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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 바닷물 범람 사고미스터리

원인은 공명성 너울과 파도의 보강간섭

지난 5월 4일 낮 12시41분쯤 충청남도 보령시 앞바다 죽도 인근 선착장과 방파제, 그리고 500여m 떨어진 갓바위에서 낚시객과 관광객 수십 명이 갑자기 밀려든 5m 높이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쳤다.

이날 사고는 날씨가 나쁘지 않아 사고지역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전혀 사고에 대비하지 못해 피해가 컸다. 바닷물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졌다가 5m 높이의 큰 파도로 갑자기 밀려들었다는 게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날씨가 나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높은 파도가 밀려왔을까?
 

바닷물 범람 사고가 일어난 충남 보령 앞바다의 위성사진. 방조제 한가운데 있는 죽도에서 피해가 컸다.


잔잔한 파도라도 해안에 오면 ‘벌떡’

바다에서 파도를 일으키는 힘은 주로 바람에서 온다. 바람이 바다 표면에 마찰을 일으켜 물 입자를 위 아래로 이동시키면 중력이 복원력으로 작용해 진동한다. 이 진동이 옆으로 전해지면서 파동 형태의 파도가 만들어진다.

잔잔한 바다 표면에 바람이 불어 파도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파도의 마루 부분이 삼각형 모양으로 뾰족하다. 풍속이 초속 1~2m 이상이면 주기가 2초 정도 되는 물결파가 생기는데, 이런 파도를 ‘풍랑’이라고 한다.

풍랑이 해안에 접근하면 수면의 깊이가 얕아지면서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파도를 볼 때는 높이가 별로 높지 않고 속도도 느려 보이던 파도라도 막상 해안으로 밀려왔을 때는 생각보다 규모가 세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원근감에서 오는 착시 효과도 그 이유지만, 파도의 아랫부분이 느려진 사이 파도의 윗부분이 그 위에 쌓이며 파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마치 전력질주를 하다가 다리가 걸리면 상체가 앞으로 쏠리며 넘어지듯 말이다.

파도가 해안가로 밀려오다가 파장의 2분의1 깊이가 되는 지점부터 파도가 높아지고 파장이 짧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해안가에 이르러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데 이를 ‘연안쇄파’라고 한다.

해안가에 직접 피해를 주는 연안쇄파는 바람의 세기가 셀수록 위력이 커진다. 기상청은 바다에서 10분 동안 평균 풍속이 초속 14m 이상인 상태가 3시간 이상 지속되거나 파도의 높이가 3m를 넘을 것으로 예상될 때 풍랑주의보를 발표한다.

이번에 보령에서 발생한 사고는 태풍이나 강한 저기압이 만든 풍랑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파도의 높이는 0.1~0.2m로 잔잔했고 바람도 초속 0.5~4m로 세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파도는 따로 있다.
 

파도의 종류^바람 또는 지진이나 화산 같은 지각운동으로 만들어진 파도는 마루의 모양이나 파장, 주기에 따라 풍랑, 너울, 연안쇄파로 나뉜다.


1. 풍랑 : 바람이 바다 표면에 마찰을 일으켜 파동을 일으킨다. 파도의 마루 부분이 뾰족하고 주기가 2초 이내로 짧은 편이다.
2. 너울 : 파도의 높이와 파장이 제각각인 풍랑끼리 만나면 잔파도가 사라지는 대신, 마루가 둥글고 파장이 긴 너울이 생긴다.
3. 연안쇄파 : 파도가 해안가에 다다르면 바닥과의 마찰 때문에 파도가 높아지고 파장이 짧아진다.

죽도 침범한 ‘공명성 너울’

풍랑이 계속 이동하다보면 파도의 높이와 파장이 제각각인 다른 파도가 만나 잔파도는 사라지고, 대신 마루가 둥글고 파장이 긴 파도만 남는 경우가 있다. 이런 파도를 너울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너울을 이번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너울이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데다 사고 지역 날씨와 크게 상관없이 먼 곳으로부터 밀려온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해저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지각변동에 의해 발생하는 ‘쓰나미’(지진해일)일 가능성도 있지만, 당시 큰 규모의 지진파는 감지되지 않았다.

너울은 파도의 마루가 완만한 대신 폭이 길어 수십~100m에 이르고, 주기도 15초~수분 정도로 길다. 파도가 높지 않아도 한 번에 밀려오는 바닷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파괴력이 크다. 게다가 여러 가지 파장의 파동이 중첩돼 나타나는 바다에서 긴 파장을 갖는 너울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 죽도에 피해를 준 큰 규모의 너울은 어디서 만들어진 걸까?

