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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폭 줄이면 매트릭스 세상이 온다

톱다운, 바텀업 그리고 다음은?



몸을 90도로 뒤로 젖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던 주인공 네오를 기억하는가. 그는 기계가 지배하는 2199년에 가상의 시간과 공간인 매트릭스를 넘나들며 인류를 구원한다. 1999년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 ‘매트릭스’는 진화된 컴퓨터가 장악하는 미래 가상세계를 그려 냈다. 정말 미래에는 그런 일이 벌어질까.

미국의 유명한 인공지능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발표했다. 먼저 컴퓨터 계산 속도가 초당 2경(2×1016)번의 명령을 처리하는 뇌의 계산 속도를 능가한다는 주장이다. 1년에 2배씩 정보처리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면 2020년이면 뇌의 계산 속도를 능가한다. 이미 10년 전인 1997년에 IBM의 슈퍼컴퓨터인 딥블루는 12년 동안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던 세계 최고의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녹다운시켰다.

커즈와일이 내다보는 미래는 컴퓨터 지능이 사람을 능가한다는 게 핵심이다. 18개월에 2배씩 데이터 저장량이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은 무한대로 증가해 실리콘 칩을 대신하는 나노컴퓨터가 등장하고 가상현실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커즈와일은 “인간의 뇌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컴퓨터가 기존의 컴퓨터 알고리즘과는 전혀 다른 인간 뇌의 알고리즘을 흉내 낼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매트릭스의 세상으로 가는 시나리오다.

자기조립으로 진화하는 세상


삼성전자가 최근 개발한 원D램. 선폭이 90nm로 D램과 S램을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 성능을 향상시켰다.


예측한 미래가 현실이 되려면 넘어야 할 문제가 많다. 가장 근본이 되는 기술개발 방향은 최소 크기의 소자와 최대 용량의 메모리 그리고 최고 빠르기의 처리속도다. 그 바탕에는 회로선폭이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회로선폭 40nm(나노미터, 1nm=10-9m) 수준의 실리콘 소자를 개발해 3년 뒤면 상용화할 예정이다. 35nm급 소자 개발도 이미 시작했다. 반도체 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2020년이 되면 14nm 크기로 실리콘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인텔사의 프로세스 기술담당자인 마크 보어는 “2020년이면 10nm급 회로선폭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나노미터 크기의 회로선을 만드는 방법은 톱다운(Top-Down)과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있다. 톱다운은 이름 그대로 깎아내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깎아내릴 때는 선폭을 균일한 크기로 만드는데 문제가 있어 전자 이동에 오류가 생길 수 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경제적인 난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상용화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연이 수십억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시킨 ‘자기조립’이라는 바텀업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자기조립이란 분자나 원자 수준에서 입자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다. 탄소나노튜브 제조공정이 대표적인 예로, 이미 실리콘 소자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선폭의 한계는 톱다운에서 바텀업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게다가 DNA를 이용한 새로운 자기조립도 연구되고 있어 생체화학과 전자공학의 융합분야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선폭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선폭이 줄면 문제가 나타난다. 기본적이지만 큰 문제는 바로 ‘열’이다.

반도체 칩이 태양만큼 뜨겁다?

“지금과 같은 실리콘 반도체에서 회로선폭만 줄어든다면 반도체칩의 표면온도는 20년 이내에 태양 내부온도인 100만℃에 이르게 된다.”

21세기 프런티어사업단의 하나인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이조원 단장은 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는 손톱 크기 정도의 반도체칩에 트랜지스터 10억개가 들어간다. 만약 같은 크기 안에 트랜지스터를 1조개 이상 넣으면,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늘어나면서 반도체칩 자체의 온도가 엄청나게 올라가 작동을 못하거나 아예 타버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전자의 수를 줄이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전자수를 줄이면 그만큼 전력소모가 줄어든다. 그래서 전자 하나로 동작하는 단전자트랜지스터(Single Electron Transistor, SET)가 연구되고 있다.

현재는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하는데 램(64Mb DRAM)은 전자 100만개, 메모리(16Mb)는 전자 1만개가 필요하다. 이에 비해 SET는 전자 1개만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기 때문에 전력소비량을 밀리와트(mW)에서 마이크로와트(μW)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2006년 11월에 충북대 물리학과 최중범 교수는 SET 연구에 희소식을 전했다. SET기술을 이용해 반도체에 들어가는 핵심 논리회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SET는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와 영국

케임브리지 히다치 그룹처럼 일본이 선도하는데, 2개 이상의 회로를 구성해야 연산이 가능한 단계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 교수는 하나의 회로로 여러 가지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SET 연구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

최 교수는 “SET 기술을 사용하면 지금보다 전력을 100배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휴대전화를 CPU만으로 생각할 때 현재 한번 충전해서 3일을 쓸 수 있다면, SET 기술로는 한번 충전해서 300일을 사용할 수 있다.

물리적인 한계는 1.5nm


하이닉스반도체가 개발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모바일 D램. 소자의 크기가 작아지면 전자기기의 크기도 작아질 수 있다.


