으면서 욱신거리는데 만일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무척 아프다. 따라서 이 상태로 걸으면 고통스러워 금방 주저앉게 된다. 이렇게 통증 범위가 상처 부위 주변까지 폭 넓게 퍼지는 이유는 몸의 이상이 완전히 복구되기까지 외부충격에서 보호하려는 신경계의 작용 때문이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발을 접질린 초기에는 조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주의해지고 결국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발을 쓰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관절에 심각한 이상이 생긴다.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미국의 크래그 프로이덴리히 박사는 “통증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자극이 왔으니 뭔가 대책을 세우라고 뇌에 보내는 경고 신호”라며 “통증이 감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불쾌한 경험인 이유”라고 말했다. 통증의 ‘역할’ 내지는 ‘불가피성’에 대한 이런 설득력 있는 논리에도 불구하고 심한 요통에 시달리면서 ‘그래, 허리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니까 그 원인을 찾아 없애야지 미봉책인 진통제는 쓰지 말자!’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아픔을 조금이라도 더는 게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통제는 ‘몸이 위험에 처했다는 정보’인 통증을 차단하는 작용을 하므로 ‘부작용’은 진통제의 숨겨진 단면일지도 모른다.


 

통증도 가지가지, 진통제도 가지가지

그렇다면 통증은 어떻게 느낄까. 우리 몸의 각 조직에는 감각신경섬유가 분포해 있다. 감각신경섬유는 척추 부근에 있는 신경절에서 뻗어나와있는데 3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굵은 섬유인 ‘A 베타 섬유’는 악수와 같은 일상적인 수준의 압력 변화를 감지한다. 그보다 얇은 ‘A 델타 섬유’는 강한 압력이나 온도 변화에 빨리 반응한다. 가장 얇은 ‘C 섬유’는 압력, 화학물질, 온도 변화에 천천히 반응한다.

감각신경섬유 말단이 분포해 있는 조직에서 ‘사건’이 생기면 그 신호는 신경을 타고 척수로 전달된다. 우리가 통증이라고 부를만한 자극은 A 델타 섬유와 C 섬유를 통해 전달된다. 즉 악수를 할 경우 상대방 손의 느낌은 A 베타 섬유가 전달하지만 상대가 짓궂게 손을 꽉 쥐는 순간 A 델타 섬유를 통해 통증 신호가 전달되면서 “아아아, 이거 놔줘!”라고 비명을 지르게 된다. 풀려난 뒤에도 손이 얼얼하게 아픈데 이 경우는 C 섬유를 통해 통증 신호가 오기 때문이다.

한편 상처나 감염으로 세포가 파괴되면 여러 가지 물질이 흘러나오면서 C 섬유를 자극해 통증을 유발한다. 특히 이때 만들어지는 프로스타글란딘은 신경섬유말단이 통증 자극에 민감하게 만들고 발열반응과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사실 염증 역시 우리 몸이 상처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수단이다.

이처럼 실제로 외부 자극 때문에 유발되는 ‘정상적인’ 통증 외에도 신경섬유 자체에 이상이 생겨 가짜 신호가 뇌로 전달되기도 하고(불이 안 났는데도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경우) 때로는 뇌의 통증회로에 이상이 생겨 스스로 통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화재경보기도 안 울렸는데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진다!). 물론 이런 ‘비정상적인’ 통증은 외부 자극에 대한 위험 경고로서의 가치는 없다.

통증 신호 전달 과정을 살펴보면 통증을 없애는 전략도 여럿임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부위에서 통증 유발을 막을 수도 있고 뇌로 가는 통증 신호를 차단할 수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통증을 느끼는 뇌 자체에 ‘손’을 댈 수도 있다. 실제로 진통제로 널리 쓰이는 제품들은 이런 여러 단계 가운데 하나에 작용해 효과를 낸다.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는 소염진통제는 염증반응으로 유발되는 통증을 완화한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민간요법으로 버드나무 껍질에서 우려낸 물로 류머티즘 같은 염증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다스려왔는데 19세기에 약효성분을 분리해 살리신(salicin)이라고 명명했다. 살리신은 몸에 들어가면 살리실산으로 분해되는데 위장 출혈 같은 부작용이 있었다. 그 뒤 독일의 바이엘사는 살리실산에 아세틸기를 붙인 아세트살리실산을 만들어 아스피린(aspirin)이라고 불렀는데 살리신에 비해 부작용이 적어 널리 쓰였다.

놀라운 진통효과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아스피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밝힌 건 1971년에 이르러서였다. 즉 손상된 세포는 염증반응을 유발하기 위해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을 분비하는데 아스피린이 이 물질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효소인 사이클로옥시게나제-2(cylcooxygenase-2, 이하 COX-2)의 작용을 차단했던 것. 그 결과 염증반응이 약해져(소염) 통증이 줄어든다.

