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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의 화학 축제 '화탐프'

예비 화학도, 실험에 사활(死活)을 걸다

“우리는 실험에 미친 팀이다?!”

2007년 제 4회 화학탐구 프런티어 페스티벌(이하 화탐프)에서 대상을 받은 인천과학고 2학년 김정호 군과 이치우 군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들은 이 대회에 참가해 약 세달 동안 평소 관심 있던 과학 주제를 마음껏 탐구했다. 그야말로 실험의, 실험에 의한, 실험을 위한 예비 과학도인 셈.

열혈 실험인(人)답게 김 군과 이 군의 팀 이름은 ‘격지탐구’(格知探究)다.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 지식을 완전하게 다듬는다는 뜻의 ‘격물치지’와 ‘과학탐구’의 합성어다.

이들은 파란색 잉크의 확산속도가 용매의 종류와 온도, 농도 같은 환경 조건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했다. 실험 도중 손이 스머프처럼 파랗게 변하고, 새하얀 실험복도 새파래졌다. 그들이 거머쥔 대상이라는 쾌거도 대회기간 동안 실험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화탐프’덕분에 고등학교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두 학생의 모습에서 예비 화학도의 열정이 묻어났다.
 

인천과학고‘격치탐구’팀은 파란색 잉크의 확산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해 2007년 화탐프에서 대상을 받았다. 사진은 실험 중 잉크가 확산된 면적을 재는 모습.


제안서엔 독창성 담아야

SK에너지, LG화학, 한화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과 교육과학기술부가 공동주최하는 ‘화학탐구 프런티어 페스티벌’이 4월 18일 막을 올렸다. 이 대회는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이끄는 4대 기업이 미래 창의적 화학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후원하는 대회로 올해 5주년을 맞았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두 명이 한 팀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과 에너지, 생명, 생활과학, IT 등 화학과 관련된 아이디어 제안서를 5월 29일까지 대회 홈페이지(www.ilovechem.co.kr)에 제출하면 된다. 아이디어 제안서는 창의성, 과학적 근거, 과학적 탐구능력을 기준으로 두 차례에 걸쳐 심사를 받는다.
 

화학 연구는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분자 동아사이언스 고유의특성을살펴보는일부터시작한다.


과정에 충실하라

예선을 통과한 상위 40개 팀은 약 세달 동안 실험한 뒤 그 결과를 포스터와 프리젠테이션으로 발표한다. 국내에서 이렇게 실험을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과학대회는 화탐프가 유일하다. 실험에 비중을 둔 덕분인지 화탐프 수상자들은 서울대를 비롯해 KAIST,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에 입학하는 2차 성과도 거뒀다.

5년째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김종득 교수는 “2007년에는 실험 방법이 충실하고 기초과학과 관련된 연구주제를 택한 팀이 대상을 거머쥐었다”며 “특히 실험과정에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팀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난해 수상자들은 대회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화탐프는 무엇보다 실험기간이 길다. 김 교수는 “이는 실험 과정에 비중을 둬서 평가하겠다는 의미”라며 “긴 시간 동안 실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을 때 학생들이 어떻게 위기를 넘기는지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세운 가설과 실험결과가 달리 나오는 ‘위기’가 찾아와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실험결과가 예상과 다른 이유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해 실험결과의 정확도를 높인다면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격지탐구’팀의 경우 실험에 수백 번 실패했다. 이들은 용질을 용매 위에 떨어뜨릴 때 스포이트와 손의 힘이 확산속도에 영향을 미쳐 실험결과 값에 오차가 생기는 문제를 발견했다. 이때 파란색 잉크를 수용성 알약에 넣어 수조에 떨어뜨리자는 의견, 스포이트에 모래를 넣어 잉크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의견 등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됐다. 결국 스포이트의 벽을 따라 잉크를 떨어뜨렸을 때 가설로 세운 수치와 근사한 값을 얻었다. 이 군은 “실험결과가 가설과 다르게 나왔을 때 당황하지 않고 원인을 탐구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맺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가지 더. 실험과정을 노트에 꼼꼼히 정리해야한다. 금상을 수상한 민족사관고 졸업생 김지윤 양과 정다은 양은 1달 동안 키운 조류가 담긴 플라스크를 실험 중 실수로 깨뜨렸다. 정 양은 “플라스크를 깬 것이 너무 속상해 실험노트 한 구석에 조그만 글씨로 써놓았는데, 프리젠테이션 할 때 한 교수님께서 플라스크를 깨서 속상하지 않았냐고 말씀하셔서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은 세달 동안의 실험과정을 실험노트에서 파악한다는 말이다.
 

화탐프 본선대회에서는 세 달 동안 자신이 연구한 주제를 포스터로 발표한다. 이때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질문에 긴장하지 않고 대답을 잘 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사진은 2007년 화탐프 본선 대회 모습.


고정된 틀을 깨라

현대과학은 수많은 선배 과학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대회도 참가자들이 얼마나 참신한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본다. 은상을 받은 유용진 군(현 한양대 공대 1년)은 취미를 연구로 발전시킨 경우다.

그는 프라모델 만드는 일이 취미다. 프라모델에 색을 입힐 때마다 벤젠이 들어있는 광택제를 쓰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 취미생활을 즐기기는커녕 건강 걱정이 앞섰다. 그는 천연염료를 사용해 프라모델에도 칠할 수 있는 천연광택제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에서 겪은 일을 연구주제로 삼은 창의성이 돋보인 경우다.

황진연 군(현 서울대 재료공학부 1년)과 오영록 군(현 KAIST 1년)은 메조포러스라는 재료로 온도센서를 만들었다. 특히 이들은 지시약인 페놀프탈레인 용액을 이용하면 온도 변화에 따라 색이 변하는 센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실험 결과 지시약 가운데 페놀프탈레인이 온도에 따른 색깔 변화가 선명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학생들의 창의력은 지도교사의 역할에 따라 꽃을 피우듯 성장할 수 있다. 최우수교사상을 받은 인천과학고 이천정 교사는 “학생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학생들이 제시한 의견을 매만져준 것이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전의 엔진을 켜라

화탐프에 참가한 학생들은 도전정신이 투철하다. 김지윤 양과 정다은 양은 해조류에서 추출한 지방으로 대체에너지를 만드는 연구를 했다. 이를 위해 무작정 대전에 있는 배제대 생물학과 유순애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두 학생의 열정에 깊은 인상을 받은 유 교수는 해조류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렇듯 평소 학교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연구에 뛰어든 참가자들은 연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도전정신을 불태웠다.

도전하는 마음은 팀원을 끈끈한 우정으로 맺어주기도 했다. 황진연 군과 오영록 군은 실험이 힘들거나 지루할 때마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황 군은 “힘들 때는 서로 격려하고 기쁠 때는 같이 웃어주는 것이 친구겠죠”라며 “든든한 친구를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

대회에 입상한 학생 12명은 올해 1월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MIT, 콜롬비아대 등 미국의 여러 명문대를 탐방하는 기회도 얻었다. 해외연수에 참여한 학생 12명은 입을 모아 “드넓은 세상을 느꼈다”고 말했다. 과학발전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이치우 군은 “해외에서 열심히 과학에 매진하는 선배들을 보니 내 미래도 밝은 것 같아 힘이 됐다”며 “화탐프 수상자 선배들이 공부할 때 큰 도움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화탐프 참가자들은 세 달 동안 실제 연구원이 된 듯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한다. 그러면서 과학을 탐구하는 마음, 태도, 열정을 깨닫는다. 이 경험이야말로 화탐프 참가자들이 얻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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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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