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보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분단된 한반도 허리인 철원(鐵原)에 다다른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고인돌은 이곳이 구석기 때부터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도읍으로 사용한 땅이고, 일제 강점기에 의병이 일어난 곳이며, 더 이상 달리지 못하는 철마가 멈춰선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다.
살기 좋은 땅은 새들이 먼저 아는 법. 두루미, 독수리, 기러기 같은 겨울철새들이 매년 철원 땅으로 날아온다. 그중 시베리아 한카호 주변에 살던 두루미는 얼어붙은 호수를 떠나 남쪽으로 내려온다. 넓은 철원평야에는 낟알이 즐비하고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인적도 드물다. 철원평야는 두루미에게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남쪽나라이고, 이들을 사진에 담는 생태사진가에게는 잘 꾸며놓은 거대한 스튜디오가 된다.
하나만을 위한 애틋한 사랑
두루미는 서너 마리가 함께 다닌다. 지극한 부부애로 이룬 가족이다. 시베리아에서 5월경에 알을 한두 개 낳아 25일 동안 품으면 새끼 두루미가 알을 깨고 나온다. 어미는 나는 법과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친 뒤 새끼와 함께 시베리아의 혹한을 피해 철원으로 날아온다. 날지 못하는 새끼 두루미는 남겨져 죽음을 맞기도 한다.
두루미 부부는 마주보고 고개와 날개를 뒤로 젖힌 채 번갈아 울어댄다. 사랑을 확인하고 부부 영역을 표시하는 행동이다. 남편이 창을 하고 아내가 따르는 부창부수(夫唱婦隨) 그대로다. 또 껑충껑충 뛰며 원을 그리기도 한다. 두루미가 가진 독특한 구애행동이다. 사람들은 이를 ‘학춤’이라고 부르며 따라했고, 이 춤은 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됐다.
자손을 많이 번식하는 일이 생물의 본능이지만 두루미는 다르다. 두루미는 보통 50년을 산다. 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며 한 마리가 죽어도 새로운 짝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자기 영역을 알리려 울어대는 홀로 남은 두루미 울음소리는 왠지 구슬프게 들린다.
빨간 모자 쓴 겨울의 진객
두루미는 “뚜루루루~”하고 우는 ‘이’(명사형 어미)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두루미라는 이름을 가진 새는 전 세계에 15종이 있으며, 두루미, 재두루미, 검은목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두루미, 쇠재두루미 6종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가장 많은 수는 재두루미와 두루미가 차지하는데, 많을 때는 수천마리가 철원평야에 모여 겨울을 보낸다.
보통 두루미라고 하면 ‘단정학’이라고 부르는 새다. 140cm의 훤칠한 키에 하얀 깃털을 가진 두루미는 우리나라 겨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 됐다. 겨울철 진객(귀한 손님)인 두루미는 머리에 ‘빨간색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다. 자세히 보면 깃털이 없는 붉은색 피부다. 번식기에는 더욱 붉게 빛난다. 두루미 울음소리는 덩치만큼이나 크다. 긴 호스처럼 생긴 울음관에서 소리를 내고, 이 소리는 가슴뼈 속의 공명실에서 증폭된다. 관악기를 몸에 품고 있는 격이다.
분단을 뛰어넘는 두루미처럼
두루미는 얼어붙은 시베리아 땅을 10월에 떠나 황해도 장연, 옹진, 연안군 등에 내렸다가 개성과 판문점으로 내려온다. 그러다 11월쯤 이곳 철원평야로 모여든다. 올해 태어나 처음 철원에 온 새끼 두루미는 어미가 가르쳐 준대로 2~3년이 지난 뒤 자신이 낳은 새끼를 데리고 다시 철원을 찾아올 것이다.
겹겹이 가로막힌 비무장지대 철책도 두루미 가족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밟은 북녘 땅의 흙이 철원평야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지아비를 잃어 슬피 우는 두루미는 반쪽인 한반도의 외로움을 알고 있을까. 진익태 작가의 사진기는 해지는 노을로 날아가는 두루미 가족을 향한다. 분단을 뛰어넘는 두루미에 대한 사랑은 흙냄새 나는 농사꾼의 가슴 속에, 그리고 사진 속에 영원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