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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TAR 최초 플라스마 발생 실험 성공

한국산 ‘인공태양’ 첫 불꽃을 밝히다


지난 7월 15일 국가핵융합연구소 제어실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대형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모니터 한쪽 끝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을 표시한 숫자가 ‘0’이 되자 깜깜한 화면에 ‘파밧’ 불꽃이 튀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고속카메라로 찍은 화면을 천천히 다시 봐야 했다. 양쪽 끝에서 푸른빛이 감돌더니, 이내 도넛처럼 생긴 실험장치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눈이 부실정도로 강한 빛이 번쩍한 다음 조용히 사그라졌다.

차세대 핵융합 연구장치(KSTAR)의 첫 플라스마 발생 실험 성공! 국가핵융합연구소가 지난 1995년 건설에 착수해 지난해 9월 세계에서 2번째로 모든 자석을 초전도로 제작한 차세대 토카막형 핵융합 연구장치를 완성하고, 10개월 만에 그 안에서 첫 플라스마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KSTAR 연구센터 운전실험연구부 오영국 부장은 “불과 0.3초 동안 타오른 불꽃이지만, 우리나라 핵융합 실험의 첫발을 내딛는 신호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2년 동안 밤낮없이 땀을 흘린 노력의 첫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KSTAR는 ‘종합과학 선물세트’



핵융합 에너지는 태양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을 지구에서 똑같이 일으켜 에너지를 얻는다.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흙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리튬을 원료로 사용하면서도 온실가스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의 청정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1억℃가 넘는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마란 기체 원자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간 불안정한 이온 상태를 말한다. 핵융합로에서 전자가 떨어져 나간 중수소와 삼중수소 원자핵들은 핵 대 핵으로 직접 부딪치며 융합해 무거운 헬륨(He)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엄청난 양의 핵융합 에너지를 만든다.

오 부장은 “바닷물 1L에 들어있는 0.03g의 중수소로 휘발유 300L에 맞먹는 핵융합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며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려면 초고온 플라스마를 한 곳에서 오랫동안 붙잡아 두는 일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억℃가 넘는 플라스마를 어디다 담는단 말인가. 태양은 엄청난 중력으로 플라스마를 잡아 두지만, 지구는 중력도 약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높은 온도를 견디는 그릇이 있을 리도 없다. 오 부장은 “‘인공태양’을 만드는 실용화에 가장 근접한 방식이 KSTAR가 사용하는 ‘토카막’”이라고 설명했다.

토카막은 자기장 안에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가두는 핵융합 장치다. D자 모양의 전자석으로 지구자기장의 14만 배에 이르는 자기장을 만들어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 안에서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운 채로 잡아둔다. 진공용기 벽에 초고온 플라스마 일부가 닿지만 1200℃ 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한다.

토카막을 만드는 데는 여러 가지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전자석에 오랫동안 강한 전류를 흘려주면 열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저항이 없는 초전도 전자석을 사용해야 하고,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영하 268.5℃의 액체 헬륨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한다.

이처럼 핵융합장치를 만드는 데는 플라스마 기술 외에도 진공, 정밀가공, 기계 설계, 극저온, 초전도 등 공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핵융합 장치가 ‘종합과학 선물세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KSTAR는 2007년 9월 완공된 뒤 지난 7월까지 진공 시운전과 극저온냉각 시운전, 초전도 전원 시운전, 플라스마 발생 시운전까지 4단계 실험을 모두 통과했다. 각 단계마다 검사를 하는데 한 달 이상씩 걸렸기 때문에 각 분야 전문가들은 수개월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영하 268.5℃에서 타는 200만℃ 불꽃



“영하 268.5℃ 극저온에서 작동하는 초전도 전자석으로 플라스마 발생시켜 봤어요?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엄청 까다로워요.”

