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Ⅰ. 행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미완의 시나리오 '미행성 성운설'


행성들


세계의 대부분의 문화권에는 천지창조 신화가 있다. 하늘과 땅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천체들은 어떻게 태어나 천공을 떠도는가 하는 이야기다. 경험과 사고를 통해 인간의 지혜가 늘어나고 기술이 발달되면서 신화 속의 내용은 관측을 통해 구체적으로 서술되기 시작했다. 한때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들이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지만 행성의 운행을 자세히 관측하면서 천체들이 태양 주위로 회전한다는 지동설이 나왔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아냈고, 케플러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어떻게 도는가를 설명했으며, 그후 뉴턴은 행성들이 왜 태양 주위를 돌아야하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태양과 천체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하려고, 이를 통해 현재의 천체운동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 아마도 이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 시도를 한 사람은 철학자 칸트일 것이다. 뉴턴의 역학에 심취했던 철학자 칸트는 ‘일반 자연사와 천체이론’이란 제목의 학위논문을 쓸 정도로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755년에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을 적용해 태양계가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보이는 성운설을 제안했다.

태양과 행성 동시 생성?

칸트는 태양계의 형성 초기에 회전하는 납작한 원반모양의 성운이 있었다고 가정했다.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성운에서 입자들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력)을 통해 모이게 된다. 밀도가 짙은 지역에서는 주위의 물질을 더 강하게 끌어들어 큰 덩어리를 만들어가면서 행성을 형성한다.

성운의 중심부는 밀도가 아주 높기 때문에 강한 인력으로 대부분의 성운 물질을 끌어들여 태양을 탄생시킨다. 행성들은 태양의 강한 인력에 묶여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고 태양주위를 계속 돈다. 이때 회전방향은 초기 원시성운의 회전방향과 같다. 이와 같은 성운설에 따르자면 행성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탄생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1796년 프랑스의 라플라스는 칸트의 성운설을 기본으로 회전체 내에서 발생하는 원심력을 고려해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그림1). 초기에 회전하는 납작한 성운에서 인력으로 인해 안쪽 지역에는 물질이 많이 모여 밀도가 매우 높아지고 바깥 지역에서는 밀도가 낮아진다. 성운이 계속 수축할수록 밀도차는 커진다. 안쪽 물질이 계속해서 끌어당기면서 바깥쪽 물질은 더욱 빠른 속도로 회전하게 된다. 이때 회전으로 생기는 원심력이 안쪽물질이 끌어당기는 인력(구심력)과 크기가 같아지면 더 이상 물질은 안으로 당겨지지 않고 고리형태로 물질이 분포하는 띠가 생긴다. 이렇게 되면 고리에 있는 물질이 서서히 응축돼 하나의 행성이 탄생된다.


(그림1) 칸트-라플라스 성운설^성운이 회전하면서 인력과 원심력이 갈아지는 곳에서 고리가 형성되고 고리에서 행성이 만들어진다.


이처럼 회전에 의한 원심력 때문에 성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차례로 고리가 만들어지고, 이 고리에서 행성이 차례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라플라스의 성운설이다. 이것은 칸트의 성운설과 근본은 같기 때문에 이들을 합쳐 ‘칸트-라플라스 성운설’이라 한다. 태양과 행성의 동시 탄생을 주장하므로 동시 생성론이라고도 한다.

이들 성운설은 이해하기 쉽고 그럴싸한 설명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밀 관측으로 밝혀진 행성들의 구성성분의 차이나 형태적 차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하나의 예로 질량이 큰 목성과 토성 같은 가스행성과 지구나 화성 같은 암석행성이 조성이나 물리적 성질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은 그 형성 기원이 다르다는 것을 암시한다. 칸트나 라플라스의 시대에는 행성에 대한 정밀한 정보들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별들 중 많은 수가 쌍성계를 이루고 있다. 태양도 초기에는 쌍성계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림은 북두칠성의 일원인 쌍성 미자르.


