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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절망이 낳은 명작 모딜리아니展

눈동자 없는 눈 백조처럼 긴 목 에 담긴 심리는?

'눈동자 없는 눈' '백조처럼 긴 목'에 담긴 심리는?

▒ 저주받은 예술가로 알려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년). 그는 술에 절어 지내는 날이 많았고 가끔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릴 적 결핵을 앓은 허약한 몸은 방탕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1916년 그는 젊은 미술학도였던 잔 에뷔테른을 만나 열렬히 사랑했고 잠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행복은 길지 않았다. 1920년 늑막염이 악화되면서 모딜리아니는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잔은 절망을 견디지 못하고 창밖으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돼주겠노라”는 말을 남긴 채.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마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이들 부부가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을 찾았다. 국내 최초로 열리는 모딜리아니와 잔의 전시회에서는 길쭉한 인물 표현과 단순하면서 대담한 윤곽선이 특징인 모딜리아니의 그림, 그리고 아내이자 모델이었으며 예술적 동지였던 잔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뷔테른^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9, 캔버스에 유채, 66×47cm.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심리학자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면밀히 관찰한 뒤 심리를 파악한다. 정확한 진단과 평가가 내려지면 인지행동치료나 정신분석치료, 연극치료, 음악치료로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최근 환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림이 주목받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같은 자극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입력’되면 과거의 경험이나 현재의 심리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반응이 ‘출력’돼 나온다. 마찬가지로 어떤 대상을 바라본 뒤 그 자극을 그림으로 표현할 경우,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심리상태가 그림에 반영된다. 갈등이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치료법으로 그림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자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의사소통과 감정표현의 도구로 사용된 그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할 때보다 그림을 그릴 때 감정적으로 느슨해지고 편안해질지도 모른다.

모딜리아니 그림과 눈 맞출 수 없는 이유

모딜리아니의 몇몇 그림은 몹시 낯선 느낌이 든다. 멀리 허공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왜 그럴까. 바로 인물의 눈에 눈동자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딜리아니는 자신의 모델들과 교감을 나누길 애타게 원했지만 그러지 못한 아쉬움과 허무함, 좌절, 무기력함을 이런 방식으로 그림에 투사했는지 모른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일상적인 비유에 덧붙여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빌리면 눈은 지혜의 상징이면서 지식과 지각의 상징이다. 또는 자신의 생각과 욕망, 행동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내부 검열자로서 ‘초자아’를 상징한다. 눈은 다른 사물을 바라보는 도구인 동시에 내면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체기관이기도 하다. 특히 눈동자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먼저 외부자극에 반응하는 부위이며 눈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림 검사에서 눈을 그리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다면 자기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거나 감정적인 공허감을 느끼고, 친밀한 대인관계에 목말라한다고 해석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성장 초기에 심각한 애정 결핍을 경험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눈동자가 없는 눈은 초점이 없고,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뿐 아니라 대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자존감이 부족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모딜리아니는 모델과 나눈 주관적 교감에 따라 눈동자의 유무를 결정하지 않았을까. 그가 의식적으로 어느 특정한 신체부위를 생략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모델에게 느낀 서먹함이 모딜리아니로 하여금 눈동자를 그리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화룡점정’이라는 말처럼 나무랄 데 없는 미인을 그려놓고도 구멍이 뻥 뚫린 듯 눈동자를 비워둔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딜리아니가 잔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 잔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고.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게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18년 5월 파리에 유행하던 독감을 피해 프랑스 남부로 요양 갔을 때 첫딸이 태어났고 이들 부부는 꿈처럼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이때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 ‘어깨를 드러낸 잔 에뷔테른’에는 그 감정이 오롯이 담겨있다. 수줍은 듯 홍조를 띤 볼과 윤기를 띤 갈색 머리카락, 목욕 가운을 살짝 걸치고 있는 모습에서 행복해하는 잔과 그를 바라보는 모딜리아니의 시선이 느껴진다. 바로 이 순간 잔의 눈동자는 터키석처럼 푸르게 빛났다.
 

아니 비야네^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9, 캔버스에 유채, 100×65cm.


백조처럼 긴 목과 둥근 어깨에 숨은 심리?

