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정보통신기술과 전자산업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소비자가전 전시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2008년 1월 7일~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올해 CES에는 2400여개의 전시업체와 14만 여명의 관람객이 참가해 세계 최대의 산업전문전시회라는 위용을 다시금 입증했다. 해마다 CES가 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시장인 미국에서 열리다보니 이 전시회에 참가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CES를 그 해 주력할 신제품과 향후 전략을 발표하는 장으로 삼고 있다. 이번 ‘CES 2008’이 보여준 새로운 IT전자산업계의 기술 트렌드와 움직임을 살펴보자.
Report 1 울트라 HD로 진화한 평판 TV
소비자 전자 분야의 간판 제품인 평판TV는 화질을 개선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기술이 접목되는 흐름이 뚜렷이 나타났다.
표준해상도(SD)→고해상도(HD)→풀(Full) HD로 이어져 온 기술혁신이 ‘울트라 HD’라는 최신 규격을 만들어냈다. 기존 풀HD는 1920×1080 해상도를 지원하는 반면, 울트라HD는 HD의 해상도를 4배로 끌어올린 3480×2160을 지원한다. 삼성전자와 소니는 이번 CES에 각각 82인치 울트라HD LCD TV 시제품을 내놓고 기술력을 뽐냈다.
LCD TV의 단점 가운데 하나인 동영상의 잔상을 해결하기 위한 120Hz 구동기술은 삼성과 소니 뿐만 아니라 샤프와 LG전자 같은 주요 LCD TV 생산업체가 모두 채택해 이 기술이 보편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120Hz 구동기술은 1초에 정지 영상 120장을 빠르게 연결해 전송, 동영상을 구현하는 것으로 기존 60Hz 보다 두 배나 좋은 화질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입체 영상을 즐길 수 있는 3차원 TV도 또다른 트렌드의 한 축을 일궈가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특수안경을 끼고 보는 ‘레디3D’ PDP TV를 선보였고, 필립스는 특수안경이 필요 없는 3차원 TV ‘와우 Vx’를 전시해 기술력에서 삼성보다 한발 앞서고 있음을 자랑했다.
Report 2 자동차와 IT의 만남
CES 2008이 제시한 융합기술 트렌드중 하나는 바로 자동차와 IT의 접목이다. 주최측인 미국가전협회(CEA)는 올해 미국내 자동차용 전자제품 시장규모가 12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전시장 한 관을 ‘자동차안에서’(In-Vehicle)라는 주제 아래 자동차 관련 전자제품으로만 꾸몄다.
GM의 최고경영자(CEO) 릭 웨고너가 기조 강연을 한 일도 이같은 흐름을 반영했다. 웨고너 회장은 “GM은 앞으로 10년 안에 운전자 없이 스스로 목적지까지 운전하는 차량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인운전자 차량은 컴퓨터가 차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며 목적지를 찾아간다. 컴퓨터와 위성안테나는 물론, 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모션센서, 그리고 위성위치추적 장치와 운전 안정화 장치 같은 첨단 기술로 무장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포드와 제휴를 맺고 개발한 차량용 소프트웨어 ‘싱크’(SYNC)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다. 음악검색과 휴대전화와 문자메시지 송수신 같은 기존 기능에 ‘911 지원’도 추가했다. 911 지원이란 자동차 사고로 에어백이 펼쳐지면 911 서비스에 자동으로 사고를 신고하는 기능이다. 게리 샤피로 CEA 회장은 “집 안에 있는 모든 디지털 가전제품이 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차안에서 인터넷과 엔터테인먼트, GPS 내비게이션과 위성방송 서비스를 모두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Report 3 인터넷과 通하라
인터넷 접속은 모든 전자기기가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기능이 됐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IPTV 시장을 겨냥해 PC처럼 방송프로그램을 보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날씨와 뉴스, 주가정보가 자동으로 업데이트 되는 TV를 선보였다.
LG전자가 내놓은 디지털 셋톱박스는 미국 최대의 DVD 대여업체인 넷플릭스가 구축한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제한 즐길 수 있다. 그동안 PC로 인터넷 영화를 봤다면 앞으로는 TV를 인터넷에 바로 연결해 최신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TV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기능을 얹어 새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무선인터넷으로 실시간 교통정보를 받을 수 있는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휴대 단말기와 게임기가 눈에 띄게 늘었다.