SET를 적용하지 않고 현재 기술로 2020년에 10nm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면, 디지털 신호인 0과 1을 구현하기 위해 온오프(스위칭)할 때 10개 정도의 전자가 움직인다. 반도체 소자의 에러율은 전자수에 반비례하는데, 전자가 10개 정도라면 에러율이 약 30%나 된다. 만약 선폭이 더 줄어서 5nm가 되면 트랜지스터 안에서 전자가 줄줄 새버린다. 결국 스위칭의 의미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5nm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은 없는 걸까.

현재 전문가들은 새로운 재료에 주목하고 있다. 탄소원자가 만드는 탄소나노튜브, 미세한 실리콘 입자를 엮은 나노와이어, 두 종류 이상의 원소로 이뤄진 화합물반도체다. 물론 그 이후로는 분자나 DNA를 이용한 소자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물질들이 등장해도 실리콘을 기초로 하는 소자가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탄소나노튜브와 나노와이어는 크기나 밀도를 조절하기 굉장히 어려워 상용화까지는 뛰어넘어야할 기술적인 문제가 많다. 게다가 연구실이 아닌 공장에서 반도체를 대량 생산해 내기에는 아직 실리콘의 경제성을 따라 잡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5년간은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가 산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 이론상 선폭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한 줄로 세우면 가장 작은 선이 되지 않을까. 연세대 원자선원자막연구단의 염한웅 단장은 연구단의 이름처럼 원자를 늘어놓아 금속선을 만드는 연구를 한다. 실리콘 기판 위에 가돌리늄(Gd)원자를 붙여 2nm 크기의 나노선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직은 연구단계로 반도체에 적용해 상용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의 이조원 단장은 “소자의 물리적인 크기의 한계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1.5nm 정도로 계산된다”고 말한다. 이 단장은 반도체 스위칭에 관여하는 소자의 길이가 원자 8개 크기인 1.5 nm에 다다르면 반도체 특성이 유지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마치 케이크를 칼로 자르면 조각 케이크가 되지만 더 잘게 부숴 가루로 만들면 더 이상 케이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결국 실리콘을 기반으로 하는 소자든 분자를 포함한 어느 물질이든 1.5nm의 물리적 한계는 피할 수 없다.


선폭이 줄면 어떤 세상이 올까. 반도체 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현재 50nm수준에서 2025년이면 5nm수준에 이른다고 전망한다. 2030년 이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개 념의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몸은 죽어도 의식은 영원히 남는 세상


실리콘은 소재의 특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반도체를 만드는데 오랫동안 사용됐다.


선폭의 한계와 더불어 생기는 문제는 0과 1로 처리되는 디지털 처리방식의 한계다. 전문가들은 전자를 뛰어넘을 새로운 패러다임을 양자(Quantum)에서 찾고 있다. 양자를 이용한 컴퓨터 개념은 이미 1982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제안했다. 양자의 중첩현상과 얽힘현상을 이용해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정보의 기본 단위는 큐빗(Qubit)이다.

양자는 중첩현상을 통해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고, 얽힘현상을 통해 00, 01, 10, 11, 4개의 상태를 공유할 수 있다. 디지털 컴퓨터와는 달리 한 개의 처리장치가 많은 계산을 할 수 있는, 병렬계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실리콘 반도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양자컴퓨터와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로 인해 열릴 미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 브리티시텔레콤의 미래학연구소장인 이안 피어슨은 “2050년이면 인간의 뇌에 담긴 의식을 슈퍼컴퓨터로 다운받아 죽음을 면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그 의식은 컴퓨터에 남아 ‘삭제’하기 전까지는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컴퓨터가 새로운 개념의 납골당이 된다.

브리티시텔레콤 메틀렘건강연구소에서는 ‘소울캐쳐’(Soul Catcher)라고 부르는 컴퓨터 칩을 개발 중이다. 새로 태어난 영아에게 칩을 심어 생애 전부의 기억을 저장했다가 죽으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이다. 연구를 담당한 크리스 윈터 박사는 “뇌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데이터를 하나의 칩에 저장할 수 있는 고성능 칩을 개발하는 것”이 핵심 기술이라고 밝히고 있다.

1997년에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은 아인슈타인을 살려낸 적도 있다. 아인슈타인이 살아있을 때 찍어둔 500여 편의 비디오에서 음성과 대화 내용을 데이터로 저장했다. 누군가 질문을 하면 저장된 아인슈타인의 데이터를 컴퓨터가 분석해 적당한 대답을 찾아 준다. 영화 타임머신에서 애인을 살리기 위해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 알렉산더 하트겐은 인류역사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 ‘복스’를 만난다. 그가 찾아간 시간은 2030년. 23년 뒤 우리의 모습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매트릭스 세상에서 주인공 네오는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가 됐다. 선폭의 한계를 구원할 메시아는 과연 어떤 기술일까.


미래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덩치 큰 슈퍼컴퓨터를 볼 수 없다. 슈퍼컴퓨터 정도의 능력을 가진 또 다른 개념의 컴퓨터가 등장하고, 칩 형태로 사람의 몸속에 이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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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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