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걸음걸이를 그대로 본뜬 로봇의족, 저글링을 하며 즐거움을 주는 로봇,
입으면 노인도 천하장사가 되는 로봇슈트…. 차가운 쇠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로봇공학자들이다. 이들에게 로봇은 어떤 의미일까.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는 창"
아트 쿠오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안정적이고 견고해야합니다.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아시모나 휴보는 뛰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에너지 효율을 생각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국제학술대회’에서 특별강연을 마치자마자 만난 미국 미시간대 아트 쿠오 교수는 자신을 “로봇공학자라기보다 생체역학자”라고 소개했다. 세계 로봇공학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가 로봇공학에 생체역학을 접목해 로봇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연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모나 휴보 같은 이족보행로봇 대부분은 각 관절마다 모터를 달아 움직일 때마다 모터를 작동시킨다. 이를 ‘능동보행’이라고 한다. 에너지 소모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은 걸을 때 모든 과정마다 에너지를 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몸을 중력에 적당히 맡기고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한다. 이런 원리를 로봇에 적용한 기술을 ‘수동보행’이라 부른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쿠오 교수가 사람의 걸음걸이와 로봇에 관심을 갖고 수동보행기술의 세계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에게 다리 부상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근육에 전달되는 전기 신호 체계나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가 기계공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 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쿠오 교수는 사람 걸음걸이가 역학적으로 매우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차원에서 매우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자 자신이 알아낸 걸음걸이 원리가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관심은 이를 재현할 수 있는 로봇으로 향했다.
“로봇은 ‘사람 몸을 이해하는 창’입니다. 새로 알아낸 사람 몸의 원리를 로봇에 적용해보면 제대로 이해했는지 바로 알 수 있죠. 더욱 기쁜 일은 사람 몸의 원리를 구현한 로봇이 다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쿠오 교수는 “사람 걸음걸이를 모방한 로봇 의족을 만들면 걷는데 불편을 겪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무릎 관절이나 엉덩이에 소형 스프링을 달아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해 자동으로 걷게 하는 로봇 시뮬레이션을 공개했다. 이를 응용해 의족을 만들면 기존 의족을 사용했을 때보다 체력소모를 반 이상 줄일 수 있다. 지난 2008년 2월에는 무릎에 장착하고 걷기만 하면 전기가 생기는 ‘파워 브레이크’를 만들어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다(과학동아 2008년 10월 ‘몸에서 에너지 뽑는 인간발전소’ 참고).
“앞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수동보행과 능동보행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입니다. 사람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로봇기술도 함께 발전하겠죠.”
쿠오 교수는 KAIST 기계공학과 박수경 교수의 초청으로 2008년 11월부터 약 1달 동안 한국에 머물며 KAIST 학생들에게 생체역학을 가르쳤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살아 있는 문어의 근육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였다고.
"피노키오 만든 제페트 할아버지 심정 알아"
크리스토퍼 아케슨
“어릴 적 형제가 많았어요. 그들은 나보다 운동을 잘했죠. 어떤 운동을 하든 나는 항상 꼴찌였어요. 나중에 크면 나를 대신해서 그들을 이겨줄 로봇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허~.”
미국 카네기멜론대 크리스토퍼 아케슨 교수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된 동기를 묻자, 웃으며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수학을 잘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운동을 못했던 자신을 놀리던 형제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 로봇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케슨 교수는 현재 로봇의 ‘학습’ 알고리즘 개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미국 사코스 사의 로봇 플랫폼을 이용해 간단한 운동을 하게 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사코스 로봇은 마이크로 모터를 이용해 관절을 움직이는 일본의 아시모나 우리나라의 휴보와 달리, 유압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더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봇을 만드는 데는 가볍고 튼튼하고 전력을 덜 먹는 동체를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알고리즘이 있어야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요. 나는 사코스 로봇에게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물건을 집고 던지는 간단한 운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봇이 학습을 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케슨 교수는 동전축구의 예를 들었다. 동전축구는 바닥에 놓여 있는 동전 3개 가운데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 나머지 동전 두 개 사이를 통과시킨 뒤 계속해서 삼각형을 만드는 게임이다.
