吹此笛則兵退病愈 旱雨雨晴 風定波平 號萬波息笛 稱爲國寶
이 피리를 불면 적병(敵兵)이 물러가고 병(病)이 낫는다. 가뭄에는 비를 부르고
장마에는 날이 개며 바람을 멈추고 물결을 가라앉히니,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 만 가지 어려움을 모두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라 부르고 국보(國寶)로 삼는다.
-삼국유사권제이(卷第二) 기이(奇異)편 ‘만파식적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천지만물의 조화를 다스리는 천상의 악기. 이렇게 ‘삼국유사’에 묘사된 만파식적은 대금의 한 종류로 추측된다. 대금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말로 ‘젓대’라고 부르는 대금은 삼국사기에 신라에서 사용한 삼죽(三竹, 대금, 중금, 소금)의 하나로 등장한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누가 언제 대금을 처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금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횡적’(橫笛, 가로로 부는 피리)이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에도 사용됐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볼 때 대금은 삼국시대나 그 이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돌연변이가 만든 명품 ‘쌍골죽 대금’
서양에는 바이올린 제작의 대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디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있다면 국악에는 천혜의 자연이 만든 ‘쌍골죽’ 대금이 있다. 대금은 바람을 불어넣는 ‘취구’와 갈대 속으로 만든 ‘청’이라는 얇은 막을 붙이는 ‘청공’이 각각 1개씩 있고 손가락으로 막아 음을 조절하는 구멍인 ‘지공’이 6개 있다. 끝 부분에는 악기를 만들면서 음정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칠성공’이 1~2개 있다.
대금은 보통 4~5년 자란 황죽(누런색 대나무)이나 마디 사이에 좌우로 골이 번갈아 패인 쌍골죽으로 만든다. 대금을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선 예로부터 쌍골죽을 발견하는 일을 심마니가 산삼을 캐는 것에 비유했다. 쌍골죽은 대나무 수천 그루당 1그루 발견될 정도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쌍골죽이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는 이유는 뭘까.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들면 음정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돌연변이’인 쌍골죽은 다른 대나무보다 속이 꽉 차고 두께가 1.3~1.5배 두껍다. 일반 대나무는 마디 부분을 제외하면 줄기 속이 텅 비어 있다. 1987년부터 경북지역에서 21년 동안 대금을 만들어 온 장인 김상수 씨는 “쌍골죽은 속이 막혀있기 때문에 바람이 이동하는 통로인 ‘내경’을 일직선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금은 내경의 지름을 약 17mm로 만들 때 음정이 정확하다. 그런데 쌍골죽이 아닌 대나무는 속이 비었거나 지름 20mm 이상 구멍이 뚫린 경우가 많아 음정이 잘 맞지 않는다.
쌍골죽은 지리산이나 상주, 문경 등 깊은 산속 경사진 곳이나 돌이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생육환경이 좋지 않아서일까. 어렵게 찾은 쌍골죽은 S자 모양으로 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들면 손이 더 많이 간다. 먼저 쌍골죽의 습기를 제거한 뒤 가열하면서 휜 부분을 곧게 편다. 그 뒤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일을 막기 위해 명주실로 5~6군데를 동여맨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다시 자연 건조시킨다. 이렇게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드는데 약 1년이 걸린다.
정상파가 만든 청아한 소리
아무에게나 ‘천상의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대금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소리내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단소를 불 때 소리가 잘 나지 않아 고생한 경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대금도 처음 불면 훅~하고 바람소리만 난다. 리코더나 클라리넷 같은 서양 악기가 특별한 연습을 하지 않고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점과는 차이가 있다.
대금으로 소리내기 어려운 이유는 서양악기에 있는 ‘마우스피스’ 같은 장치가 대금에 없기 때문이다.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 교수는 “마우스피스는 입으로 ‘후’하고 바람을 불 때 생기는 불규칙한 파동 중에서 특정 진동수를 갖는 파동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악기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려면 파동이 규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파형이 불규칙한 파동이 모이면 귀에는 소음이나 잡음으로 들린다.
