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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사랑받은 영구불변의 상징 몸값 치솟는 금의 세계

잉카제국의 무덤에서 발굴된 금 공예품.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잉카제국은 금을 차지하려는 서구인의 침입으로 멸망했다고 전해진다.


최근 국제유가가 연일 치솟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 뉴스로 전세계인은 한겨울 난방비부터 걱정했다. 그런데 유가 못지않게 날이 갈수록 값이 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최근 달러 가치가 낮아지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미국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달러투자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불을 지폈다. 금리가 낮은 달러에 투자를 해봤자 이득을 못 볼 것을 간파한 투자자들은 현물인 ‘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수요가 늘자 금값은 연일 올라 1월 11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인도분 금값(2월)이 사상 처음으로 온스(oz., 1oz.=28.35g)당 900달러(한화로 84만원)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금값이 올해 안에 약 온스 당 1000달러 벽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금값이 제대로 금값’인 세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구리나 철 같은 일반 금속이 아니라 금에 투자하는 이유와 금이 유독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이 과학에 숨어 있다.

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고귀함

물건의 값은 희소성의 법칙을 따른다. 사람의 욕망이 무한한데 비해 자원은 양이 정해져 있다(희소성). 자원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경쟁이 심해지므로 희소한 자원은 그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고 ‘몸값’도 높다.

금이 대표적이다. 금은 지구상에 소량뿐이다. 희소한 만큼 금을 가질 수 있는 자는 권력이 있거나 재력가여야 했다. 귀금속의 ‘귀’는 귀하다는 뜻이 아니라 ‘희귀’(稀貴)하다는 뜻이라지만 두 단어가 교묘히 혼용되는 것은 우연일까.

금은 양은 적지만 보통 금속보다 채굴하기 쉽다. 본모습 그대로 자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리튬(Li)이나 나트륨(Na) 같이 반응성이 큰 금속(1족, 알칼리 금속)은 전자를 쉽게 뺏겨 아름다운 광택을 잃는다. 금속이 전자를 잃으면 표면에 붉은색 녹이 생기고 녹이 점점 번져 금속의 양도 줄어든다. 그런데 금은 녹이 슬지 않는다. 최외각전자가 오비탈을 모두 채워 전자를 잃기 어려운 구조를 갖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다. 높은 에너지가 있어야만 안정한 상태가 깨지므로 물질 변화가 거의 없다.

금은 ‘영구불변’을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는 물론 에트루리아, 콜롬비아, 멕시코, 한국의 신라까지 수많은 고대왕국의 묘에서 금으로 만들어진 유물이 몇 천 년이 지난 오늘날 원형 그대로 발굴되는 이유도 금의 불변성 덕분이다.

금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금색’은 사실 금의 고유 색이 아니다. 금속은 원래 고유 색이 없다. 금이 노란색을 띄는 이유는 여러 파장의 빛이 섞인 백색광에서 노란 색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란 금도 20nm(나노미터, 1nm=${10}^{-9}$m) 크기로 작아지면 빨간색이나 보라색으로 보인다. 금에 황금색의 고귀한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인간이라는 말이 허투루 와닿지 않는다.
 

금속공예가 홍정실의 작품으로 가늘게 뽑은 금선을 상감기법으로 철의 표면에 고정시켰다. 상감기법은 금의 연성을 이용한 한국 전통 기술 중 하나다.


연성과 전성의 제왕

금은 고귀한 가치를 조형으로 표현하려는 금속 공예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더구나 쉽게 늘어나고 쉽게 펴지기 때문에 공예가가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다. 1g의 순금만 있으면 길이가 3km 이상인 금선을 뽑아낼 수 있다(연성). 또한 얇게 펴면 두께가 0.00025mm 이하인 얇은 금박을 만들 수 있다(전성). 이 정도 두께면 반쯤 투명한 금박이 빛을 통과시킬 정도다. 학교나 사무실에서 우리가 흔히 쓰는 일반 A4용지의 두께가 0.1mm 내외인데 비하면 아주 얇다. 지구상의 어느 금속도 금만큼 전성과 연성이 좋지 않다.

금이 전성과 연성의 ‘제왕’인 이유는 독특한 결합력에 있다. 금은 금속결합을 한다. 금속 원자의 가장 바깥쪽 전자껍질이 이웃 원자의 가장 바깥쪽 전자껍질과 겹치면, 에너지가 없어도 바깥 껍질에 있는 전자가 원자에서 원자로 이동한다. 아울러 금속원자의 최외각전자도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것이 자유전자다. 금속결합은 자유전자를 잃은 금속이온과 자유전자 사이에 잡아당기는 힘으로 이뤄진다.

금속결정에서는 최외각전자들이 결정의 격자 사이사이를 자유로이 이동하며 결정을 결합시킨다. 그러므로 외부 충격으로 늘어나거나 펴지는 경우 결정격자에 있는 이온들이 쉽게 이동한다. 또한 이온 사이에 자유 전자가 있기 때문에 이온 간에 반발력이 없어 금속이 쪼개지지 않고 전성과 연성만 좋아진다.

