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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귀재 탄소

4개의 팔로 변화무쌍한 결합 만든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풀러렌 분자구조에 영감을 제공한‘유에스 파빌리온’(US Pavilion)이라는 원형돔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레고랜드’(Legoland)라는 놀이동산에 가면 레고로 만든 마을을 볼 수 있다. 몇 가지 종류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레고 조각으로 집, 자동차, 놀이터, 공장 등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레고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100 종류가 조금 넘는 원소들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물질을 만든다. 몇 가지 다른 원소들을 어떤 조합으로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에 따라 물질의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달라진다.

그런데 모양과 크기가 똑같은 한 가지 레고조각으로 여러 가지 모형을 만들듯 한 종류의 원소만으로도 다양한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여러 원소들이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중 으뜸은 탄소다. 변신의 귀재 탄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

1985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이 발견됐다. 미국라이스대의 로버트 컬 교수와 리처드 스몰리 교수 그리고 영국 서섹스대의 해럴드 크로토 교수가 탄소 원자 60개로 이뤄진 축구공 모양의 분자인 풀러렌을 발견했다.

‘분자세계의 축구공’인 풀러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축구공의 지름이 약 0.3m고 풀러렌의 지름이 0.7nm(나노미터, 1nm=10-9m)이므로 풀러렌은 축구공을 1억배쯤 축소했다고 보면 된다. 기존의 축구공보다 1억배 작고 탄소 원자로만 이뤄진 분자 축구공. 자연의 신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흑연을 태웠을 때 탄소로만 이뤄진 분자량 720의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당시 화학자에게 알려졌지만, 이들은 이 물질을 그저 평범한 불순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명의 화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물질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분자량이 720이고 흑연을 태웠기 때문에 당연히 탄소 원자는 60개다(720/12(탄소의 원자량) = 60). 하지만 이 분자가 탄소 60개로 이뤄졌다는 사실만 알았지 모양은 알 수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라는 건축가가 1967년에 만든 캐나다 몬트리올의 엑스포 원형돔을 보고 분자 구조에 대한 단서를 잡았다. 정삼각형, 정오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버크민스터 풀러의 구형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은 세 명의 화학자들은 탄소 60개로 이뤄진 분자는 축구공의 형태라고 추측했다.

왜 하필 탄소가 60개일까? 축구공의 꼭지점의 개수가 60개인 것과 탄소의 개수가 60개인 것이 딱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 탄소 원자 60개는 정오각형과 정육각형을 만들어서 구형의 분자가 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구조를 푸는데 도움을 준 건축가의 이름을 따서 탄소 60개로 이뤄진 이 분자의 이름을‘버크민스터풀러렌’(buckminsterfullerene)이라고 지었다. 현재는 줄여서 풀러렌(fullerene)이라고 부른다. 세 명의 화학자는 새로운 탄소 덩어리를 발견한 공로로 1996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동소체? 원자 배열 따라 달라져요

풀러렌처럼 한 가지 원소로만 이뤄진 물질을 홑원소물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 가지 원소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결합하는 모양에 따라 전혀 다른 물질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구성하는 원자는 같지만 배열 상태나 결합 방법이 다르고 하나의 원소로 이뤄진 물질을 동소체라고 한다.

산소 분자는 산소 원자 2개로 이뤄져 있고, 오존(${O}_{3}$)은 산소 원자 3개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산소 분자와 오존은 서로 동소체다. 인(P)으로 이뤄진 동소체로는 흰인과 붉은인이 있으며, 황(S)의 동소체로는 고무상황, 단사황, 사방황 등이 있다.

탄소의 동소체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이아몬드, 흑연, 풀러렌은 탄소 원소로만 이뤄져 있지만 배열 구조가 달라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다른 동소체다(사람들에 따라서 무결정성탄소도 탄소의 동소체에 포함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는 정사면체의 중심과 꼭지점에 위치한 탄소 원자가 연속적으로 공유결합하고 있어 매우 단단하고 변형이 거의 없어 영원을 상징하는 보석으로뿐만 아니라 유리 자르는 칼 같은 공업 용도로도 사용된다.

다이아몬드가 정사면체를 기본으로 한 3차원 구조인 반면 흑연은 정육각형의 꼭지점에 탄소 원자가 위치해 타일을 채운 2차원 구조다. 벌집 모양의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타일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에 옆으로 미끄러지기가 쉽다. 그래서 흑연은 같은 원소로 이뤄진 다이아몬드보다 무르고 잘 묻어 연필심으로 사용한다.

분자세계의 죽부인
 

탄소나노튜브(오른쪽)는 죽부인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축구공이 발견된지 6년째 되던 1991년, 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죽부인’이 발견됐다. 일본전기회사(NEC)의 연구원이었던 이지마 스미오 박사는 빨대처럼 길쭉하고 속이 비어있는 물질을 전자현미경으로 발견하고 상관에게 보고했다. 불순물이니 무시하라는 상관의 의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그는 이 물질이 탄소로만 이뤄진 새로운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이아몬드, 흑연, 풀러렌에 이어 또다른 탄소의 동소체가 발견된 순간이다.

속이 비어있는 빨대 또는 튜브처럼 생겨서 탄소나노튜브라고 부르는 이 탄소 동소체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여름날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안고 잤던 죽부인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죽부인은 대나무를 길게 자른 후에 얽어서 만든다. 죽부인을 자세히 보면 대나무들이 정육각형 구조를 만들고 있다. 만약 죽부인의 양쪽 끝을 잘라서 편다면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2차원 구조가 된다. 이 구조는 흑연과 똑같다.

따라서 탄소나노튜브는 흑연이 말려있는 구조다. 흑연 한 장만 돌돌 말면 죽부인과 똑같은 구조가 생긴다. 이때 흑연을 돌돌 말고 양쪽 끝에 분자 축구공인 풀러렌을 반으로 잘라 양쪽에 붙이면 탄소만으로 이뤄진‘분자 죽부인’이 완성된다.

흑연 여러 장을 한꺼번에 말면 죽부인이 여러 개 겹쳐있는 탄소나노튜브를 만들 수있다. 탄소나노튜브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끝이 막혀있는 탄소나노튜브, 여러겹이 말려있는 탄소나노튜브 등을 만들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는 전기 전도도가 구리와 비슷하고 열전도율은 다이아몬드와 같으며 강도는 강철의 100배나 돼‘꿈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생명의 핵심 원소, 탄소
 

풀러렌 분자(위)의 지름은 0.7nm로 보통 축구공의 1억분의 1 크기다.


쇠구슬과 자석막대기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자석레고’라는 장난감이 있다. 쇠구슬과 자석막대기만으로 에펠탑, 자동차 등 여러 모양을 만든다. 분자세계에서 동소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와 비슷하다. 쇠구슬은 원자고 자석막대기는 원자 사이의 결합선이다.

분자 세계의 자석레고는 구슬의 종류에 따라 붙일 수 있는 자석막대기가 1~4개로 정해져 있다. 탄소 구슬은 막대기를 4개까지 붙일 수 있어 탄소 구슬만 갖고 만들 수 있는 물질의 수가 다른 구슬에 비해 많다.

변화무쌍한 결합방법 때문에 탄소는 생명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원소가 됐다. 생명체의 몸은 주로 탄소, 질소, 산소, 수소 원소들로 이뤄져 있는데, 이 중 탄소는 단백질과 같은 생체고분자 화합물의 골격을 이룬다. 생명체가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는 탄소가 다양한 방법으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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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인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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