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SF영화와 소설에 원격이동이 포함돼있다.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SF물에서 보여준 원격이동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미약하게나마 가능성을 열어준 양자 원격이동에 대해 알아보자.
스타트렉, 스타워스와 같은 SF 영화에서 사람이 엘리베이터 같은 둥근 방에 들어가면 위나 아래에서 빛이 나오고 그 순간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그 사람은 원래 위치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우주선과 같은 물리적인 운송 수단을 이용해 직접 먼 거리를 긴 시간 동안 여행하지 않고도 물체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다.
영화 속에서 이러한 원격이동이 고안된 이유는 제작비용 때문이었다고 한다. 시리즈물인 스타트렉의 경우 우주선을 행성표면에 착륙시키는 장면을 자주 보여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작진에게 떠오른 것이 이러한 이동장치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런 원격이동은 가능한 일일까. 그 답은 노(No)다. 1997년 인스브룩 대학의 실험팀에 의해 빛의 알갱이인 광자의 원격이동을 실험적으로 성공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 원격이동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물체가 물리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의 상태 정보를 전송해서 원래 물체가 가진 상태를 구현한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에 위배되는 원격이동
물체는 분자나 원자, 더 작게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으로 구성돼있다. 만약 물체의 원격이동이 가능하다면 이 작은 입자 하나 하나의 원격이동으로 구현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선 이동시키고자 하는 물체를 구성하는 원자 또는 그 이하 수준의 단위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야 실질적인 원격이동의 방법으로 원자와 같은 구성입자를 분해해 직접 보내든지, 아니면 구성입자를 빛과 같은 에너지 형태로 전환해서 보내든지, 구성입자가 담고 있는 정보를 전송하든지가 가능하다.
원자와 같은 미시적 세계를 올바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 거시 세계의 뉴턴역학과 미시 세계의 양자역학 중 어느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두 이론의 차이는 단지 알아보고자 하는 내용의 정도가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맨 눈으로 보는 세계와 현미경을 통해 보는 세계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 두 세계는 실제 세계다. 그러나 맨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박테리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근본적인 이론은 양자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거시적 물체가 갖는 거시적 성질만을 전송한다면, 그 원격이동은 실제 물체와 같을 수 있을까. 자칫 불완전한 원격이동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팩스를 통한 전송에서 글자가 선명치 못하거나 깨져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경우처럼 말이다. 따라서 완벽한 원격이동은 양자이론의 범주 내에서 다뤄져야 한다. 이를 가리켜 과학자들은 ‘양자 원격이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이런 원격이동을 원리적으로 부정하는 듯 보인다. 양자역학의 핵심 내용인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물체의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속도를 동시에 알아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원격이동에 필요한 물체에 대한 미시적인 세계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물체가 갖는 모든 양자적 정보에 대한 정확한 측정을 허용하지 않는 반면, 성공적인 원격이동을 위해서는 물체에 대한 완벽한 측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두 측면은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원격이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돼왔다.
그러나 1993년 IBM의 찰스 베넷을 포함한 일군(一群)의 물리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뒤집어놓았다. 그들은 양자역학 자체를 원격이동에 이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양자역학의 특이하면서도 근본적인 성질인 ‘얽힘’(entanglement)을 이용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위배하지 않으면서 그로 인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얽힘이란 어떤 성질이기에 원격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얽힘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바구니 속에 빨강과 파랑의 2개 공이 들어있다고 가정하자. 바구니에서 한개의 공을 뽑아 색을 보지 않고 주머니에 넣자. 주머니 속의 공은 어떤 색깔일까. 빨강일 확률 1/2, 파랑일 확률도 1/2이다. 그러면 바구니에 남아있는 공은 어떤 색깔일까. 주머니 속의 각 공의 확률 1/2과 마찬가지다.
하나의 운명이 다른 운명 결정
그렇다면 주머니 속의 공과 바구니에 남아있는 공의 색깔 관계는 어떨까. 주머니 속의 공이 빨간색이고 바구니 속의 공이 파란색일 확률은 1/2, 주머니 속의 공이 파란색이고 바구니 속의 공이 빨간색일 확률은 1/2, 그리고 두 공이 모두 빨간색이거나 파란색일 확률은 0이다. 이는 바구니 공이 빨강 또는 파랑일 확률과 같다. 이러한 결합 확률은 하나에 의해 다른 공의 색이 결정되는 것으로 서로 연관돼있음을 나타낸다. 이 경우에는 두 공의 색깔이 분명히 서로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렇게 하나에 의해 다른 하나의 색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상태를 얽힘이라고 한다.
