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경기 안산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46명의 학생이 집단으로 폐결핵에 걸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조사 결과 6~7월에 결핵에 감염된 학생은 34명으로 2006년에 집게된 결핵 감염 환자의 74%에 이르렀다. 질병관리본부가 매주 발행하는 ‘감염병발생주보’에 따르면 6월은 결핵 감염자가 가장 많은 달. 지금이 결핵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다.
암보다 무서운 병
건축현장에서 일하다 결핵에 걸린 이 씨는 의사로부터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증상이 호전돼 결핵약 복용을 중단했는데 오히려 결핵이 악화된 것이다. 의사는 일반 결핵약에 내성이 생긴 ‘다재내성결핵’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다재내성결핵약은 매우 비싸 이 씨는 치료를 다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상태가 됐다.
공석준 국립목포병원 원장은 “치료불가 판정을 받은 결핵은 오랫동안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며 “자신과 가족에게 큰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암보다 무섭다”고 말했다. 폐결핵 환자는 숨이 차서 일상적인 행동이 힘들어진다. 타인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도 외면받는다. 최후통첩을 받은 뒤에도 고통스러운 생활이 5~10년이나 지속된다.
사실 결핵은 항생제가 매우 잘 듣는 병이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약을 성실하게 복용하면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다. 이 씨처럼 결핵약을 복용하다 임의로 중단하거나 정해진 용법대로 결핵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단순 결핵이 다재내성결핵으로 발전하기 쉽다. 다재내성결핵 환자는 본인도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다재내성결핵 환자로부터 전염된 사람은 처음부터 다재내성결핵 환자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핵이 정복된 적은 없어요.” 언론에서 ‘정복된 줄 알았던 결핵이’란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결핵연구원 류우진 역학조사 부장은 단호히 반박했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결핵 발병율과 사망률 모두 최고다. 2005년 한 해 동안 3만5269명이 결핵에 걸렸고 결핵 환자 중 2948명이 사망했다. 2000년 신규 결핵환자가 1만9692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뒤 다시 상승세다.
보건 당국은 우리나라 성인 3명 가운데 1명을 결핵보균자로 추정하고 있다. 결핵이 그만큼 널리 퍼져있다는 뜻이다. 물론 결핵보균자가 모두 결핵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전염성도 없다. 그러나 몸의 면역기능이 떨어질 때 잠자고 있던 결핵균이 활동하면서 결핵에 걸릴 위험이 있다. 고 연령대에서 결핵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20대 결핵환자 많은 ‘결핵후진국’
나이가 많을수록 결핵 환자가 증가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20대 결핵 환자가 많다. 대한결핵협회는 2005년 20대 결핵환자가 6827명으로 70대의 6133명보다도 많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는 결핵 환자가 많은 ‘결핵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포다. 류 부장은 “결핵 환자가 많은 나라일수록 결핵균과 접촉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는 20대에 결핵에 쉽게 걸린다”고 말했다.
반면 결핵 환자가 거의 없는 미국과 스웨덴은 20대 결핵 발병률이 낮다.
아쉽게도 결핵은 백신이 잘 듣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생후 4주 이내 실시하는 BCG 접종은 유효기간이 10년 정도다. 전에는 추가 접종을 했지만 추가 접종을 통한 백신의 연장 효과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로는 하지 않는다.
신약 개발보다 관리가 더 중요
추가 접종이 효과가 없는 이유는 결핵균이 ‘미끼 분자’를 내보내 몸의 면역체계를 혼동시키거나 대식세포를 억제하는 등 면역체계를 피하는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결핵 퇴치를 위해 “신약 개발보다 철저한 관리가 우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결핵에 잘 듣는 항생제를 이미 개발했기 때문에 신약을 개발하기 보다 철저한 관리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공 원장은 “치료에 잘 응하지 않는 환자를 집중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환자들은 다재내성결핵 환자가 되기 쉬워 더 큰 피해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다재내성환자의 비율은 전체 결핵환자의 2.7%로 증가 추세다. 공 원장은 “특히 민간 의료기관의 결핵환자 관리가 소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류 부장은 “외국 중?고교처럼 학생이 결석하거나 직원이 결근하면 원인을 파악해 의심스러울 경우 결핵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며 “학교 보건 교사의 역할이 강화돼야 결핵을 퇴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년에 한번 하는 건강검진에서 결핵이 드러날 땐 이미 같은 반 친구와 가족에게 전염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결핵은 국가를 망치는 병이라 해서 ‘망국병’(亡國病)이라 불렸다. 또 전쟁의 피해를 크게 입은 나라일수록 결핵 환자가 많으니 이래저래 망국병인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6?25 전쟁으로 확산된 결핵의 피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처법은 간단하다. 결핵에 대해 잘 알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망국병을 후대까지 넘겨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알쏭달쏭 결핵 제대로 알기
1. 결핵은 초기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다? 맞다. 이 때문에 병원에 가는 시기를 늦춰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열이나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선 결핵을 의심하고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
2. 결핵환자와 손을 잡거나 키스하면 위험하다? 아니다. 결핵은 신체접촉이나 타액으로 전염되지 않는다. 결핵환자와 대화할 때나 기침 등 공기 중으로 전염된다. 침구, 수건, 식기 등을 격리해서 쓸 필요도 없다. 또한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해서 반드시 결핵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3. 결핵 치료 중인 사람은 격리해야 한다? 아니다. 결핵약을 복용한 뒤 2주가 지나면 전염성은 사라진다. 이때부터는 정상인과 똑같이 생활할 수 있다. 오히려 결핵으로 드러나기 전이 더 위험하다.
4. 한번 결핵에 걸린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는다? 아니다. 결핵은 면역 효과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다시 걸릴 수 있다. 주로 젊을 때 결핵에 걸렸던 사람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면역력이 약화돼 다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5. 결핵은 첫 치료가 중요하다? 맞다. 결핵약은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용법에 따라 성실하게 6개월 동안 복용하면 대부분 완치된다. 결핵약을 띄엄띄엄 복용하거나 용량을 지키지 않고 먹으면 내성균이 생긴다. 이때는 2차 약을 1년 6개월 동안 복용해야 한다. 2차 약은 값도 비싸고 치료 효과도 낮으며 부작용도 크다. 3차 약은 없기 때문에 2차 약으로 치료가 안 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6. 두 번째 결핵에 걸린 사람은 내성균 때문에 위험하다? 아니다. 성실하게 결핵약을 먹어 완치된 사람은 2차 감염이라고 해서 내성균의 위험이 더 크지는 않다. 똑같이 결핵약으로 치료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