이웃 천체가 간섭

20세기 들어 태양계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태양이 먼저 생기고 난 다음 주위의 행성들이 생겼다는 비동시 생성론이 대두됐다. 1900년대 초반 챔벌린과 모울턴은 두 개의 천체가 조석력에 의해 물질이 섞이면서 행성계가 생겨났다는 조석설을 제기했다. 태양 가까이 다른 별이 지나갈 때 태양과 이 천체 사이에 강한 조석력이 미쳐 각 천체로부터 물질이 방출된다. 이런 현상은 달의 조석력 때문에 지상의 바닷물이 달을 향한 쪽과 그 반대쪽에 모여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방출된 물질은 태양 주위에 분포한 후 이로부터 행성들이 형성됐다고 본다.

한편 리틀턴 같은 학자는 원래 태양이 다른 별과 함께 쌍성을 이루고 있었는데, 다른 별이 이 쌍성 가까이 지나면서 태양의 동반성을 떼어갔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강한 조석력이 미쳤고, 이때 태양에서 방출된 물질에서 행성들이 탄생했다고 보았다. 리틀턴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쌍성을 이루고 있다는 관측 사실로부터 태양도 처음에는 쌍성이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내놓았다.

조석설의 가장 큰 약점은 행성들의 물질구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조석설은 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태양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데, 행성을 구성하는 물질은 수소와 헬륨 등 가벼운 원소보다는 철, 규소 등 무거운 원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뜨거운 태양에서 방출된 물질은 온도가 매우 높을 텐데 이로부터 어떻게 행성들이 형성됐는가도 의문이다. 다른 학자들은 조석작용으로 태양에서 방출된 물질이 목성거리 이상으로 멀리까지 뻗쳐나가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중수소나 리튬 같은 가벼운 원소는 뜨거운 태양에서 쉽게 파괴되므로 태양에서 방출된 물질에서 형성된 행성에서도 이러한 원소의 함량이 매우 적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관측치는 그렇지 않으므로 행성의 구성성분이나 나이를 고려할 때 조석설로 태양계 기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1944년 옛소련의 슈미트는 태양이 밀집한 성간물질 속을 지나면서 태양 주위로 많은 성간물질을 끌어들여 이로부터 행성들이 만들어졌다고 제안했다. 이와 같은 조석설이나 응집설 등 비동시 생성론에 따르면 태양이 생긴 이후에 행성이 형성되므로 행성의 나이는 태양보다 적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 관측 자료에 의하면 태양과 행성들의 나이는 약46억년으로 같다. 따라서 비동시 생성론으로는 태양계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미완의 시나리오, 현대 태양계 기원론

오늘날에는 태양계 탐사선이 행성과 위성표면에 착륙하거나 그 주위를 선회하고 또 가까이 근접통과하면서 조사한 탐사자료가 많이 축적되고 있다. 이들 자료는 지상관측에서 얻을 수 없는 상세하고 정밀한 것으로 태양계 기원을 설명하는데 매우 귀중하게 쓰인다. 앞서 살펴본 태양계의 특성들도 이러한 현지 탐사를 통해 더욱 자세히 밝혀지고 있다. 이 자료를 토대로 한 현대 태양계 기원론을 살펴보면 행성들이 원시성운 물질의 단순한 중력 수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은 미행성들이 먼저 만들어진 후 이들의 충돌 결합과정을 통해 행성으로 성장했다는 ‘미행성 성운설’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이 기원론을 4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자.


