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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이유

이미지 상승+경제적 이익


최근 학력을 위조했던 사실이 밝혀진 신정아 씨(위)와 이창하 씨.


2007년 여름, 대한민국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거짓말’로 뜨거웠다. 동국대 전 교수 신정아 씨, 유명 영어 강사 이지영 씨, 인테리어 건축가 이창하 씨, 연극배우 윤석화 씨까지 가짜 학력 파문이 이어졌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숨긴 거짓말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순진한 ‘우리’가 나쁜 ‘그들’에게 속았다며 배신감을 느꼈다.

한때 ‘우리’의 자랑이던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학벌주의, 성격 결함, 사회에 대한 반항 심리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들의 동기는 아주 간단하다.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심리적 또는 경제적 이익이었다. 일찍이 독일 심리학자 루이스 윌리엄 슈테른은 거짓말을 ‘남을 속여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는 허위의 발언’이라고 정의했다.

속이는 인간 ‘호모 팔락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점점 길어지는 피노키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대표적인 동화다.


세상에는 많은 거짓말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태생이 나쁜 ‘그들’ 몇몇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진한 ‘우리’도 거짓말을 한다. 그것도 아주 자주 한다.

2002년 미국 매사추세츠대 심리학과 로버트 헬드먼 교수는 3개의실험조를 만든 뒤 실험 참가자를 2명씩 짝지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10분 동안 자기소개를 하도록 주문했다.

첫 번째 실험조에 속한 참가자에게는 가급적 상대방이 호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기소개를 하라고 주문했다. 두 번째 실험조에게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많이 보여줄 것을 지시했다. 세 번째 실험조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대화를 몰래 촬영했다.

실험이 끝난 뒤 연구팀은 대화 당사자들에게 녹화된 화면을 보여주면서 자기가 한 말가운데 거짓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도록 했다. 그 결과 상대방이 호감을 느낄만한 모습을 보이라는 지시를 받았던 참가자는 10분 동안 약 2개의 거짓말을 했고, 능력 있게 보이라는 지시를 받았던 참가자는 약 2.3개의 거짓말을 했다. 이는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은 참가자가 10분 동안 평균 0.88개의 거짓말을 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실험 참가자들은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들은 “내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놀랍다”고 말했다. 참가자의 60%는 10분 동안 평균 2~3번씩 거짓말을 했다. 대부분이 사소한 거짓말이었지만 자신이 유명 록 그룹의 리더라며 허위 경력을 과장하는 식의 심각한 거짓말도 있었다.

거짓말은 순진한 어린이들까지도 일상에서 효과적으로 쓰는 인간관계 기술이다. 헬드먼 교수는 1999년 초등학교에서 인기 있는 학생 대부분이 엄청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미국 뉴잉글랜드대 인지과학?진화심리학 연구소장인 데이비드 스미스 교수는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속이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팔락스’(Homo Fallax)와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거짓말은 인간이 살면서 자연적으로 터득한 삶의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들은 자기는 음모에 빠져 있고 곧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한 신정아 씨나 황우석 박사의 행동과는 명백히 다르다.보통 사람들은 거짓말로 남에게 손해를 주거나 자신의 금전적,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 보단, 자신의 이미지를 좀 더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우발적 수단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사기꾼은 우발적이지 않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주인공인 최창혁(박신양 분)이나 서인경(염정아 분)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계획 아래 거짓말로 일관하며 끝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사실을 말한다고 착각하는 리플리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은 영화‘리플리’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 리플리(사진)는 사소한 거짓말로 아이비리그 출신 재벌가의 아들을 만난 뒤 신분을 위장하며 새로운 삶을 꿈꾼다.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벨라 드폴로 교수는 “거짓말을 한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거짓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리플리 증후군이 좋은 예다.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병적인 거짓말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범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신정아 씨나 황우석 박사처럼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병적으로 하는 거짓말은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거짓말이나 악의가 있는 거짓말과 다르다. 병적인 거짓말쟁이의 대표적 사례는 반사회적 거짓말쟁이다. 이들은 스스로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기를 치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거나 식은땀이 흐르는 생리적 변화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탐지기도 무사통과한다. 그래도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피해갈 수 없다. 뇌의 전두엽이 이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2005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야링 양 박사팀은 병적으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과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모집해 이들의 뇌를 MRI로 촬영했다.

그 결과 병적인 거짓말이나 반사회적 행동을 한 사람들은 전(前)전두엽 영역의 백질이 일반인보다 22?26% 더 넓다는 사실을 밝혔다.

백질은 정보를 재구성해 뇌의 다른 부위로 옮기는 통로다. 연구팀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전에 했던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백질이 넓다”고 설명했다.

거짓말은 삶의 조건?
 

연극‘라이어’에는 2명의 부인과 살기 위해 거짓말을‘밥 먹듯’하는 인물 존 스미스(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등장한다.


반사회적 거짓말쟁이들은 자신이 공격받으면 음모론을 제기하며 오히려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인다. 이들은 뭘 믿고 이렇게 뻔뻔한 짓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든 ‘우리’의 특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우리의 특성을 이용한다.

사람은 권위를 믿는 성향이 있다.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으면 그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외국 학술잡지가 받아들인 논문이라면 굳이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같은 것이 그 예다.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경력을 쌓은 신정아 씨를 의심하기보단 그녀의 권위에 열광했다. 그것을 노려 성공한 반사회적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성공 전략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거짓말이 들통 나도 ‘그들’은 허탈해하는 ‘우리’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한다.

거짓말 파문이 일면 그것을 기회로 삼아 사회 전체가 정화될 듯 시끄럽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번역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은 사실이 드러나 거짓말 파동을 겪은 방송인 정지영 씨의 번역 책 ‘마시멜로 이야기’는 어린이판까지 만들어져 계속 팔리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와 모순된 상황에서 아이들이 점점 더 거짓에 길들여지는 상황에 우리 사회는 무감각하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팀이던 동료 교수가 서울대에 복귀해 지원을 받으며 연구를 하는 상황을 보면 사회가 거짓에 관대함을 알 수 있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허위를 만드는 거짓말의 환상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 한 병적인 거짓말쟁이의 성공 신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들의 거짓말이 무서운 이유는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의 환상에 길들여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 그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르다는 믿음은 단지 바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남긴 경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생명체는 (삶에 적응하기 위해) 환상이 필요하며 거짓말은 삶의 조건’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즐기는 괴물이 돼도 좋은 것은 아니다. 괴물을 쫓는 자, 그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00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임혜경
  • 이남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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