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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만 한 전파망원경 뜬다

우주 신비 풀며 달 탐사까지 지원

“위이잉~ 철컥!”

동시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비상벨이 울린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영화 ‘트랜스포머’처럼 대형 물체가 로봇으로 변신이라도 하는 걸까. 제어용 컴퓨터 화면에 수치를 입력하자 커다란 접시 안테나가 거대로봇처럼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원하는 위치에 가 있다.

연세대 캠퍼스 내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구경 21m 전파망원경의 가동 장면이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사업그룹 손봉원 박사는 “이 전파망원경을 구동시키는 프로그램은 실제 로봇공학자가 설계했다”며 “망원경 안테나는 1초에 3°씩 이동한다”고 말했다. 수십 계단을 따라 전파망원경 수신기가 자리한 수신실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할 정도다.

천문연은 연세대뿐 아니라 울산대, 탐라대에도 똑같은 전파망원경을 설치했고, 울산대와 연세대의 전파망원경으로는 각각 오리온대성운을 시험관측하기도 했다. 천문연 KVN사업그룹 정현수 그룹장은 “내년에 3대의 전파망원경을 동시에 활용해 우주를 관측하는 3각 전파관측망을 가동할 예정”이라며 “이로써 한반도만 한 전파망원경이 탄생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천문연 KVN사업그룹 이상성 박사(왼쪽)와 변도영 박사가 연세대 전파천문대에서 관측 준비를 하고 있다. 창문 밖으로 구경 21m 전파망원경이 보인다.


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우주전파관측망(Korean VLBI Network)은 2대 이상의 망원경을 동시에 가동해 커다란 망원경 하나의 효과를 내는 간섭계 원리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10km 떨어져 있는 2대의 전파망원경으로 하나의 천체를 동시에 관측하면 구경 10km짜리 대형망원경의 분해능을 얻을 수 있다. 분해능은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천체를 구별해내는 능력인데, 망원경의 구경이 커질수록 좋아진다.

KVN은 간섭계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초장거리간섭계’(VLBI)에 해당한다. 손 박사는 “VLBI에 속하는 미국의 VLBA와 일본의 VERA를 벤치마킹했다”고 설명했다.

VLBA는 미국 본토, 하와이 마우나케아, 푸에르토리코 버진아일랜드에 흩어져 있는 구경 25m 전파망원경 10대로 구성되고, VERA는 일본 본토, 이시가키 섬, 오가사와라제도에 각각 건설된 구경 20m 전파망원경 4대로 이뤄져 있다. VLBA는 구경이 8600km가 넘는 초대형 망원경의 성능을 내고 VERA는 구경 2000km 거대 망원경의 성능을 내는 데 비해 KVN은 구경 477km 대형 망원경의 성능을 발휘한다. 여기서 477km는 연세대에서 탐라대까지의 거리에 해당한다.

물론 작은 고추가 맵듯이 우리만의 강점도 있다. 손 박사는 “KVN은 VLBA나 VERA보다 파장이 더 짧은 2.3mm~1.3cm의 우주전파를 관측할 수 있어 *활동성 은하핵의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며 “중심에 초대형 블랙홀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활동성 은하핵의 탄생 비밀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VN은 별이 탄생하거나 죽어가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메이저’도 관측할 수 있다. 손 박사는 “메이저는 ‘분자에서 나오는 레이저’로 별 주변에 밀집돼 나타난다”며 “KVN으로 물, 일산화규소 같은 우주 분자에서 나오는 메이저를 관측해 별 탄생과 소멸의 신비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경 21m짜리 전파망원경의 접시 안테나를 조립하는 장면.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을 향해

일본 가구야와 중국 창어의 공통점은? 달 탐사선이란 점 이외에 VLBI 기술을 이용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공통점이다. 손 박사는 “탐사선을 보내 우주를 탐사할 때 기준 좌표계에 대한 탐사선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한다”며 “위치가 변하지 않는 활동성 은하핵 수백 개를 VLBI로 정밀 관측한 자료를 기준좌표계로 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성 은하핵 중에는 퀘이사처럼 매우 먼 곳에 있어 위치 변화가 없는 종류도 있다.