금은 이제 전자·항공 등 첨단 산업에서 필수적인 재료로 변신했는데 그 이유 역시 전성이 좋은 성질이 한몫했다. 가늘게 늘여 뽑은 금선은 컴퓨터 본체(CPU) 기판에 많다. 칩 주변에 지네의 발처럼 삐죽삐죽 나온 부분이 있는데, 전기전도도가 높은 금의 성질을 십분 활용한 전극이다. 휴대전화에 금선을 많이 넣을수록 송수신 감도도 높아진다.
 

17세기 프랑스인은 질병을 막기 위해 ‘향료알’을 몸에 지녔다. 달걀모양의 향료알 표면에 금을 입히고 귀금속으로 장식했다. 금공예 화려함의 극치를 볼 수 있다.


찬란함 뒤에 가려진 슬픈 사연

금은 금속의 ‘왕’으로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금의 운명은 그다지 부러울 것이 못된다. 금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거나 박해를 받는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금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금이 땅속에서 나와 빛을 보자마자 어두컴컴한 금고나 지하창고에 감금한다.

금에 대한 소유욕은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대항해시대인 15~17세기 초 유럽은 금을 갖고픈 욕망에 들썩거렸다. 동쪽 육로는 이슬람 국가들이 막고 있었기에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는 뱃길을 개척해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했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등을 정복했다. 동서양의 패권구도가 ‘금’으로 인해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금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동착취의 수단이었다. 1800년대 브라질 내륙의 광산도시인 ‘오루 프레토’(검은 황금이라는 뜻)에서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가혹하게 학대했다. 강제노동을 벗어나려는 노예들을 통제하기 위해 광산 옆 도로에 뾰족한 돌을 깔아놓을 정도였다. 맨발이던 노예들은 길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현재도 저개발국가의 금광에는 안전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뜨거운 지하 막장에서 금광석을 캐는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눈부실 만큼 찬란한 금의 뒷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얽혀있는 셈이다.

금의 원소기호 ‘Au’는 헤브라이어로 빛을 뜻하는 ‘aus’에서 왔다. 영어의 gold도 산스크리트어로 빛을 뜻하는 ‘jvolita’에서 땄다. 금의 황색은 고귀함을 뜻한다. 그러나 그 빛이 잘못 쓰여 인류를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한편 고귀한 금속인 금을 만들려는 노력은 중세 서양에서 연금술(鍊金術)로 이어져 과학발전을 이끌었다.

‘빛’을 뜻하는 금이 인류에게 찬란한 빛이 될지, 부끄러운 역사를 비추는 빛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미다스 왕이 욕심을 부려 사랑하는 딸까지 금으로 만든 뒤 뒤늦게 후회했던 것처럼, 인간이 금을 독점하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금이 화려하게 빛나지 않을까.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을 ‘포티-나이너스’(forty-niners)로 불렀는데, 현재 캘리포니아 미식축구팀 이름인‘포티-나이너스’도 여기서 유래했다.


금은 ‘순수’할 수 없다?!

금이 자연에 순수하게 존재해 귀금속이라는 대우를 받고 있지만, 정작 순금은 무르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다. 예를 들어 치과에서 금니를 만들 때도 반드시 합금을 한다. 순금으로 이를 만들면 얼마 안가서 이에 부딪혀 마모가 일어나 금니 대부분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이다. 반지 같이 피부에 닿는 시간이 긴 장신구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순금에 다른 금속을 약간 섞어 단단하게 만들고 색상도 다양하게 만든다. 흔히 쓰이는 금속은 은(Ag), 구리(Cu), 니켈(Ni), 아연(Zn), 팔라듐(Pd)이다.

순금은 24k(캐럿)으로 부른다. 오랜 옛날 중동에 ‘캐럽’이란 식물이 있었는데, 캐럽을 말리면 보통 어른 손에 24개가 잡혔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기준으로 금이나 소금 같이 크기가 작고 귀한 음식의 거래 기준으로 삼았다. 순금을 24k로 부른 것도 여기서 유래했다.

액세서리에 새겨져있는 18k는 18/24의 약식이다. 즉 75%가 금이고 나머지 25%가 은이나 구리 같은 다른 금속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14k도 14/24, 즉 제품에 금이 약 58% 들었고 다른 금속이 42% 들었다는 뜻이다.

밝고 노란 색상이 순금색이라면, 합금하는 금속에 따라 약간 붉은 색(홍금), 녹색에 가까운 노랑(녹금), 회색이나 흰색(백금) 등 미묘한 색상 변화가 나타난다. 합금에 첨가되는 금속은 주로 은과 동이다. 장신구로 흔히 쓰이는 합금은 강도와 빛깔이 적당히 아름다운 18k, 14k 금이다. 이렇듯 다른 금속과 적절히 합금하면 다채로운 금을 만들 수 있다.

2008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손정수 연구실장
  • 전용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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