“사람은 동전을 한번 튕겨보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얼마나 세게 동전을 튕겨야 하는지 알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사코스 로봇은 물체를 잡거나 던질 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뒤 스스로 힘을 조절하죠. 현재 저글링을 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아케슨 교수는 “사코스에게 아직 가르쳐야 할 게 많다”면서 “KAIST 휴보랩과 공동연구를 하는 등 로봇이 더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걷게 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왜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걸까. 그에게 로봇이 사람을 닮아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로봇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유용해야 합니다. 물론 일의 결과만 따지면 사람의 모습을 꼭 닮을 필요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로봇을 통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면 로봇과 교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켄슨 교수는 “내가 만든 학습 알고리즘이 적용된 사코스가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걸음마를 하던 아기가 넘어지는 일을 볼 때처럼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며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트 할아버지도 내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현재 걷거나 물체를 집고 옮기는 일 같은 개별적인 운동을 하는 사코스를 더 발전시켜, 사람처럼 여러 가지 운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 대부분은 남자예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남자는 아기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허허허~.”
아케슨 교수는 외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데이터’를 이상적인 로봇으로 꼽았다. 데이터는 인간과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근하면서,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몰두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다. 아케슨 교수가 사코스 로봇과 대화할 날은 언제쯤일까?
로봇은 당신의 동반자
산카이 요시유키
3짙은 그라데이션 안경, 길게 말려 올라간 뒷머리. 어린 시절 즐겨 봤던 아톰이나 철인28호 같은 일본 로봇 만화에 나오는 괴짜 과학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2004년 인간의 근력을 보강해주는 의복형 로봇인 ‘HAL’(Hybrid Assistive Limb)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츠쿠바대 산카이 요시유키 교수. HAL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일본인 특유의 싹싹함으로 입을 열었다.
“HAL을 착용하면 1kg을 들어 올릴 힘으로 40kg을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걷거나 무거운 물체를 드는 일을 돕는데 사용할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 일본 장애인이 HAL을 입고 히말라야를 등정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면 뇌는 근육에 필요한 동작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HAL은 이때 나오는 미약한 전기신호를 잡아낸 뒤 바로 모터를 작동시켜 힘을 실어준다. 입기만 하면 누구나 천하장사가 되는 로봇 슈트다.
이같은 로봇 슈트는 미국에서도 개발되고 있다. 2004년 미국 로봇 벤처회사인 사코스가 국방성의 지원을 받아 군인의 활동을 돕는 로봇 슈트를 개발한 것. 하지만 산카이 교수는 HAL은 결코 군용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여기에는 그의 특별한 신념이 담겨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로봇’을 수없이 읽으며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특히 아이로봇에 나오는 ‘로봇 3원칙’에 감명을 받아 로봇은 꼭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지 누구에게든 해를 입히는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과학실험과 기계제작에 매달렸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는 갑자기 노트북을 꺼내더니 초등학생 시절 노트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거기엔 로봇 과학자가 되겠다는 다짐이 길게 적혀 있었고, 옆에는 로봇 그림이 그려 있었다.
“중학교 때 한번은 만화에 나오는 레이저총을 만들고 싶어서 대학 전공서를 뒤적이며 레이저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거기엔 값비싼 루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어머니의 보석함에서 루비를 슬쩍했다가 나중에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지요.”
나이가 들어 실제 로봇을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HAL을 개발하면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에브리띵”이라고 답했다. 로봇 본체는 가벼우면서 강해야하고, 컴퓨터는 전력소모가 작아야 하며, 배터리는 오래 가야했다. 게다가 로봇공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행동과학, 철학 같은 학문에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산카이 교수는 “2004년 HAL을 대량생산하는 사이버다인(Cyberdyne)사를 창업한 뒤 2008년 10월 첫 주문을 받아 50세트 제작에 들어갔다”며 “2008년 12월 중순 도쿄에 있는 실버타운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으로 제작한 뒤 통합관리시스템에서 대여 서비스만 할 예정이다. 임대료는 한 달에 2000달러 수준. 그는 “개인 판매는 2010년 후반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미국에서 찾아왔다는 교포 가족이 하반신을 거의 못 쓰는 할아버지를 위해 HAL을 구입하고 싶다며 산카이 교수와 미팅을 가졌다. HAL이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길 기대한다.
산카이 교수가 개발한 HAL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간을 배신하는 컴퓨터 이름이며, 그가 세운 로봇회사 사이버다인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악당 로봇 회사 이름이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인간을 돕는 로봇이 많이 등장하길 바라는 그만의 위트 섞인 작명법이다.
입으면 노인도 천하장사가 되는 로봇슈트…. 차가운 쇠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로봇공학자들이다. 이들에게 로봇은 어떤 의미일까.
