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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부터 그 이름을 빌려온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본질적으로 지구는 ‘자기조절기능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원제는 ‘Gaia: A new look at life on Earth’ (1979, Oxford University Press)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가이아: 생명체로서의 지구’(홍욱희 옮김, 범양사, 1990)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 이 책은 태초의 지구 환경, 가이아의 존재 가능성과 지구의 대기 및 해양적 특성, 그리고 지구의 환경 문제와 가이아의 관계를 다루는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러브록의 '가이아'


신화에서 과학으로

지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신념이 과학적인 표현으로 처음 제시된 것은 1789년 허튼(James Hutton) 경이 영국 에딘버러 왕립학회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허튼은 지구에 대한 가장 적절한 연구 방법은 생리학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당시 하비(William Harvey)가 제안한 혈액 순환의 원리가 지구의 원소 순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의 저자 러브록은 지구를 생물과 환경, 즉 생물과 무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가이아는 지구의 생물, 대기권, 대양, 토양 등을 포함하는 범지구적 실체다. 그가 말하는 가이아는 단순히 지구를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다.

이러한 가이아의 세계에서 인류는 단지 하나의 종에 불과하며, 지구의 주인도 관리인도 아니다. 하나의 생명체인 지구를 구성하는 일부분에 불과하며,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오염원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에는 한 비범한 과학자가 전혀 새로운 과학 이론을 확립하기 위해 20여년 간 찾아낸 방대한 과학적 증거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이는 전통적인 과학 교과서나 강의실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 탐구를 위해서 한 과학자가 얼마나 폭 넓게 연구의 영역을 넓혀야 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지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갈릴레이 경험과는 정반대 경우

러브록은 이 책에서 자신의 가이아 이론은 갈릴레이가 경험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갈릴레이는 신학적 견해를 뒤엎음으로써 종교 집단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반면, 자신의 가이아 이론은 과학자 집단으로부터 부당한 비판과 견제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과학자 집단은 수백년 전 혁신적 사고를 부정했던 완고한 종교집단과 비교될 수 있다는 것이다.

러브록이 처음 가이아 가설을 제안했을 때 그의 주장은 과학학술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래서 그는 먼저 대중 과학서적을 출간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다음, 대중적 압력을 이용해 과학자 사회로 논의를 끌어들이는 우회전략을 사용했다. 가이아 이론에 대한 현재 과학자 사회의 입장은 지구가 초생명체라는 ‘강한’ 의미의 가이아 개념을 포기한 상태다. 대신 지구 자체가 능동적으로 기후를 조절할 수는 없지만 기후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으며 해양과 대기의 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약한’ 의미의 가이아 이론에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체

가이아에 대한 러브록의 탐구는 1960년대 중반 미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의 생물체를 탐사하기 위한 시도를 수행할 때부터 비롯됐다. 당시 해결해야 할 큰 문제 중 하나는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 가능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만약 화성에 생물이 존재하더라도 과연 지구의 생물 스타일에 근거한 실험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이는 다시 ‘그렇다면 도대체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 문제로 환원됐다.

바로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러브록은 가이아로 불리는 지구에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생물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바이킹호가 생명의 흔적을 찾기 위해 우주 속의 화성으로 날아간 반면, 러브록은 가장 거대한 생명체를 발견하기 위해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를 조망한 것이다.

또다른 신화가 된 가이아

이제 가이아 이론은 환경 보호론자의 저서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 됐다. 환경 운동가는 가이아 이론에서 말하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생태계의 총체적 상호의존성과 이에 수반되는 환경의 균형성과 안정성을 가장 주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중심의 탐욕스러운 자연관에서 벗어나 지구를 소중하고 경이로운 대상으로 생각해 이를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카슨(Rachael Carson) 여사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과 함께 환경 분야의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환경론자들의 이러한 입장은 러브록 자신이 말하고 있는 가이아 이론의 모습과는 사뭇 큰 거리가 있다. 가이아 이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지구는 자기조절 기능을 지니고 있어 지구 생태계에 약간의 교란이 일어날지라도 이를 다시 평형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이아 이론은 1960년대 이후 전개된 환경운동,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신과학 운동 등과 합쳐지면서 선풍적인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됐다.

과학이 삶의 지혜로 이어지는 흔치 않은 예에 해당하는 가이아 이론은, 수천년 전 신화 속의 존재를 20세기 후반에 과학으로 복원시켰다. 하지만 이제 다시 현대의 환경 운동을 위한 또다른 신화가 돼버린 것은 아닐까.

다양한 전공 기반한 만능 과학저술가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1919년 영국에서 출생했으며, 1941년 화학 전공으로 맨체스터대를 졸업하고, 1948년 런던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1959년 생물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의 하버드대, 예일대, 휴스턴대 등에서 객원 연구원 및 교수를 지냈으며, 영국 레딩대의 객원 교수에 이어 1993년 이후에는 옥스퍼드대의 명예 객원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다.

한편 그는 JPL(제트추진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우주 프로그램의 생명과학 자문역을 역임했으며, 런던 왕립학회 특별회원, 해양 생물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그 동안의 연구로 수많은 메달과 상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왕립예술과학아카데미에서 주는 ‘암스테르담 환경상’(APE), 마이애미대의 로센셜 해양대기 과학원에서 수여하는 ‘로센셜 해양학상’(RAOC)등이 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가이아의 시대’(The Ages of Gaia: A Biography of Our Living Earth, 1987) ‘가이아: 행성의학 입문’(Gaia: The Practical Science of Planetary Medicine, 1991) (김기엽 옮김, 김영사, 1995) 등이 있다. 특히 후자는 많은 그림과 자료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병을 앓고 있는 행성(지구)에 대한 의사의 처방이라는 독특한 접근을 취하고 있어 일반 독자들이 보다 쉽게 가이아 이론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001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송진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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