아스피린의 작용 메커니즘을 알면 그 부작용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화기에 궤양이 있는 사람들은 아스피린을 피해야 하는데 출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피린은 COX-2와 구조가 비슷한 COX-1의 작용도 방해한다. COX-1는 혈액응고를 촉진하는 트롬복산을 만드는데 관여하는 효소로 아스피린이 존재하면 혈액응고가 잘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작용은 혈액이 막혀 생기는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값싼 수단이 될 수도 있어 정기적으로 아스피린을 먹으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약효와 부작용은 약물 자체보다도 환자의 증상에 적합한 선택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소프로필안티피린’(isopropylantipyrine, IPA) 성분이 들어있는 진통제 역시 COX-2의 작용을 억제하는 소염진통제다. IPA는 과민증이나 발진, 알레르기, 무과립구혈증(백혈구 과립수가 급감해 면역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병) 같은 부작용이 보고돼 1980년대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반면 독일과 일본, 인도네시아 등 21개국에서는 쓰이고 있다. 지난 12월 15일 종근당은 IPA가 포함된 진통제인 펜잘을 리콜하고 이를 뺀 복합 제제인 '펜잘큐'를 출시했다.

종근당 학술부 임소희 약사는 “IPA는 소염진통효과가 우수하지만 이 약물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문헌을 검토한 결과 IPA가 다른 진통제에 비해 부작용이 심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소비자의 불안감을 고려해 처방을 바꿨다”고 말했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현재 IPA 부작용의 심각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며 아직까지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아스피린, 펜잘과 함께 진통제의 대명사인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 주성분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는 매우 안전한 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복용할 경우 신장이나 간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흥미롭게도 아세트아미노펜의 정확한 작용 메커니즘은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통증 자극을 받는 말초신경에 작용하는 효과보다는 통증 신호를 받는 중추신경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편은 탁월한 진통제
당나라 현종의 황후로 당대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 이 절세미인만큼이나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해서 양귀비란 이름까지 얻은 식물은 주변에서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으로 재배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덜 익은 열매에 상처를 내면 우유 같은 액이 나오는데 이걸 건조한 분말이 그 유명한 ‘아편’이다.

아편은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보다도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아편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큰 부작용이 생긴 영국 빅토리아시대 이후 일단 중독되면 인생을 망치는 약물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아편에 들어 있는 주성분이 바로 모르핀이나 코데인 같은 알칼로이드 분자다.

말기암 환자같이 죽음을 앞두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호스피스였던 영국의 시슬리 사운더스 부인은 아편을 저농도로 처방할 경우 환자의 정신상태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통증을 완화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현재는 의사의 처방아래 모르핀이 쓰이고 있다. 성균관대 약대 장춘곤 교수는 “우리나라는 마약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외국에 비해 아편류 진통제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은 진통제 중 마약성 진통제 사용 비중이 50%가 넘는 반면 우리나라는 10%에 불과하다.

모르핀이 정확히 어떻게 진통효과를 내느냐에 대한 해답이 나온 것도 불과 30여 년 전이다. 미국의 토니 야크쉬는 모르핀을 주사할 경우 모르핀이 중뇌와 척수에 도달함을 발견했다. 그 뒤 영국의 과학자 한스 코스털리츠는 뇌가 모르핀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호르몬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엔돌핀’이라고 명명했다. 즉 모르핀은 중뇌와 척수에 많이 분포해 있는 엔돌핀 수용체에 작용해 엔돌핀의 역할을 한 셈이다.

엔돌핀은 감각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의 흥분도를 조절해 통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즉 아편은 통증의 원인을 없애지는 않지만 그 신호를 억제함으로써 강력한 진통효과를 낸다. 그러나 아편이나 모르핀을 과도하게 복용할 경우 신경계에 큰 교란을 일으켜 환각이 일어나고 중독성이 생긴다. 한편 기침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코데인은 진해거담제의 성분으로 쓰이고 있다.

원래 목적 외에 부수적으로 진통효과가 있는 약물도 있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막아 기분을 개선시키는 항우울제가 대표적인 예. 세로토닌은 척수에서 오는 신호의 세기를 조절하는 뇌 시스템에서 신호전달물질로도 쓰이는데 농도가 증가하면 통증 신호를 억제한다. 결국 항우울제는 척수에서 오는 통증 신호를 줄여 진통 효과를 낸다.

간질치료제도 특정한 통증을 완화하는데 쓰인다. 얼굴에 분포해 지각과 운동을 조절하는 삼차(三叉)신경의 통증 질환인 삼차신경통은 무척 고통스러운 병으로 얼굴의 감각신경이 뇌간에서 동시에 발화돼 발생한다. 비슷한 현상이 대뇌에서 일어난 병이 바로 간질이다. 간질약은 신경의 동시발화를 억제하기 때문에 삼차신경통에도 효과가 있다.


지나친 의존은 금물
지난 100년간 의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뛰어난 진통제가 여럿 나왔지만 이들 모두는 어느 정도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 통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영국 세인트토머스의대 패트릭 월 교수는 “통증 전달이라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교란하는 강력한 진통제가 부작용이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라며 “효과는 크면서도 부작용은 없는 진통제를 만드는 건 제약업계의 오래된 꿈이지만 아직 누구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프다고 진통제를 찾기에 앞서 평소에 삐딱한 자세나 과식, 과음, 수면부족, 무리한 운동 같이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통증을 유발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200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 일러스트

    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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