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폭탄세일…셰일 업계 비상”
국제유가가 지난 몇 달 동안 급락했다. 우리나라 주유소에서도 리터당 2000원 넘던 기름값이 어느새 1200원대로 내려왔다(1월말 기준). 혜성처럼 떠오른 미국 셰일가스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의 원유생산국들이 ‘작전’을 펼쳤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셰일가스 업체들에게 환경컨설팅을 하고 있는 나경원 에코리서치그룹 대표의 목소리는 달랐다.
중동 원유? 진짜 장애물은 따로 있다
“이번 원유 가격 하락의 공격 목표는 미국 셰일가스가 아닙니다. 러시아죠.”
정색을 한 나 대표가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데 갑자기 견제에 들어간다는 게. 사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를 압박할 필요가 있던 미국이 사우디와 손잡고 원유 가격을 낮춰버린 겁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엄청난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었을 텐데. 셰일가스 생산단가는 중동산 원유 생산가보다 비싸다. 하지만 나 대표의 의견은 달랐다. “주요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난립해있던 작은 업체들이 정리되면서 좋아하는 분위깁니다. 새로운 개발은 멈추고 그동안 파 놓은 유정에서 생산만 하면 버틸만합니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중이죠.”
중동의 ‘원유전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셰일가스를 취재하겠다는 게 처음 생각이었다. 시작부터 난관이다. 그렇다면 셰일가스 앞에 장애물은 없는 걸까. 아니다. 2012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에 셰일가스 혁명이 일어나 ‘가스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셰일가스는 아직 미국 텍사스 일대조차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이나 중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고루 묻혀있는 우수한 자원이라는데 왜 개발이 늦어지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➊ 셰일개발이 활발한 미국에서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 시위도 격렬하다.
➋ 수압파쇄법에는 엄청난 양의 물이 동시에 들어간다.
셰일가스 때문에 못 살겠다
“정말 미치겠다. 연못에 살던 물고기가 다 죽었다.”
“소음이 너무 심하다. 이 작은 마을에 물을 실은 트럭이 하루에도 수십 대씩 지나간다.”
기자가 e메일을 통해 미국의 환경단체에 알아본 셰일가스 개발지 주변의 분위기다. 이렇게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물 때문이다. 셰일가스는 예전부터 알려져 있던 자원이다. 그러나 파내기가 쉽지 않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단점을 극복한 것이 물을 이용한 수압파쇄법이다. 수압파쇄법을 자세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지하의 셰일층을 깨고 많은 양의 물을 집어넣는다. 이 물이 셰일층에 저장돼 있던 가스를 지상으로 밀어낸다. 이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물에 각종 화학물질과 살생물제, 계면활성제 등을 섞는다. 수압파쇄법의 눈부신 발전으로 2009년 배럴당 58달러였던 셰일가스 생산비용은 2012년 17~40달러까지 내려갔다. 아직 석유보다는 생산단가가 비싸지만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셰일가스가 에너지혁명을 일으킨다고 기대를 모았던 것도 이 덕분이다. 물에 화학물질을 섞는 방법을 처음 성공시킨 미국의 석유업자 조지 미첼은 지금도 ‘셰일가스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하지만 개발 방식 때문에 셰일가스는 처음부터 환경오염의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먼저 지하수 오염이다. 개발업체들은 셰일층이 지하수층보다 수km나 밑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암석의 깨진 틈을 타고 메탄가스와 화학물질이 올라와 지하수에 섞일 수 있다는 경고가 개발 초기부터 있었다. 미국의 비영리독립언론 ‘프로퍼블리카’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보도한 셰일가스 위험성은 자못 심각하다. 셰일가스 시추공 주변 지하수에서 발암물질인 벤젠과 스트론튬, 독극물인 비소 등이 발견됐다. 와이오밍주에서는 시추공 근처 주민의 94%가 건강이상을 느꼈으며 81%가 호흡기질환에 걸렸다. 메스꺼움, 부비동염, 숨가쁨, 수면장애, 발진 등 주민들이 겪고 있는 질병도 다양하다. 환경문제에 민감한 유럽에서는 주민들이 셰일가스 개발을 강력히 거부해 여태 한 삽도 못 뜨고 있다. 미국에서도 버몬트와 뉴욕에서는 주정부가 셰일개발을 금지시켰다.
물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셰일가스 유정 하나를 팔 때 물 1400만L가 들어간다. 인구 5만 명인 도시에서 하루 동안 쓰는 양이다. 석유 개발에 비해 1000배나 많은 물이 들어가는데, 이런 시추정이 미국에만 3만 개 이상 있다. 세계에서 셰일가스 매장량이 가장 많은 중국이 개발을 못하고 있는 이유도 물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물이 훨씬 부족한 지역에 셰일가스가 묻혀 있다.
지하에 넣은 물이 지진 일으켜
또 다른 위험은 지진이다. 미국지진과학연구소 윌리엄 엘스워스 연구원은 미국 중․동부에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동안 규모3 이상 지진이 300회나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전보다 5배나 늘어난 수치다. 윌리엄 박사는 지진다발지역에 공통적으로 셰일가스 시추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사이언스’ 2013년 7월 12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진은 분명히 물 주입(injectioin)과 관련 있다”고 확신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 영스타운은 심지어 ‘셰일가스 지진’의 대명사가 됐다. 원래 지진이 거의 없던 지역이었는데, 셰일가스 시추가 시작되고 폭발적으로 늘었다. 미국 컬럼비아대 라몬트-도허티지구연구소 김원영 교수는 “2011년 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영스타운의 셰일가스 시추정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을 휴대용 지진계로 직접 측정한 결과 14개월 동안 무려 109회(규모 0.4~3.9)나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하에 주입한 물이 단층면으로 흘러들어 마찰력을 약화시키는 바람에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Interview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