한국해양연구원 강석구 박사는 서해상에서 이동하는 국지성 저기압에 주목했다. 강 박사는 “바다에서 발생한 저기압은 바닷물을 들어 올려 파도를 일으키는데, 이때 저기압의 이동 속도와 파도의 전파속도가 맞아 떨어지면 너울이 해일 규모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큰 규모의 너울을 ‘공명성 너울’또는 ‘기상쓰나미’라고 부른다. 흔들리는 주기에 맞춰 그네를 밀어주면 진폭이 더 커지는 원리다.

강 박사는 지난해 3월 열린 춘계해양과학공동학술 대회에서 그해 3월 전남 영광 법성포 해안에서 120여 채의 가옥 침수 피해를 낸 큰 규모의 너울은 양쯔강 부근에서 발생해 영광으로 이동한 저기압이 만든 공명성 너울이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저기압의 이동속도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던 파도의 전파속도와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강 박사는 “이번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공명성 너울을 일으켰다고 의심되는 저기압이 중국 양쯔강 부근에서 발생해 태안 쪽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공명성 너울의 생성원리^보령 앞 바다에 몰아친 파도는 저기압과 파도 사이의 공명현상이 만든 공명성 너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조제에 반사된 파도, 보강간섭 일으켜

전문가들은 보령 앞바다에서 나타난 ‘괴파도’가 서해안 일대에서 관측됐다는 점에서 사건의 원인을 큰 규모의 너울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사고가 일어날 무렵 먼 바다에서부터 1~2m 높이의 너울성 파도가 몰려오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관측됐다. 심지어 전북 군산, 충남 서천 등 중부 서해안 일대에서는 어선이 전복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럼 왜 보령 앞바다에 있는 죽도에서 피해가 특히 컸을까. 지형적인 특징에 원인이 있지는 않을까. 가능성이 있는 현상으로는 ‘부진동’이 있다.

만이나 항만처럼 두 면 또는 세 면이 닫힌 지형은 둑의 폭이나 길이에 따라 고유한 진동주기를 갖는다. 이 고유진동 주기와 일치하는 주기의 파도가 밀려오면 공명현상*이 나타나 파도가 높아지는데, 이를 부진동 또는 ‘항만공명’이라고 부른다.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몸을 담그고 특정한 주기로 몸을 움직이면서 물결을 일으키면 어느 순간 욕조 위부분까지 진폭이 커져 물이 욕조 밖으로 밀려나는 현상과 비슷한 원리다. 2005년 2월 9일 제주도 옹포리 옹포항이 침수된 현상은 부진동의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피해가 가장 컸던 죽도는 부진동이 일어나는 지형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죽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해안선을 따라 방조제가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고, 그 앞 바다 한가운데 죽도가 연륙교로 방조제와 연결돼 있다. 닫힌 지형이 아니기 때문에 고유진동 주기가 나타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해양연구원 박광순 박사는 “파도의 회절과 반사, 중첩 같은 파동의 성질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결과”라며 “일직선의 방조제 바로 앞에 있는 섬의 지형적 특징이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파도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해안가에서 연안쇄파로 부서지며 위력이 약해진다. 하지만 둑이나 방조제에서는 세력이 약해지지 않고 파도가 반사된다. 이때 방조제에 반사된 파도가 밀려오는 입사파와 보강간섭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파도의 보강간섭^죽도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은 방조제와 나란한 죽도 양쪽 끝(, ) 이었다. 전문가들은 방조제에서 반사된 파도가 입사파와 보강간섭을 일으켜 높은 파도가 생겼다고 본다.


한 차례만 발생한 파도, 의문으로 남아

기상청은 지난 5월 8일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을 거쳐 이번 보령 앞 바다 범람사고를 ‘해일성 너울과 지형적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일정 주기를 두고 여러 차례 계속되는 너울과 달리 죽도를 덮친 파도는 한 차례만 발생했다는 점은 해결되지 않은 의문으로 남는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경우 서해안 해수면의 상승 정도나 국지적인 기상자료가 많지 않아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아무리 예측하기 어려운 자연현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피해는 미리 막을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바다라도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안전사고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일이 최선이라는 얘기다.

공명현상*
외부 진동의 진동수와 물체의 고유진동수가 같아질 때 진폭이 커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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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유한진
  • 안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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