얽힘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양자이론 창시자 중의 한 사람이며 그 유명한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다. 그는 얽힘을 양자이론의 근본적인 성질이라고 말했지만 당시 그의 주장은 동료 물리학자들에게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다시 잠시 공 얘기로 되돌아가자. 두사람이 바구니와 주머니를 나눠 가져 먼 장소로 이동한다고 상상해보자. 예를 들어 학교에서 광돌이가 바구니를, 광순이가 주머니를 갖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고 해보자. 둘은 자신이 어떤 공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집에 돌아가 광돌이가 바구니를 열어보는 순간 그는 광순이가 어떤 색의 공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결과는 광돌이와 광순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얽힘성이 보존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먼 거리를 두고 작용하는 얽힘 효과를 처음으로 증명한 사람은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이다. 이들 이름을 따서 얽힘성을 EPR 효과라고도 부르고, EPR 효과를 보여주는 입자 쌍을 EPR 쌍이라고 부른다.
광돌이가 색을 보는 것(측정)이 광순이의 공에 교묘하게 영향을 끼친 듯 보인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얽힘에 의해서 생겨나는 측정 결과를 두 공 사이에 신호가 오가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신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해야 한다. 이에 착안해 많은 과학자들이 얽힘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양자 이론은 그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광돌이나 광순이의 측정은 완전히 무작위적인 결과를 주며, 따라서 아무런 정보도 운반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의 측정으로부터 상대방이 어떤 결과를 측정할지 알 수 있을 뿐이다.
전송하고자 하는 물질을 알려고 하지 말라
여하튼 얽힘을 이용해서 어떻게 원격이동이 가능한 것일까. 다시 한번 광돌이와 광순이가 갖고 있는 얽힘이 보존된 두 공을 생각해보자. 두 공은 측정에 의해 파랑이 빨강으로 빨강이 파랑으로 바뀔 수 있지만 얽힘은 보존된다. 또 광돌이는 바구니의 공 외에 광순이에게 전송할 세 번째 공, X 를 갖게 된다. X 공의 색은 빨강 또는 파랑으로 역시 측정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즉 이들 세 공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지배받아 측정에 의해 색 상태가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광돌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위배하지 않기 위해 공들의 양자적 또는 확률적 상태를 모른 채 광순이에게 X 를 전송할 수 있을까.
각 공의 정확한 상태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일부분을 측정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래서 광돌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X 공과 바구니 공에 대해 같은 색깔을 띠는지 아니면 다른 색깔을 띠는지를 알아보는 결합측정을 수행한다.
X 공과 바구니 공은 서로 연관성을 갖지 않으므로 두 공의 상태는 파랑과 빨강, 빨강과 파랑, 빨강과 빨강, 그리고 파랑과 파랑 4가지가 가능하다. 이때 세 공의 상태는 네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바구니 공, X 공, 주머니 공)= (파랑, 빨강, 빨강), (빨강, 파랑, 파랑), (빨강, 빨강, 파랑), (파랑, 파랑, 빨강). 이때 X 공이 빨강과 파랑일 확률을 각각 pr 과 pb 라고 가정하자.
먼저 광돌이의 결합측정 결과가 서로 다른 색깔이라면 세 공의 가능한 색깔 조합은 (파랑, 빨강, 빨강), (빨강, 파랑, 파랑)이고 각각의 확률은 (1/2) × pr × 1, (1/2) × pb × 1 이다.
pr + pb =1 이기 때문에 광순이의 주머니 공이 빨강일 확률 qr은
qr = $\frac{(1/2) × pr × 1}{〔(1/2) × pr × 1〕+〔(1/2) × pb × 1〕}$
마찬가지로 파랑일 확률 qb는
qb = $\frac{(1/2) × pb × 1}{〔(1/2) × pr × 1〕+〔(1/2) × pb × 1〕}$
이다. 광돌이가 갖고 있는 두 공의 결합측정 결과로 광순이의 공이 갖는 양자 상태는 X 공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하게 된다.
결합측정이 같은 색깔일 경우에 광순이가 갖고 있는 공의 양자 상태를 알아보자. 광돌이의 공, X 공, 그리고 광순이의 공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색깔 조합은 (빨강, 빨강, 파랑), (파랑, 파랑, 빨강)이고 각각의 확률은 (1/2) × pr× 1, (1/2)× pb × 1 이다. 따라서 광돌이의 결합측정 후에 광순이의 공이 빨강일 확률 qr, 파랑일 확률 qb 은 다음과 같다.
qr= $\frac{(1/2) × pb × 1}{〔(1/2) × pr × 1〕+〔(1/2) × pb × 1〕}$ = pb
qb= $\frac{(1/2) × pr × 1}{〔(1/2) × pr × 1〕+〔(1/2) × pb × 1〕}$ = pr
이 경우에는 광순이의 공의 양자 상태는 X 공과 반대로 바뀐다. 만일 광순이가 두 확률 값을 바꿔주는 어떤 변환장치를 갖고 있다면 광순이의 공이 갖는 상태를 X 공의 상태로 변환시켜주면 X 공과 같은 양자 상태가 된다. 이때 변환장치는 측정장치가 아니다.