가야금이나 기타 같은 현악기는 일정한 길이의 줄이 떨릴 때 규칙적인 진동을 갖는 정상파를 만든다. 정상파는 진동수가 같고 진동방향이 반대인 두 파동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며 중첩됐을 때 나타난다. 그런데 현악기의 줄이 만드는 파동은 진폭이 작아 소리가 작다. 그래서 현악기는 울림통에서 같은 진동수를 갖는 파동을 겹쳐 진폭을 키우는 공명 현상으로 소리를 크게 만든다.
대금이 소리를 내는 원리도 현악기와 같다. 대금은 내부를 이동하는 공기가 만든 기둥인 ‘기주’가 줄처럼 진동하며 소리를 낸다. 대금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줄’로 소리를 내는 셈이다. 바람을 불어 넣으면 대금 내부의 공기에 진동이 일어나 정상파를 만든다. 대금은 관 자체가 울림통 역할도 한다. 관에 생긴 정상파의 진동수가 기주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면 공명이 일어나 소리가 커지고 관속을 도는 바람도 소리를 증폭시킨다.
대금은 지공이 6개뿐이지만 가장 낮은 옥타브인 ‘저취’(약 230~430Hz), 중간 대역인 ‘평취’(약 470~860Hz), 가장 높은 ‘역취’(약 970~1520Hz)까지 3옥타브를 넘나들며 24개 이상의 음을 낸다. 음높이는 진동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단위시간당 진동수가 높으면 높은음이 되고 진동수가 낮으면 낮은음이 된다.
대금에서 음을 높이는 방법은 2가지다. 손가락으로 막았던 지공을 하나씩 떼면 높은음이 난다. 예를 들어 지공 6개를 다 막으면 진동수가 약 456Hz로 ‘임’(林, 평취에서 가장 낮은 음)이 되고, 손가락을 다 떼 지공을 모두 열면 진동수가 약 821Hz로 올라가 ‘중’(평취에서 가장 높은 음)음이 된다.
지공을 여닫을 때 음높이가 변하는 이유는 뭘까. 물체 길이에 따라 고유진동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유진동수는 외부에서 물체에 힘을 줄때 물체가 흔들리는 진동수로 파장이 짧을수록 고유진동수가 크다. 손가락으로 지공을 완전히 다 막으면 바람이 빠져나가지 못해 고유진동수가 작아진다. 지공을 열면 그만큼 악기 길이가 짧아지는 효과가 나타나 고유진동수는 커진다.
바람을 세게 불어넣을 때도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낼 수 있다. 바람을 세게 불어 공기가 빠르게 움직이면 단위 시간당 진동수가 커진다.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한 뒤 2배속으로 재생하면 진동수가 커져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금에 명주실을 감는 방법
우리 조상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대금에 명주실(최근에는 플라스틱 줄도 쓰임)을 감았다. 명주실은 대금이 갈라지는 일을 막는다.
1 명주실로 고리를 만든 뒤 한 바퀴 돌린다.
2 고리의 끝이 조금 남을 때까지 4~5바퀴 실을 돌려 감는다.
3 고리 틈으로 다른 한 쪽 끝을 빼낸다.
4 양쪽 끝을 세게 잡아당기면 밖으로 나와 있던 고리 끝이 명주실 가운데로 들어간다.
5 남은 부분을 잘라낸다.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 만드는 ‘청’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자주 나오는 구슬픈 음악은 ‘청성곡’이라고 알려진 대금 독주곡이다. 국립국악원 대금연주자 김휘곤 씨는 “울음소리 같이 애절한 느낌을 주는 대금 소리가 잘 드러나 대금 독주곡의 ‘백미’로 꼽힌다”고 말했다.
애절한 소리의 비밀은 바로 ‘청’에 있다. 청은 갈대 줄기 속에서 뽑아낸 얇은 막이다. 이 막을 팽팽하게 당겨 청공에 붙인 다음 입김을 강하게 불어 넣으면 청이 떨리며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청은 음력 5월 단오를 기준으로 1주일 정도 채취한다. 이때 갈대 속에 수분이 잘 올라와 청을 쉽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휘곤 씨는 “이보다 시기가 빠르면 갈대에 물이 올라오지 않고 너무 늦으면 갈대 속이 말라붙는다”고 설명했다.