"로봇은 인간을 이해하는 창"
아트 쿠오
“두 발로 걷는 로봇은 안정적이고 견고해야합니다. 로봇공학의 발전으로 아시모나 휴보는 뛰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에너지 효율을 생각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국제학술대회’에서 특별강연을 마치자마자 만난 미국 미시간대 아트 쿠오 교수는 자신을 “로봇공학자라기보다 생체역학자”라고 소개했다. 세계 로봇공학자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가 로봇공학에 생체역학을 접목해 로봇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연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모나 휴보 같은 이족보행로봇 대부분은 각 관절마다 모터를 달아 움직일 때마다 모터를 작동시킨다. 이를 ‘능동보행’이라고 한다. 에너지 소모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은 걸을 때 모든 과정마다 에너지를 쓰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몸을 중력에 적당히 맡기고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한다. 이런 원리를 로봇에 적용한 기술을 ‘수동보행’이라 부른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쿠오 교수가 사람의 걸음걸이와 로봇에 관심을 갖고 수동보행기술의 세계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는 대학시절 입은 부상 때문이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에게 다리 부상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근육에 전달되는 전기 신호 체계나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가 기계공학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 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쿠오 교수는 사람 걸음걸이가 역학적으로 매우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차원에서 매우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자 자신이 알아낸 걸음걸이 원리가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자연스레 관심은 이를 재현할 수 있는 로봇으로 향했다.
“로봇은 ‘사람 몸을 이해하는 창’입니다. 새로 알아낸 사람 몸의 원리를 로봇에 적용해보면 제대로 이해했는지 바로 알 수 있죠. 더욱 기쁜 일은 사람 몸의 원리를 구현한 로봇이 다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쿠오 교수는 “사람 걸음걸이를 모방한 로봇 의족을 만들면 걷는데 불편을 겪는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무릎 관절이나 엉덩이에 소형 스프링을 달아 스프링의 탄성을 이용해 자동으로 걷게 하는 로봇 시뮬레이션을 공개했다. 이를 응용해 의족을 만들면 기존 의족을 사용했을 때보다 체력소모를 반 이상 줄일 수 있다. 지난 2008년 2월에는 무릎에 장착하고 걷기만 하면 전기가 생기는 ‘파워 브레이크’를 만들어 ‘사이언스’에 발표하기도 했다(과학동아 2008년 10월 ‘몸에서 에너지 뽑는 인간발전소’ 참고).
“앞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수동보행과 능동보행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입니다. 사람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로봇기술도 함께 발전하겠죠.”
쿠오 교수는 KAIST 기계공학과 박수경 교수의 초청으로 2008년 11월부터 약 1달 동안 한국에 머물며 KAIST 학생들에게 생체역학을 가르쳤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살아 있는 문어의 근육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때였다고.
"피노키오 만든 제페트 할아버지 심정 알아"
크리스토퍼 아케슨
“어릴 적 형제가 많았어요. 그들은 나보다 운동을 잘했죠. 어떤 운동을 하든 나는 항상 꼴찌였어요. 나중에 크면 나를 대신해서 그들을 이겨줄 로봇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허허허~.”
미국 카네기멜론대 크리스토퍼 아케슨 교수는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된 동기를 묻자, 웃으며 어린 시절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수학을 잘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범생이’였다. 운동을 못했던 자신을 놀리던 형제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그가 생각해낸 방법이 로봇을 만드는 일이었다.
아케슨 교수는 현재 로봇의 ‘학습’ 알고리즘 개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미국 사코스 사의 로봇 플랫폼을 이용해 간단한 운동을 하게 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사코스 로봇은 마이크로 모터를 이용해 관절을 움직이는 일본의 아시모나 우리나라의 휴보와 달리, 유압을 이용해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더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봇을 만드는 데는 가볍고 튼튼하고 전력을 덜 먹는 동체를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알고리즘이 있어야 주변 환경에 반응하며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어요. 나는 사코스 로봇에게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물건을 집고 던지는 간단한 운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봇이 학습을 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케슨 교수는 동전축구의 예를 들었다. 동전축구는 바닥에 놓여 있는 동전 3개 가운데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 나머지 동전 두 개 사이를 통과시킨 뒤 계속해서 삼각형을 만드는 게임이다.