광돌이의 결합측정으로 얻는 결과는 완전히 우연적인 것이다. 실제로 바구니의 공과 X 공이 같은 색깔일 확률과 서로 다른 색깔일 확률은 (1/2) × pr + (1/2) × pb = 1/2 로 같다. 이 결과는 X 공의 양자 상태와 무관하다. 따라서 성공적인 원격이동을 이루기 위해서 광돌이는 광순이에게 결합측정 결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줘야 한다. 결합측정 결과 광돌이가 가진 공의 색이 서로 다르면 광순이가 가진 공은 X 공과 같아져 변화장치를 가동시킬 필요가 없고, 서로 같으면 광순이는 변환장치를 가동해 자신의 공의 양자 상태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론의 한계, 빛보다 빠를 수 없다
이때 광돌이가 측정 결과를 광순이에게 어떻게 전송할 수 있을까. SF 영화에서는 원격이동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이는 아직 불가능하다. 광돌이의 측정 결과를 광순이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현재로선 전화나 기타 통상적인 통신수단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코 빛보다 빠를 수 없다. 상대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또 혹자는 전송된 것이 X 공의 양자 상태이지 공 자체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의 모든 성질은 그 양자 상태에 담겨있다. 즉 똑같은 양자 상태를 갖는 두 공은 완전히 같은 공이다. 따라서 정확한 양자 상태의 전송은 입자의 전송과 동일하다.
광돌이가 가지고 있는 X 공은 이동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단순히 복사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답은 노(No)다. X 공은 광돌이의 결합측정으로 그 원래 성질을 잃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그것은 X가 아니다. 결합측정으로 광순이의 공이 X가 된다. 따라서 양자 원격이동은 복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양자 원격이동에 의해서 X 공의 양자 상태는 광순이에게 전송됐지만, 광돌이와 광순이 어느 누구도 그 상태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광돌이의 측정 결과는 완벽하게 무작위적이므로, 광돌이는 X 공의 양자 상태에 대해 알아낸 것이 없다. 이것이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를 위배하지 않으면서 양자 원격이동이 가능한 이유이다. 측정을 통해 입자의 완전한 양자 상태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 상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지만 않는다면 양자 상태의 완벽한 전송은 가능하다.
비록 인간이나 거대한 물체에 대한 원격이동은 아직 환상에 불과하지만,밫의 알갱이인 광자에 대한 양자 원격이동은 실험실에서 그 가능성이 검증됐다.가로와 세로로 서로 다르게 편광되고 1km거리에서 얽힘성이 보존되는 두개의 광자를 만들어내고 이를 이용해 편광방향을 모르는 세번째 광자를 전송하는 실험이 1997년 인스브룩 대학의 실험팀에 의해 수행된 것이다.실험결과는 단지 25%의 성공률을 보였고 1km라는 원격이동으로 생각하기에 짧은 거리에서 이뤄진 것이지만,양자 원격이동이 원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인 최초의 실험이었다.최근에 이르러 트리클로로에틸렌(Trichloroethylene)분자를 구성하는 탄소 핵의 양자상태를 수소 핵에 완벽하게 복제하는 실험이 성공했다.이 경우에도 원래 분자와 복제된 분자 사이의 거리는 불과 1nm,즉 ${10}^{-9}$m정도에 불과했다.이 실험은 원격이동과는 사뭇 거리가 있지만,양자 원격이동의 완벽한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미 양자 원격이동에 얽힘 상태의 중요성은 언급한 바 있다.그러나 얽힘 상태는 외부 잡음에 의해 잘 깨질 수 있어 그 얽힘을 큰 거리를 두고 보존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더구나 거시적 물체를 구성하는 개개의 입자에 대한 얽힘 상태를 모두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그러나 또 다른 찰스 베넷이 이를 해결할 멋진 방법을 고안해낼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에서는 양자 원격이동을 고전적 확률 개념으로 설명했다.따라서 양자 상태와 확률 상태를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그러나 양자 상태는 확률적 상태보다 더 많은 정보를 포함한다.고전적 확률은 불충분한 정보에 기인한다.예컨대 내일의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고 단지 확률적으로만 예측하는 이유는 내일 날씨에 영향을 주는 모든 변수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양자 이론은 고전적 확률 외에 이론 자체에 근본적으로 내재하는 양자적 확률을 포함한다.이러한 양자적 확률을 올바르게 기술하기 위해서는 확률에 선행하는 상태함수를 도입해야 한다.앞서 결합측정과 관련한 두가지 상태,서로 다른 색깔 상태와 같은 색깔 상태를 언급됐지만,상태함수에 의한 얽힘 상태 기술에 따르면 4가지 서로 다른 상태가 존재한다.이를 벨의 상태라고 부른다.실제로는 이 4가지 벨의 상태에 해당하는 4가지 결합측정 결과가 가능하다.이 4가지 측정 결과에 대한 정보를 받아 양자 상태의 전송을 구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