언제부터 대금에 청을 사용했을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악학궤범’에 그려진 대금에 청공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 전기 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국 북송시대에 진양이 지은 ‘악서’(樂書)라는 책에는 “당나라 때 대나무에 막이 붙은 관악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지금 전해지는 관악기 중 대금처럼 청이 떨림판 역할을 하는 악기는 거의 없다.
청은 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청이 울릴 때와 울리지 않을 때 진동수를 분석한 결과 청이 울릴 때 다양한 배음이 나타났다. 소리는 기본진동수의 파동과 그 파동의 정수배의 파동을 갖는 배음으로 이뤄진다. 이런 소리를 복합음이라고 하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 대부분은 복함음이다.
예를 들어 대금에서 지공 5개를 막을 때 나는 ‘남’에는 268Hz의 진동뿐 아니라 2배(536Hz), 3배(804Hz), 4배(1072Hz) 등 268Hz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파동이 섞여 있다. 배명진 교수는 “청에 떨림이 생기면 진동수가 변해 음높이가 변한다”며 “여러 가지 배음이 섞이면서 날카롭고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설명했다.
대금과 플루트로 같은 음을 연주해도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배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음은 각 소리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음색을 결정한다. 대금의 ‘남’은 서양음계의 도(C, 262Hz)와 같은 음이지만 두 악기 소리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배 교수는 “같은 268Hz의 소리를 내도 악기마다 특정 배음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정도가 다르다”며 “이렇게 배음들의 세기가 다르면 귀에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만파식적이 만 가지 어려움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애절한 청소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겨울, 울다가 목이 쉰 듯 갈라지는 청소리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알 수 없는 힘을 느껴보자.
이 피리를 불면 적병(敵兵)이 물러가고 병(病)이 낫는다. 가뭄에는 비를 부르고
장마에는 날이 개며 바람을 멈추고 물결을 가라앉히니, 이 피리를 만파식적(萬波息笛, 만 가지 어려움을 모두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라 부르고 국보(國寶)로 삼는다.
-삼국유사권제이(卷第二) 기이(奇異)편 ‘만파식적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천지만물의 조화를 다스리는 천상의 악기. 이렇게 ‘삼국유사’에 묘사된 만파식적은 대금의 한 종류로 추측된다. 대금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말로 ‘젓대’라고 부르는 대금은 삼국사기에 신라에서 사용한 삼죽(三竹, 대금, 중금, 소금)의 하나로 등장한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은 “누가 언제 대금을 처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금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횡적’(橫笛, 가로로 부는 피리)이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에도 사용됐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볼 때 대금은 삼국시대나 그 이전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돌연변이가 만든 명품 ‘쌍골죽 대금’
서양에는 바이올린 제작의 대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디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있다면 국악에는 천혜의 자연이 만든 ‘쌍골죽’ 대금이 있다. 대금은 바람을 불어넣는 ‘취구’와 갈대 속으로 만든 ‘청’이라는 얇은 막을 붙이는 ‘청공’이 각각 1개씩 있고 손가락으로 막아 음을 조절하는 구멍인 ‘지공’이 6개 있다. 끝 부분에는 악기를 만들면서 음정을 조절하기 위해 만든 ‘칠성공’이 1~2개 있다.
대금은 보통 4~5년 자란 황죽(누런색 대나무)이나 마디 사이에 좌우로 골이 번갈아 패인 쌍골죽으로 만든다. 대금을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선 예로부터 쌍골죽을 발견하는 일을 심마니가 산삼을 캐는 것에 비유했다. 쌍골죽은 대나무 수천 그루당 1그루 발견될 정도로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쌍골죽이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는 이유는 뭘까.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들면 음정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돌연변이’인 쌍골죽은 다른 대나무보다 속이 꽉 차고 두께가 1.3~1.5배 두껍다. 일반 대나무는 마디 부분을 제외하면 줄기 속이 텅 비어 있다. 1987년부터 경북지역에서 21년 동안 대금을 만들어 온 장인 김상수 씨는 “쌍골죽은 속이 막혀있기 때문에 바람이 이동하는 통로인 ‘내경’을 일직선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금은 내경의 지름을 약 17mm로 만들 때 음정이 정확하다. 그런데 쌍골죽이 아닌 대나무는 속이 비었거나 지름 20mm 이상 구멍이 뚫린 경우가 많아 음정이 잘 맞지 않는다.