“사람은 동전을 한번 튕겨보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얼마나 세게 동전을 튕겨야 하는지 알아냅니다. 마찬가지로 사코스 로봇은 물체를 잡거나 던질 때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뒤 스스로 힘을 조절하죠. 현재 저글링을 할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아케슨 교수는 “사코스에게 아직 가르쳐야 할 게 많다”면서 “KAIST 휴보랩과 공동연구를 하는 등 로봇이 더 부드럽고 효율적으로 걷게 하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왜 사람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걸까. 그에게 로봇이 사람을 닮아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로봇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유용해야 합니다. 물론 일의 결과만 따지면 사람의 모습을 꼭 닮을 필요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로봇을 통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으려면 로봇과 교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켄슨 교수는 “내가 만든 학습 알고리즘이 적용된 사코스가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걸음마를 하던 아기가 넘어지는 일을 볼 때처럼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며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트 할아버지도 내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현재 걷거나 물체를 집고 옮기는 일 같은 개별적인 운동을 하는 사코스를 더 발전시켜, 사람처럼 여러 가지 운동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로봇을 연구하는 과학자 대부분은 남자예요. 그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남자는 아기를 낳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허허허~.”
아케슨 교수는 외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데이터’를 이상적인 로봇으로 꼽았다. 데이터는 인간과 농담을 건넬 정도로 친근하면서,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몰두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이다. 아케슨 교수가 사코스 로봇과 대화할 날은 언제쯤일까?
로봇은 당신의 동반자
산카이 요시유키
3짙은 그라데이션 안경, 길게 말려 올라간 뒷머리. 어린 시절 즐겨 봤던 아톰이나 철인28호 같은 일본 로봇 만화에 나오는 괴짜 과학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2004년 인간의 근력을 보강해주는 의복형 로봇인 ‘HAL’(Hybrid Assistive Limb)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츠쿠바대 산카이 요시유키 교수. HAL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그는 일본인 특유의 싹싹함으로 입을 열었다.
“HAL을 착용하면 1kg을 들어 올릴 힘으로 40kg을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노인이나 장애인이 걷거나 무거운 물체를 드는 일을 돕는데 사용할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한 일본 장애인이 HAL을 입고 히말라야를 등정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하면 뇌는 근육에 필요한 동작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HAL은 이때 나오는 미약한 전기신호를 잡아낸 뒤 바로 모터를 작동시켜 힘을 실어준다. 입기만 하면 누구나 천하장사가 되는 로봇 슈트다.
이같은 로봇 슈트는 미국에서도 개발되고 있다. 2004년 미국 로봇 벤처회사인 사코스가 국방성의 지원을 받아 군인의 활동을 돕는 로봇 슈트를 개발한 것. 하지만 산카이 교수는 HAL은 결코 군용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여기에는 그의 특별한 신념이 담겨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로봇’을 수없이 읽으며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기를 꿈꿨다. 특히 아이로봇에 나오는 ‘로봇 3원칙’에 감명을 받아 로봇은 꼭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지 누구에게든 해를 입히는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과학실험과 기계제작에 매달렸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그는 갑자기 노트북을 꺼내더니 초등학생 시절 노트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거기엔 로봇 과학자가 되겠다는 다짐이 길게 적혀 있었고, 옆에는 로봇 그림이 그려 있었다.
“중학교 때 한번은 만화에 나오는 레이저총을 만들고 싶어서 대학 전공서를 뒤적이며 레이저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거기엔 값비싼 루비가 들어가야 하는데, 어머니의 보석함에서 루비를 슬쩍했다가 나중에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지요.”
나이가 들어 실제 로봇을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HAL을 개발하면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에브리띵”이라고 답했다. 로봇 본체는 가벼우면서 강해야하고, 컴퓨터는 전력소모가 작아야 하며, 배터리는 오래 가야했다. 게다가 로봇공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행동과학, 철학 같은 학문에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산카이 교수는 “2004년 HAL을 대량생산하는 사이버다인(Cyberdyne)사를 창업한 뒤 2008년 10월 첫 주문을 받아 50세트 제작에 들어갔다”며 “2008년 12월 중순 도쿄에 있는 실버타운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으로 제작한 뒤 통합관리시스템에서 대여 서비스만 할 예정이다. 임대료는 한 달에 2000달러 수준. 그는 “개인 판매는 2010년 후반부터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미국에서 찾아왔다는 교포 가족이 하반신을 거의 못 쓰는 할아버지를 위해 HAL을 구입하고 싶다며 산카이 교수와 미팅을 가졌다. HAL이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길 기대한다.
산카이 교수가 개발한 HAL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간을 배신하는 컴퓨터 이름이며, 그가 세운 로봇회사 사이버다인은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악당 로봇 회사 이름이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인간을 돕는 로봇이 많이 등장하길 바라는 그만의 위트 섞인 작명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