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막 |
재판장: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합니다. 검사, 먼저 피고인 신문하세요.
검사:피고 630씨. 2007년 4월 뉴스를 보니 당신은 미국 퍼듀대 블라디미르 샐라예프 교수팀이 만든 10nm(나노미터, 1nm=10-9m) 너비의 미세한 바늘들을 원통 형태로 정렬시킨 구조물을 지날 때 마치 물줄기가 바위를 휘돌아 나가듯 그 구조물을 비켜갔다고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630:네. 사실입니다.
검사:그렇다면 당신의 그런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투명망토가 개발됐다며 혼란스러워했던 사실도 알고 있습니까?
630:네. 하지만 가시광 영역에 있는 모든 빛이 아니라 저(630nm 영역)만 그렇게 돌아갔기 때문에 실제로 투명망토가 개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검사:아, 나는 투명망토가 아니라 당신이 빛의 굴절 법칙을 무시하고 ‘거꾸로’ 굴절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피고는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페르마가 제창한 ‘페르마의 원리’를 알고 계시죠? 빛은 물질을 통과할 때 항상 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물질 내에서 광학적 경로의 총합이 가장 작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광학적 경로란 실제로 빛이 진행한 경로의 거리에 빛이 통과한 물질의 굴절률?을 곱한 값입니다. 물론 모든 물질의 굴절률은 양수죠. 하지만 피고는 마치 굴절률이 음수인 물질을 통과하는 것 같더군요.
재판장:이런…. 피고가 페르마의 원리를 무시하고 진행했다면 큰 죄를 저지른 셈이군.
검사:그렇습니다. 일찍이 1968년 러시아 물리학자 빅토르 베셀라고가 처음으로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이론적으로 예측하기는 했지만 공상과학소설 같은 얘기였죠.
예를 들어 물이 담긴 컵에 담긴 젓가락은 부러진 것처럼 반대방향으로 꺾여 보일 테고, 오목렌즈와 볼록렌즈의 초점 맺는 방식이 서로 뒤바뀌고 말겁니다. 한 과학자가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재판장:좋습니다. 증거를 보여주세요.
증거 1 - 빛이 거꾸로 굴절하는 렌즈, 증거 2 - 거꾸로 휘는 젓가락, 증거 3 - 액체 속에 떨어지는 화살 (놀라는 청중)
검사:만약 다른 빛들이 피고처럼 이런 식의 삶을 산다면 큰 혼란이 있을 겁니다. 따라서 피고는 마땅히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 제 2 막 |
재판장:검사의 얘기 잘 들었습니다. 변호사, 반대 신문하세요.
변호사:피고는 어떤 의도로 음의 굴절률을 갖는 것처럼 행동했습니까?
630:의도가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빛의 법칙을 모두 준수하며 살았습니다. 살라예프 교수의 구조물을 지날 때도 저는 매질의 굴절률이 인도한 대로 길을 갔을 뿐입니다. 구조물을 통과해 보니 제가 온 길이 거꾸로 굴절한 것처럼 휘어 있었습니다.
검사:아! 피고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실제로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지나오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변호사:재판장님, 검사는 지금 저의 발언권을 뺏고 있습니다.
재판장:두 분 진정하세요. 검사, 피고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검사:존경하는 재판장님, 19세기 전자기학을 완성한 제임스 멕스웰은 빛이 전기장과 자기장이 만드는 파동이라며, 전자기파가 물질 속에서 전파되는 특성은 유전율(permittivity)과 투자율(permeability)이라는 물질 고유의 양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전율은 물질이 전하를 저장하는 능력이며, 투자율은 자기력선이 물질을 얼마나 잘 통과시키는지 따지는 척도죠. 여기서 유리, 금, 이불화망간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재판장:인정합니다.
(유리, 금, 이불화망간 등장.)
검사:유리 씨, 빛이 당신을 통과할 때 어떻게 통과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유리:전자기파가 제 몸을 통과하면 진동하는 자기장과 전기장 때문에 제 몸의 전자가 따라서 진동합니다. 이때 제 몸 속 전자의 진동은 전자기파에 다시 영향을 미치죠. 이때 전자기파의 진행방향이 꺾이는데 이 현상이 바로 굴절입니다. 보통 유전율과 투자율이 큰 물질일수록 전자가 강하게 진동해 빛을 많이 굴절시킵니다.
검사:유리 씨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 금 씨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굴절하는 정도, 즉 굴절률은 어떻게 결정됩니까?