유난히 긴 목과 단아한 계란형의 얼굴, 둥근 삼각형의 어깨. 모딜리아니가 남긴 여인의 초상들은 대부분 상반신을 드러낸 채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모딜리아니는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보고 압도당했다고 한다. 그 뒤 비너스의 단순한 원통형 목덜미를 자신의 그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목이 단순해질수록 시선은 얼굴로 쏠리기 마련이다. 백조처럼 긴 목이 받치고 있는 얼굴은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심리학적으로 목은 지적 능력을 상징하며 의식과 무의식, 지성과 감정의 관계를 해석하는 실마리가 된다. 지능이 낮거나 인지 발달이 덜된 사람에게서 종종 목 없는 사람의 그림이 나타나곤 한다. 모딜리아니는 글쓰기를 즐기던 어머니와 스피노자를 좋아하던 이모와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며 부유한 상인의 집에서 자랐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그를 지적인 화가로 길러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어깨는 고통이나 슬픔, 책임이 지워지는 곳이다. 군인의 어깨처럼 모양이 각지면 긴장하거나 경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인물의 어깨는 대체로 부드러우면서 둥글다. 가방끈 하나 제대로 매지 못할 만큼 좁은 어깨지만 여기에는 세상의 근심과 걱정, 의무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그의 소망이 녹아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초상은 대개 상반신이며 얼굴과 몸이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이상하게도 인물의 전신을 그린 그림은 단 2점밖에 없는데, 모딜리아니가 반신상을 주로 그린 까닭은 뭘까. 이 경우 대인관계에 부담을 느끼거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순간적 욕구로 인한 공허함과 좌절, 소외감이 누적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으면 그 사람을 전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한다. 만약 특정 신체 부위가 변형됐거나 생략 또는 과장됐다면 그와 관련된 갈등과 왜곡이 그림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는 사랑을 원하면서도 책임질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죽기 전 둘째를 임신한 잔은 친정집에 머물고 있었다. 잔을 보기 위해 처가에 갔던 그는 문전박대당하고 돌아왔다. 어린 모델을 그릴 때만은 눈동자를 또렷이 그려 넣을 만큼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그가 받은 상처는 더 컸을 것이다. 사랑에는 어김없이 책임이 뒤따르고 그 부담감을 버텨내야 한다는 점이 모딜리아니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살^잔 에뷔테른, 종이에 수채, 20.7×27.9cm.


불안과 자살, 행복 암시하는 드로잉

모딜리아니의 그늘에 가려있었지만 잔은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사랑하면 서로 닮아간다고 했던가. 세잔 풍의 정물을 그리던 잔은 모딜리아니의 영향을 받은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뜻 봐서는 누구의 그림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다. 동일한 모델을 대상으로 작업한 이들 부부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비로소 차이점이 드러난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초상이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배경을 단순화시켰다면 잔의 작품은 대상을 둘러싼 배경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덕분에 패션과 주변 소품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까지 짐작할 수 있다.
 

열여섯의 나이에 모딜리아니를 만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잔의 정체성은 여전히 사춘기 소녀시절에 머물고 있었다. 아이에 대한 모성보다는 열병 같은 사랑에 휘둘렸을지도 모른다. 건강이 악화된 모딜리아니가 자선병원에 입원했을 때 잔은 근처 여관에 머물면서 베게 밑에 면도칼을 두고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잔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의 신경증적인 불안도 점점 커졌다. 임신 8개월인 자신의 몸에 칼을 꽂은 ‘자살’이라는 작품은 모딜리아니에 대한 사랑과 두려움, 외로움을 암시한다.

모딜리아니가 죽음을 앞두고 그린 ‘청색의 자화상’에 우울함이 배어있듯 내면의 감정은 색과 선, 명암과 채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자신과 타인, 세상에 대한 심리적 해석은 그림의 구도와 구성, 대상의 위치에 반영된다. 유일하게 두 사람이 함께 그린 드로잉에는 그들이 사랑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시절 출산을 앞둔 잔과 모딜리아니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격자로 짜인 촘촘한 의자와 꼭 잡은 두 손은 그들의 영혼이 굳게 결합돼있음을 암시한다.

미술치료에도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있다. 서로 만나 호흡을 맞추고 그림을 그리다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조화로움이 캔버스 위로 녹아든다. 모딜리아니와 잔의 드로잉에서도 마음의 평화로움이 아름다운 선과 색을 창조해냈다. 그림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혹시 미술관을 찾는다면 캔버스 위로 복잡하게 교차하는 사랑과 분노, 절망 같은 심리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때론 그림을 그리며 자신도 알지 못했던 숨은 감정과 마주칠지 모른다.
 

사춘기에 모딜리아니를 만나 사랑에 빠진 잔은 그가 병들어 죽자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삶을 포기했다.
 

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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