쌍골죽은 지리산이나 상주, 문경 등 깊은 산속 경사진 곳이나 돌이 많은 곳에서 발견된다. 생육환경이 좋지 않아서일까. 어렵게 찾은 쌍골죽은 S자 모양으로 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들면 손이 더 많이 간다. 먼저 쌍골죽의 습기를 제거한 뒤 가열하면서 휜 부분을 곧게 편다. 그 뒤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일을 막기 위해 명주실로 5~6군데를 동여맨 다음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다시 자연 건조시킨다. 이렇게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드는데 약 1년이 걸린다.
정상파가 만든 청아한 소리
아무에게나 ‘천상의 소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대금은 만들기도 어렵지만 소리내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한 번쯤 단소를 불 때 소리가 잘 나지 않아 고생한 경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대금도 처음 불면 훅~하고 바람소리만 난다. 리코더나 클라리넷 같은 서양 악기가 특별한 연습을 하지 않고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점과는 차이가 있다.
대금으로 소리내기 어려운 이유는 서양악기에 있는 ‘마우스피스’ 같은 장치가 대금에 없기 때문이다.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배명진 교수는 “마우스피스는 입으로 ‘후’하고 바람을 불 때 생기는 불규칙한 파동 중에서 특정 진동수를 갖는 파동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악기에서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려면 파동이 규칙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파형이 불규칙한 파동이 모이면 귀에는 소음이나 잡음으로 들린다.
가야금이나 기타 같은 현악기는 일정한 길이의 줄이 떨릴 때 규칙적인 진동을 갖는 정상파를 만든다. 정상파는 진동수가 같고 진동방향이 반대인 두 파동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며 중첩됐을 때 나타난다. 그런데 현악기의 줄이 만드는 파동은 진폭이 작아 소리가 작다. 그래서 현악기는 울림통에서 같은 진동수를 갖는 파동을 겹쳐 진폭을 키우는 공명 현상으로 소리를 크게 만든다.
대금이 소리를 내는 원리도 현악기와 같다. 대금은 내부를 이동하는 공기가 만든 기둥인 ‘기주’가 줄처럼 진동하며 소리를 낸다. 대금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줄’로 소리를 내는 셈이다. 바람을 불어 넣으면 대금 내부의 공기에 진동이 일어나 정상파를 만든다. 대금은 관 자체가 울림통 역할도 한다. 관에 생긴 정상파의 진동수가 기주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면 공명이 일어나 소리가 커지고 관속을 도는 바람도 소리를 증폭시킨다.
대금은 지공이 6개뿐이지만 가장 낮은 옥타브인 ‘저취’(약 230~430Hz), 중간 대역인 ‘평취’(약 470~860Hz), 가장 높은 ‘역취’(약 970~1520Hz)까지 3옥타브를 넘나들며 24개 이상의 음을 낸다. 음높이는 진동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단위시간당 진동수가 높으면 높은음이 되고 진동수가 낮으면 낮은음이 된다.
대금에서 음을 높이는 방법은 2가지다. 손가락으로 막았던 지공을 하나씩 떼면 높은음이 난다. 예를 들어 지공 6개를 다 막으면 진동수가 약 456Hz로 ‘임’(林, 평취에서 가장 낮은 음)이 되고, 손가락을 다 떼 지공을 모두 열면 진동수가 약 821Hz로 올라가 ‘중’(평취에서 가장 높은 음)음이 된다.