KSTAR 연구센터 극저온연구부 김양수 부장은 10년 넘게 KSTAR를 건설하는 데 힘써 온 극저온 냉각 분야의 ‘달인’이다. 하지만 그는 “첫 플라스마 발생 실험을 준비한 지난 수개월은 피 말리는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액체 헬륨을 담는 저온용기는 외부와 연결되는 포트개수가 210개, 용기 내부로 관통하는 헬륨냉각 배관길이가 1960m, 용접개소가 1만 5000여 곳이나 되기 때문에 위험이 가장 컸다. 만약 실험 중 진공누설이 일어나면 거대한 진공용기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복잡한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KSTAR는 지난 3월 진공용기에서 공기를 빼는 작업을 시작으로 최초 플라스마 발생 실험 준비의 첫 단추를 꿰었다. 진공용기에 플라스마를 발생시키려면 지표면 대기압의 약 300억 분의 1에 해당하는 3.0×10-8mbar 진공도를 유지해야 한다. 연구진은 우리별 1호가 떠 있는 1300km 상공 우주 공간과 맞먹는 진공을 무리 없이 만들었다.

첫 단계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진짜 고비는 2단계 극저온냉각 시운전 부터였다. 초전도자석은 극저온으로 온도가 내려가면 0.3% 정도 수축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접을 잘했어도 실제 온도를 낮췄을 때 나타나는 결함을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로 인도에서 2005년 완공한 초전도핵융합장치 ‘SST-1’은 극저온 냉각 도중 진공누설이 생겨 현재까지 정상 운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 2006년 완공된 중국의 초전도핵융합장치 ‘EAST’는 극저온 냉각 초기단계에서 냉동기가 자꾸 고장나 실험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4월 3일부터 한 시간에 1℃의 속도로 천천히 냉각했습니다.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1000개가 넘는 센서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장치의 이상 유무를 확인했죠. 목표 온도인 영하 268.5℃까지 내리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습니다.”

실험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총 300t에 이르는 자석 30개가 초전도 상태에 도달하는데 아무 결함이 없었던 것. 플라스마 발생 실험의 ‘8부능선’을 넘은 연구진은 여세를 몰아 5월 말까지 초전도 자석에 전기를 공급하는 실험을 일사천리로 마치고, 6월 13일 최초 플라스마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뒤 한 달 동안 반복 실험한 끝에 최고 플라스마 전류 133kA. 플라스마 지속시간 0.7초 이상. 플라스마 온도 200만℃를 기록했다. 목표치로 정했던 플라스마 전류 100kA, 지속시간 0.1초를 크게 뛰어넘는 결과였다. 핵융합 실험로 건설의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토카막 핵융합 실험로 시운전을 한 번에 성공한 것이다.

김 부장은 “이제 첫 불꽃을 일으켰을 뿐”이라며 “KSTAR의 최종 목표는 3억℃ 이상 초고온에서 플라스마를 300초 동안 유지하며 중수소 핵융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실험에는 플라스마 전류 300kA에 지속시간 3초에 도전한다.

막 타오르기 시작한 한국산 ‘인공태양’의 불꽃이 세계 핵융합 연구를 이끄는 거대한 불길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ITER, KSTAR에 ‘길’을 묻다

지난 7월 15일 국가핵융합연구소에서 열린 KSTAR 최초 플라스마 발생 시연회에는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온 과학자 2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 소속 전문가들로, KSTAR의 플라스마 발생 실험 성공을 한 마음으로 축하했다.

라틴어로 ‘길’을 뜻하는 ITER는 우리나라와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7개국이 협력해 500MW급 핵융합발전 실험로를 건설하는 대규모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다.

ITER 프로젝트는 2006년부터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카다라쉬에 짓기 시작한 세계 유일의 핵융합실험로를 2015년까지 완공하고, 그곳에서 지난 40년 동안 세계 핵융합실험 장치들이 이뤄낸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핵융합에너지를 상용화할 수 있는지 검증할 계획이다. 2030년 이후에는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핵융합 시험발전소까지 세운다는 목표다.

오영국 부장은 “ITER는 KSTAR보다 규모가 25배 크지만 니오븀주석합금(Nb3Sn)을 초전도 재료로 사용한 KSTAR와 똑같은 토카막 핵융합 장치”라며 “ITER가 완공될 때까지 KSTAR가 ITER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핵심기술을 축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핵융합 기술의 우수성을 이미 인정받아 ITER 핵융합로의 진공용기 본체와 열 차폐체, 삼중수소 저장·공급시스템 등 핵심설비와 부품을 개발해 공급하기로 했다. 오 부장은 “KSTAR의 실험 결과가 좋을수록 우리나라가 ITER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대전=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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