(그림2) 태양계의 형성과 구조^가스원반에서 태양과 함께 형성된 미행성들이 행성으로 성장했다. 중심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온도가 달라져 암석행성, 가스행성, 얼음행성이 다르게 형성됐다. 성장하지 못한 미행성들이 외곽으로 밀려나 카이퍼벨트와 오르트 구름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1)원시성운 수축

47억-46억년 전에 거대한 분자구름에서 원시태양계 성운이 분리됐다. 이 성운은 오랜 동안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주위의 초신성이 폭발할 때 나온 무거운 원소의 물질에 오염되기도 했다. 초기에 회전하던 원시성운은 자체 중력으로 점차 수축해 물질이 안쪽으로 모여들면서 회전속도가 빨라지고 납작해진다(그림2-A). 성운 안쪽의 물질은 중심부로 수축하면서 온도를 높이고 또 안쪽 물질의 강한 인력 때문에 바깥쪽 물질은 더 빠르게 회전하면서 점차 납작한 원반을 이룬다.

성운 총질량의 90% 정도는 가스이고, 10% 정도는 티끌이다. 총가스량의 약 73%는 수소이고, 약 25%는 헬륨, 약 2%는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로 이루어졌다.

한편 성운 중심부에서는 급격한 밀도 증가에 따른 빠른 중력수축(중력붕괴)으로 빛을 내는 원시태양이 탄생된다. 이러한 원시성운의 수축단계는 약 1천만년간 지속된다.


지구에서 떨어진 가장 오래된 운석의 나이는 태양과 같은 46억년이다. 이는 태양계의 구성원들이 모두 함께 형성됐다는 증거다.


(2)미행성 형성

원시성운의 계속적인 수축으로 회전원반은 더욱 납작해지며 회전속도는 더 빨라진다(그림2-B). 태양의 강한 열과 복사압으로 안쪽 성운물질에서 가벼운 원소들은 온도가 낮은 바깥쪽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안쪽 지역의 원반물질에서 무거운 원소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 원반물질은 원반 중앙면으로 내려오면서 수축된다. 이때 밀도가 짙은 지역에서는 먼지입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커지면서 큰 덩어리로 성장한다. 이러한 물질 덩이가 많아질수록 원반수축이 더 빨라지면서 큰 물질덩이가 더 많이 생기게 된다.

한편 물질덩이 속에 들어있는 방사성 물질이 붕괴하면서 방출한 열로 입자덩이가 녹거나 증발하는 열적 변화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원시물질의 성분이 변하게 된다. 물질덩이가 수cm - 수m 크기로 성장하면서 서로 충돌결합이 일어나면 물질덩이는 더 빠르게 커져 약 1만년 후에 수km 크기로 성장한다. 이처럼 크기가 수m - 수km에 이르는 초기원시 물체를 미행성이라 부른다. 이런 미행성의 형성단계는 10만년-1백만년간 지속된다.

(3)행성 형성

태양 가까운 원반에서는 높은 태양열과 복사압 때문에 가스성분이 결핍된 미행성들의 충돌결합으로 암석질의 암석행성이 형성됐다(그림2-C). 태양에서 5AU 떨어진 목성 정도 거리에서는 온도가 낮아 원반 내의 물이 얼음으로 남게 된다. 얼음은 주위 물질을 쉽게 흡착하는 촉매 역할을 해 미행성들을 빠르게 끌어모음으로써 가장 질량이 큰 목성이 형성되고, 뒤에 토성이 형성됐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수많은 작은 소행성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초기에 충돌 결합으로 큰 행성을 이룰 수 없었던 이유는 목성의 강한 인력이 미쳐 자체적인 중력결합을 방해했기 때문으로 본다. 태양에서 10AU-30AU 만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는 온도가 -1백90℃이하로 낮기 때문에 암모니아와 메탄이 고체얼음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암모니아의 용융온도:-78℃, 메탄의 용융온도:-183℃). 이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주위 물질이 흡착됐기 때문에 질량이 큰 천왕성과 해왕성의 얼음행성이 형성됐다. 원반 내에서 행성들이 형성된 기간은 1천만년-1억년간 지속됐다.