지공을 여닫을 때 음높이가 변하는 이유는 뭘까. 물체 길이에 따라 고유진동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유진동수는 외부에서 물체에 힘을 줄때 물체가 흔들리는 진동수로 파장이 짧을수록 고유진동수가 크다. 손가락으로 지공을 완전히 다 막으면 바람이 빠져나가지 못해 고유진동수가 작아진다. 지공을 열면 그만큼 악기 길이가 짧아지는 효과가 나타나 고유진동수는 커진다.
바람을 세게 불어넣을 때도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낼 수 있다. 바람을 세게 불어 공기가 빠르게 움직이면 단위 시간당 진동수가 커진다. 테이프에 목소리를 녹음한 뒤 2배속으로 재생하면 진동수가 커져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금에 명주실을 감는 방법
우리 조상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대금에 명주실(최근에는 플라스틱 줄도 쓰임)을 감았다. 명주실은 대금이 갈라지는 일을 막는다.
1 명주실로 고리를 만든 뒤 한 바퀴 돌린다.
2 고리의 끝이 조금 남을 때까지 4~5바퀴 실을 돌려 감는다.
3 고리 틈으로 다른 한 쪽 끝을 빼낸다.
4 양쪽 끝을 세게 잡아당기면 밖으로 나와 있던 고리 끝이 명주실 가운데로 들어간다.
5 남은 부분을 잘라낸다.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 만드는 ‘청’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자주 나오는 구슬픈 음악은 ‘청성곡’이라고 알려진 대금 독주곡이다. 국립국악원 대금연주자 김휘곤 씨는 “울음소리 같이 애절한 느낌을 주는 대금 소리가 잘 드러나 대금 독주곡의 ‘백미’로 꼽힌다”고 말했다.
애절한 소리의 비밀은 바로 ‘청’에 있다. 청은 갈대 줄기 속에서 뽑아낸 얇은 막이다. 이 막을 팽팽하게 당겨 청공에 붙인 다음 입김을 강하게 불어 넣으면 청이 떨리며 갈라지는 듯한 소리를 낸다. 청은 음력 5월 단오를 기준으로 1주일 정도 채취한다. 이때 갈대 속에 수분이 잘 올라와 청을 쉽게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휘곤 씨는 “이보다 시기가 빠르면 갈대에 물이 올라오지 않고 너무 늦으면 갈대 속이 말라붙는다”고 설명했다.
언제부터 대금에 청을 사용했을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악학궤범’에 그려진 대금에 청공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 전기 또는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12세기 중국 북송시대에 진양이 지은 ‘악서’(樂書)라는 책에는 “당나라 때 대나무에 막이 붙은 관악기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지금 전해지는 관악기 중 대금처럼 청이 떨림판 역할을 하는 악기는 거의 없다.
청은 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청이 울릴 때와 울리지 않을 때 진동수를 분석한 결과 청이 울릴 때 다양한 배음이 나타났다. 소리는 기본진동수의 파동과 그 파동의 정수배의 파동을 갖는 배음으로 이뤄진다. 이런 소리를 복합음이라고 하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 대부분은 복함음이다.
예를 들어 대금에서 지공 5개를 막을 때 나는 ‘남’에는 268Hz의 진동뿐 아니라 2배(536Hz), 3배(804Hz), 4배(1072Hz) 등 268Hz의 정수배에 해당하는 파동이 섞여 있다. 배명진 교수는 “청에 떨림이 생기면 진동수가 변해 음높이가 변한다”며 “여러 가지 배음이 섞이면서 날카롭고 우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 설명했다.
대금과 플루트로 같은 음을 연주해도 다른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배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음은 각 소리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음색을 결정한다. 대금의 ‘남’은 서양음계의 도(C, 262Hz)와 같은 음이지만 두 악기 소리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배 교수는 “같은 268Hz의 소리를 내도 악기마다 특정 배음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정도가 다르다”며 “이렇게 배음들의 세기가 다르면 귀에는 다른 느낌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만파식적이 만 가지 어려움을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애절한 청소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겨울, 울다가 목이 쉰 듯 갈라지는 청소리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알 수 없는 힘을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