예를 들어 탐사선이 달 주변을 돌 때 달 속에 가벼운 물질이 있는지, 무거운 물질이 있는지에 따라 위치가 약간씩 바뀌는데, 탐사선의 위치 변화를 정밀하게 측정하면 달의 중력장과 함께 어떤 자원이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또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 투입된 유럽의 탐사정 호이겐스의 위치를 정밀 추적하는 데도 미국과 유럽의 VLBI 관측자료가 동원됐다.

우리나라가 준비하고 있는 달 탐사계획에도 KVN의 활동성 은하핵 관측자료가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손 박사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달 탐사 시 정밀추적에 필요한 VLBI 기술에 관심을 보여 천문연이 기획연구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KVN의 관측 자료는 지구 지각의 변동을 알아내는 데도 기준좌표계가 될 수 있다.

KVN의 망원경이 있는 곳이 기준좌표계에 대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하는 원리다. 손 박사는 “활성단층대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울산의 망원경 위치를 추적해 지진 발생 여부, 한반도가 있는 아무르판의 이동 정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KVN사업에는 230억 원이 투입됐는데, 이 가운데 150억 원이 3대의 접시 안테나를 만드는 데 쓰였고 나머지가 수신기, 상관기, 자료 전송장비에 들어갔다. 수신기는 안테나에서 모은 우주전파를 파장별로 나눠 필요한 신호만 선택하고, 상관기는 여러 대의 망원경에서 동시에 받은 신호를 합치며, 나중에 관측자가 이 자료를 처리해 영상을 만든다.

천문연 KVN사업그룹 변도영 박사는 “안테나 자체는 VLBI 전용으로 매우 정밀하며 우주전파를 수신하자마자 디지털로 처리할 수 있어 자료 손실이 적다”며 “수신기는 세계 최초로 4개 파장으로 동시에 관측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최근 연세대 KVN 본부에는 일본 연구진이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일본과 공동으로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다. 일본이 전파망원경 4대로 VERA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KVN과 협력하면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변 박사는 “망원경의 수가 늘면 잡음에 비해 우주신호가 또렷해진다”며 “활동성 은하핵의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6대 이상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일본 VERA와 한국 KVN의 망원경을 합치면 7대가 된다.

올해 가을쯤 일본과 공동으로 우주전파관측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과 일본 네 곳의 전파망원경으로 우리은하 중심부, 밝은 활동성 은하핵 등을 동시에 관측해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게 천문연의 목적이다. 내년에 KVN이 가동하고 그 뒤 한일 우주전파관측망이 구경 2000km의 거대 망원경처럼 작동하면 세계적 수준의 초정밀 관측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한국 KVN은 일본 VERA와 함께 운영하면 구경 2000km짜리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을 구성할 수 있고 여기에 중국 전파망원경이 가세하면 구경 8000km짜리 동아시아 VLBI 관측망이 완성된다.


지구보다 큰 망원경 건설?

우리나라는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한일 공동 상관기’를 개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천문연 상관기그룹 노덕규 그룹장은 “한일 공동 상관기는 기존 상관기보다 자료 처리속도가 8배 정도 빠르다”고 밝혔다. 최근 연세대 KVN본부는 일본 가고시마대 연구진을 초청해 한국과 일본의 망원경으로 동시에 관측한 자료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은 일본 국립천문대와 두 달에 한 번꼴로 상관기 회의를 하고 있다. 노 그룹장은 “사실 상관기 회의에 앞서 VLBI 관련 한일 회의를 매년 갖고 있다”며 “올해부터는 중국 연구진도 참여하는 동아시아 회의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2년 일본이 국제협력으로 준비하고 있는 VSOP(VLBI Space Observatory Program)-2에도 참여하고 있다. 구경 9m의 전파우주망원경 ‘아스트로-G’를 지구 상공에 띄워 지상의 여러 VLBI와 협력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아스트로-G는 고도가 1000km에서 3만 6000km까지 변하며 지구 주위를 돈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도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계획대로 되면 구경이 3만 6000km에 이르러 지구보다 더 큰 망원경이 탄생한다. 한일우주전파관측망을 비롯한 한일 공동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VLBI)으로 가는 밑거름인 셈이다.

활동성 은하핵*

초대형 블랙홀로 대량의 물질이 유입되면서 보통 은하핵보다 강한 빛과 제트(빠른 속도의 물질 분출)를 방출하는 은하핵. 보통 은하핵보다 수백만 배 이상 강한 전파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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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고승범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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