금:저희 매질들의 몸을 이루는 전자의 진동이 전자기파의 진동과 잘 맞아 떨어질수록 유전율과 투자율 값이 커져요. 전자가 전기장이나 자기장의 진동방향과 반대로 진동하면 음의 값을 갖기도 하죠. 맥스웰의 방정식에 따르면 굴절률은 유전율의 제곱근과 투자율의 제곱근의 곱으로 표현됩니다.
검사: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불화망간 씨 대표로 세 분의 특성을 소개해 주세요.
이불화망간:유리 씨 같은 경우는 유전율과 투자율이 모두 양수에요. 그래서 굴절률 역시 양수인데 이런 분들은 투명해서 적당히 빛을 굴절시키죠. 하지만 금 씨는 가시광선에 대해 유전율이 음수고 투자율이 양수고, 저는 반대로 투자율이 음수고 유전율이 양수에요. 그래서 허수의 굴절률을 갖습니다. 금 씨나 저는 빛을 대부분 반사시키죠.
검사:그럼 세 분 모두에게 묻습니다. 동료 중에 유전율과 투자율이 모두 음수인 분을 본 적 있습니까?
유리, 금, 이불화망간:(입을 모아)글쎄요.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죠. 검사:이상입니다! 재판장:검사가 공부를 아주 많이 했군요. 변호사 혹시 반대 신문 하겠습니까?
변호사:검사님이 저의 발언권을 뺐더니 제가 해야 할 사건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대신 다 해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검사님, 제가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이 자리에 모시면 어쩌시겠습니까?
검사:말도 안 되는 소리!
변호사:훗, 슈퍼렌즈 씨를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 제 3 막 |
변호사:슈퍼렌즈 씨, 자기소개를 해 주세요.
슈퍼렌즈:저는 2001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존 펜드리 교수가 만든 슈퍼렌즈입니다. 음의 유전율을 갖는 물질과 음의 투자율을 갖는 물질을 섞어 만든 복합체로 제 몸을 통과하는 마이크로파를 거꾸로 굴절시킵니다. (청중 - 웅성웅성 소란스럽다.)
변호사:그렇군요. 그런데 이름이 왜 슈퍼렌즈죠?
슈퍼렌즈:광학렌즈를 이용한 현미경은 아무리 배율이 높아도 1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보다 작은 물체는 볼 수 없습니다. 이를 ‘회절한계’라 부르는데, 빛이 파악한 물체의 정보 중 빛의 파장보다 작은 크기에 대한 정보는 양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통과하면서 소멸되기 때문에 발생하죠. 그런데 저처럼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은 이 정보를 거꾸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리적으로 무한히 작은 물체도 정확히 볼 수 있습니다.
재판장:그 말이 사실이라면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잘 활용하면 혼란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 발전하겠군.
변호사:역시 재판장님 이십니다. 슈퍼렌즈 씨, 그럼 당신 말고 또 다른 분이 있습니까?
슈퍼렌즈:물론입니다. 2005년에는 은(Ag)으로 만든 렌즈가, 2006년에는 탄화실리콘(SiC)으로 만든 렌즈가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각각 근자외선(365nm)과 중적외선(10.85μm) 빛에 대해 음의 굴절률을 갖고 있어서 각각의 렌즈는 회절한계보다 작은 크기를 볼 수 있습니다. 2007년에는 미국 UC버클리 시앙 장 교수팀이 은으로 만든 메타물질을 이용해 150nm 크기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렌즈를 만들었는데, 이 친구는 ‘사이언스’지에 소개되기도 했죠. 과학자들은 우리를 ‘메타물질’이라고 부릅니다.
검사:모습을 보아하니 복잡한 평면 구조인 게 물질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변호사:네. 검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태어난 메타물질은 대부분 ‘메타박막’(meta-film)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앞으로 3차원 구조이면서 좀 더 넓은 파장 영역에서 음의 굴절률을 보이는 메타물질을 개발하려고 노력중입니다. 만약 얇은 막처럼 생긴 메타물질을 차곡차곡 쌓아 굴절률을 다르게 한다면 임의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을 개발해 빛의 진행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겠죠. 마치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면 대기에 층이 생기면서 온도에 따라 굴절률이 달라져 신기루가 생기는 원리처럼 말입니다.
재판장:그럼 피고가 통과한 셀라예프 교수의 구조물도 그렇게 만들어진 메타물질인가요?
변호사:예. 그렇습니다. 따라서 피고는 굴절의 법칙을 위배하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
재판장:그럼 이제 판결을 내려야겠군요. 피고 630은 굴절의 법칙을 위배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의 굴절률을 갖는 물질이 앞으로 과학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 기대되므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탕탕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