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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정거장서 국산 귀마개 끼고 잔다

시끄러운 팬 소리 막고 대화는 들려

10월 중순 한국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 150대 1의 1차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이 가려졌다. 지난 10월 16일 과학기술부(과기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한국 우주인 후보 공모에 지원했던 3만6000여명 가운데 1차로 남자 211명, 여자 34명 총 245명을 선발했다고 발표했다.

과기부와 항우연은 그동안 기초체력평가(3.5km 달리기), 필기시험, 서류평가를 통과한 500명을 대상으로 기본 신체검사를 해 245명을 가려냈다. 1차로 선발된 이들 가운데 최고령자는 49세 대학교수, 최연소자는 19세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10월 21일과 22일 양일간 진행한 2차 선발에서는 언어 및 임무수행 능력평가, 심층체력측정, 정신·심리검사를 거쳐 30명을 뽑는다. 그뒤 3차와 4차 선발과정을 통해 12월 말쯤 최종 2명으로 압축한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28일 항우연에서는 한국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수행할 과학실험을 선정하는 평가회의가 열렸다. 제안된 과제 중에는 초파리를 이용한 노화유전자 탐색, 초고집적·초경량 분자메모리 소자 개발, 우주공간에서 염력 및 텔레파시 실험 등이 눈길을 끌었다.

최기혁 항우연 우주인사업단장은 “평가회의에서 선정한 몇 가지 과학실험을 갖고 10월 말 러시아를 방문해 협의할 예정”이라며 “ISS에서 사용할 소음방지용 귀마개도 유망한 후보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 우주인이 1주일간 머물 ISS의 러시아 모듈에서는 언제나 고속도로 수준의 기계 소음이 들린다고 한다. 소음은 오래 전부터 우주인의 휴식이나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손꼽혀 왔다. 우주공간에선 편히 잘 수 없는 걸까. 우주에서 잘 때도 코를 골까.


침낭이 기본, 이동식 침실까지

“무중력에서 잠자기는 매우 힘들었으며 우주선 내 수면시설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최초로 우주에서 잠을 잔 러시아 우주인 게르만 티토프의 평가다. 그는 1961년 8월 유리 가가린에 이어 두번째로 지구 궤도를 돌면서 하루가 살짝 넘는 25시간 18분 동안 우주에서 지냈다. 그뒤 잠자리는 개선됐지만 지상보다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위아래가 따로 없는 무중력 우주선 안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잠을 잘 수 있지만, 둥둥 떠다니다 위험한 곳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어딘가에 고정하는 방식이 좋다. 보통 우주인들은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자는데, 이때 침낭은 벨트를 이용해 벽에 고정시킨다. 미국 우주왕복선의 갑판에는 네 명이 각각 잘 수 있는 칸막이 침실이 마련돼 있다.

ISS에는 침낭을 설치할 수 있는 선실이 두 곳 있다. ISS를 방문하는 우주인들은 주로 러시아의 즈베즈다 모듈에서 잠을 잔다. 남여를 구분하지 않고 벽에 붙은 침낭 속에 한 사람씩 들어가 잔다. 우리 우주인도 즈베즈다에 있는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잘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데스티니 모듈은 ISS에서 실험실 역할을 하는 곳인데, 5년 전 ‘임시수면시설’(TeSS)이라는 이동식 침실이 하나 들어왔다. 간의탈의실처럼 생긴 이 시설은 우주인이 혼자 잘 뿐 아니라 옷을 갈아입거나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개인 공간이다.

ISS에 머무는 우주인은 주로 즈베즈다 모듈에서 생활한다. 즈베즈다 모듈에는 침낭이 마련돼 있는 수면실(오른쪽)이 있다.


신체리듬 깨지지만 코골이는 준다

우주왕복선이나 ISS에서는 24시간 동안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16번이나 볼 수 있다. 둘 다 90분마다 한번씩 지구를 돌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망막에 들어오는 빛으로 하루의 시간을 판단하는데, 이렇게 자주 ‘밤낮’이 바뀌면 신체리듬이 깨지기 십상이다.