(4)성운 분산

행성들이 형성된 후 그 주위에 남아있는 얼음성분의 미행성들로부터 위성들이 형성됐다. 그리고 남은 미행성들 중에서 대부분은 행성들의 섭동으로 해왕성 바깥쪽으로 밀려나 카이퍼벨트와 오르트구름을 이루고 있다(그림2-D). 이 미행성이 태양 가까이 지나게 되면 긴 꼬리를 내는 혜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명왕성은 카이퍼벨트에 들어 있던 큰 미행성으로 짐작된다. 한편 태양계 안쪽으로 들어간 미행성들은 행성과 충돌하면서 행성의 자전축을 변화시키고 또 충돌로 표면층을 심하게 변화시켰다. 행성들은 대부분 자전축이 약간씩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미행성의 충돌로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남아있는 미행성들이 분산되는데 1천만년-1억년이 소요됐다.

태양계의 기원을 거칠게 재구성해 보았다. 그러나 태양계의 특성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관측사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은 아직 없다. 최근에 여러 별 주위에서 행성들이 발견되고, 또 태양계의 초기 형성단계와 같은 원반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 앞으로 외계 행성계와 원반물질의 구조를 자세히 조사함으로써 별의 탄생과 행성계의 기원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토성의 위성 미마스의 거대한 운석구덩이. 행성 전체를 박살낼 만큼 큰 규모다.


태양계의 신상 명세서

태양계 기원을 올바로 설명하려면 태양계의 관측된 일반 특성이 잘 설명돼야 한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천체들의 구성성분, 운동, 공간분포 등에 관한 여러 특성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자.

(a)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86%를 태양이 차지하므로 태양의 형성이 다른 태양계 천체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b) 모든 행성들은 태양의 자전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공전한다. 이것은 행성이 회전하는 성운에서 태양과 함께 탄생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c) 명왕성을 제외한 모든 행성들은 거의 같은 평면 내에서 공전한다. 이것은 행성들이 납작한 원반형의 성운에서 탄생됐음을 시사한다.

(d) 행성의 자전축은 공전축에 대해 기울어졌다. 그리고 행성이나 위성 표면에 수많은 운석 구덩이가 있다. 이런 관측 사실은 먼 과거에 수많
은 운석충돌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e) 태양에 가까운 수성, 금성, 지구, 화성은 주로 철, 니켈, 규소 등 무거운 원소로 구성된 암석행성이고, 가장 큰 목성과 토성은 주로 가벼운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가스행성이다. 가장 멀리 있는 천왕성과 해왕성은 70% 이상이 얼음(H₂O, 메탄, 암모니아 등)성분으로 이루어진 얼음행성이다. 이러한 구성성분의 차이는 성운 내에서 태양으로부터 거리에 따른 온도 차이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f) 가스행성과 얼음행성, 그리고 이들 행성의 큰 위성들은 평균밀도가 물의 2배(2g/cm³)보다 적고, 이들 표면은 두꺼운 얼음층으로 이루어졌다.

(g) 소행성과 비슷한 작은 천체들이 해왕성 바깥 30AU-1백AU 사이에 있는 납작한 카이퍼벨트 내에 많이 분포한다.(1AU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로 약 1억5천만km. Astronomical Unit, 천문단위라고 부름)

(h) 혜성들은 황도면 뿐만 아니라 여러 방향에 존재하는 3차원적 공간 분포를 하며 약 10만 AU까지 퍼져 있다. 이들 혜성들의 반 정도는 약 3천-2만AU 사이의 오르트구름 안쪽에 밀집해 있다.

(i)행성과 태양, 그리고 가장 오래된 운석의 나이는 모두 약 46억년으로 같다. 이것은 태양계 내 천체들이 같은 시기에 형성됐음을 암시한다.

(j)검은 색을 띠는 소행성, 혜성, 카이퍼벨트 내의 천체들은 그 구성성분이 대체로 태양과 비슷하다. 이들은 태양계가 형성될 때 존재했던 원시 미행성들의 잔해로 생각된다.

199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시우 교수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