휴대전화의 경우 이메일 송수신과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제품이 대세를 이뤘다. 이번 전시회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삼성전자의 ‘블랙잭Ⅱ’를 비롯, LG전자의 ‘보이저’, 모토로라의 ‘모토 Q9 h’는 컴퓨터 키보드의 표준자판배열인 쿼티(QWERTY)방식 자판을 탑재해 손쉽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게 했다.
Report 4 차세대 DVD 표준 경쟁도 볼거리
블루레이 방식과 HD-DVD 방식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DVD 표준 전쟁은 CES 2008에서도 단연 화제였다. 블루레이는 기존 DVD와 호환되지 않고 생산 비용도 많이 들지만 저장 용량이 크고 복제방지기술이 뛰어나 영화사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HD-DVD는 기존의 DVD 생산 라인을 활용할 수 있어 호환성에서 유리하다.
특히 미국 영화시장을 20%이상 점유한 워너브라더스가 전시회 기간 동안 블루레이 표준만 단독으로 지원하는 영화 타이틀을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 CES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워너브라더스는 그동안 HD-DVD와 블루레이 표준을 모두 지원하는 타이틀을 만들어왔다. 워너는 ‘가격보다 품질’을 선택한 셈이다.
반면 HD-DVD 진영의 대표주자인 도시바는 최저 99.99달러(약 9만원) 제품을 내놓고 가격 인하 공세를 벌였다. 도시바는 워너브라더스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가격 공세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입장이다. 도시바는 전시회 이후 다시 50달러(약 4만 5천원)의 추가 가격 인하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당분간 두 표준을 모두 지원하는 전략을 유지하기로 했다. 두 회사 모두 이번 전시회에 두 가지 표준을 모두 지원하는 듀오 신제품을 선보였다.
전동수 삼성전자 AV사업부 부사장은 “PC에 내장하거나 휴대하는 IT용 DVD 드라이브는 아직도 HD-DVD를 읽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향후 PC쪽 시장이 어느 표준으로 옮겨가는 지를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port 5 더 얇게 더 아름답게
이번 전시회에서는 ‘디자인 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제품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선보였다.
색상과 소재의 변화를 시도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평판TV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두 회사는 블랙과 레드 색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하이그로시와 크리스털 소재를 접목한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삼성전자는 새 평판TV 디자인 컨셉트를 ‘터치오브컬러’(ToC)로 삼고 투명한 소재와 불투명한 소재를 섞어 다중의 색감을 표현했다. LG전자는 TV 하단에 구멍을 내고 투명한 유리로 전원부를 디자인했다. 후발업체의 디자인 베끼기를 막기 위해 사출방법과 소재선택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두께를 줄이는 경쟁은 일본과 한국 업체가 선의의 경쟁 속에서 주도했다. 일본 언론은 히타치가 이번 전시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얇은 19mm LCD 모니터를 선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LG전자는 방송수신장치(튜너)를 내장하고도 두께 45mm인 신형 LCD TV를 소개하며 단연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종 승리는 튜너를 내장하고도 두께가 24.5mm밖에 되지 않는 삼성전자의 ‘울트라 슬림 LCD TV’가 차지했다. 히타치와 샤프가 내놓은 가장 얇은 LCD TV는 두께가 각각 35mm와 29mm였다.
삼성전자 신상흥 전무는 “삼성은 LCD 패널부터 튜너까지 핵심 부품을 모두 직접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며 “시장 반응을 보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양산하겠다”고 말했다.
Report 6 기업 가치의 핵심 ‘그린 IT’
‘그린 IT’로 명명되는 환경 이슈는 CES에 참가한 전세계 IT·전자산업계의 공통 관심사였다. 일본 마쓰시타와 도시바, 샤프는 CES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국에서 판매한 가전제품을 재활용하기 위해 합작회사인 ‘MRM’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설립될 MRM은 미국 전역에 거점을 두고 폐가전 제품을 수거해 이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ECO IDEAS’라는 환경보호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벌일 계획이다.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을 역으로 활용해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의 이미지를 심겠다는 전략이다.
환경을 고려한 전자제품도 대거 선보였다. 일본의 후지쯔는 옥수수 녹말을 원료로 재생 플라스틱을 개발해 이를 외장재로 활용한 ‘옥수수 노트북PC’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옥수수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내구성이 강하면서도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재활용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 파나소닉 도시히로 사카모토 회장은 “전세계적으로 환경 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기업이 먼저 준비해야한다”며 환경이 기업의 중요한 생존변수가 됐음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