실제 1997년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5개월 가까이 생활했던 우주인 제리 리넨거는 “4개월이 지나자 밤낮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 잠잘 시간에 깨어있고 낮에 대화하다가도 잠이 들어버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주에서 한번 잠이 들면 의외로 지상보다 편안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샌디에이고대와 하버드의대, 미국항공우주국(NASA) 에임스연구소가 건강한 우주인 5명의 수면패턴을 공동 연구한 결과 우주에선 잠을 자다가 일시적 호흡곤란이나 호흡저하가 나타나는 비율이 지구에서보다 55%나 줄었다.

좁은 우주선에 갇혀 생활하는 우주인에게 좋은 소식도 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에서는 코골이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전체 잠자는 시간 가운데 코고는 비율이 17%(지상)에서 1% 이하(우주)까지 줄었다. 이 결과는 2001년 ‘미국 호흡기 및 중환자 의학 저널’ 8월호에 실렸다.

우주인은 보통 하루일과가 끝나고 8시간 정도 자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만일 전등이 켜져 있거나 우주선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다면 안대를 하고 잔다. 우주는 조용하지만 우주선 내부는 팬 같은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대부분의 흡음재가 불에 잘 타는 소재라 안전을 고려해 흡음 시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의 갑판에서‘시체처럼’자고 있는 4명의 우주인. 벽에 고정시킨 침낭에 들어가 있다.


로큰롤과 오페라 vs. 자명종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이덕주 교수팀은 ISS 즈베즈다 모듈에서 소음이 일어나는 원인을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귀마개를 개발하려고 연구 중이다. 러시아가 즈베즈다 모듈의 소음문제로 골치아파하다 소음방지기술이 뛰어난 우리 측에 이 문제를 상의해왔다는 후문이다. 대개 소음을 내는 장비를 교체하면 좋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소음방지용 귀마개가 제격이다.

이 교수는 “진동수가 1000Hz를 넘는 소음은 덮개로 막으면 효과적인 반면, 그보다 낮은 소음은 반대 위상의 음파를 쏴 상쇄시키는 방식이 좋다”며 “이 둘을 적절히 활용하면 소음을 잡는 성능이 뛰어난 한국형 귀마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개발할 귀마개에는 소음 환경이나 착용한 사람의 청력에 따라 없애야 하는 소음의 진동수를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간다. 물론 이 귀마개를 해도 대화하는 상대의 목소리나 긴급 상황의 벨소리처럼 필요한 소리는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개발한 귀마개를 착용한 우리 우주인이 ISS에서 자명종 소리에 깨어날 날이 머지않았다. 로큰롤에서 푸치니 오페라까지 다양한 음악이 아침잠을 깨우는 우주왕복선에 비해 ISS에서는 자명종 소리만 들리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 우주인 후보 1차 선발인원의 연령별, 직업별 분포


150대 1의 1차 관문 통과하다!

‘BOMOS’가 대전이다. 이 암호의 힌트는 2다. 그럼‘TOOMNOS’는 어디인가? ①수원 ②대전 ③대구 ④부산
지난 9월 15일 한국 최초 우주인을 뽑는 필기시험에 나왔던 외계암호 같은 문제다. 2주 전 3.5km 달리기는 우주 유영하듯‘가볍게’통과했지만, 필기시험을 마치고나니 블랙홀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다음은 정밀신체검사. 검사장에서는 역삼각형 몸매를 자랑하는 군인부터 목에 깁스를 하고 온 의사까지 모두 우주를 향한 열의를 불태웠다. 힘차게 소변검사에 임했고 눈을 부릅떠 시력검사판을 읽었으며 심장을 고동쳐 혈액검사에 응했다. 150대 1의 1차 관문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 최초 우주인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리라.

200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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